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1784년,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조선 정조 시대에 신앙공동체를 시작한 해로 꼽는다. 고종 때는 프로테스탄트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포교 활동을 폈다. 기독교는 이 땅에 들어와 식민지와 해방 이후 경제성장과 함께 크게 신자가 늘어 나 한국의 중추적인 종교로 자리 잡았다.
서양철학은 일제 시대 경성제대 철학과가 개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유입됐다. 한국의 서양 철학계는 아직도 수업시대를 졸업하지 못하고 헤겔과 니체, 칸트, 마르크스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듯하다. 동양철학계도 고전 해석학을 하는 수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서철 학계 모두가 ‘과거에 이러이러한 훌륭한 철학이 있었다’라는 일종의 역사 철학으로 전락해 현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데카르트 이후 서양철학사는 자신의 유일무이한 무기인 이성(reason)을 가지고 기독교의 권위를 깨트리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 도취했던 서양철학은 이제는 자신의 분신인 과학에게 주도권뿐만 아니라 생존권마저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를 주적으로 삼아 승전가를 불렀던 철학은 이제 고전 해석학자들의 놀이터가 돼 버렸고 현대인들은 그 난해함에 고개를 저으며 귀 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기독교와 서양철학이 도입되던 시기에 태어난 다석 유영 모는 우리 역사의 고난을 함께 견디면서 동·서 간 종교와 철학을 융합해 독창적인 일가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석 유영모의 삶
다석은 189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유학을 접하고 소학교에서 신식 교육도 받았다. 16세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다.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교장을 역임한 적이 있다. 1935년 경기도 고양군 구기리로 이사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다석은 이 시기 무렵부터 성경을 유교와 불교, 도교와 융합한 강론을 오랫동안 이어갔다. 그의 나이 51세인 1941년 2월 17일부터 일평생 동안 1일1식을 했으며 매일 밤 잣나무 널 위에서 자는 수행 생활을 실천했다. 1943년 2월 5일 하늘과 땅과 자신이 하나로 뚫리는 깊은 깨달음을 체험했다고 전한다.
다석은 1942년 성서조선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57일간 옥고를 치렀다. 다석은 기독교와 동서양 철학을 두루 통달했 을 뿐만 아니라 대종교 3대 교주 윤세복과 교류를 통해 접한 「천부경」, 「삼일신고」 등 삼일철학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를 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1981년 죽은 다석은「다석 강의」와 「다석 일지」, 「제소리」 등을 남겼다. 그의 철학과 사상은 난해한 까닭에 그의 제자들에 의해 쉬운 언어로 해석되어 전파되고 있다. 이 글은 한신대 교수 를 지냈으며 다석 철학을 오랫동안 연구한 박재순 박사의 저서 「다석 유영모」를 참고하여 썼다.
다석이 여느 철학자와 다른 점은 지식으로 공부하여 깨친 것이 아니라 동서양 종교와 철학을 넓게 깊이 공부하고 실제로 치열하게 수행하여 깨친 점이 남다르다. 원래 새로운 철학가와 사상가는 스스로 체험공부를 한 사람들 가운데서 나왔다. 다석도 이 과정을 거친 철학가 중의 한 사람이다. 한국의 민족종교 창시자들인 수운과 나철, 소태산, 강증산도 체험 공부를 통해 깨친 분들이다. 다석도 이런 분 들의 반열에 드는 철학가라고 할 만하다.
◇다석은 서양 철학과 기독교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서양 철학은 이성의 힘을 믿고 의지하여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기독교는 이성은 믿을게 못 되며 신에게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교리를 지니고 있다. 서양인들은 이 두 개의 상반된 정신 세계를 통합하기는커녕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사실상 거의 갈라서 있다. 서양 철학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지금은 힘이 더 세진 과학은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다석은 근대 서양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가 설파한 ‘생각’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더욱 깊이 파고 들어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소통하는 길을 발견했다. 다석은 생각을 통하여 신을 알았다. 데카르트가 ‘생각’을 통하여 과학의 문을 열었다고 하면 다석은 ‘생각’을 통해 신을 알게 되는 길을 텄다. 다석에 의해 철학과 신학이 통합된 것이다. 박재순 신학박사는 다석의 사상에서는 이성을 종교적 계시에 종속시키지 않고 신앙을 이성에 굴복시키지 도 않은 방식으로 종합을 이룩했다고 말했다.
다석은 생각한다는 것은 하늘을 통해서 쉬지 않고 원기를 마시어 우리의 정신과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생각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 하늘에 도달한다고 했다. 또 생각을 해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생각 없이 되는 대로 먹고 입고 자고 일어나는 사람은 식충이라고 비판했다.
‘생각’은 신의 사랑과 정의를 의미하는 말씀을 새기고 살리는 행위다. 하느님과 통하려면 생각의 주체인 ‘나’를 중심으로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 부분이 다른 철학자와 과학자들과는 다른 접근이다. 이것은 나를 통하여 신을 알고 자연과 과학도 알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 중간 매개체는 ‘나의 생각’이므로 ‘생각’을 갈고 닦지 않으면 안된 다고 다석은 말했다.
