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없는’ 은행 AI의 진화..."내부통제는 내게 맡겨둬"

  • 등록 2025.06.23 11: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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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비리 감시의 한계, 이상 패턴 감시·AI 모니터링 관리 확대로
우리銀, AI 챗봇 활용·헬프라인·FDS·스마트 시재관리기 모범사례
인뱅 금융사고 급증...시중은행 ‘AI 거래 감시·에이전트 활용’ 두각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금융권 전방위로 스며들면서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과 접목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AI 알고리즘으로 의심 거래 포착은 물론, 내부 비위 제보 접수를 사람이 아닌 ‘AI 챗봇’에 맡기는 방안까지 나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자산 관리, 보험 설계, 고객 데이터 분석 등 비즈니스 단위별 ‘AI 에이전트’ 활용으로 은행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다.

 

●우리은행의 환골탈퇴...‘인간 내부 감시의 한계’를 AI에서 답을 찾다

 

지난해 내부통제에 대한 중요성을 실감했던 우리은행이 AI 기술을 활용한 자체 혁신에 앞장서며 금융업계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선제적 금융사고 예방부터 직원 업무 지원까지 AI 기술의 전방위적 활용으로 은행 운영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업계 최초 시나리오 기반 사고 예방 시스템 구축과 금융사고 예방·조기 발견을 위해 ‘AI 챗봇’ 활용 방안을 도입한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미국 생활용품 제조사 킴벌리클라크, 캐나다 법무부 등이 AI 챗봇을 도입해 내부 제보를 취합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를 통해 제보를 활성화하고 제보 처리의 완결성을 향상할 수 있으며, 향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잠재 리스크까지 식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구소는 “조직 구성원들이 심리적 부담감, 미흡한 처리 결과, 효용성 불신 등으로 준법 제보를 주저한다”며 “AI 챗봇이 이런 요인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은행이 올해 초부터 강화에 나선 AI 융합 내부통제 시스템은 ▲익명 신고 시스템인 ‘헬프라인’을 도입 ▲금융패턴 이상징후 탐지하는 FDS 오픈 ▲AI 모니터링 강화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우선 우리은행은 올해 초 횡령·부당대출 등 금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익명성을 보장하는 내부 고발용 채널 ‘온라인 익명신고센터(헬프라인)’을 도입했다. 이는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제안한 AI 챗봇으로 시스템을 자동화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어 우리은행은 지난 2월 금융사고 패턴을 분석해 이상징후를 탐지하는 'FDS(Fraud Detection System, 이상징후 검사시스템)'는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시나리오 기반 부정거래 검사시스템을 현업에 도입했다. 기존의 사후 대응 방식에서 벗어나 선제적 예방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FDS는 대출 취급 시 연소득 허위 입력, 허위 자금용도 증빙자료 제출, 고객 몰래 정기예금 해지 후 편취 등 기존 사고 사례를 분석해 행동 패턴 시나리오를 생성한다. 영업점 업무 마감 시간 이후 특정한 이상 거래 징후가 탐지되면 담당 검사역에게 즉시 알림과 자료를 전송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대량의 거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동일 유형의 사고 재발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이다. 개별 거래에서는 탐지하기 어려운 패턴도 AI 기술을 통해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사각지대 없는 모니터링이 가능해졌다.

 

우리은행은 AI 모니터링 강화 시스템이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지만, 상반기 내부 비위가 한 건도 나오지 않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 향상을 위해 AI 지식상담 시스템도 대폭 개선했다. 기존 자연어 처리 기반 시스템에 최신 생성형 AI 기술인 ‘에이전틱 레그’와 ‘리즈닝’ 기술을 융합해 보다 정확하고 맥락적인 답변 제공이 가능해졌다.

 

주목할 점은 외부 솔루션에 의존하지 않고 내부 기술 역량만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자체 인프라 환경에서 운영함으로써 보안성을 한층 강화했으며, 영업지원용 모바일 앱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업무 지원이 가능해졌다. 이 시스템을 통해 신입 직원이나 업무 경험이 적은 직원들도 규정, 절차, 상품정보 등을 빠르게 학습할 수 있게 됐다.

 

한편, 23일 우리은행은 은행권 처음으로 ‘스마트 시재관리기’를 전국 영업점에 전면 확대 도입하고, 디지털 기반 내부통제 체계를 가동하기도 했다. 이번 조치는 정진완 은행장의 강력한 디지털 혁신 의지 아래 추진된 핵심 전략 과제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내부통제 강화로 금융사고를 사전에 차단하고, 지점 창구업무를 효율화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5대 은행의 AI 내부통제 시스템 진화...“직원 편의성 높여 비리도 줄인다”

 

우리은행뿐만 아니라 은행권 전반에는 이미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AI 기술을 활용 중이다.

 

KB국민은행은 일선 영업점에서 고객에게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AI 금융상담시스템을 도입했다. AI 기반의 의심 거래 보고 시스템도 가동하고 있다. 그 외에 ‘AI 에이전트’ 도입을 통해 직원의 업무를 경감시키는 플랫폼 도입도 준비 중이다.

 

하나은행은 생성형 AI로 은행 내 업무 내규나 정책을 관리하고, 해외 지사에서 글로벌 법령을 번역하는 등의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내부통제를 위한 AI 시스템 도입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미 내부 직원들은 ‘지식 챗봇’ 활동을 통한 AI 적응력을 키우고 있다.

