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존 전력망을 보다 유연하게 활용하는 ‘유연한 계통접속 제도’를 도입하면서 호남권 재생에너지의 계통 접속 규제가 약 2년 만에 풀린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설비가 집중된 호남은 그동안 발전소를 추가로 지어도 생산한 전기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기 위한 송·배전망이 포화돼 신규 사업 추진에 제약을 받아왔다.
정부는 신규 송전선로 건설만 기다리는 대신 기존 전력망의 이용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해 재생에너지 수용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9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전력망 혁신대책’을 보고했다.
정부는 우선 지난 2024년 9월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했던 호남권 변전소를 오는 10월 1일부터 관리 대상에서 해제한다. 계통 포화를 이유로 접속이 미뤄져 온 기존 대기 사업자들은 10월부터 우선적으로 접속 신청을 할 수 있다. 신규 재생에너지 사업은 접속제도 개편을 거쳐 2027년 1월부터 접수가 재개될 예정이다.
동해안 지역도 ‘동해안~신가평 초고압직류송전(HVDC) 1단계’가 준공되는 2027년 상반기를 전후해 계통관리변전소 지정 해제를 추진한다.
호남권은 국내에서도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밀집한 지역이지만 이를 수용할 송전망과 배전망 확충 속도가 발전설비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계통 접속이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발전사업 허가를 받거나 사업을 준비하더라도 실제 전력망 접속 가능 시점이 2034년 이후로 밀리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전력 생산능력은 늘었지만 광주·전남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송전선로의 여유 용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력망이 포화된 상태에서 발전설비가 추가로 연결될 경우 특정 시간대 송전선로에 전력이 몰려 과부하나 계통 불안정이 발생할 수 있어 정부와 한국전력은 신규 접속을 제한해왔다.
이 같은 조치는 지역 재생에너지 업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주혁신산단의 한 태양광 시공업체 관계자는 “당장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태양광 사업을 하겠다고 문의하는 고객이 있어도 실제 사업 진행이 어려워 안내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송전망을 새로 짓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급증하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제때 수용하기 어렵다고 보고 전력망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기로 했다. 신규 송전선로는 입지 선정과 주민 협의, 인허가, 건설까지 장기간이 필요한 만큼 기존 전력망에서 사용하지 않는 여유 용량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핵심은 ‘유연접속’이다. 평상시에는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기존 전력망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접속을 허용하되, 특정 시간대 송전선로의 전력 흐름이 한계치를 넘어설 경우 발전량을 일시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ESS를 설치해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에는 전력을 저장하고 전력망에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공급하는 방식도 확대한다. 한전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ESS와 실시간 계통 감시·제어 기술을 활용한 전력망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유연접속과 ESS 활용, 기존망 운영 효율화 등을 통해 2030년까지 전국 송전망의 재생에너지 수용능력을 기존 계획보다 52GW 추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대규모 송전선로를 모두 새로 건설하지 않고도 기존 전력망을 적극 활용해 만들어내는 용량이다.
특히 호남에서는 송전단에서 27GW, 배전단에서 12GW의 재생에너지 추가 수용 여력을 확보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한다. 이와 함께 실제 사업 추진 의사가 없거나 장기간 지연된 발전사업자의 계통 접속권도 회수해 신규 사업자에게 다시 배분한다.
정부는 이미 미추진 사업에서 9GW의 접속권을 회수해 이 가운데 3.9GW를 재배분했다. 향후 장기 지연사업까지 접속권 조정 대상에 포함하면 호남에서만 2030년까지 10GW 이상의 접속권을 추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호남 지역은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의 접속 수요가 많은 지역인데 계통 부족으로 2034년 이후에야 접속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이번 대책을 통해 호남의 송전 수용능력을 27GW 추가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계통 접속 여건 개선은 정부가 추진 중인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광주 군공항 일대에 추진되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팹 4기가 들어선다는 가정 아래 최종적으로 6.3GW의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대형 원전 여러 기의 발전용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신장성·신광주변전소와 반도체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23㎞의 전력 공급망을 구축해 2028년 말까지 초기 팹 가동에 필요한 3.1GW를 공급하고 이후 공급능력을 6.3GW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호남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지역의 대규모 산업 수요와 직접 연계하는 ‘지산지소’형 전력체계 구축도 이번 대책의 주요 방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호남의 재생에너지를 수도권까지 끌고 올라오는 것은 너무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정책 역량을 최대한 동원해 해당 지역에서 쓰면 기업에도 이익이 되게 하는 게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 확대로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력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춘 전력망 혁신 필요성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