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에너지 자립' 속도내는데...한국 대학가 '전기난', 왜?

  • 등록 2025.05.27 18: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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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 2035년 1700TWh 전망... 세계 전력소비의 약 4.4%
AI중점 대학 전력 확보戰...계통영향평가 행정절차 최소 5년 걸려
미·일 스마트에너지 캠퍼스...'가스터빈+ESS' 마이크로그리드 구축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AI 데이터센터가 ‘전기먹는 하마’로 부상하며 전력 수급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는 2023년 약 415TWh(테라와트시)에서 2035년 최대 1,700TWh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 세계 전력소비의 약 4.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최근 인터뷰에서 “AI 산업은 2025년 중후반에 전력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전력생산, 변압기 공급, 반도체칩 부족을 AI 산업의 핵심 병목으로 지적하며, 특히 전력생산 역량이 근본적인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우려는 AI 산업뿐 아니라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중대한 도전으로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연중무휴 가동되며, 막대한 양의 전기를 소모하고, 서버 냉각에도 상당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이로 인해 안정적인 전력공급 인프라 없이는 AI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 AI 전력난 현실화... ‘대학 연구실’ 전기 없어 연구 못해

 

전력난이 가시화 된 곳은 바로 인공지능(AI) 등 최첨단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국내 대학가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연구중심 대학들이 전력 부족으로 연구 장비를 가동하지 못하거나, 교수들이 전기 배분을 놓고 줄을 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신성범 의원(국민의힘)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AI 중점대학 19곳 중 17곳이 전국 424개 대학 가운데 전기료 사용량 상위 5%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이들 17개 대학이 낸 전기요금은 약 890억원, 사용 전력은 총 683GWh로 이는 국민 6만 5천명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 수준이다.

 

전기요금을 가장 많이 낸 곳은 서울대로 약 158억원을 지출했으며, KAIST 115억원, 성균관대 72억원, 연세대 69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들 대학은 전기요금을 줄이기 위해 장비 반납, 냉난방 시간 단축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음에도 연구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지 못해 고전 중이다.

 

 

AI 연구에 GPU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2020년경으로, 자연어처리(NLP) 분야에서 딥러닝 기술과 결합되면서 연산 자원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이후 AI 기술이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며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GPU 등 고성능 연산 자원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국내 연구 환경은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윤성로 교수는 M이코노미뉴스와의 통화에서 “GPU는 연구자에게 있어 필수가 됐지만, 구매 자체도 어렵고 구매하더라도 전기부족으로 제약을 받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전력부족 우려가 있었지만, 공론화되지 못한 채 연구 현장에서 개별적으로 감내해온 실정이라고 윤 교수는 밝혔다. 그는 “전력문제로 서버를 설치할 공간이 없어 교수 개인 연구실에 GPU를 놓기도 하고, 새로 지어진 건물에 서버 설치가 가능하다는 정보가 퍼지면 연구자들이 몰려드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는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어려워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연구자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고비용이 수반돼 연구비 여력이 없는 곳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윤 교수는 “결국 어떤 연구자들은 아예 GPU기반 연구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며 이른바 ‘전력 난민’처럼 연구 환경을 전전하는 현실을 언급했다.

 

여름철에는 냉방 문제까지 더해진다. “공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가정용 에어컨으로 서버실을 유지하는데, 여름에는 24시간 풀가동으로 버티다가 에어컨이 정지하면 서버도 꺼져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전력부족으로 인한 열악한 환경을 밝혔다.

 

전력부족 문제는 비단 서울대에 그치지 않는다. 성균관대학교의 경우 전력부족으로 미사용 AI 위탁장비를 반납하거나 KAIST는 중앙 냉난방 기간 단축에 나서 등 어려움에 처해있다. 고려대학교의 경우에도 AI연구가 집중돼 있는 정릉캠퍼스는 이미 전력이 포화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 장길수 공과대학 학장은 M이코노미뉴스에 “현재 정릉캠퍼스는 전기가 부족해 교수들이 추가 설비 도입이 어렵고, 연구 활동에 제약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전기요금도 학교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상승해 조속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 기술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정작 연구 현장에서는 인프라 부족으로 연구의 지속성조차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 송전선 막힌 수도권, 연구기관·데이터센터 ‘전력확보 전쟁’ 시작

 

서울대는 전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8월 한전에 10㎿ 규모의 전기수요를 반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사실상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10㎿ 이상 전력을 공급받으려면 법적으로 계통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기술검토와 행정절차에만 최소 5년 이상 걸린다는 답변을 받으면서다.

