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소·벤처·소상공인의 성장 사다리 복원이 절실하다. 이유는 우리 경제의 가장 넓은 기반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11개 주요 업종의 소상공인 사업체는 약 596만 개,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은 약 955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그해 업체당 연평균 매출액은 약 1억 9,900만 원, 영업이익은 약 2,500만 원에 그쳤다.
부채가 있는 업체는 60.9%였고, 경영상 어려움으로 꼽은 것(복수 응답)은 경쟁 심화(59.1%), 원재료비(42.1%), 상권 쇠퇴(36.7%) 순이었다. 소상공인의 위기는 일부 사업자의 어려움을 넘어 고용과 소비, 지역 상권을 함께 위축시키게 된다.
◇생존과 성장의 기로
시장 환경은 이들이 대처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올해 4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4조원을 넘어섰고, 모바일 거래 비중은 76.4%에 달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함께 운영하는 유통채널의 거래액도 전년 동월보다 20.6% 증가했다. 유통 경쟁은 점포의 위치나 입점 여부를 떠나 데이터, 검색 알고리즘, 콘텐츠, 물류와 고객관리 역량의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제는 생존과 성장 사이의 간극이다. 영세한 기업은 당장의 매출에 급급하고, 그에 수반되는 비용을 감당하느라 상품개선과 디지털 전환에 투자하기 어렵다. 반면 성장세에 있는 기업은 소상공인 지원 대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정책 공백을 마주한다. 창업기업 역시 사업화 지원이 끝난 뒤 시장 검증과 반복 거래를 확보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소상공인이 소기업으로, 소기업이 중기업으로, 내수기업이 수출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면, 경제의 역동성은 약해지고 정책 지원은 생존을 연장하는 데 머물 수밖에 없다. 성장 사다리 복원은 고용과 지역경제의 기반을 지키고 새로운 성장기업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경제 정책이다.
정부의 중소벤처기업 지원사업은 부족하지 않다. 창업교육과 사업화 자금부터 기술개발, 정책금융, 상품개선, 온라인 판로, 공공조달, 수출과 재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 지원책이 마련돼 있다. 관련 지원기관도 전국에 촘촘히 배치돼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오히려 정책의 경계에 부딪힌다. 소상공인 자격을 벗어나면 기존 지원책에서 배제되지만, 정작 중소기업 지원사업에 진입할 만큼 기술·조직·재무·유통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창업지원이 끝난 기업은 판로를 찾지 못하고, 온라인몰에 입점한 기업은 반복 매출을 만들지 못하며, 공공조달 등록 기업이 실제 계약을 따내지 못해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성장지원책: 점을 선으로
정책은 사업별로 끝나지만 기업의 성장은 하나의 사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은 ‘상품개발→ 시장 검증→ 초기 판매→ 반복 거래→ 조직 확대→ 공공·민간 시장 진입→ 수출’이라는 연속적인 과정을 거쳐 성장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원의 축소가 아니라 지원 방식의 전환이다. 단년도·사업별 지원에서 기업이 다음 규모와 시장으로 이동하도록 돕는 연속적인 성장지원책으로 바꿔야 한다. 지원사업이라는 ‘점’을 더 만드는 것보다 기존 사업과 시장을 연결하는 ‘선’을 설계해야 한다.
유통 환경이 급변하면서 기업의 성장 경로도 복잡해졌다. 이제 온라인몰 한 곳에 입점하는 것만으로는 시장에 안착하기 어렵다. 경쟁의 기준은 ‘입점 여부’에서 ‘발견 가능성’으로 이동했다. 검색과 추천 알고리즘이 포착할 수 있는 상품 정보, 이미지, 키워드와 리뷰가 필요하다. 판매 이후에는 광고 전환율(CVR, Conversion Rate), 취소·반품률, 재구매율, 재고와 배송 데이터를 분석해야 한다. 온라인 판매, 오프라인 체험, 전문몰, 공공 구매와 해외 판매도 제품 특성에 맞게 조합해야 한다.
모든 기업을 하나의 직선형 사다리에 올려놓을 수 없는 이유다. 생활소비재 기업에는 상품개선과 온라인 시장 검증을 거쳐 민간 유통과 수출로 나아가는 B2C 경로가 필요하다. 기술기업에는 실증과 공공 조달을 연결하는 B2G 경로, 식품기업에는 위생·품질·냉장 물류 역량을 갖춘 뒤 급식·대형유통·수출로 이동하는 경로가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을 특정 사업 영역에서 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의 역량과 시장을 진단해 적합한 경로를 제시하고 다음 단계의 성장까지 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지역 중소기업 정책은 기관과 시설, 예산을 지역별로 배치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지원기관이 많다고 기업이 자동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모든 지역에 같은 사업을 배치하지 않는다.
