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할 것인가, 연결할 것인가?

  • 등록 2025.06.29 11: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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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규제의 딜레마

 

최근 여당 의원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을 법정 공휴일로 한정하고, 평일 대체 지정은 금지하도록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해 논란이 뜨겁다. 소비자 편익과 자영업 보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한 유통 규제 정책이 다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유통 규제를 대형마트에 집중할 경우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쿠팡의 2024년 매출은 약 41.3조 원으로, 전년 대비 29% 증가하며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40조 원대 매출을 돌파했다. 이러한 온라인 유통 급성장은 플랫폼 집중화와 독과점 구조를 심화시킬 가능성을 안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소비 증대와 빠른 배송 서비스 확장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2023년 기준 약 259조 4,412억 원으로, 전년 대비 7.1% 증가했고 식품·음료 분야는 전년 대비 14.2% 급증했다.

 

플랫폼 기업이 유통을 장악하게 되면, 가격 결정력, 알고리즘 통제권, 배송 우선순위까지 모두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생산자에게는 낮은 납품단가와 종속 계약을, 소비자에게는 정보 불균형과 선택권 제한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중소 생산자는 입점 수수료나 광고비를 감당하지 못해 플랫폼에서 밀려나고, 소비자는 알고리즘이 유도하는 ‘묻지마 소비’에 노출되며, 장기적으로는 국민 삶의 다양성과 자율성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또한, 중국계 플랫폼이 저가 공세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며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약 2%를 차지하는 등, 해외 플랫폼의 국내 진입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플랫폼을 지나치게 규제할 경우 오히려 외국계 플랫폼에 시장을 내주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유통 규제를 오프라인 중심으로만 추진할 경우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소비자·생산자의 쏠림 현상이 강화되어 장기적으로는 유통 시장의 독과점 심화와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오프라인 유통과 온라인 유통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에 대한 투명성 제고, 공정 경쟁 기반 장치 마련, 그리고 입점 중소농·중소기업 지원과 소비자 보호 장치 강화를 포함한 균형 있는 정책 설계가 절실하다.

 

◇새로운 소비 생태계와 그 명암

 

현재 소비자들은 과거와 전혀 다른 소비 생태계에 살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 전체 유통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주말에는 오히려 소비자들이 장보기에 나선다. 맞벌이 부부, 1인 가구, 직장인들이 평일 장보기를 포기하고 주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은 실질적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게 된다.

 

현실을 외면한 일률적 규제는 소비자의 불만을 초래할 것이다. 장보기를 미루다가 결국 온라인몰에서 비싼 가격에 급하게 주문하거나, 원하는 품목을 못 구해 생활의 질이 저하되는 사례가 빈번해질 수 있다.

 

소비자 못지않게 피해를 입고 있는 측은 농민이다. 전국 각지의 산지조직과 작목반, 농업법인,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등은 대형마트에 농산물을 납품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 영농조합의 예를 들어보자. 이 조합은 조합원 20명과 출하 농가 수십 명이 함께 모여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대형마트 납품은 이들 농민에게 유일한 판로이며, 이미 여러 해 동안 적자를 보면서도 버티는 이유는 생존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농산물 매출액은, 유통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받는 가락시장의 약 1/3에 이른다(축산 제외). 대형마트에 납품되는 농산물 중 국산 비율은 83.8%이며, 납품업체 구성은 95% 이상이 농가, 작목반, 산지조직이다.

 

◇본질적인 유통정책

 

대형마트가 주말에 문을 닫는다면 금·토에 출하 준비를 마쳐야 하는 농가는 납품 일정을 조정해야 하고, 이는 곧 신선도 저하, 재고 증가, 수익 감소로 이어진다. 이른바 생산-유통-소비라는 3각 축이 끊기면 농가가 가장 먼저 흔들린다. 그래서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이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전통시장 경쟁력을 키운다고 해서 자동으로 농가의 새로운 판로가 생기지는 않는다. 전통시장과 산지를 직접 연결하는 유통구조의 개편, 예컨대 공영도매시장 중심의 공동물류나 계약재배 연계, 전통시장 배송 시스템 정비 등이 선행돼야 한다.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고 육성하려면, 대형마트를 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지원 정책이 우선이다. 유통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흐름이 아니라, 농민의 생계와 소비자의 삶, 지역경제의 순환을 연결하는 사회적 인프라다. 이 흐름이 막히면 생산자는 팔 곳이 없어지고, 소비자는 비싸고 불편하게 상품을 구매하며, 지역 상권은 공동화된다. 따라서 유통정책은 유기적인 연결을 고도화하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