 

전문가들은 한전의 편의주의적 행태를 지적하면서도 수도권의 전력부족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수송에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전력자급률이 전력수요가 집중된 서울은 10%, 경기는 62%에 그쳤지만 충남(214%), 경북(216%), 강원(213%) 등 비수도권은 200%를 넘겼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수도권에 전기를 끌어올 수 있는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사업을 한전이 2019년 목표로 진행했지만 주민 반발로 지연되면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하남시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2026년 6월 준공도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은 수도권 전체의 전력 인프라 확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대규모 전력 수요처인 연구기관들의 전력 확보에도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서울대 이규섭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서울대는 전력 인입지점(변압기, 선로 등) 용량이 포화된 상태로, 추가 전력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전력수요 증가에 따른 물리적 인프라 한계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M이코노미뉴스에 밝혔다.

 

그러면서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기반으로 한 마이크로그리드 구축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지붕형 태양광이나 주차장 태양광 설비에 ESS를 결합하면 별도의 인입선이나 변압기 건설 없이도 일부 전력을 자급할 수 있다”며 “이는 전력망에 부담을 덜 주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 교수는 데이터센터와 연구 인프라의 지방분산 운영 필요성도 함께 제시했다. 그는 “데이터센터는 사람이 상시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시설인 만큼, 전력 여유가 있는 지방으로의 이전이 타당하다”고 밝히며 “지방은 전력비용과 부지확보 측면에서도 수도권보다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연구 인력의 수도권 선호 경향에 대해서는 “충분한 인센티브만 제공된다면 연구 인프라 역시 지방 분산이 가능할 것”이라며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한 정책적 유도 필요성을 언급했다.

 

장길수 학장도 이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AI 트레이닝용 데이터센터는 전력 소모가 막대한 만큼, 수도권이 아닌 전력 수급이 유리한 지방에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에 기가와트(GW)급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은 사실상 원자력 발전소 1기를 추가로 짓는 것과 맞먹는 전력 부담”이라며 “송전선 건설 지연이나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로 인해 수도권은 대규모 전력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美·日 대학은 자체적으로 전기 만들어…한국 대학 ‘전기독립’ 해법 찾을 때

 

연구기관의 지방분산 해법이 부상하는 가운데 캠퍼스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시스템도 장기적으로는 필요하다는 전문가들 의견도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전력독립 캠퍼스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의 주요 대학들은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을 캠퍼스 내에 적극 도입하며, 에너지 자립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실현하는 '스마트 에너지 캠퍼스'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다. UCSD는 열병합발전소(가스터빈 2기)와 태양광, 연료전지 설비를 통해 캠퍼스 전력의 약 85%를 자체 공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연간 약 1,200만달러(한화 약 160억원)에 달하는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특히 폐수처리장에서 발생한 메탄가스를 연료전지로 전환해 전력과 냉방에 활용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극대화했다.

 

 

UCSD의 마이크로그리드는 위기 시 독립적으로 운영돼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산불이 났을 때 전력회사 SDG&E에 전력을 역공급하는 사례도 있었다.

 

일본 도호쿠복지대학교도 캠퍼스 전력독립에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도호쿠복지대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정전 사태에도 병원과 연구시설 운영을 중단하지 않았다. 비결은 대학이 자체 구축한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에 있었다. 도호쿠복지대학교는 2004년부터 연료전지, 태양광 패널, 천연가스 마이크로터빈을 결합한 분산형 전력 시스템을 캠퍼스에 도입해 캠퍼스 전력독립을 이뤘다.

 

이러한 마이크로그리드는 국내에서도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캠퍼스 내 자체 전력원을 둔 사례는 없다. 장길수 학장은 “서울대학교도 과거 정부 과제 일환으로 캠퍼스 마이크로그리드 사업을 수행한 바 있다”고 설명하며 “당시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해 DC(직류) 기반 시스템 도입 등을 시도했지만, 실제 발전원을 포함하지는 못해 감축 효과는 제한적이었다”고 언급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 교수는 미국, 일본 등에서 시행 중인 자체 전력원을 가진 마이크로그리드는 전력부족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에너지 자립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의 사례가 국내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이규섭 교수는 “한국은 전기요금이 낮고 연료비가 높아 자체 발전의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며 “교육용 전기를 사용하는 서울대의 경우 자체 발전이 오히려 더 비쌀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장길수 학장도 이에 동의하면서도 “기존의 대용량 송전 기반 전력 시스템이 비용 효율면에서는 우수하지만, 송전 인프라 구축이 불가능한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데이터센터 인근에 발전 설비를 설치해 직접 공급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대종 교수는 “기술적·정책적 뒷받침만 이루어진다면, 대학은 연구의 장을 넘어 지역사회의 에너지 허브로도 기능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정책적 선도, 그리고 대학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진다면 실현 가능한 문제”라고 전망했다. 

 

 

권은주 기자 kwon@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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