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사이버 공격과 방화, 사보타주(파괴공작), 드론 침투 등 러시아의 이른바 ‘하이브리드 공격’에 회원국들이 공동 대응하는 새로운 안보 체계 구축을 추진한다. 무력 공격에는 미치지 않지만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도발에 EU 차원의 대응 원칙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회원국 국방장관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어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비상 안보 프로토콜(Emergency Security Protocol)’ 도입 방안을 논의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이달 중순 제안한 이 프로토콜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집단방위 조항인 제5조를 발동할 수준에는 미치지 않지만 회원국 안보를 위협하는 하이브리드 공격이 발생했을 때 EU 회원국들이 신속하게 모여 공동 대응을 조율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나토 회원국이 자국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 안보가 위협받는다고 판단할 경우 회원국 간 협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나토 조약 제4조와 유사한 구조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를 ‘유럽의 자체적인 제4조’라고 표현하며 회원국이 요청하면 EU 전체가 공동 대응을 조율하고 추가적인 긴장을 억제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U가 새로운 공동 대응 체계 마련에 나선 것은 기존 안보 체계만으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격을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유럽에서는 최근 드론 침투와 사이버 공격, 철도·물류시설 등에 대한 파괴공작과 방화 등 이른바 ‘회색지대’ 공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무력 침공과 평시 도발의 경계에 있어 나토의 집단방위 체계를 가동하기 어려운 반면 국가 안보와 핵심 기반시설에는 상당한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EU는 이에 따라 사이버·드론·방화·사보타주 등 공격 유형에 따라 회원국이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이른바 ‘대(對)하이브리드 대응 지침’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 EU 방위·우주 담당 집행위원은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도발에 상응하는 수준의 대응 수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쿠빌리우스 집행위원은 최근 “러시아가 도발에 대해 상당히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르게 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며 EU 차원의 대응 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다만 새로운 체계를 둘러싸고 EU 내부에서는 나토와의 역할 중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별도의 안보 의사결정 체계를 만들 경우 기존 나토 절차와 중복되거나 충돌해 오히려 신속한 대응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U 측은 새로운 체계가 나토를 대체하기보다는 나토의 대응 범위 아래에 있는 하이브리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보완적 장치라는 입장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도 EU의 대응 체계를 나토 제4조를 보완하는 메커니즘으로 제시했다.
나토 역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위협에 대비해 회원국의 회복력과 핵심 인프라 방어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나토는 최근 사이버 공격과 기반시설 공격 등 하이브리드 위협이 빈번해지고 있다며 회원국들의 민간·군사 협력과 사회 전반의 대응 능력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EU가 ‘비상 안보 프로토콜’을 구체화할 경우 기존 나토의 집단방위 체계로 대응하기 어려웠던 사이버 공격과 사보타주 등 회색지대 도발에 유럽 차원의 공동 대응 기준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