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랫동안 “세계는 평평해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왔다. 국경의 장벽은 낮아지고, 정보와 자본, 사람과 기술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인류를 지구촌이란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상호 연결된 세상을 넘어 상호 의존적인 세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HOW 사회연구소(The HOW Institute for Society)의 설립자인 도브 세이드먼(Dov Seidman)의 말처럼 세상은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상호 의존적인 세상”으로, 또는 “평면적인 세상”에서 “융합된 세상”으로 변했다. “융합된 세상”에서는 어느 나라건 누구건 벗어날 수 없기에 모든 나라나 우리는 함께 번영하거나 함께 몰락하는 구조 속으로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평면적인 세계”에서는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글로벌 질서에서 일정 부분 이탈할 수 있었다. 때로는 보호주의를 선택하고 지역 블록을 형성하며 독자 생존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융합된 세계”에서는 그런 선택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기후 위기, 팬데믹, 공급망 붕괴, 사이버 공격, 인공지능(AI)의 통제 문제 같은 도전들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국가의 실패는 곧 다른 국가의 위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은 말은 조산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편찬한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나오는 소지장선 양엽가변(蔬之將善 兩葉可辨)에 기록되어 있다. 필자는 농금원 재직 시 어느 투자사로부터 받은 기념품에 적혀 있었던 글 내용이 가끔 생각난다. ‘될성부른 나무 잘 찾아 잘 키워, 잘 맺은 열매들을 잘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투자 조합을 막 결성한 운용사에게 딜소싱이 어떠한 것인지가 잘 드러난다. 벤처투자에서 딜소싱은 투자자가 판단하는 유망한 스타트업을 찾아내는 과정으로, 투자 심사를 위하여 이루어진다. 딜소싱은 투자자가 전략에 부합하는 기업을 찾고 투자 포트폴 리오를 다각화하는 과정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벤처캐피탈의 딜소싱은 여러 가지 방식과 경로로 수시로 이루어진다. 동료 투자자, 엑셀러 레이터(AC), 지인 등을 통해 소개받거나 직접 찾아오는 스타트업을 만나서 준비해 온 사업 계획서를 살펴보기도 한다. 또 공공기관 시스템이나 IR(Investor Relations) 행사 등을 통하 거나 창업이나 비즈니스 모델 경진대회 등의 심사자로 참여함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드물게는 박람회 참여 또는 각종 언론이나 SNS 등을 통해서 투자 검토 대상
지난 4일, 한국의 컨테이너 해운사인 HMM가 운영하는 파나마 선적(船籍)의 HMM Namu에서 폭발과 화재가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발생했다. 한국 선박에서의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은 우발적이라기보다 전쟁으로 고착된 불안정성이 드러난 사례에 가깝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이 좁은 수로는 오래전부터 국제 정치의 화약고로 불리고 있지만, 최근의 양상은 과거와는 분명히 달라졌다. 군사 기술의 변화와 비대칭 전력의 확산이 기존 질서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대이란 공습을 통해 이란 내부 봉기나 정권의 붕괴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란은 외부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호르무즈 해협이 전략적 지렛대임을 재확인했다. 이란은 이 해협을 통제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도 국제 사회, 특히 에너지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했다. 특히 ‘무기의 민주화’는 결정적이었다. 과거에는 군사적 우위가 곧 경제력과 기술력의 함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값싸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무인기, 즉 드론이 그 공식을 깨고 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기관총이 전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던 순간과도 유
20여 일 뒤에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에는 후보자들의 이력과 공약뿐 아니라 전과 기록을 둘러싼 보도가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이를 두고 단순한 흥밋거리로 소비하거나, 반대로 일률적인 낙인으로 판단하는 태도 모두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공적 권한을 행사할 사람이 살아온 이력과 도덕성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조선의 정치사상가인 율곡 이이(1536~1584)은 정치의 근본을 제도나 법 이전에 ‘사람’에서 찾았다. 그는 「동호문답」과 「만언봉사」 등에서 정치의 핵심을 “政者正也。子帥以正,孰敢不正”이라 했다.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며, 윗사람이 바르면 아랫사람 또한 바르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현실 정치를 비판하여 “今之為政者,不務修己,而務責人”이라 하였다. “오늘날 정치를 하는 자들은 스스로 닦는 데 힘쓰지 않고 남 탓만 한다”고 함으로써 정치의 핵심이 개인의 도덕적 수양과 책임성에 있으며, 바른 사람만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선 중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인 유럽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대표 저서 『군주론』에서 ‘정치란
