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꺼지는 순간의 공포, 인류 소멸 우려된다
7월 말부터 8월 첫 주까지 2주 동안 폭염과 열대야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필자는 아파트 14층에 살고 있는 덕에 예전에는 한여름에도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선풍기 한 대면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에어컨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힘든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24시간 가동되는 차가운 인공 바람에 완벽히 적응해 있다. 문득 밤중에 서늘한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만약 이 열대야 속에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리면 어떻게 하지?’ 지진이나 대형 재난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전력망이 마비되어 에어컨이 멈춰버린 방 안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갖게 한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누리는 현대의 문명과 일상은 열기를 식혀줄 전력망이라는 아주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 올려져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모든 비명 같은 더위는 수천 km 떨어진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내 방 창문 너머까지 바짝 다가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구 온도의 균형을 잡는 280ppm의 이산화탄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본래 아주 정교하게 제어되는 에너지 시스템이었다. 1억 5천만 km를 건너온 태양 빛(단파)은 대기를 통과해 바다와 숲, 사막과 도시, 그리고 빙하에 도달한다.
이 빛의 일부는 눈이나 얼음처럼 밝은 표면에 맞고 곧바로 우주로 반사되지만, 나머지는 땅과 바다에 흡수되어 지표면을 데운다. 그리고 밤이 되면 따뜻해진 지표면은 이 에너지를 눈에 보이지 않는 긴 파장의 '적외선' 형태로 우주로 방출한다.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소(78.1%)와 산소(20.9%)는 이 에너지 흐름에서 '투명 인간'과 같다. 원자 두 개가 단단히 묶인 이 분자들은 지표면이 내보내는 적외선을 전혀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 우주로 통과시킨다.
만약 대기에 질소와 산소만 있었다면 지구가 내보낸 적외선은 곧장 우주로 빠져나가 지구는 영하 18도의 차가운 얼음 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기 중 단 0.04%를 차지하는 이산화탄소(CO₂)는 달랐다. 탄소 하나와 산소 둘로 이루어진 3원자 분자 구조는 지표면에서 올라오는 특정 파장의 적외선과 만나면 격렬하게 진동하며 열을 흡수한다.
그리고 그 열을 우주뿐만 아니라 다시 지표면과 대기 하층으로 재방출한다. 이 미량의 이산화탄소는 원래 지구를 사람이 살기 좋은 평균 15℃로 유지해 주는 고마운 '열을 가둔 이불'이었다. 산업화 이전 수천 년 동안 이 이불의 두께는 280ppm(공기분자 100만 개 중 280개)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200년 동안의 불꽃놀이가 가져온 서유럽의 비명
균형이 깨진 것은 지난 200년 동안이었다. 인류가 공장을 돌리고 차를 굴리기 위해 지층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석탄과 석유를 꺼내 태우면서, 수억 년간 갇혀 있던 탄소가 대기 중에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공기 중 0.04%라는 비율은 언뜻 보기에 극히 작아 보인다. 하지만 지표면부터 하늘 끝까지 쌓인 대기 전체를 고려하면, 이 미량 기체의 증가는 지구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30ppm을 웃돌고 있다. 200년 만에 이불이 50%나 두꺼워진 셈이다. 지표면에서 방출된 적외선이 우주로 나가지 못하고 대기에 갇히면서, 북극의 기온이 올라가고 고층의 제트기류가 약해졌다. 그 결과 거대한 고기압이 뜨거운 공기를 누르는 '열돔 현상'이 대륙을 덮쳤다.
여름이면 센 강변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던 파리였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두꺼운 석조 벽과 작은 창문으로 지어진 런던의 오래된 집들은 순식간에 열을 가두는 거대한 오븐으로 변했다.
에어컨 보급률이 낮았던 서유럽에서는 폭염으로 학교가 문을 닫고, 산불이 이어지고, 유럽 27개국에서 평년보다 1만 명 이상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하는 비극이 이어졌다. 아파트 14층에서 에어컨 전기가 나갈까 두려워하는 나의 불안은, 이미 유럽 전역에서 현실이 되어 있었던 거였다.
◇거대한 열의 이불을 거둬라, 그렇지 않으면 소멸하리라
이 경고가 너무 지나친 비관론처럼 보이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인류는 전기를 쓰고 에어컨을 틀며 어떻게든 폭염에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우리가 닫힌 방문 안에서 인공 바람을 쐬는 동안, 창문 밖의 세상은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
자연계의 동식물에게는 버튼 하나로 온도를 낮춰줄 에어컨이 없다. 진화의 역사 속에서 수만 년에 걸쳐 일어나야 할 기온 상승이 단 수십 년 만에 폭발적으로 찾아오면서, 바다의 산호초는 하얗게 죽어가고 식물들은 서식지를 잃었으며 곤충과 동물들은 생존의 한계를 넘어 소멸해 가고 있다.
이것이 왜 인류의 소멸인가? 인류는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그물망에서 결코 독립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식물의 수분을 돕는 곤충이 사라지면 농작물이 실종되고, 바다의 먹이사슬이 무너지면 인류의 식량 체계가 파괴된다.
동식물의 멸종은 곧 인류를 지탱하는 생명 유지 장치가 하나씩 꺼지는 것과 같다. 숲과 바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생태계가 무너지면, 농작물이 죽고, 식량난이 일어나, 에어컨 바람 뒤에 숨어 있던 인류 역시 결국 소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미 어떤 이는 소멸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미 공기 중에 풀려난 430ppm의 이산화탄소는 우리가 단순히 에어컨을 끄거나 전기차를 타는 것만으로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200년 동안 쌓아 올린 열의 이불을 거두기 위해 인류는 이제 능동적인 '대기 청소'에 나서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AI와 우주 시대, 430ppm을 절반으로 줄일 기술의 반격
그러나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다행히 오늘날 인류의 기술 발달은 눈부실 정도로 눈부시다. 우리가 다 같이 마음을 모으고 전 지구적으로 결단한다면, 이미 하늘에 쌓인 430ppm의 이산화탄소를 절반 가까이 줄여내는 위대한 반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에너지 혁명과 탄소 포집 : AI는 초고효율 신재생에너지 그리드를 제어하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콕 집어 흡수하는 '직접 공기 포집(DAC)' 기술의 화학 소재와 분자 구조를 광속으로 설계해 내고 있다. 포집된 탄소는 땅속 깊은 곳 현무암 지대에 주입되어 영구적인 돌(석회암)로 변한다.
▲우주 시대의 차세대 에너지와 기후 모니터링 : 우주 태양광 발전 및 초위성 인공위성을 통한 실시간 탄소 모니터링 시스템은 지구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생태계 복원의 지능화 : 초지능적 기술과 자연 기반 해법(NBS)이 결합하여, 숲을 가꾸고 바다숲을 복원하여 나무와 바다 플랑크톤이 탄소를 다량으로 다시 흡수하도록 돕고 있다.
◇다시 바람이 부는 창가를 위하여
필자는 14층 아파트에서 창문 밖 밤하늘을 바라본다. 에어컨은 여전히 세차게 시원한 바람을 뿜어내고 있지만, 이 인공적인 시원함이 주는 안도감 뒤에는 지구라는 거대한 에너지 시스템이 겪고 있는 열병이 누적되어 있다.
0.04%라는 미세한 비율이 지구 전체의 기후를 바꾸었듯 우리가 전력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일상을 되찾는 길 역시 거창한 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 덮어온 두꺼운 열의 이불을 한 겹씩 거둬내는 정교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 우리는 비로소 에어컨 리모컨 없이도 창문을 열고 자연의 서늘한 바람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임을 명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