지역별 사업 환경과 함께 연결성을 고려한다. 베를린은 창업기업이 고객과 투자자를 만나 해외시장으로 확장하는 경로를 강화했다. 뮌헨은 대학·연구기관의 기술을 실증하고 사업화하는 경로를 구축했다. 슈투트가르트는 중소기업이 자동차·기계산업의 공급망에 진입하고 기존 기업과 협업하는 경로를 발전시켰다.
독일 사례의 핵심은 기관의 숫자가 아니라 산업수요, 기술 검증, 자금, 인재, 조달과 시장 가운데 막힌 지점을 찾아 연결한 데 있다. 우리의 지역 지원기관도 행사와 교육에 머물지 않고 기업의 병목을 진단해 대학·연구기관·대기업·공공기관·금융기관을 연결하는 ‘성장경로 코디네이터’로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경로 설계
경로 설계는 새로운 기관이나 사업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현재 단계와 병목을 진단하고 필요한 지원을 조합해 다음 시장까지 연결하는 방식이다. 사회적기업 육성 체계는 이를 보여주는 국내 사례다. 성장지원센터가 기업의 성장단계와 애로사항을 진단하고, 교육·멘토링과 함께 외부 자원을 연결한다.
제품 진단과 상품개선을 거쳐 민간 판로와 공공구매로 이어지는 경로도 제공한다. 핵심은 ‘진단→ 개선→ 시장 검증→ 판로 확대’의 연결선이 끊기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데 있다.
올해 11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소관 부처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로 변경된다. 이를 경로를 확장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생협을 새로운 지원 대상으로 추가하는 데 그친다면 또 하나의 점만 늘어난다. 생협의 정책적 가치는 조합원이라는 안정적인 수요와 매장·물류망, 공동구매와 소비자 데이터를 갖고 있다는 데 있다. 이를 활용해 지역 생산자와 중소기업의 제품을 검증하고, 소비자 평가를 반영해 개선한 뒤 반복 구매와 민간·공공시장 진입으로 연결할 수 있다.
생협은 지원받는 기업인 동시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수요의 연결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공영도매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
중도매인과 시장도매인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거래 주체이지만, 상당수는 농산물을 매입하거나 위탁받아 선별·소분하고 전통시장·동네마트·외식·급식업체에 공급하는 중소 유통 기업이다. 이들을 거래 질서의 관리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 공동물류와 정책금융을 통해 산지와 중소상공인을 연결하는 ‘유통의 연결선’으로 육성해야 한다.
예컨대 중도매인과 시장도매인이 전통시장과 외식업체의 주문을 취합하고 산지 출하 정보와 연결해 공동구매·소분·저온배송을 수행할 수 있다. 판매량과 재고정보가 산지에 전달되면 농가는 출하량을 예측하고, 유통인은 일회성 매매를 공급계약으로 발전시키며, 이런 가운데 소상공인은 구매 시간과 물류비를 줄일 수 있다.
◇실질적 성장 사다리의 복원
거래제도 개편과 경쟁 촉진은 유통혁신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경쟁 자체가 산지와 소비지를 연결해 주지는 않는다. 경쟁의 효과를 실제 유통구조의 변화로 이끌려면 산지 정보와 주문, 상품화, 물류, 정산과 판매데이터가 하나의 경로로 연결돼야 한다.
사회적기업 육성 체계가 기업을 진단에서 판로까지 연결하는 ‘지원의 경로’를 보여준다면, 생협은 소비자 수요를 기업에 전달하는 ‘수요의 경로’, 중도매인과 시장도매인은 산지와 중소상공인을 연결하는 ‘유통의 경로’가 될 수 있다. 이 세 경로가 연결될 때 지역 생산자와 중소기업의 상품은 시장에서 검증되고 반복 거래와 공공 구매를 거쳐 더 큰 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성장 사다리는 개별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품을 검증하고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수요조직, 생산자와 시장을 잇는 유통기업, 기술을 실증할 연구기관과 공공기관, 성장을 뒷받침할 금융이 함께 연결돼야 한다.
기업을 선발하는 정책에서 기업의 이동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사업별 지원에서 성장 단계별 연계로, 기관과 예산의 배치에서 지역산업의 병목을 해결하는 경로 설계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기업을 지원했는가에 있지 않다. 지원받은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고 반복 거래를 만들며 사람을 고용하고, 다음 규모와 시장으로 이동했는가에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또 하나의 사업이나 기관이 아니다. 흩어진 정책의 점들을 연결해 기업이 실제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분명한 연결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