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란과 이스라엘, 미국 간에도 준전시 상태에 접어들었다. 지금 미국내에서는 지난 6월 21일 미공군의 이란 핵시설을 향한 공습이 성공적이었나 아니었나를 놓고 설왕설래 중이다. 현재로서는 어느 측이 맞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선 핵시설 공격을 직접적으로 당한 이란 측은 심하게 손상을 입었다는 반응이다. 그들로서는 해당 정보를 공개할 이유가 없고 모호한 상태에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상식적으로 볼 때도 미 공군의 벙커버스터 공격이 적어도 수개월 전부터 예상돼 왔기 때문에 이란이 농축 우라늄을 다른 곳에 빼돌렸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이란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연이은 요인 암살에서 확인되듯이 지상으로 옮긴 위치를 모를리 없다는 판단도 타당하다.
핵시설 파괴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란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나와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핵 파기 조건에 합의를 볼 수 있는가의 여부라고 본다. 이게 안되면 전쟁의 불씨 정도가 아니라 본격적인 중동전쟁이 전개될 우려가 남아 있다.
이란 정부가 협상을 하는 척 하면서 시간을 끄는 전략을 취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참지 못할 것으로 보여 전면전은 불가피하다. 전면전은 우크라이나전에서 볼 수 있듯이 최소한 3년 이상 장기전으로 번질 공산이 크다. 이스라엘은 이란과 국경을 접하지 않고 있어 지상전을 펴기가 어렵다. 이란의 인구도 8천 5백만 명으로 이스라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전 국민이 항전 의지를 불태운다면 결코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이다.
이란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란 내 반정부 세력과 여론의 움직임이다. 이들조차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애국심으로 뭉친다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것 같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국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공격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여론전이 중요할 것 같 다.
전쟁과 관련해 미국의 최대의 약점이라고 하면 언론 보도 를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전은 언론의 반전 보도 때문에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언론은 그 속성상 전쟁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란 핵시설 파괴를 놓고 부정적인 언론 보도 가 쏟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미국민은 그간 해외 전쟁 개입에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반전 감정이 밑바 닥에 깔려 있음을 트럼프 대통령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또 세계 각국의 여론도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 호 의적이지 않다.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속된 인명 피해 증가와 관세 압박, 트럼프 대통령의 도발적 언사 등은 이란과의 분쟁 처리에서 실수가 드러나고 누적되면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세계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 언제 걷히려나
세계 경제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압박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간 경제 및 기술 전쟁에 이어 이란 분쟁까지 악재만 계속 터지고 있다. 이 네 가지 악재는 오직 미국만이 풀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네 가지 이슈가 지 지부진하게 풀리지 않은 채 연장되는 것이지만 현재 정세 추이를 살펴보면 한꺼번에 해결되는 낙관적 전망을 해본 다.
무엇보다 이번 미 공군의 이란 핵시설 공격에 대해 러시아 와 중국이 이렇다 할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배경은 충분하다. 러시아는 3년을 끌어온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당사국으로 외국 분쟁에 끼어들 여유가 없다.
뭔가 지원을 바라고 방문한 이란 외무장관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경제도 어려운데, 시진핑 체제가 흔들리고 있어서 역시 중동판에 힘을 쓸 처지가 못된다. 그러나 이 들 두 나라는 이란이 지구전 형태로라도 전쟁 상태에 들어 간다면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무방비 상태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군력에 무너 지자 국방장관이 중국으로 날아가 J-10 전투기 도입을 요 청했다. 만약 중국이 이란에게 스텔스급 전투기인 J-10 전 투기를 이란에게 공급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가만히 두 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 대한 경제 압박을 한층 더 강화할 것이 뻔하다. 중국이 그런 부담을 감당할 여유가 있을지 의문시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련을 무너뜨린 레이건이나 이라크 전 쟁을 벌인 부시 대통령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리더십을 보 여주는 것 같다. 리더십에 더해 사업가 출신답게 혼자서 총대를 매지는 않을 것 같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 억제를 위해 이란과 전쟁을 벌인다면 절대로 혼자서 다 책임을 지 려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동의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 는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에게 공동 참여를 요청할 것 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과 이란, 미국 간의 분쟁이 결코 먼 나라의 일이 아님을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에 인식시켜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제 예전의 초강대국이 아니다. 그 점을 미국의 정치 지도자와 군 수뇌부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 통령은 초강대국이 아닌 이상 혼자서 세계의 질서와 안전 보장을 부담하지 않겠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래서 동맹 들에게 방위비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외교 스타일은 관세 협상과 이란 군사 행동에 보여 준 바와 같이 때로는 엄포를 놓고 때로는 유예 조치를 취 해서 상대에게 숨통을 열어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중국과는 전격적으로 협상을해 극단적인 긴장 관계를 회피 하는 전술도 구사한다. 또 이란의 허를 찔러 미국 본토에 서 B-2 스텔스 폭격기를 발진시켜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 는 벙커버스터 폭탄을 떨어뜨리기도 하는 과감한 군사작 전을 지휘하기도 한다. 일찍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다. 미국의 강한 점과 약점을 다 알고 능 수능란하게 필요한 외교적, 군사적 제스처를 사용하고 있 다.
