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가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된 무능 논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약 4개월 전 일본이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한국과 협상하면서 한국인 강제 노역 사실을 관광객에게 알리고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추도사에 포함하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일본의 선의를 믿고 덜컥 양보를 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지난 2015년 군함도 문제로 똑같은 방식으로 일본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다.
미국에서 트럼프 2기 출범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한국 증시가 과도하게 휘청이는 모습도 한국 외교가 신뢰받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북한군이 러시아로 파병됐다는 정보와 관련해 지난 2022년 이후 북한과 러시아의 접근 양상을 보면 한국 외교의 판단 착오가 배경에 깔려 있다는 점도 빠질 수 없다.
한국 외교는 왜 무능하고 불안한 존재로 전락했을까?
국가 이익의 든든한 수호자로 자리 잡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해답은 한국 외교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 외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외교관 및 외교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 외교관은 약 2,700명으로, 30년 전에 약 1,800명에서 50% 정도 늘었지만, 경제 성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은 1990년대 초 개인 소득이 6,000 달러 정도였지만, 올해 기준으로 36,000 달러로 집계되고 있다. 국가 경제력이 500% 이상 성장하고 국제 사회와의 접촉면이 그만큼 폭증한 만큼 외교 인력도 5,000명 이상으로 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 절반 정도에 머물러 있다. 2,700명 정도의 인력으로 복잡다단한 외교 업무에서 한국이 성과를 낸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외교 전문가 부족도 심각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외교가 중요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외교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외교는 국제정치학, 국제법, 외교사 등 학문 분야에서 부분적으로 다뤄진다.
외교 문제는 국가 간에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특정한 목표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기본 과목 외에도 국내 정치와 경제, 군사, 안보, 협상, 소통, 의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도의 지식이 필요한 종합적인 학문 분야 또는 업무 분야다. 그래서 외교안보 전문가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해야만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는 분석과 평가 및 토론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제법이나 국제정치, 외교사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외교 전문가로 활동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사회적으로 외교에 대한 학문 또는 정책 차원의 요구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외교는 어렵지 않아서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으니 별도로 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상식인 것이다.
한국 외교의 두번째 큰 문제는 독자적인 세계관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조선 시대 말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강권 외교에 희생물이 되면서 강대국에 대한 의존이나 약소국 컴플렉스가 과도하게 비대해진 조건에서 현대 외교의 틀이 형성됐다. 일제 시기 이전에는 청나라에 의존했고, 근대화 과정에서 한때 러시아에 의존했다가 일본에 압도당하면서 일본 외교를 모방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미국에 의존하고 한미동맹에 나라의 운명을 맡겨놓으면서 독자적인 세계관이나 외교 전략이 뭔지 모르고, 오히려 독자적 외교 전략을 운운하면 한미동맹을 깨자는 선전선동으로 이해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독자적인 외교 전략이 없이 미국의 세계 전략에 편승하면서 안보와 통상 분야 이익을 추구하다보니 미국 대통령이 바뀌면 모두가 전전긍긍하면서 나라가 흔들거리는 부끄러움을 4년마다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2기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외신의 전망 보도에 대해 한국 언론이 부화뇌동하는 것도 한심한 장면이다. 북미 정상회담은 트럼프 혼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동의해야 성사된다. 북미 정상회담 이야기를 하려면 트럼프쪽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평양의 분위기도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어느 언론도 김정은 위원장이 현재 러시아와 더불어 반미 국가 연대를 조직해서 신냉전 구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와 대화하려면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가 상당 부분 단절되고 미국이 북한 요구 사항을 어느 정도 들어줄 수 있다는 전망이 있어야 한다. 김 위원장의 요구 사항 중에는 비핵화 요구 금지, 경제 제재 해제 등이 포함될 것이 확실하고, 트럼프는 그런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국 외교의 세번째 문제는 외교가 국내 정치권의 당파 투쟁에 활용되는 소재가 됐다는 점이다. 외교는 본래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의 구분을 넘어서 국가 차원의 최상위 가치 영역이다. 그러나 남북 분단 구조는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강경 정책과 온건 정책으로 나뉘어져 치열하게 싸울 것을 요구한다.
실제로 한국 외교는 냉전 종식 이후 잠시 초당적 협력 양상이 나타났지만, 최근 20년 정도는 철저하게 당파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으면 보수 진영의 대북 정책을 친일파 호전광의 정책이라고 비난하고, 보수 진영은 진보 진영을 종북 빨갱이 정책이라고 야유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2019년 1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정부는 영변 핵단지 폐기와 대북 제재 부분 해제를 맞바꾸는 거래를 북한과 미국에 권고했지만, 야당 의원들은 북한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라면서 강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배경에 당시 야당의 반대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2021년 9월 문재인 정부 대표단은 미국을 방문해 종전선언 추진에 미국이 협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같은 시기에 미국을 방문한 야당 의원들은 종전선언을 절대로 지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외교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야당이 반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금물이다. 야당을 설득해서 지지와 후원, 최소한 묵인 약속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외교 정책을 추진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런 줄 알면서도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도를 의심할 필요도 있다.
한국 외교가 무능 논란을 벗어나는 것이 반드시 어려운 것은 아니다. 외교부 인력과 예산을 당장 늘리고, 다방면의 지식을 섭렵한 외교안보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외교관과 외교 전문가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세계관과 외교 전략을 가르쳐야 한다. 서양 외교사도 필요하지만, 근세 이전 한국 외교사와 중화 문명권 외교사도 충분히 가르쳐야 한다.
주요 대학교에서 외교학은 필수 과목으로 다뤄야 하고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도 적극 개발해야 한다. 외교 문제를 초당적으로 다루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외교 문제를 소재로 정치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 지도자들이 초당적 외교를 위한 제도를 도입하고 적용해야 한다. 그에 앞서 정치권 지도자들이 당파적 외교의 문제점과 초당적 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