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8일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 최종 로드맵을 발표했다. 연결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는 2028년부터 직전 사업연도의 지속가능성〔ESG,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 경영 정보를 사업보고서를 통해 공시하게 된다. 실제 법정공시로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하다.
◇ 온실가스 배출 구분
특히 기후 리스크에 초점을 맞춰 기업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원에 따라 ‘직접 배출(Scope 1)’과 ‘간접 배출(Scope 2, 3)’로 나눠 관리하게 된다.
기업이 소유·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직접 배출하는 것은 Scope 1, 외부에서 구매하는 전기 등 에너지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은 Scope 2다. Scope 3은 원재료 및 상품 구매에 있어 외부 운송, 포장과 폐기 등 기업의 운영 및 활동과 연관된 가치사슬(Value chain) 전반에서 발생한 모든 간접적인 배출을 말한다.
농식품 유통기업에서는 농가의 비료와 농기계 연료, 시설원예 난방, 논의 메탄가스 발생, 소의 장내 발효와 가축분뇨 배출 등으로 인한 온실가스 발생 등이 구매와 관련된 Scope 3이 된다. 거래조건과 산정 범위에 따라 외부 운송, 포장재, 사업장에서 발생한 식품 폐기물과 판매 상품의 최종 폐기도 관련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구매 상품과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Scope 3 배출량 공시는 각 기업군의 최초 공시 시점부터 3년간 유예된다. 이에 따라 연결자산 10조 원 이상 기업은 2030 사업연도의 Scope 3 배출량을 2031년에 처음 공시할 예정이다.
공시의무가 유예됐다고 준비까지 미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농축수산물은 같은 품목이라도 산지와 재배·사육 방식, 비료·사료, 시설 에너지, 계절과 운송 방식에 따라 배출량이 달라 자료 체계를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모든 항목을 각각 공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납품거절·반품·판매폐기량도 모두 독립적인 의무공시 항목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급망 배출을 산정하고 기후 리스크를 관리하려면 생산·구매·운송·포장·반품·폐기에 관한 활동자료가 필요하다. Scope 3 공시는 결국 대형 유통기업의 구매와 발주, 규격과 포장, 운송과 폐기 정책을 바꾸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 Scope 3의 특성
유통기업은 상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지만 막대한 양의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을 구매한다. 따라서 점포와 물류센터에서 발생하는 Scope 1·2보다 구매 상품의 생산·운송·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Scope 3이 더 클 수 있다. 이마트가 공개한 2024년 Scope 1·2 배출량은 약 52만 톤, Scope 3 배출량은 약 390만 톤이다.
산정 범위와 배출계수 변화가 포함된 수치이므로 실제 배출량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지만 Scope 3의 상대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롯데쇼핑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도 ‘구매한 상품 및 서비스’에 의한 배출량이 최근 연도 기준 약 1,870만tCO₂eq로 제시됐다. 이 수치에는 롯데마트뿐 아니라 백화점·슈퍼·e커머스의 식품 및 비식품 상품이 포함돼 있으므로 농식품 배출량으로 단정하거나 이마트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유통기업의 탄소발자국이 매장보다 구매 상품 공급망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은 농장에서 발생하지만, 저감을 좌우하는 결정은 유통단계에서도 이루어진다. 유통기업이 저메탄 쌀이나 저탄소 농산물을 장기계약하고 추가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면 농가는 생산방식을 바꿀 수 있다.
반대로 낮은 납품가격만 요구하면서 온실가스 자료와 인증 비용을 산지에 전가하면 친환경 전환은 지속되기 어렵다. 과다 발주와 갑작스러운 발주 취소, 엄격한 외관규격, 납품 거절과 반품도 생산과 폐기를 늘릴 수 있다.
농산물이 산지에서 폐기되면 대형마트의 판매폐기 통계에는 잡히지 않을 수 있지만, 생산에 투입된 비료·물·에너지와 선별·포장·운송에서 발생한 온실가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생산자에게만 저감 책임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 생산자는 생산방식을 개선하고, 유통기업은 발주·규격·가격·반품·판매 정책을 바꾸며, 소비자는 과잉 구매와 폐기를 줄이는 책임을 나눠야 한다.