◇트럼프를 읽는 세 가지 키워드: 관세, 달러 패권, 제조업 부활
이번 미국의 전격적인 이란 폭격은 세계를 향해 힘을 과시 함으로써 관세 압박과 달러 패권 유지에 순순히 응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힘은 압도적인 군사 력에서 나온다. 이 점을 간혹 잊어버리는 전문가들이 있다. 미국은 아무리 경제가 나빠도 천조국이라는 말이 상징하 듯 2024년 국방비에 9천680억 달러를 쓴다. 중국 국방비의 4배다.
트럼프가 달러의 도전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하며 이탈 조 짐을 보이면 가차 없이 다양한 압박 수단을 동원할 것으 로 예상된다. 달러 패권 도전자는 중국 엔화와 EU의 유로화인데, 트럼프 이후 관세 압박과 자유 무역 퇴조, 공급망 교란 등으로 이들 나라들의 경제가 미국 경제보다 더 어려 운 처지에 내몰려 있기 때문에 달러 패권은 오히려 강화되면 됐지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모든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영국과 일본은 상황 변화를 완전히 눈치채고 미국에 찰싹 엎드린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은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에 대해 찬사하는 메시지를 날렸다. “친애하는 도널드, 진정으로 특별하고 그 누구도 감 히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이란에서의 당신의 단호한 조치를 축하하며 감사하다. 그것은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든 다”는 내용이었다. 관세 압박 초기에 뻣뻣했던 유럽의 태 도가 완연하게 달라졌음을 반영해 주고 있다.
대한민국 새 정부는 이런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아직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지 못한 것은 여간 걱정스러운게 아니다. 달러 패권을 받쳐주는 것은 군사력과 함께 소비 파워이다. 흔히 기술과 생산 제조업 경쟁력을 논하는데, 소비 파워가 경제를 움직 이는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을 동원해 잘 만들고 싸게 생산해도 팔 데가 없으면 과잉 생산으로 기업은 망한다. 인플레보다 더 무서운 게 디플레라고 하지 않은가.
트럼프 정부는 각 나라 별로 원하는 조건에 관세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이미 발표된 나라별 관세율을 적용할 것 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무역이 싫은 나라와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게 트럼프의 생각인 것 같다. 우리나라로서는 미국에 수출해서 달러를 획득해야 원자재를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미국과는 조속히 관세 협상을 합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꼭 필요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는 수입할 수 없는 제품을 공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조선 산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압박을 통해서 외국 제조업이 미국으로 와서 제조하기를 원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 제조업 부흥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외국 기업이 미국내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면제해 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과 일본,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에 수출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에 속하는데, 트럼프 등장 이후 쓸 카드가 마땅치 않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이래 수출 모델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는데, 이제 수출 모델을 수정해야 할 시점에 이 른 듯하다. 대미 수출 중심의 모델에서 각 나라별로 맞춤형 상생 모델을 모색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하루속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이란과의 핵 협상이 평화적으로 종식하기를 기대한다. 한국은 전후 복구가 필요한 러시아와 오랜 경제제재로 피폐해진 이란의 경제회복 에서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질서를 잡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야 무역하는 나라인 한국이 무역의 기회를 엿볼 수 있음은 자명한 듯하다. 이재명 새 정부는 트럼프 대통 령과의 만남을 조속히 성사시켜서 관세 협상과 대미협력을 마무리할 필요가 시급하다. 미국에게도 한미동맹은 매 우 중요한 관계이기에 당당하면서도 좀 손해 보는 듯해도 양보하는 자세를 보이는 관용심이 요청된다. 예전의 미국 이 아니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타들어 갈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