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한국 증시는 2거래일 동안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지난 2월 27일 6244.13으로 마감한 코스피 지수는 3일 5791.91로 내리더니 4일에는 5093.54로 급락했다. 이틀 만에 1150포인트(18.4%)가 넘게 빠지며 시가총액 1068조원이 증발했다. 이는 올해 정부 예산(727조9000억원)의 약 1.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특히 4일 기록한 12.06% 낙폭은 2001년 9.11 테러 당시(-12.02)를 넘어서는 역대 최대 하락률이다. 하지만 5일 장 초반부터 10% 넘게 급등하며 어제 잃었던 낙폭의 상당 부분을 회복하고 있다. 지수가 너무 빠르게 오르면서 프로그램 매수 호가 효력을 일시 정지하는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간의 충격은 한국 증시 역사에서 ‘기록적인 상흔’으로 남게 됐다.
반면, 미국과 일본의 증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조정을 받았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4일 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 나스닥 지수는 –2.7%, 일본 니케이 지수는 –3.6의 낙폭을 나타냈다. 중국 상해 종합지수는 –1% 내외의 낮은 변동성을 보였다.
◇ 코스피, 유례 찾기 힘든 성장세 주요 원인
한국만 유독 변동성이 컸던 이유와 향후전망에 대해 증권가와 자본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우선 한국 증시의 변동성이 컸던 이유는 원유의 중동 의존도가 큰 점이 꼽힌다. 한국은 원유의 약 70%, 액화천연가스(LNG)의 20%를 중동에 의존하며, 이 중 9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수입된다. 이란의 해협 봉쇄 선언은 곧 한국 제조기업들이 생산 원가 급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매도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원유의 해외 의존도가 높기는 중국,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라는 의견도 있다. 최재원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기관투자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빠져나가는 자금만큼 사들일 자금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기관들이 국내 주식을 너무 많이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그동안 한국 증시가 짧은 기간 동안 급성장 점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29일 3021.84였던 코스피 지수는 지난 2월 25일 기준 6083.86까지 치솟았다. 날짜로 계산하면 250일만, 거래일 기준으로 167일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이 같은 속도는 주요국 대표 지수와 비교해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는 단기 과열 부담이 누적된 상황에서 이란 사태가 터졌기 때문에 낙폭을 키웠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승폭이 컸기 때문에 그만큼 낙폭도 켜졌다는 얘기다.
대신증권은 3월 3일자 ‘과열 해소가 필요한 시점에서 터진 중동 리스크, 코스피 낙폭 확대’ 리포트에서 “한국 증시는 1월 24%, 2월 19.5% 급등을 이어오며 단기 과열 해소가 필요했던 상황”이라며 “최근 코스피와 함께 최고치 랠리를 이어온 유럽, 일본 증시의 낙폭은 코스피 대비 완만했다”고 분석했다.
이밖에도 한국 증시 급락 주요 원인으로 △외국인 자금 대규모 이탈 △반도체 중심 대형주 구조 △최근 상승 이후 차익실현 흐름 등을 꼽을 수 있다.
◇ '일시적 조정' vs '장기 침체'의 갈림길
5일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9% 상승한 5583.90으로 마감하며 반등했다. 코스닥 지지도 14% 넘게 오른 116.41로 마감했다. 이는 이란이 간접적으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종전 협상 관련 접촉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전쟁 조기 종료 가능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을 지원해 줄 수 있다고 발언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같은 날 이재명 대통령이 주식 및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100조원 금융 안전조치’ 집행을 지시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진행한 임시 국무회의에서 “중동지역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글로벌 경제안보 환경이 많이 악화했다. 세계 각국은 금융시장의 큰 불확실성에 직면했고, 에너지 수급과 경제·산업 분야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면서 “각 부처는 엄중한 상황인식 아래 예상 가능한 모든 문제에 대해 신속한 대책을 세밀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변동성이 큰 시기인만큼 당장 내일 주식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요동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증권가에서는 대체로 단기 변동성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IBK투자증권은 ‘미국의 이란 공습에 따름 금융 시장 영향 점검’ 리포트에서 이번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은 제한적이고 단기 조정 후 상승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국내 증시가 연초 이후 48%나 폭등해 있어 기술적 부담이 큰 상황이고 유가가 급등하고 있어 단기 투자심리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단기간에 상황이 종료되고 증시가 단기 조정에 그친다면, 오히려 기술적 과열 해소를 빌미로 증시 탄력은 재차 강화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중장기 지속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부와 참전국의 증가에 따른 전쟁 양상의 확대로 인한 장기화 가능성이 대두된다.
보고서는 “유가 급등을 동반한 지정학적 위험의 장기화는 제2의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자산 시장 급락을 동반 유발시킬 수 있다”면서 “글로벌 주식시장이 AI 모멘텀과 금리 인하로 크게 상승해 있는데다 미국 중간선거 불확실성까지 연결될 수 있어 스태그플레이션 혹은 그와 유사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고 짚었다.
메리츠증권은 ‘이란 공습의 영향 점검’ 리포트에서 “만약 전쟁 장기화로 국제 유가의 상승이 지속될 경우 하락 변동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라며 “특히 일본, 한국, 인도, 중국 등 국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비중이 높아, 해당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해당 국가 경제와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도 크다”고 분석했다.
한국 금융당국은 5일 시장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하고 최근 중동 상황 등에 따른 국내 증시 상황을 점검했다. 간담회에 참여한 시장전문가들은 “최근 국내 증시 상승이 우리 기업의 견고한 실적, 정부의 주주 친화 정책 등에 기인한 것으로 낙폭 커질 경우 유의미한 하방 지지선이 나타났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황선오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국내 증시 상승은 우리 경제 및 자본시장의 펀더멘털에 기반한 재평가라는 시장전문가들의 견해에 공감한다”면서 “이번 증시 급락에 대해서는 최고 상태의 경각심을 가지고 다양한 대응방안을 면밀힘 점검 중이며, 필요시 비상 대응계획에 따라 단계별 조치를 차질 없이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