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파 1㎏이 50원, 고등어는 7,000원. 이것이 한국의 밥상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폭락과 폭등을 오가는 농수산물 가격은 단순히 유통 문제에서 기인한 게 아니다. 이는 생산, 유통, 소비 전 과정에서의 정보 단절과 예측 실패에서 비롯한 것이다. 구조적 위험성이다. 지금,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가격’이 아니라 ‘데이터’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AgriGPT 같은 디지털 기반 통합 전략 마련이어야 한다.
◇ 농・축・수산도 AI 시대
세계적으로도 농업과 수산업에 AI 기반 파운데이션 모델(Foundation model)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바헤닝언(Wageningen) 대학 주도로 ‘디지털 트윈 팜(Digital Twin Farm)’을 개발하여 작물 생장, 토양 상태, 병충해 발생 등을 예측하고 있으며, 미국 농무부(USDA)는 ‘Ag 데이터 커먼즈(Ag Data Commons)’ 플랫폼을 통해 공공・민간 데이터를 통합・개방함으로써 AI 기반 정밀농업 생태계를 육성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비추어 볼 때, 한국도 AgriGPT 같은 국가 주도형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이 필요하며, 이는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닌, 식량안보와 국가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진행해야 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매킨지(McKinsey & Company)가 펴낸 『농업의 연결된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AI・데이터 분석・센서・IoT・저궤도 위성 등 첨단 기술이 농축수산업에 도입되면서 수확량과 자원 효율성이 향상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 인프라가 성공적으로 구축될 경우, 2030년까지 전 세계 농업 부문에서 약 5,000억 달러(한화 약 690조 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으며, 농업 생산액은 7~9%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센서 가격 하락으로 가축 모니터링과 정밀 관개 시스템이 보편화되고 있다. 저궤도(LEO, Low Earth Orbit) 위성은 외딴 농촌 지역에서도 디지털 농업 도입이 가능하게 만든다. 이 같은 혁신 기술이 2030년까지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 농업 지역의 80%에 도입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에서도 디지털 농업에 대한 수요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드론 방제 서비스 시장은 2020년 130억 원에서 2025년 403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며, 자율주행 농기계 시장도 2030년까지 약 2,000억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농업 부문에서의 디지털 기술 도입이 생산성 향상은 물론, 농촌 고령화, 인력난, 기후변화 대응 등 구조적 문제 해결에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파편화된 데이터와 정보
현재 우리나라 농・축산・식품과 해양수산 분야에는 생산, 유통, 소비, 안전, 환경 등 전 과정을 포괄하는 방대한 데이터가 존재하지만, 이것이 부처와 기관별로 분산되어 있으며 표준화되지 않아 활용도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예를 들어, 농산물의 생산 이력은 농촌진흥청과 지자체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리하고, 유통과 가격 정보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공영도매시장에서 별도로 수집되며, 소비자 구매 동향은 민간 유통 플랫폼과 통계청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해양수산 분야도 마찬가지다. 양식업 관련 생육 데이터는 해양수산과학원이, 어획량 및 수출입 통계는 수협과 관세청이, 해양환경 정보는 국립해양조사원이 각각 개별적으로 보유・운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동일한 수산물에 대한 정보를 통합적으로 분석하거나 정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관의 데이터를 따로 확인해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 AI 파운데이션 모델의 필요성
이처럼 단절된 데이터를 통합하고, AI 기반으로 분석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경우, 농수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으며, 이는 디지털 기반의 ‘AI 기본사회’ 실현과 연관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특히 데이터 기반의 AI 분석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식량안보 강화, 기후변화 대응, 복지정책 고도화 등 국가 차원의 구조적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 인프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데이터 통합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농산・축산・수산・식품 전 과정을 아우르는 통합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고, 생산・유통・소비 정보를 실시간으로 연계할 수 있는 AI 기반 데이터 분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 농산・축산・수산・식품 유통 전반을 학습하는 특화형 AI 파운데이션 모델, 예컨대 ‘AgriGPT’를 개발함으로써 정책 시뮬레이션, 가격 예측,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 기후재난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AgriGPT는 단순히 산업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기후위기로 인한 작황 불안정, 병해충 확산, 해양 생태계 교란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략 도구가 될 수 있다. 예컨대, 기상・환경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병해충 발생을 사전 예측하거나, 특정 지역의 기후변동 패턴에 따라 재배 품종을 추천할 수 있다. 이런 기능은 식량 생산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핵심적이다. 더 나아가 국제 곡물시장 불안정 시, 국내 자급률 분석과 대응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지면서 국가 식량주권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
◇ AgriGPT 구축을 위한 데이터 통합 방안
AgriGPT에 필요한 핵심 기초데이터는 생산, 유통, 소비, 환경, 정책 등 다섯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생산 부문에서는 작물과 가축・수산물의 품종, 재배 및 사육 방식, 생산량, 병해충 이력 등의 정보가 필요하고, 유통 부문에서는 산지유통센터(SPC), 도매시장 경락가, 물류 경로, 정가・수의매매 이력, 온라인 직거래 플랫폼 거래 정보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소비 부문에서는 소비자 트렌드, 식생활 패턴, 외식・급식 수요, 가공식품 선호도 등의 데이터가 요구되며, 환경 부문에는 토양 정보, 기상 데이터, 기후변동, 수온 및 수질 정보가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정책 및 제도 관련 데이터로는 직불금 수령 이력, 농업인 등록 정보, 농정사업 대상자 선정 자료 등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농민 상담기록, 지역 신문 기사, SNS 후기, 정책 질의・응답 등 비정형 언어 자료 역시 AgriGPT의 학습 기반이 된다. ‘AgriGPT’는 농산・축산・수산・식품 유통 전반에 걸친 지식과 데이터를 학습하여 정책 설계, 생산 경영, 유통 분석, 소비자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한국형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초데이터의 확보와 유기적인 수집 체계, 그리고 농어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핵심 조건이다.
