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간 상호관세 유예 시한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재명 정부가 통상·외교 역량을 총동원한 막판 총력전에 나섰다. 유예 시한은 오는 8일로, 최악의 경우 미국의 '관세서한' 발송 대상에 한국이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정부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관세·통상 협상을 담당하는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부터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까지 미국 워싱턴DC로 급파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올코트프레싱'에 들어갔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를 찾아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유예 연장을 강력히 요청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가질 만한 한미 제조업 협력 비전을 함께 제시하며, 한국이 미국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 파트너임을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자동차, 철강·알루미늄 같은 전통 산업뿐 아니라, 반도체·이차전지·원전·조선 등 첨단 분야까지 아우르는 협력 패키지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 같은 제조업 협력이 양국 모두에 실질적 이익을 주는 만큼, 충분한 협상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유예 연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설득하고 있다.
양국 간에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나 망 사용료, 구글 지도 데이터 반출 같은 디지털 규제 이슈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국 내 빅테크 기업들의 반발이 큰 만큼, 이 분야에서도 접점을 찾는 유연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유예 연장이 불발될 경우, 한국이 12개국과 함께 고율의 보복관세 대상국이 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한국 산업계가 직접적인 충격을 받은 채 협상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에 정부는 통상 분야를 넘어 외교·안보 채널까지 동원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6일 미국으로 향하면서 협상 국면은 사실상 최고위급으로 격상됐다. 위 실장은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 핵심 인사인 마코 루비오 장관을 직접 만나 관세 문제는 물론, 연기된 한미 정상회담 일정까지 논의할 계획이다.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협상에 긍정적인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무대 안착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대통령실은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귀국으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루비오 장관의 방한도 중동 정세 악화로 취소되며 회담 성사는 계속 미뤄졌다.
결국 정부는 이번 위 실장의 방미를 통해 관세 협상과 정상회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겠다는 전략이다. 위 실장은 출국 직전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양국 협의가 중요한 고비에 접어든 만큼, 제 차원에서 관여를 확대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설령 상호관세 유예가 연장되지 않더라도 협상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는 협상용 압박 수단일 뿐 종결 선언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입장에서 협상 지렛대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양측이 정확히 원하는 조건이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며 협상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결국 이번 위 실장의 방미 성과가 향후 이 대통령의 외교 행보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