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국세 수입에서 근로소득세 세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현실은 ‘유리지갑’으로 불리는 직장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웠다. 최근 몇 년 새 급등한 물가로 월급이 오른건 체감하기 어려운 데도 세금만 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소득세 물가연동제는 소득구간별 과세 기준에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근로자의 조세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물가연동제와 동시에 기본공제금액을 인상해야 실질적인 효과 있다고 말한다.
우선 정치권에서는 소득세제 개편 논의에 시동을 걸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근로소득세를 물가상승률에 연동하는 방안이 월급쟁이들을 겨냥한 야당의 경제 공약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근로자 상대적 빈곤' 물가연동제, 찬반 여론...조기대선용 정책인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직장인 월급에 대한 근로소득세를 물가상승률과 연동하는 ‘소득세 물가연동제’ 카드를 꺼내 들면서 관련 제도 도입 필요성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직장인 월급이 조금 올라도 고물가로 인해 재정상태는 제자리걸음이거나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에서 세 부담을 키우는 현재 소득세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실효세율이 주요국 대비 낮은데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세수 기반을 더욱 약화시키는 등 세정윤리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나온다.
지난 20일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월급보다 더 많이 오른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소득세 과세 합리화를 추진하겠다”며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8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은 상황임에도 누진제에 따라 세금은 계속 늘어난다”며 제도 추진을 시사했다.
한국 소득세는 소득구간별로 다른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올해 기준 1,400만원 이하면 6%, 1,400만~5,000만원은 15% 등 금액을 기준으로 과세를 달리 한다. 비과세·공제 금액을 제외한 한 해 소득(과세표준)이 4,000만원이면 1,400만원에 대해선 6%를 적용하고 나머지는 15%의 세금을 징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직장인 대부분이 포함되는 8800만원 이하 소득 구간에 대해선 2012년 이후 13년간 한 번만 바꿨을 뿐이다.
실질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 상승률 때문에 낼 세금이 많아졌다는 주장은 학계 분석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논문을 통해, 2014년과 2022년을 비교했을 때 순전히 물가상승으로 인해 가구당 평균 46만원의 세금을 더 냈다고 분석했다. 근로소득이 있는 가구의 평균 소득세가 2014년 195만원에서 2022년 290만원으로 95만원 올랐는데, 이 중 물가효과를 제외한 실질소득 증가분만을 반영하면 244만원으로 줄어들 것이란 추산이다.
실제로 주요 선진국들은 물가 상승분을 소득세 과세 기준에 적용하고 있다. 납세자가 실질소득 증가 없이 높은 세율구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미국은 매년 연방소득세 과세기준과 공제액을 물가에 따라 바꾼다. 영국과 캐나다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개별소비세, 담뱃세 인상이 낫지 않나? 공제대상 변경·근로자 물가지수 고려 해볼만
반면 학계에서는 한국의 납세체계에서 섣부른 물가연동제 도입은 더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원칙적으로는 물가연동제가 바람직한 방향이다”라며 “하지만 한국은 독일 등 주요 선진국 대비 소득세 실효세율이 낮은 편이라 소득세 기반을 확장한 이후에 고려해 볼 만한 문제”라고 말했다. 각종 공제와 비과세 등으로 소득세를 다른 나라보다 덜 걷는 상황에서 물가 연동까지 하면 장기적으로 세수 축소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한국은 OECD 평균에 비해 고소득층보다 중위 소득자(8800만원 이하)의 실효세율이 적기 때문에 소득세율을 축소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35%나 된다”며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측에서도 소득세와 법인세를 증세하는 식의 ‘부자 증세’ 정책을 하기에는 역풍 우려가 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그나마 가능한 범주는 개별소비세, 부가가치세, 친환경세, 담뱃세, 유류세 등의 영역이다”고 설명했다.
정부 역시 도입 가능성에 부정적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세제에서 물가연동제만 도입한다면 거기서 벌어지는 세수 축소에 대한 대응책을 다시 따져봐야 할 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며 “납세체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진 뒤에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소득세 물가연동제만 실행할 경우 근로자의 조세 부담은 현 상황을 유지하는 데 그칠 것이다”며 “무엇보다 기본공제금액 인상이나 세수 확충 방안을 포함돼야 일정부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교수는 “특히 미혼 중소득자가 제일 큰 세 부담을 지고 있는데 형평성 차원에서 공제 대상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또한 근로자 실질 임금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과거를 비교 분석해 ‘근로자 물가지수’를 소득세제 개편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도 여·야가 감세 경쟁에 나선 것은 ‘조기 대선’을 의식한 움직임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 대선 승패를 결정할 수도권과 중산층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중요한 점은 국가 운영을 책임져야 할 수권정당의 자격을 갖추려면, 감세를 주장할 때는 반드시 세수 확충을 위한 방안을 함께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건전 재정을 외쳤음에도 지난 2년반 동안 꾸준한 감세 추진으로 세수 결손을 초래했다. 안정적인 세수기반 확보 방안 없이 감세 정책만 쏟아내면 이는 고스란히 정부 부채 증가로 이어지고 결국 그 피해는 전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