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안보를 명분으로 한 결속은 단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삶과 자유를 외면한 권력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역사는 억압된 질서가 내부 균열로 무너진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현재 이란의 '버티기 전략' 또한 국민의 지지 없이는 결국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이란의 권력 구조는 이중적이다. 형식적으로는 선출된 정부와 협상파가 존재하지만, 실질적 힘은 혁명수비대와 같은 강경 세력에 상당 부분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단순한 군사 조직을 넘어 이념과 신앙으로 결속된 집단이다. 이들은 체제 수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중요 국가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체제 유지 자체를 목적화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협상의 주체가 불분명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대화를 시도하지만,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세력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면 협상은 공회전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이란의 버티기 전략은 외부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경제 제재와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강경 노선은 단기적으로는 체제 안정에 이바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기초지자체는 울릉군(약 8,700명)이며, 그 다음은 경북 영양군(약 16,000명)이다. 섬이라는 특수성이 있는 울릉군을 제외하면, 영양군은 인구 소멸 고위험 지자체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양군의 올해 예산은 약 4천억 원으로 군민 1인당 2,500만 원꼴이며, 공무원 수는 511명이다. 지난해 인구 1만 5천 명 선이 위협받기도 했으나, 올해 초부터 전 군민에게 '농어촌 기본소득' 20만 원을 지급하며 수개월 만에 인구가 1천 명가량 반등했다. ◇효능감이 느껴지지 않는 지방자치 6.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약 28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를 체감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생활정치와 지역복지를 실현해야 할 지방선거에 중앙정치의 진영논리가 그대로 관철되며, 호남에서는 파란색, 영남에서는 빨간색으로, 당의 공천만 받으면 그대로 당선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공천권 쥔 이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될 뿐, 지역주민들과 지역사회의 행복실현에는 큰 관심이 없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도 별다른 효능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방자치 현실이다. 지방자치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는 이유는 작은 규모의 자치를
전쟁의 얼굴은 시대마다 바뀌지만 그 본질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놓고선 늘 논쟁을 벌였다. 최근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끌어올린다. 드론과 미사일, 사이버 공격과 심리전이 뒤섞인 충돌 양상은 분명 과거와 다르다. 전면전의 선포도, 명확한 전선도 없이 긴장이 고조되고 완화되기를 반복하는 이 장면은 우리가 알고 있던 ‘전쟁’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전쟁의 본질이 바뀌는 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표현 방식만 달라진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서양과 동양의 대표적인 전쟁 사상가를 동시에 호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프로이센 출신의 군인이자 군사 이론가로 나폴레옹 전쟁을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론』을 집필한 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년), 그리고 중국 춘추시대 인물로, 오 나라에서 활동한 전략가로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자(기원전 544~기원전 496년 추정)다. 일부 학자들은 『손자병법』이 손자 개인이 아니라 여러 시대의 사상이 축적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은 시대도, 문화도 다르지만, 여전히 오늘날까지 읽히는 정치 군사적 통찰을 남겼다. 만약 이들이
최근 외식업 폐점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거리 곳곳에 ‘임대’ 안내문이 붙고, 문 닫은 식당들이 이어지는 풍경이 이제 낯설지 않다. 골목상권의 작은 식당뿐 아니라,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이 찾던 음식점, 프랜차이즈 가맹점, 배달 전문점까지 폐점 흐름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경기 침체나 소비 위축의 결과로 이해한다. 물론 소비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고, 경기 둔화가 외식업에 큰 부담을 준 것도 맞다. 그러나 실상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는 훨씬 복합적이다. ◇ 농업과 외식업의 동반 위기 먼저 농산물 가격 흐름을 살펴보자. 