 

NH농협은행은 AI 기반 신용감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 감리 보고서를 전수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량 차주를 자동 선별하고, 고위험 차주를 집중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은행들이 금융사고 예방에 앞다퉈 AI 기술을 적용하는 배경에는 내부통제가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은 신한금융은 그룹 GenAI 플랫폼 구축을 시작으로, 자산 관리(WM·PB), 보험 설계, 고객 데이터 분석 등 비즈니스 단위별 AI 에이전트 도입을 검토 중이다. 또한 그룹 통합 플랫폼인 ‘신한 슈퍼SOL’에 고객 의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맞춤형 제안을 제공하기 위한 AI 에이전트 탑재를 추진한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AI 적용이 가능한 영역을 선별하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오히려 적용이 불가능한 영역을 찾기 어려울 만큼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졌다”며 “신한금융은 AI를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닌 ‘함께 일하는 능동적 동반자’로 정의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객 중심의 혁신을 실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업계는 대부분은 AI로 복잡한 작업을 간소화해 직원 수고를 덜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 효과가 크다고 진단하고 있다. 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미리 입력한 대로 작동하는 AI가 사람보다 엄격하고 정확한 데다 속도도 훨씬 빠르다”며 “사심이 없어야 하는 내부통제 업무 특성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데이터 인프라·내부비리 차단 강조...인뱅, 내부사고 급증 반면교사 삼아야

 

이 같은 AI 도입 확대의 조기 성과에 금융권 CEO들이 연일 AI를 외치고 있다. 5대 은행은 그룹 경영 전략 전반에 AI를 적용하고, 이를 위한 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KB금융그룹 양종희 회장은 지난 11일 ‘그룹 데이터 혁신 세미나’ 행사에서 △금융 데이터 분석을 통한 고객 맞춤형 서비스 개발 전략 △데이터 공동 분석 및 모델링을 통한 그룹 시너지 창출 사례 △마케팅 예측 모델 적용 사례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양 회장은 “데이터는 단순한 수집 그 자체보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알고자 하는 바가 명확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며 “비즈니스 현장과 고객의 목소리를 중심에 두고 끊임없이 대화해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한금융 진옥동 회장도 최근 AI 전환을 위한 속도전에 나섰다. 하반기 경영포럼을 앞두고, 그룹사 CEO와 임원, 본부장 등 총 237명을 지난달부터 6주간 AI 교육을 받도록 했다. AI 관련 사전 이론 교육과 실습 과제 수행을 통해 실전 역량 강화를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도 지난 18일 임원들과 대표적 생성형 AI 도구인 챗GPT 활용법을 익힌 뒤 ‘AI 대전환’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사상 첫 대규모 내부 횡령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그간 금융사고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인뱅도 내부통제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이에 시중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인뱅에서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토스뱅크에서 재무팀 소속 A씨가 두 차례에 걸려 27억8600만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됐다. 토스뱅크는 범행 발생 다음 날인 지난 14일 확정된 잔액과 입출금 내역을 비교하는 ‘잔액대사 과정’ 중 이상 거래를 발견하며 자체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사건을 포착했다. 토스뱅크는 즉시 금융감독원 보고, 경찰 수사 의뢰 등 후속 조치에 나섰다. A씨는 19일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수사기관·감독 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횡령액 환수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관련 시스템과 프로세스 전반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하는 등 유사한 사안의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인뱅은 금융사고 등 5대 은행권의 내부통제 이슈에 비해 부각 되지 않았다. 영업점 없이 비대면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시중은행에 비해 금융사고 발생 가능성이 적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과 달리 최근 들어 인뱅에서도 금융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인뱅 3사(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의 ‘은행 경영현황 공개 보고서’를 살펴보면, 2017년 인뱅 출범 이후 총 16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케이뱅크가 8건으로 가장 많았고 카카오뱅크 6건, 토스뱅크 2건이었다.

 

카카오뱅크에서는 2022년 3월과 2023년 4월 각각 198억9,000만원, 15억3,000만원의 대출사기 2건이 발생했다. 케이뱅크도 2022년 1월과 지난해 2월 각각 15억원, 11억1,000만원 규모의 불법대출 사고가 있었고, 토스뱅크에서도 지난해 10억원 미만의 실명제위반 사고가 1건 집계됐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인터넷전문은행의 특성을 반영한 사고예방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인뱅의 특성을 고려한 ‘직무위험도평가’를 실시해 고위험업무에 대한 사고예방제도를 신설하고, 산재돼 있는 각종 사고예방제도를 통합한 금융사고 예방 지침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인뱅의 급성장 과정에서 내부통제 체계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시중은행 수준의 내부통제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엔 은행권의 내부 비리 사고에 대해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벽하게 관리·감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가 배제된 모니터링이나 불규칙적인 패턴에 대해 정확한 경고음을 집어낼 수 있다. 은행들은 이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AI의 도움을 받는 시대에 직면한 것이다. 아직은 시행 초기라 큰 성과를 거두고 있지는 않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사심 없는’ AI가 은행권의 투명한 내부 관리와 진일보된 서비스 강화에 막대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심승수 기자 sss23@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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