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과 국내 제조업 환경 악화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하는 흐름은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최근 학계와 세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흐름이 수년 전 도입된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 제도’와 더불어 국고 세수 위험을 키우고, 국내 자본·인력·기술 유출까지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제도는 기업이 해외 자회사에서 받은 배당금의 최대 95%를 국내 모회사 단계에서 과세소득에 포함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본래 취지는 국제적 이중과세를 방지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데 있었지만, 실제 효과는 기대와 달리 국내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할 경우 정책의 취지가 왜곡될 수 있다며, 반드시 보완적인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 “해외 공장만 키우는 꼴”… 배당금 제도 부작용 논란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 제도는 2022년 법 개정을 통해 외국납부세액공제 방식을 대체하면서 도입했다. 해외 주요국들도 이미 비슷한 제도를 시행해 왔다. 미국은 2018년대부터 해외 자회사 배당의 과세를 사실상 면제했고, 일본·영국·독일도 2000년대 들어 도입했다. 당시 기대는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본국으로 들여오면 국내 배당과 투자, 고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기대와 달리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해외 자회사 배당이 증가했음에도 국내 설비 투자나 고용 확대 효과가 거의 없었고, 일본과 영국도 제조업 기반 약화와 해외 투자 확대라는 부작용을 겪었다. 독일 역시 중국 공장 확장 등 해외 투자에 치중하면서 국내 경제 활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역시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M이코노미뉴스에 “법리적으로 이중과세를 제거하는 타당성은 인정되지만, 경제적 효과에 대한 실증적 검토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실제 한 대기업의 사례에서 2022년 약 3조9천억원 수준이던 수입배당이 2023년 29조원으로 급증했지만, 법인세 비용 조정 내역에 따르면 약 7조3천억원이 ‘세무상 과세되지 않은 수익’으로 기록되어 국세 수입 감소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일각에서는 미뤄온 배당을 일시에 들여온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자금이 국내 투자로 이어졌는가 하는 점”이라며 “정작 대규모 투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의 수십조 원대 반도체 투자처럼 해외 현장에서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 제도의 완화된 요건을 문제로 꼽았다. 미국은 최소 10% 지분율, 1년 이상 보유 요건을 요구하는 반면, 한국은 10% 지분, 6개월 보유만으로도 혜택을 주고 있어 단기 투자에도 비과세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조세 회피나 전략적 남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제도가 지주회사 중심에서 일반 기업까지 확장되면서 일감 몰아주기와 결합할 경우 세 부담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유 교수는 “모회사가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자회사가 소득을 쪼개 낮은 세율을 적용받은 뒤 배당으로 올리면 모회사 단계에서 95%가 비과세된다”며 “국내 경제 활성화보다는 오히려 세수 감소와 해외 투자 확대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 대기업 해외 이익 유출 길만 터준 '조세제도'… "투자상생·환류 장치 설계 필요"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 제도’를 둘러싸고 보완 장치 마련 필요성을 거듭 제기하고 있다. 제도의 본래 취지인 국제적 이중과세 제거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나, 국내 세수 감소와 해외 이익 유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안전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GILTI(Global Intangible Low-Taxed Income), CFC(피지배외국법인) 규정, 의무송환세(MRT) 등 강력한 제도를 병행해 기업이 이익을 세율이 낮은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현지에 묶어둘 경우 본국에서 과세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이를 통해 해외에서 발생한 이익이 본국 세원을 잠식하지 않도록 막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익금불산입 적용 범위를 넓히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보완 장치가 상대적으로 미비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 해외에서 얻은 이익을 현지 재투자하거나 특수목적법인을 활용해 다층 구조로 이익을 이전하는 길만 열어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2일 한국조세연구포럼이 진행한 토론회에서 심성훈 세무사는 “익금불산입 제도의 본래 목적은 국내 투자 촉진이 아니라 이중과세 제거”라고 전제하면서도 “투자상생협력 규정을 강화해 해외 배당금과 국내 투자를 연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해외 배당금 10조 원 중 절반 이상을 국내 투자에 사용하면 전액 익금불산입을 인정하되, 그 비율이 낮을 경우 혜택을 축소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익금불산입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서도 국내에서 포기한 세수만큼은 반드시 투자와 고용을 통해 환류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논의되는 주요 보완책으로는 ▲특수관계인 범위의 경제적 실질 강화 ▲일감몰아주기 예외 규정 정비 ▲감액배당 등 자본거래를 통한 우회 차단 ▲GILTI·MRT 유사 제도의 재도입 등이 꼽힌다. 이러한 장치들이 병행돼야만 정책 목표가 온전히 달성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호림 교수도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초과이익 가운데 적어도 국내가 포기한 세수에 상응하는 몫은 반드시 투자·고용 등 실물로 환류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외에서 번 이익이 주주환원이나 해외 재투자, 소득이전으로만 귀속되면 제도의 취지가 무력화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제적 선행 연구와 입법 사례가 보여주듯, 단순 익금불산입 규정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강력한 반조세회피 규정과 송환 장치, 특수관계인 범위의 경제적 실질 강화, 자본거래를 통한 우회 차단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본래 취지가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기업의 세무 전략에 의해 왜곡된다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세제 혜택이 특정 집단에 편중되지 않도록 보완 장치를 마련하고, 법체계 전반의 일관성과 독자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