최근 농산물 가격은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농림수산품 가격은 최근 한 달 사이 3.3% 하락했고, 이 가운데 농산물 가격은 5.0%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간에 농산물 가격이 비교적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겉으로 보면 농산물 가격이 떨어졌으니 외식업의 식재료비 부담도 줄어들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농산물 가격은 하락하고 있지만, 농가의 생산비 부담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비료 원료인 요소, 암모니아, 유황 가격 상승으로 비룟값 인상이 불가피한 상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익숙한 말들이 되풀이된다. “국비를 얼마 끌어오겠다.” “대형 개발사업을 유치하겠다.” “도로를 놓고 산업단지를 만들겠다.” 한때는 이런 약속이 통했다. 길이 나면 사람이 오고, 공장이 들어서면 도시가 커지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인구는 줄고, 청년은 떠나며, 빈집은 늘어난다. 아무리 화려한 건물을 세워도 그 안을 채울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개발과 성장 중심의 공식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 이제 지방 소멸과 인구 감소 대책은 시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무엇을 지을 것인가’보다 ‘누가 와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앞으로 경쟁력 있는 지방정부는 예산을 많이 따오는 단체장이 아니라, 사람을 데려오는 단체장이 만들 것이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 현장을 아는 실무자, 새로운 감각을 가진 창의적 인재를 지역으로 끌어오는 도시가 살아남는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에서 성공한 요식업 창업자나 은퇴를 앞둔 외식 전문가를 설득해 지방에서 식당을 열도록 지원할 수 있다. 그 한 사람의 유입은 단순히 가게 하나 늘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역 식재료를 살리고,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음식문화를 바
지난 2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런던 마라톤 남자 엘리트 레이스에서 케냐의 시웨(31살)가 1시간 59분 30초로 결승선 테이프를 끊었다. 인간 마라톤의 마지막 성역으로 여겼던 2시간의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뉴스가 아니다. 42.195km의 두 시간 이내 주파는 오랫동안 인간 능력의 경계선처럼 여겨졌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로써 과학자들이 계산한 이론적 한계치 1시간 57분 58초까지는 불과 2분여 남짓 남겨두고 있다. 세계적 기록 뒤에는 인간 의지와 현대 문명의 총력이 숨어 있다. 241km에 이르는 고강도 훈련, 당일 빵과 꿀 섭취 같은 정교한 영양 전략, 아디다스 초경량 레이싱 신발과 같은 기술 혁신과 재료공학, 데이터 분석이 한 데 모였다. 이제 스포츠는 과학과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대신하게 된다는데 인간이 마라톤의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계산은 AI가 더 잘하고, 반복 노동은 로봇이 대신하며, 효율은 기계가 인간을 앞선다. 심지어 로봇 마라톤 대회도 열리고 있잖은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굳이 땀을 흘리며 달리려 할까? 로봇에게 시키면 더 정확하고
며칠 전, 일간 신문을 넘겨보다 눈길이 가는 광고 하나를 보게 됐다. 한반도미래연구원(필자는 이 연구원을 누가 세웠고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히 모른다)이 낸 광고였다. 요지는 간단했다. “지방소멸과 저출산 문제에 대책이 있는 후보만 출마하라”는 내용이었다. 정치권을 향한 주문치고는 직설적인 광고였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이유는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지방은 사라지고 있고,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됐고, 대책도 수없이 많이 나왔지만 체감되는 변화는 미미하다.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광고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이젠 그만 좀 하시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정치의 언어는 늘 장밋빛이다. “아이 낳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지방”, “균형 발전” 익숙한 구호들이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정책은 속도를 잃고, 예산은 흩어지며, 책임은 흐려진다. 결국 남는 것은 통계 뿐이다. 합계 출산율, 인구 감소율, 소멸 위험 지수. 숫자는 냉정하고, 현실은 더 냉혹하다. 한반도미래연구원의 광고가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를 다시 설명하지
사회 운동과 반체제 인사들의 역사에 관한 글을 써 온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갈 베커먼(Gal Beckerman)은 “눈에 보이는 혁명보다, 그 이전의 보이지 않는 준비 과정”을 탐구해 왔다. 그는 최근 발간한 《반체제 인사가 되는 법, How to Be a Dissident》에서 이란의 시민혁명을 다루지 않았지만, 혁명이나 대규모 사회 변화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존재했던 조용한 네트워크와 사상의 축적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설파했다. 그렇다면 그의 책을 근거로 할 때 이란에서 시민혁명이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내부로부터의 균열이다. 베커먼이 다룬 사례들(이를테면, 바츨라프 하벨이나 레흐 바웬사)은 체제 외부의 공격자가 아니라 내부의 ‘도덕적 불복종(不服從)’이었다. 이란에서도 변화의 출발점은 마찬가지로 권력의 바깥이 아니라, 교육받은 중산층·종교 엘리트 일부·문화계 인사처럼 체제와 접점을 가진 집단에서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체제를 전면 부정하기보다, 체제가 스스로 내세운 가치(정의, 공동체, 신앙)를 근거로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이 더 넓은 공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성공적인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