 

이런 연결의 설계는 가격 정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농축산물 할인 정책이다. 현재 정부는 농축산물 할인 쿠폰 사업을 통해 소비자 물가 부담을 덜고 있지만, 실제 사용처의 90% 이상이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에 집중되어 있다. 이로 인해 전통시장 상인과 산지조직, 중소 납품농가 등은 할인 정책의 실질적 수혜에서 소외되고 있다.

 

농축산물 할인 정책이 단순한 소비 촉진이나 물가 안정 수단으로 그쳐선 안 된다. 국민의 식생활권을 보장하고, 농민의 소득 기반을 지키며, 공정한 유통 질서를 구현하는 공공정책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려면, 전통시장 전용 할인 예산의 도입, 산지조직과 연계한 공동물류 시스템 구축, 공공 디지털 유통플랫폼 개발 등을 통해 접근성과 형평성을 높여야 한다.

 

소비자에게는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보장하며, 지역 경제에는 순환 가능한 유통망을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공공 할인 시스템의 방향이다.

 

◇디지털 공동화 전략

 

현대 유통의 결정적 변화는 디지털화다. 그러나 대다수 전통시장 상인과 농산물 생산자는 여전히 디지털 유통 생태계에서 소외되어 있다. 민간 배달앱과 온라인 쇼핑몰은 진입장벽이 높고, 수수료 구조는 영세 상인과 소규모 농가에 부담스러운 장벽이 되고 있다.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디지털 공동화 전략을 실행해야 할 때다. 단순히 배달앱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서 전통시장 연합몰, 로컬푸드 전자상거래와 산지직거래 플랫폼을 통합한 공공형 디지털 유통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디지털 공동화 전략의 실현하는 데는 기존 유통 인프라의 중심인 공영도매시장의 기능이 핵심이다. 특히 가락시장과 같은 공영도매시장은 중추적인 디지털 유통 허브로 진화해야 한다. 가락시장은 1조 원 규모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며 정온 시스템, 소분·가공센터, 전자 송품장, 실시간 유통정보 공개 시스템 등을 도입해 디지털 기반 유통 허브로 변모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 전국 산지 농가, 중소 식자재 마트, 전통시장, 급식시설, 소규모 가공업체까지 연결하는 공공식자재 플랫폼으로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플랫폼이 완성되면 전통시장 점포는 모바일로 당일 출하된 농산물을 주문하고, 공공 물류망을 통해 이를 바로 배송받을 수 있다. 급식시설은 도매시장 기반의 표준가격 계약과 계약재배를 통해 식자재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으며, 농민은 투명한 가격 체계와 예측 가능한 소득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유통 효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차세대 유통모델의 핵심이다.

 

◇규제와 연결의 기로

 

갈등은 종종 새로운 질서의 탄생 신호다. 소비자는 더 나은 선택을 원하고, 농민은 안정된 판로를 바란다. 정치와 정책 입안자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연결과 상생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새로운 정부 출범과 함께 많은 것을 재검토할 시점이다. 2010년 통큰치킨의 퇴장은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 아래 이뤄졌지만, 지금 소비자들은 더 이상 같은 선택을 원하지 않는다. 잇따른 치킨값 인상과 과도한 배달비에 지친 이들은 마트표 가성비 치킨에 환호하며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소비자의 기대와 목소리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누구를 규제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고물가 시대의 유통정책은 단호한 규제가 아니라, 섬세한 연결과 상생의 설계로 가야 한다. 그 첫걸음은 낡은 규제를 재검토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서 출발한다. 바로 지금, 그 변화를 시작해야 할 때다. 유통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연결의 도구로 재정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진짜 시장을 만들 수 있다.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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