데이터 수집은 공공, 민간, 현장 주체 간 협력 아래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 부문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농촌진흥청,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수협 등으로부터 행정・통계 데이터를 확보하고, 민간 부문에서는 농협, 유통업체, 식품가공업체, 물류기업, 스마트팜 및 양식장 운영자 등과의 데이터 연계를 통해 산업 현장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특히 농어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데이터 입력 시스템을 마련하고, 생산일지, 가격, 유통 정보 등을 쉽게 입력할 수 있도록 모바일 앱 기반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참여도에 따른 직불금 연계, 맞춤형 정보 제공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 체계도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농어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명확하고 실질적인 인센티브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데이터 입력량이나 정확성에 따라 직불금과 연계된 보상 포인트를 지급하거나, AgriGPT가 분석한 병해충 예보, 가격 예측, 맞춤형 영농 정보 등을 무상 제공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더 나아가, AgriGPT에 일정량 이상의 데이터를 제공한 농어민에게 ‘디지털 농어민 인증제’(예: 100건 이상 입력 시 공식 인증)를 도입해 사회적 인정과 디지털 시민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과 데이터가 효과적으로 활용되려면, 디지털 농어민 데이터 권리법 또는 농수산식품 데이터 통합관리법과 같은 법적 기반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데이터의 표준화, 공유, 활용,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규정을 수립함으로써, 민간과 공공이 함께 신뢰에 기반한 디지털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특히, 데이터 제공자에게 정당한 보상과 권리를 보장하는 ‘데이터 기여 보상 체계’는 농어민의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다.
◇ AI 기반 디지털 농정
AgriGPT가 실현되면 그 활용 범위는 정책 설계에서 생산・유통・소비, 교육・상담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는 농업직불제 개편, 수급 조절 시뮬레이션, 기후위기 대응 전략 수립 등에 활용될 수 있으며, 생산자에게는 병해충 예측, 재배 일정 추천, 품종 및 사료 조합 제안 등 스마트한 영농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
유통 분야에서는 수요예측 기반 생산계약, 정가 거래 가격 설정, 물류 일정 최적화 등에 활용될 수 있고, 소비자에게는 식재료 추천, 식품 안전정보 제공, 이력추적 서비스 등을 통해 맞춤형 식생활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귀농・귀촌 상담과 지역 맞춤형 농업 교육 콘텐츠 제공 등 교육과 상담 분야에서도 폭넓게 활용 가능하다.
AgriGPT는 디지털 기반 농어촌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들의 농・축・수산업 진입을 촉진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지역 단위로는 AI 데이터 코디네이터, 디지털 생산기록 관리자, 농장 컨설턴트 등의 신규 직업이 생겨나며, 청년 농업인은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 경영 역량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창업과 경영이 가능해진다. 이는 곧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농어촌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도 직결된다.
결국 AgriGPT는 단순한 기술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새로운 농・축・수산업 체계를 여는 전략 플랫폼이다. 가격 폭등과 폭락, 노동력 부족, 기후위기 같은 구조적 위기에 대처하려면, 생산부터 정책까지 연결하는 AI 기반 통합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 AgriGPT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농정은 농어민의 삶을 지키고, 소비자의 밥상을 안정시키며, 대한민국 농・축・수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실현하는 실질적인 해답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