◇ 새로운 불평등 우려
Scope 3 공시는 친환경 전환의 기회인 동시에 새로운 시장 진입장벽을 만들 위험도 있다. 대형 유통기업이 수천 농가의 재배 방식, 비료와 에너지 사용량, 포장재, 운송거리와 적재율을 개별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결국 자료를 일괄 제공할 수 있는 대형 APC(농산물산지유통센터), 농협, 기업형 산지 조직과 전문 벤더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대형 산지 조직은 전산시스템과 전문 인력을 갖추고 측정·인증 비용을 많은 물량에 분산할 수 있다. 반면 개별 농가와 영세 산지유통업체는 실제 온실가스 배출이 적더라도 이를 계산하고 증명할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 Scope 3 공시 때문에 공급망 집중이 현실화됐다는 실증자료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별도의 공공지원이 없다면 온실가스 저감 경쟁이 아니라 데이터 제출 능력의 경쟁이 될 위험은 분명하다.
OECD도 농식품 공급망에는 복잡한 탄소발자국을 계산할 역량이 부족한 소규모 생산자가 많으므로 저비용 공통 산정 도구와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Scope 3 시대에는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이를 측정하고 증명하는 능력의 차이에서 새로운 불평등이 야기될 수 있다.
◇ Scope 3 시대의 유통혁신
Scope 3 대응을 대형 유통기업의 자체 플랫폼에만 맡기면, 농가는 거래기업마다 서로 다른 양식으로 같은 정보를 반복 제출해야 한다. 데이터 구축 비용은 산지에 전가되고 생산 정보는 특정 구매기업에 집중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한 번 입력한 정보를 여러 구매자와 공시기업이 공통 기준에 따라 활용하는 ‘단일 입력·다수 활용’ 구조다. 그렇다고 모든 데이터를 하나의 중앙 플랫폼에 집중시켜서도 안 된다.
국가는 품목·재배 방식별 공통 배출계수와 데이터 표준을 만들고, 농업경영체·인증기관·농협·APC는 생산 원천 정보를 관리해야 한다. 온라인도매시장은 거래·계약·정산 정보를 연결하고, 권역별 공영도매시장은 검품·운송·포장·반품·폐기 정보를 보완해야 한다.
농가에는 자신이 제공한 정보를 열람·수정할 수 있게 하고, 다른 구매자와 거래할 때 이를 다시 사용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중앙집중이 아니라 표준화된 분산 연계가 필요하다.
온라인도매시장은 산지 판매자와 전국의 구매자를 디지털로 연결하고 거래가격과 품목·물량, 계약과 정산 자료를 축적한다. 이를 정가·수의매매, 예약거래와 계약재배 확대에 활용할 수 있다.
앞으로 온라인도매시장은 단순한 거래 플랫폼을 넘어 분산된 생산·환경 정보를 공통 기준으로 연결하는 공공 데이터망으로 발전해야 한다. 농가가 생산 정보를 한 번 확인하면 대형마트·급식업체·가공업체 등 여러 거래처에 반복 제출하지 않아도 되게끔 해야 한다.
농민에게 수십 개 항목을 직접 입력하게 해서는 안 된다. 농업경영체와 인증기관, 농협·APC의 생산·선별 자료를 연계하고 농가는 핵심 정보만 확인·수정하도록 해야 한다. 초기에는 표준 배출계수를 사용하고, 자료가 축적되면 농가·산지별 실제 자료로 고도화할 수 있다. 기본 산정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
온라인에서 거래가 체결돼도 농산물은 실제로 이동해야 한다. 상품을 검수하고 여러 품목의 구색을 맞추며 저장·소분·합배송해야 한다. 품질이 계약조건과 다르면 분쟁과 반품, 재판매도 처리해야 한다. 온라인도매시장은 거래와 정보 연결에는 강하지만 이러한 실물 기능을 직접 수행하기 어렵다. 공영도매시장을 온라인 거래의 권역별 검품·물류·환경 정보 거점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공영도매시장에는 산지와 출하자, 품목·등급·수량, 거래가격, 반입·반출, 정산과 구매자 정보가 축적된다. 여기에 운송거리·차종·적재율, 포장재, 검품 결과, 규격 탈락 내용, 반품과 판매 잔량 정보를 연결하면 생산에서 소비지까지의 환경 정보를 보완할 수 있다.
