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찾아낸 단 하나의 정자, 우주에서 생명을 찾던 기술이 이제 지구에서 생명을 만들고 있다” 뉴욕타임스 8월 28일 자 「An unexpected path to fatherhood opens for many, 많은 이들에게 뜻밖에 아버지가 되는 길이 열리다」 란 제목의 기사를 읽다가 눈길이 간 대목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윌리엄스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STAR(Sperm Tracking and Recovery)’라는 기술 이야기다. 말 그대로 정자를 추적해 찾아내고 회수하는 시스템이다.
무정자증이나 극심한 희소 정자 증상이 있는 남성에게 정자 하나를 찾는 일은 망망대해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것과 같다. 정액 속에는 수많은 세포와 찌꺼기가 섞여 있어 숙련된 연구자가 현미경으로 뒤져도 좀처럼 찾기 어렵다. 상황에 따라서 한 검체를 이틀 동안 살펴도 정자를 발견하지 못한다.
STAR는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인공지능에게 맡겼다. 사람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미세 유체 칩의 통로로 정액을 흘려보내면서 고속카메라가 초당 약 300장의 영상을 찍는다.
AI는 그 수많은 영상 속에서 정자처럼 보이는 물체를 골라내고, 진짜 정자로 확인되면 미세한 밸브가 열려 정자를 회수한다. 컬럼비아대에 따르면 시간당 100만 장이 넘는 이미지를 처리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몇 마리’가 아니라 ‘단 한 마리’의 가치다. 한 사례에서는 기존 방법으로 이틀 동안 정자를 찾지 못했던 검체에서 STAR가 불과 한 시간 만에 44개의 정자를 찾아냈다.
19년 동안 임신을 시도했던 한 부부에게도 STAR가 찾아낸 정자가 아버지가 될 길을 열어줬다. 컬럼비아대는 이 기술로 기존 검사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정자를 찾아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진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사를 기후 칼럼의 눈으로 바라보니 다른 질문이 생긴다. 기후 재난은 혹시 인간의 ‘생명 만들기’ 능력까지 약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자는 온도에 민감하다. 고환이 체온보다 낮은 온도를 유지하도록 몸 바깥쪽에 자리 잡은 것부터가 그 증거다. 실제로 높은 주변 온도와 열 스트레스가 정자의 농도와 수, 운동성, 정상 형태를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비정상적 고온 노출, 정자 농도·운동성 저하 유발…중국 연구팀 확인
특히 주목할 만한 연구가 있다. 중국의 6개 정자은행에서 3만 3천여 명, 약 7만 9천 건의 정액 검체를 분석한 연구에서, 비정상적인 고온 노출이 정자 농도와 운동성 있는 정자의 수를 떨어뜨리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폭염에 노출된 남성 정액의 양과 정자 농도, 정자의 총수(總數), 정상 형태가 감소하고 운동성도 떨어지는 결과가 관찰됐다.
특히 정자 생성 과정은 약 70~90일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오늘의 폭염이 내일 당장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 달 뒤의 정자 상태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것을 곧바로 “기후변화로 남성들이 아버지가 되기 어려워졌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남성 불임에는 유전적 요인, 질환, 생활 습관, 약물, 비만, 흡연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온도와 정자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에도 아직 더 밝혀야 할 부분이 많다.
최근 연구를 종합한 리뷰 역시 높은 온도 노출과 정자 상태 저하의 연관성은 일관되게 관찰되고 있지만 연구 방법의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 지구만 아픈 게 아니다…인간의 세포를 위협하는 기후변화
그럼에도 생각해 볼 문제는 분명하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흔히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산불과 홍수가 늘어나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후 재난은 인간의 몸속에 있는 가장 작은 세포에조차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정자 하나의 운동성이 떨어지고, 숫자가 줄고, DNA가 손상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 역시 기후재앙이 인간에게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이 한편으로는 기후를 뜨겁게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열 때문에 약해질지도 모르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AI와 로봇이라는 첨단기술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STAR는 인간에게 새로운 희망이다. 하지만 AI가 정자 한 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해서 기후 재난의 책임까지 대신 질 수는 없다. 기술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데 탁월하지만, 잃어버리지 않도록 환경을 지키는 일까지 대신해 주진 못한다.
천문학자들은 칠흑 같은 우주에서 아주 희미한 별 하나를 찾아낸다. 이제 의학자들은 수많은 세포 찌꺼기 속에서 정자 하나를 찾아낸다. 우주에서 별 하나가 발견되듯,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정자 하나가 새로운 가족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기후 재난은 결국 ‘지구를 구하자’는 거대한 구호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아주 작아서 현미경으로도 찾기 힘든 생명 하나의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생명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아버지가 될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정자 한 마리를 찾아내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정자가 건강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지구를 만드는 일이 더 근본적인 생명 보호라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