지난 11월 27일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완료된 후 ‘우주 신약’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누리호에 국내 우주 의약 전문기업 스페이스린텍의 실험용 큐브위성 ‘BEE-1000’(비천)과 한림대가 개발한 줄기세포 배양 장치 ‘바이오캐비닛’이 실렸기 때문이다.
비천은 우주 무중력 환경에서 항암제 주성분인 ‘펨브롤리주맙’의 결정화에 도전한다. 결정화 과정을 모니터링해 신약 설계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바이오캐비닛은 줄기세포 3D 프린팅과 분화, 배양 기술을 검증하는 게 목표다.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우주에서는 중력이 약해(미세중력) 지구에서는 어려운 단백질 구조 결정화나 고순도 약물 제조 등을 수행할 수 있다. 중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단백질이나 특정 후보물질의 입자를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어 정밀한 신약 설계와 작업이 가능하다.
가령, 지구에서 단백질은 무른 성질을 가져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고 일정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지만, 우주에서는 중력이 거의 없어 깔끔한 형태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을 정교하게 진행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선점한 우주 신약 개발에 K-바이오도 동참하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글로벌 빅파마, 8년 전 우주 신약 개발 착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우주의학 시장 규모는 2023년 7억70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에서 연평균 11%씩 성장해 2030년에는 16억 달러(약 2조3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주 신약 개발의 포문을 연 건 글로벌 제약사 미국 머크(MSD)다. 머크는 2017년 자사 블록버스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연 매출 40조 달성)의 주성분 ‘펨브롤리주맙’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내 단백질 결정 최적화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무중력 환경에서 더 균일하고 점도가 낮은 결정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머크는 해당 연구를 기반으로 지구에서도 키트루다를 군일하게 작은 입자로 만드는 실험을 진행해 키트루다 피하주사(SC) 제형을 개발했다. 키트루다 SC는 올해 미국과 유럽 등에서 허가됐다.
머크의 우주 실험 결과가 확인된 이후 일라이릴리,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등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은 꾸준히 우주 신약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항공우주 제조업체 레드와이어와 함께 만성 질환 등에 중점을 두고 우주에서 신약 개발을 추진 중이다. 회사는 우주에서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는 레드와이어의 의약품 제조 플랫폼 ‘필-박스’를 활용한다.
아스트라제네카도 나노입자와 무중력상태를 이용한 신규 약물 전달 기법과 물질 개발을 진행했다. 미국 스타트업 바르다스페이스는 2023년 ISS가 아닌 위성에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 우주 향해 도전 이어가는 K-바이오
국내 기업들도 우주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번 누리호에 비천을 쏘아올린 스페이스린텍은 지난 9월 자체 개발한 우주 의약 연구 모듈 ‘BEE-PC1’을 ISS로 보내 지난달 자동 단백질 결정화 실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해당 모듈은 우주의 미세중력 환경에서 단백질 결정화 실험을 수행하는 자동화 시스템이다. 미세중력 환경에서도 고순도·고균질 단백질 결정을 자동화 공정으로 확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번 누리호에 실린 비천은 펨브롤리주맙의 결정화에 도전한다.
제약사 보령은 미국 우주 기업 액시엄스페이스와 암, 노화, 정신질환 등 분야 신약 개발을 추진 중이다. 보령은 대기권 밖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간 건강 상태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20년부터 CIS(Care In Space) 프로젝트를 준비해왔다. 2022년에는 ‘제1회 CIS 챌린지’를 개최했다.
CIS 챌린지는 세계 각국의 우주 분야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비롯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 향후 우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헬스케어 관련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마련된 프로젝트다.
보령의 CIS 챌린지는 2023년 주제와 파트너의 규모를 확장한 HIS(Humans In Space)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HIS 프로그램은 인류의 우주 환경 적응 문제 솔루션에 더해 지구상의 문제 해결에 우주 환경을 적용하는 신기술 개발을 목표에 추가했다.
같은 해 보령은 액시엄스페이스와 국내 합작법인 ‘브랙스스페이스’(BRAX SPACE)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우주 신약 개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다.
국내 바이오벤처 앱티스는 지난 3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K-헬스미래추진단이 주관한 제2차 한국형 ARPA-H 프로젝트의 ‘의료 난제 극복 우주의학 혁신의료기술개발’ 과제에 선정되며 우주 신약개발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앱티스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우주의학 혁신의료기술 개발 분야로 알려졌다. 앱티스는 클라우딘 18.2 항체 기반의 항체-약물접합체(ADC)인 ‘AT-211’ 물질에 대해 우주에서 항체를 상산한 후 이를 활용해 2단계를 거쳐 최종 화합물을 합성해 기존 물질과 동등하게 생산되는지 걔념검증 할 계획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주 신약개발은 의약품 개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중요한 진전”이라며 “생명공학 기술과 우주과학의 결합은 제약 산업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