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업계가 로봇·자동화 설비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한 ‘피지컬 AI’ 도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종사자 500인 이상 제조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84%가 피지컬 AI를 이미 도입했거나 향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조업 전반에서 자동화 수준을 끌어올리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투자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피지컬 AI는 로봇, 자동화설비 등 물리적 시스템에 AI를 결합해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무인운반차(AGV), 자율이동로봇(AMR) 등이 대표적이다. 경총은 이번 조사를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5월 말부터 보름간 진행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기업 중 47%가 이미 피지컬 AI를 도입한 상태였다. 이 가운데 전 공정·부서에 도입한 기업은 4%였고, 일부 공정·부서에 적용한 기업이 43%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아직 도입하지 않았지만 향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힌 기업은 37%였으며, 도입 계획이 없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도입 의지가 높았는데, 종사자 1000인 이상 기업의 도입·도입 예정 비율은 88.5%로 500~1000인 미만 기업(68.2%)보다 높았다.
현재 가장 널리 활용되는 피지컬 AI 유형은 공장 내 물류를 담당하는 AGV·AMR이었다. 피지컬 AI를 도입한 기업 중 63.8%가 이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밖에도 자율주행차형은 31.9%, 휴머노이드형은 29.8%, 드론형은 4.3%로 나타났다. 반면 향후 도입 계획을 묻는 질문에서는 휴머노이드형이 64.9%로 가장 비중이 높았다. 이는 제조업 현장에서 단순 반복·운송 작업을 넘어 인간형 로봇을 활용한 고도화된 공정 자동화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지컬 AI의 활용 분야는 조립·제작 공정이 66%로 가장 많았고, 물류·운송 및 창고 관리가 57.4%로 뒤를 이었다. 제품 설계·개발(17%), 품질 진단(14.9%), 안전 관리(10.6%)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는 흐름도 확인됐다.
기업들이 피지컬 AI 도입을 통해 가장 기대하는 효과는 생산성 향상이었다. 도입했거나 도입 예정인 기업 중 45.2%가 생산성 및 실적 향상을 기대한다고 답했다. 인력난 해소(26.2%), 산업재해 예방 및 사고 위험 감소(22.6%)도 주요 기대 효과로 꼽혔다. 특히 기업들이 예상한 평균 생산성 향상 폭은 31.9%로 나타나, 피지컬 AI가 제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 기술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긍정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피지컬 AI 확산으로 전체 일자리가 축소될 것이라는 응답이 61.9%로 가장 많았다. 자동화에 따른 기존 인력 대체 효과가 신규 일자리 창출보다 더 클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34.5%, ‘확대될 것’이라는 응답은 3.6%에 그쳤다.
도입 과정에서의 애로사항도 분명했다. 기술적 불안정성과 시스템 불안에 따른 리스크가 34.5%로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꼽혔다. 이어 투자비용 대비 수익성 불확실성(31%), 노조·근로자의 도입 반대(27.4%)가 뒤를 이었다. 첨단 기술 도입에 따른 초기 비용 부담과 현장 인력의 반발 가능성이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피지컬 AI가 국가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저출생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와 생산성 하락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이 79.8%에 달했다. 피지컬 AI가 산업 경쟁력 강화뿐 아니라 구조적 경제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국내 제조업은 이미 피지컬 AI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생산성 향상과 공정 혁신이라는 기회와 함께 일자리 변화, 기술 안정성, 노사 갈등이라는 과제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기업과 정부의 전략적 대응이 향후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승용 경총 경제분석팀장은 “피지컬 AI 확산으로 기업과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투자 대비 수익 불확실성과 노사 갈등 우려가 존재하는 만큼,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 정비와 기업 지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