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금융 당국 신임 수장들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이중 금감원장을 맡은 이찬진 원장은 공식적인 첫 행보로 국내 시중 은행장들과 대면하는 자리에서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강도 높은 관리를 이어가겠다고 공언했다. 이 금감원장은 1일 생명·손해보험사 대표들과 대면에 이어 앞으로 4일 저축은행업계, 8일 증권사·자산운용사, 16일 여신업계, 19일 상호금융 CEO를 만날 예정이다.
●시중은행 이자장사 지적·내부통제 고도화 언급...소비자·통제 중심 전환
우선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우리 등을 포함한 시중은행 7곳과 지방은행 5곳, 인터넷은행 3곳 등 20개 국내 은행 은행장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강도 높은 발언으로 선전포고를 날렸다.
이 원장은 이 자리에서 ▲사전 예방적 소비자 보호 ▲이자장사 문제 ▲생산적 금융 전환 등을 중요 키워드로 꼽았다. 이 원장은 “모든 감독·검사 업무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못 박았고, 특히 불완전판매 등 소비자 피해에 대해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강하게 말했다.
첫 번째로 ‘금융 소비자 보호 문화’를 내재화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 금감원장은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와 같은 대규모 소비자 피해 사례를 직접 언급했다. 그러면서 은행 내부통제를 고강도 점검하고 앞으로 모든 감독·검사 업무에서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앞으로 금융 감독·검사의 모든 업무 추진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앞서 취임사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를 대폭 강화하고 금융범죄를 엄정 대응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흔들리지 않는 대원칙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두 번째로 이자장사에 치중된 시중은행의 수익 측면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실제 지난 1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내려간 만큼 5대 은행의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차이)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5대 은행의 가계예대금리차가 모두 확대된 가운데 확대 폭이 가장 큰 곳은 신한은행, 확대율이 가장 높은 곳은 우리은행으로 조사됐다.
1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7월 평균 가계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1.47%포인트로 지난해 7월 0.43%포인트에서 1.03%포인트 확대됐다. 이 시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3.50%에서 2.50%로 1.00%포인트 낮췄다. 기준금리가 내려간 딱 그만큼 5대 시중은행의 가계예대금리차가 벌어진 셈이다.
7월 5대 은행 가운데 가계예대금리차가 가장 큰 곳은 KB국민은행으로 1.54%포인트로 나타났다. 신한은행이 1.5%포인트, NH농협은행이 1.47%포인트, 하나은행이 1.42%포인트, 우리은행이 1.41%포인트로 뒤를 이었다.
이 원장은 “은행이 담보·보증 중심의 손쉬운 이자 장사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꺼냈고,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주문했다. 미래산업·중소기업·소상공인으로 돈이 흘러가야 한다는 것인데요. 단기 마진 대신 성장 부문 자금공급을 확대하라는 요구죠. 금감원은 이를 뒷받침할 건전성 규제 개선도 예고했다. 이로 인한 내부통제와 관련해서도 이 원장은 ‘금융사고는 깨진 금고와 같다’는 비유로 내부통제 고도화를 ‘비용’이 아니라 핵심 투자로 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세 번째, 이 원장은 은행들이 담보와 보증 중심의 대출영업에서 인공지능(AI) 등 미래 성장 산업에 대출이나 투자를 늘리는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도 은행의 건전성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적 지원을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AI·데이터 기반 상시 통제와 ELS·전산사고 이슈들로 신뢰 회복에 중점을 둘 것을 강조했다, 이는 금감원은 검사·제재의 틀도 이런 소비자·통제 중심으로 재정렬하겠다는 기류로 분석된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 중소기업·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지원 확대 및 은행들은 소비자보호 강화·내부통제 고도화·신성장 자금공급 확대에 공감한다”면서 “생산적 금융과 내부통제 고도화라는 새로운 경영 모델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구현하느냐가 하반기 은행권의 최대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명·손해보험사에게도 소비자보호 내재화·재무건전정 등 강조
1일에는 이 원장은 서울 종로구 센터포인트 광화문 빌딩에서 16개 생명·손해보험사 CEO를 비롯해 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 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과 취임 이후 첫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원장이 소비자보호 강화 및 사회간접자본(SOC)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달라고도 당부했다.
보험산업이 기업 성장과 사회 인프라 구축에 기여했다고 취하한 이 원장은 앞으로도 보험산업이 건전한 성장을 지속하고 소비자들에게 신뢰받기 위해 ▲금융소비자 보호 문화 내재화 ▲재무 건전성 관리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 ▲보험업계 사회적 책임 등을 지침 사항을 제시했다.
우선 이 원장은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문화를 내재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최고 경영진부터 소비자의 관점을 우선시하는 조직문화를 내재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잘못된 보험상품 설계는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고 의료체계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상품설계와 심사 단계부터 사전예방적 소비자보호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보험금 지급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인 가운데, 상품개발 관련 내부통제가 이행되지 않는 경우 무관용 원칙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재무건전성 관리에도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보험산업의 건전성은 대체로 양호한 상태이지만 금리 하락 등으로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기에, 자체 재무 영향 분석과 적극적인 자산·부채 종합관리(ALM) 등을 통해 리스크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 달라는 의미다.
또한 이 원장은 할인율 현실화 속도를 조절하되 ‘듀레이션 갭’ 기준 마련 등 금리 리스크 관리 기조를 지속할 예정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도입을 추진 중인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규제’도 충분한 준비기간을 부여하는 등 연착륙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 원장은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도 주문했다. 그는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 이후의 과도한 판매 경쟁과 ‘상품 쏠림’ 심화는 불완전판매 등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되지 않도록 판매수수료에 대한 엄격한 통제장치를 갖추고 판매위탁 관리체계를 내실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금감원은 불건전 영업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와 부실한 내부통제 등 보험시장에 만연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가용 가능한 감독·검사 자원을 집중하고 행위자뿐 아니라 경영진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이 원장은 보험업계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첨단산업, SOC(사회간접자본) 등 생산적 금융에 대한 자금 공급과 ESG 연계 투자를 확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하는 포용적 금융에 대한 보험업계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보험회사 CEO들은 그동안 금융당국이 소비자 신뢰 회복과 규제 합리화 등에 노력해 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보험업계가 과도한 판매 경쟁이나 단기 이익에만 몰두해 생긴 여러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도 공감했다. 앞으로 보험업계에 소비자 관점을 우선시하는 조직문화를 내재화할 수 있도록 최고 경영진 차원에서 노력하겠다고 했다.

●8일 증권사·자산운용사 수장 만남...IMA 지정·발행어음 인가 심사·책무구조도 논의
이찬진 금감원장은 내달 8일 증권사·자산운용사 수장들을 만난다. 보험, 저축은행 CEO와의 상견례보다 일정이 늦어진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자본시장 업계에 집중했던 전임 감독원장과 달리 업계 간 균형을 맞추겠다는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는 종합투자계좌(IMA) 지정과 발행어음 인가 심사, 책무구조도가 간담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이 원장이 취임사에서 모험자본 활성화를 강조한 만큼, 자본시장의 자금 공급 기능을 강화해 기업이 성장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모험자본 공급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제도를 손질하고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증권사를 대상으로 발행어음업 인가 심사를, 8조 원 이상 증권사를 대상으로 IMA 지정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지난달부터 증권사·자산운용사에서 시행된 ‘책무구조도’와 현 정부 기조에 맞춰 불공정거래 엄단 등에 대한 언급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 금감원장은 16일 여신업계, 19일 상호금융 CEO를 만나 업계 주요 사안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