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1월부터 단순히 삐거나 긁힌 정도의 교통사고 경상 환자는 보험사로부터 거액의 합의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정부는 장기 치료를 빌미로 합의금을 뜯어내려고 일단 드러눕는 일명 ‘나이롱환자’ 막아 자동차보험 부정수급을 개선하고 보험료 부담을 낮추기로 했다. 불필요한 보상금이 줄어들면 자동차보험료가 장기적으로 3%가량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나이롱 산재환자’ 등과 관련해 지난달 1일부터 산재보험 제도 특정 감사를 벌여 지금까지 117건, 60억3100만 원의 부정수급 사례를 적발했다고 20일 밝혔다.
대표적 자동차 보험사기 유형은 △자동차사고 운전자, 피해물, 사고일자 조작 및 과장 △진단서 위변조 및 입원수술비 과다청구 등 사고 내용 조작 △자살, 자해 △고의충돌 등 고의 사고 △일반상해의 자동차 사고 위장 △질병의 상해사고 위장 등 허위 사고가 있다.
부정수급 적발금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장기요양 환자를 살펴본 결과에서는 지난해 기준 6개월 이상 입원 환자가 전체의 47.6%, 1년 이상 환자가 29.5%에 달했다. 이에 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에 장기요양 환자 진료계획서를 재심사하도록 했고, 그 결과 1539명 중 419명에 대해 요양 연장을 하지 않고 치료종결을 결정했다.
●부정수급 늘어나면 보험료 인상...악순환 끊어내야 선순환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26일 자동차보험 부정수급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경상 환자에게 ‘향후 치료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경상 환자는 상해 등급 12~14급에 해당한다. 상해 등급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과 자동차보험 약관상 분류로, 상해가 가벼울수록 급수가 올라간다.
향후 치료비는 치료가 끝난 뒤 발생하는 추가 치료에 대해 사전 지급하는 보험금이다. 보통 향후 치료비와 휴업손해 등을 더해 ‘합의금’으로 일괄 지급한다.
금융위에 따르면 경상 환자에게 지급된 향후 치료비는 2023년 기준 1조4000억원으로 치료비(1조3000억원)보다 많았다.
정부는 무엇보다 2400만명 이상 가입자의 보험료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 문제점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걸맞은 향후 치료비 제한은 약관 개정 및 법제화 논의가 추진될 예정이다.
국토부는 향후 치료비를 상해 등급 1~11급의 중상 환자에게만 주도록 지급 근거와 기준을 정할 계획이다. 또 향후 치료비를 받으면 다른 보험을 통해 중복으로 치료받을 수 없게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합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향후 치료비 개선이 더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경상 환자 치료비 기준도 엄격해진다. 경상 환자가 8주를 초과하는 장기 치료를 받으려면 진료기록부 등 추가 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다. 보험사는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지급보증 중지 계획을 제시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보험사기 처벌도 강화된다. 보험사기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정비업자는 사업 등록 취소 처분을 받는다. 2023년 자동차보험 사기 적발 금액은 5476억 원에 달했으며, 사고 수리비 부풀리기 등 다양한 사기 유형이 포함됐다.

●보험사기 처벌 강화로 병원 과잉진료 카르텔까지 전방위 확대
1차적으로 대형 손해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료를 오는 4월부터 최대 1% 내리기로 한 가운데, 중소형사는 동결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와 함께 업계는 자동차 사고로 인한 보험금 누수를 예방하기 위해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한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자동차보험 인하율은 삼성화재·메리츠화재 1%, KB손해보험은 0.9%, DB손해보험은 0.8%, 현대해상은 0.6% 내리기로 했다. 메리츠화재를 제외한 자동차보험 점유율 85%를 차지하는 4대 손해보험사가 모두 인하를 결정한 것이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감사 중간결과를 발표하면서 “병원에서 합리적 기준 없이 진료 기간을 장기로 설정하고, 승인권자인 근로복지공단이 관리를 느슨하게 했기 때문”이라며 “이와 관련해 산재 카르텔 가능성에 대해서도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선안은 규정 개정을 거쳐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시행 전에 보험에 가입한 경우 내년 보험 갱신 이후부터 적용된다. 또한 보험 사기에 연루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정비사는 곧장 사업 등록을 취소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도 도입, 마약·약물 운전도 음주운전처럼 보험료 20% 할증, 마약·약물 및 무면허·뺑소니 차량의 동승자는 사고가 나도 보상금 40%가 감액된다.
김홍목 모빌리티자동차국장은 “개인과 보험사 간의 보험 계약 관련 약관 및 시행령, 시행 규칙을 연말까지 개정하고, 내년 1월 1일부터 일괄 시행할 예정이다”며, “개인과 보험사 간의 계약은 내용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 연말까지 관련 규정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터는 모든 보험 계약자가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치료비 관행 개선에 대해 “보험개발원의 추정치로, 개인별 보험료에 따라 실제 절감액은 달라질 수 있다. 국민 1인당 연간 보험료를 약 65만원으로 가정했을 때, 3% 절감 시 약 2만원의 보험료 경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0년으로 계산하면 약 30만원의 보험료를 절감할 수 있는 효과다”고 덧붙였다.
부작용으로 ‘과잉 진료가 확대돼 중상환자만 더 늘어나는 거 아닌가’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백선영 자동차보험팀장은 “환자가 원한다고 해서 임의로 중상 환자가 되는 게 아니다. 병원에서는 골절, 장기 손상, 신경 손상, 화상 등 객관적인 진단 기준에 따라 환자의 상해 정도를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배소영 자동차운영보험과장은 보험업계 의견을 수렴했냐는 우려의 목소리에 “향후치료비 관행 개선을 위해 보험업계와 9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하며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며 “조기 합의를 목적으로 관행적으로 지급되던 치료비 지급이 어려워지면서 합의 과정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다소 우려했으나 보험업계 역시 향후치료비 관행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과잉 진료의 의도적인 사기 행위의 입증의 한계 지적에 대해선 “단순한 과잉 진료 행위 자체는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지만, 8주 이상 장기 진료를 받는 환자에 대한 진료의 필요성을 입증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규제할 방침이다. 통상적으로 8주 이내에 대부분의 환자 진료가 완료되는 점을 고려해 8주 이상 진료가 필요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적용하겠다”고 언급했다.
삼성화재 한 관계자는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 개정안과 나이롱환자 등 사고 피해자의 과잉 진료에 따라 보험금이 과도하게 지급되지 않도록 지급 기준을 강화하는 법안에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보험업계의 수익이나 건전성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며 “하지만 의료기관에서 입원 치료 여부나 등급판정에 있어 투명한 공개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만에 하나 꼼수 거래 등의 부정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정부는 그런 변수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퍼마일 보험사는 “자동차보험의 경우 내년 1월부로 과실 비율 적용 등에서 변경 상황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경미한 부상에 관한 보험 약관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보면 된다. 만약 수정사항이 있다면 반드시 고객들에게 고지가 될 예정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