특히 공영도매시장은 대형마트에 직접 납품하기 어려운 중소 농가의 출하 경로이자 동네마트·전통시장·음식점 등 중소 구매자의 조달 기반이다. 온실가스 산정·검품·소분·구색·공동배송을 지원하면 친환경 유통이 대형마트의 자체 공급망에만 갇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공영도매시장을 탈바꿈하는 것이 Scope 3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시장에는 농가의 비료·에너지 사용량이나 판매 상품의 최종 폐기 정보가 충분치 않다. 따라서 모든 데이터를 소유하는 기관이 아니라 생산·거래·물류·폐기 정보를 연결하는 권역별 공공 접속창구가 돼야 한다.
온라인도매시장이 거래와 계약 정보를 연결하는 두뇌라면, 공영도매시장은 검품과 공동물류, 환경 정보를 담당하는 권역의 몸체가 되는 역할 분담이다.
친환경 생산은 농가의 사전 투자와 생산방식 변경을 필요로 한다. 농가가 생산 전에 가격과 구매량을 예측할 수 있어야 시설과 재배 방식을 바꿀 수 있다. 당일 경매가격만으로는 추가 비용과 생산 위험을 보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온라인도매시장과 공영도매시장은 정가·수의매매, 예약거래, 장기계약과 계약재배를 확대해야 한다. Scope 3 저감 실적을 확보하는 유통기업은 가격 프리미엄, 최소 구매량, 장기계약과 시설개선 지원을 통해 온실가스 측정과 친환경 전환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
공공 온실가스 데이터는 농가를 평가하고 탈락시키는 자료가 아니라 생산비와 친환경 성과를 근거로 더 나은 거래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자료가 돼야 한다. 도매법인·시장도매인·중도매인의 역할도 단순 수집·경매·재판매에서 생산 정보 확인, 검품, 용도별 분류, 소분, 공동 배송과 환경정보 제공으로 확대해야 한다.
친환경 농산물 거래액, 계약·예약거래 비중, 공동 배송률, 차량 적재율, 규격 외 농산물 판매와 폐기감축 실적을 평가하고 우수 유통인에게 시설 사용료 감면과 정책자금을 제공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는 비싼 친환경 상품만을 권할 것이 아니라 낱개·소량 구매, 규격 외 상품, 유통기한 임박 상품, 다회용·무포장 상품 등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 친환경 농산물이 고소득층만의 상품이 되지 않도록 공공급식·복지급식·지역 공공식료품 정책과도 연결해야 한다.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
지속가능성(ESG) 공시가 대형기업의 보고서 작성을 위한 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형 유통기업이 Scope 3 자료를 산지에 요구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온실가스 측정 비용은 농가에 전가되고 거래는 데이터 제출 능력을 갖춘 대형 공급자에게 집중될 수 있다.
반대로 국가가 공통 기준을 만들고, 온라인도매시장이 거래·계약 정보를 연결하며, 공영도매시장이 권역별 검품·공동물류·환경 정보를 담당한다면 Scope 3은 농식품 유통을 바꾸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생산자에게는 안정적인 판로와 온실가스 저감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유통인에게는 검품·구색·공동물류·환경 정보라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소비자에게는 합리적인 가격과 신뢰할 수 있는 환경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생산·거래·재고·운송·폐기 정보가 연결되면 수요예측과 계약재배도 확대돼 과잉생산과 가격폭락, 불필요한 운송과 식품 폐기를 함께 줄일 수 있다.
Scope 3 시대의 정책 목표가 농가를 더 정교하게 평가하고 탈락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하면 안 된다. 규모가 작은 생산자도 자신의 친환경 성과를 낮은 비용으로 증명하고, 그 성과에 합당한 가격과 판로를 보장받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농민보다 친환경 성과를 잘 증명하는 기업이 유리한 시장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온라인도매시장과 공영도매시장을 연결한 공공 유통혁신은 Scope 3 시대의 새로운 불평등을 막는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