다석은 나의 본성을 파고들어 입에 밥이 통하고 코에 공기가 통하고 귀에 말이 통하고 마음에 신이 통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신과 통하면 영생에 이르고 죽음은 없다고 말했다. 하느님과 통한 ‘나’는 우주와 생명의 중심이며 길 이라고 말했다. 다석에 따르면 ‘생각하는 나’는 땅과 시간에 매인 존재라는 면에서는 작은 존재이지만, 하느님과 소통하는 존재라는 면에서는 크고 강한 존재라고 말하면서 하느님과 소통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다석은 하느님과 소통하면 자연히 하느님의 생명 말씀의 씨가 담긴 거룩한 생각이 내게로 전해진다고 말했다. 반대로 하느님과 교통이 끊어지면 그릇된 말들이 생각나게 되고 질컥질컥 지저분하게 사는 짐승처럼 된다고 말했다.
다석은 우리의 몸과 물질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정신으로, 모든 것이 하나로 이뤄져 있음을 깨닫는 하느님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사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사회는 자유와 공평이 이루어지는 대동 정의의 세계라고 말했다.
◇ 신을 탐구하면 자연 변화를 알게 된다
과학자나 일반인도 과학을 얘기할 때는 신을 논하지 않는다. 특히 과학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 신을 말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다. 다석은 신을 탐구하면 자연 변화를 알게 된다. 즉 과학적 지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아인슈타인 이후 우주론과 시간론과 양자론이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자 과학이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양자 컴퓨터가 실용화된다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은 세상을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터무니없을 것 같은 다석의 주장이 21세기 과학의 시대를 맞아 경청해볼 만한 영감을 이미 제시한 것이다.
다석에 따르면 인간이 몸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정신으로, 정신에서 영혼으로 발전해가면 하느님을 알게 되고 만물이치를 자연히 깨칠 수 있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물질 세계의 탐구를 통하여 신의 세계를 이제 막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면 다석은 신을 탐구해야만 물질세계의 과학 이치를 온전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과 생명, 인간의 정신, 영의 세계의 꼭대기에 신이 존재 하기 때문이란다. 무엇보다도 물질과 생명과 정신과 영은 존재의 위계가 다르기 때문에 물질과 생명을 탐구해서 그 위의 존재인 정신과 영을 알 수는 없으며 하물며 최상위의 초월적 신을 파악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박재순 박사는 오늘날 과학과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모든 것을 물질과 과학, 기계로 환원시키고 교환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시 말해 생명과 정신, 영혼의 세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물질적 분석과 경제적 효과를 숫자로 측정한 처방만 남발하는 탓에 각종 문제와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지 못하고 악화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다석의 논리에 따르면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과 영혼이 하느님에게로 다가가는 길을 찾아야지, 정신에 머문 다든지 그 아래 물질과 생명 단계로 내려가면 인간은 영원히 욕망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 속에 내재 된 신성을 양육하지 않는 다른 길은 무용하다고 설파했다.
강조하건대 다석은 만물을 탐구하는 것이 하느님을 탐구 하는 것이요, 신학과 과학, 나아가 모든 학문은 상통한다고 말했다.
◇다석의 속죄론
기독교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 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다석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인류의 죄가 속량됐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지금 존재하는 인간도 그 속죄 행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 개별 인간의 주체적인 참여를 강조한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속죄만으로 현재 살아 있는 인간들과 미래 인류들의 죄까지 사함을 받는다는 교리는 예수의 죽음을 인간의 삶과 역사에서 차단한다고 다석은 주장했다. 즉 현재의 인간이 자신의 죄에서 주체적으로 참여할 기회도 없고 예수의 구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 예수와의 참 된 관계를 가질 여지도 없앤다는 주장이다.
다석은 기존 성경 교리는 너무 이스라엘의 역사와 로마 시대 박해받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좁게 해석한 것으로 봤다. 박재순 박사 는 ‘나’의 인격적 참여를 배제한 속죄 신앙은 주술적 미신 신앙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박재순 박사는 이와 같은 미신적 신앙은 사실 성경의 이해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 했다.
다석은 십자가를 믿음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신앙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예수와 하나 되어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신앙을 추구했다. 다석의 제자인 함석헌은 「성서적 입장 에서 본 조선 역사」에서 한민족이 십자가를 지고 있다는 고난의 역사관을 피력하고 한민족이 십자가를 바로 지며 나아가면 인류의 평화와 구원이 이뤄진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아무튼 다석의 예수 속죄와 개인의 주체적 참여론은 기복 신앙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국 교회에 좋은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석의 주장이 체계적인 신학으로 다듬어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전쟁과 갈등을 피하고 평화를 회복하는 길-
종교, 이념, 세계관의 차이를 초월한 융합적 철학 필요
이스라엘과 이란, 미국 사이의 갈등 밑바닥에는 종교의 차이가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전쟁은 양국의 역사 의식과 비전의 차이가 존재하고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이념의 이질성이 깔려 있다. 종교와 이념, 세계관의 차이는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갈수록 더욱 벌어지고 증오만 쌓이게 된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종교와 이념과 세계관의 차이를 극복하고 융합하는 새로운 철 학과 사상이 필요하다.
인간과 집단은 기존의 신념과 교리를 더욱 강화하고 굳히려는 속성이 우세한 까닭에 이질적인 정신과 사상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나타낸다. 아무리 좋은 종교와 철학, 이념이라도 이질적인 것을 수용하지 못하면 타인과 대립해서도 망하지만 그 이전에 스스로 멸망의 길에 들어간다. 인 류의 역사는 이런 사례들로 차고도 넘칠 정도로 경험을 했음에도 아직도 그 어리석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차이보다는 같음을 찾아내고 서로의 차이를 너머서 새로운 공통점을 발견하여 공유해가는 운동이 절실 하다. 다석의 철학과 사상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의미 있는 우리의 소중한 정신 자산이며 앞으로 종교와 이념간 평화를 모색할 수 있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