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과 희토류 전주기 협력...칠레·아르헨티나서 리튬·구리 협력망 구축
-LS, 칠레 국영기업과 구리 협력 모색...MOU 넘어 광산 지분·장기구매권 확보해야
-2007년 북한산 흑연 500톤 반입...남북 자원협력 재개 가능성도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말 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 순방을 통해 희토류와 리튬, 구리 등 핵심광물 공급망 확대에 나서면서 미국과 중국에 편중된 한국의 자원 공급망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지 관심이 쏠린다.
희토류와 리튬, 구리, 흑연은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송전망,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첨단 방산제품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 전략자원이다. 그러나 한국은 부존자원이 부족한 데다 주요 광물의 채굴과 제련·가공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국의 수출통제나 지정학적 충돌이 발생하면 국내 첨단산업 생산까지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6년 1월 발표한 세계 핵심광물 전략비축 관련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갈륨과 흑연, 망간, 희토류의 세계 정제 공급량 가운데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2005년 이후 세계 구리 제련능력 증가분의 90% 이상을 담당하면서 세계 제련능력 점유율을 2005년 약 15%에서 2025년 50%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광산이 중국 밖에 있더라도 원광을 산업용 소재로 전환하는 중간 가공단계는 여전히 중국에 집중돼 있다는 의미다. 한국이 광산 개발뿐 아니라 제련·정제와 소재 생산까지 포함한 공급망 전반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미중 갈등에 중동발 에너지 위기까지 겹치면서 한국으로서는 원유와 가스뿐 아니라 첨단산업용 광물의 수입선도 함께 다변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등 주요 해상 수송로의 불안은 특정 국가와 항로에 집중된 공급망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브라질 희토류부터 칠레·아르헨티나 리튬까지
이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남미 3국과 국가 차원의 핵심광물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한국과 브라질은 지난달 28일 ‘핵심전략광물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희토류를 포함한 핵심광물의 탐사와 개발, 가공, 연구개발 등 공급망 전반에서 협력사업과 투자 기회를 발굴하기로 했다.
양국은 광물 채굴과 선광에 해당하는 상류 부문뿐 아니라 제련·정제 등 중류 부문, 배터리와 영구자석 등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하류 부문까지 포괄하는 지속 가능한 가치사슬을 구축하기로 했다. 한국 기업의 기술·투자 역량과 브라질의 풍부한 자원을 결합하되 현지 가공과 부가가치 창출도 함께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 수준의 희토류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로 평가된다. 그동안 세계 희토류 공급망은 중국의 채굴능력뿐 아니라 분리·정제와 영구자석 제조능력에 집중돼 있었다. 브라질과의 협력은 한국이 중국 이외 지역에서 희토류 원료와 가공 거점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지난달 30일 칠레에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광물자원 파트너십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국은 기존 정부 간 자원협의체를 장관급으로 격상해 정례화하고 광물정보 교환과 기술협력, 인적 교류를 확대하기로 했다.
10년간 열리지 않았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자유무역위원회도 재가동해 투자와 첨단산업, 공급망 환경 변화를 반영한 FTA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칠레는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이자 주요 리튬 생산국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칠레는 2024년 세계 구리 광산 생산량의 24%를 차지했으며, 리튬 생산량은 미국을 제외한 세계 생산량의 22%로 2위였다.
구리는 송전선과 변압기, 전기차, 데이터센터, 풍력·태양광 발전설비에 대량으로 사용된다. 정부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재생에너지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구리 공급망 확보는 전력 인프라 구축과 직결된다. 리튬 역시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산업의 핵심 원료다.
한국과 아르헨티나도 리튬 등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아르헨티나는 칠레·볼리비아와 함께 이른바 ‘리튬 삼각지대’를 구성하는 국가로, 리튬 매장량이 세계 4위 수준인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브라질의 희토류, 칠레의 구리·리튬, 아르헨티나의 리튬을 연결해 남미 핵심광물 협력망의 외연을 넓혔다.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인 셰일오일·가스 매장지인 바카무에르타도 보유하고 있다. 핵심광물 협력이 안정적으로 진전될 경우 향후 LNG와 원유 등 전통 에너지와 농축산물 교역으로 협력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LS, 칠레 구리 협력 전면에...“정부·공공기관 후속 지원 필요”
이번 순방에서는 국내 기업 가운데 LS그룹의 칠레 구리 사업이 주목받았다. LS그룹은 LS MnM을 통해 해외에서 동정광을 들여와 전기동을 생산하고, 이를 LS전선 등의 전선·전력망 사업으로 연결하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글로벌 전력망 투자와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구리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LS그룹으로서는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와의 협력이 원료 조달과 해외 네트워크 확대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대통령도 현지 연설에서 칠레 국영 구리기업과의 협력 가능성을 거론하며 LS그룹의 사업을 직접 언급했다.
LS그룹 관계자는 “대통령이 연설에서 LS를 직접 언급할 정도로 칠레에서 핵심광물 사업을 펼치고 있는 국내 기업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번 순방이 LS가 남미 지역에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순방을 계기로 LS그룹과 정부 기관인 한국광해광업공단 간 구체적인 칠레 사업 협의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LS그룹 관계자는 “대통령이 LS를 언급한 만큼 광해광업공단도 향후 협력 방안을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까지 양측 간 구체적인 사업 협의나 교감이 이뤄진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MOU만으로는 부족...광산 지분과 장기구매권 확보해야
이번 순방으로 정부 간 협력의 틀은 마련됐지만 실제 광물 물량 확보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공동성명이나 MOU는 광물 공급을 보장하는 구매계약이 아니다. 현지 광산 탐사와 경제성평가, 환경인허가, 주민동의, 개발자금 조달, 철도·항만 등 기반시설 건설을 거쳐 실제 생산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한국이 공급망 다변화의 실익을 얻으려면 정부 간 선언을 넘어 국내 기업의 광산 지분투자와 장기구매계약, 생산물 우선구매권을 확보해야 하고 광산에서 캐낸 원료를 어디에서 분리·정제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남미에서 광물을 확보하더라도 제련·가공을 다시 중국에 의존한다면 공급망 취약성은 남을 수밖에 없다.
과거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부실 논란 이후 공공 부문의 직접투자 기능이 위축된 상황에서 한국광해광업공단을 중심으로 정책금융기관과 민간기업의 역할을 재설계하고 국가 자원안보 차원에서 사업성을 평가하고 위험을 분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2007년 북한산 흑연 500톤 반입...남북 자원협력 재개 가능성
최근에는 북한 광물자원을 활용하는 방안도 공급망 다변화의 한 축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12월 19일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정동영 장관은 “호혜적이고 다자적이며 획기적인 협력 구상을 통해 남북 교류협력을 재개하겠다”며 그 방안 가운데 하나로 북한과의 광물 교역을 제시했다.
북한에는 흑연을 비롯해 마그네사이트와 철광석, 아연, 텅스텐 등 다양한 광물자원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한은 흑연 공동개발을 실제로 추진한 경험이 있다. 옛 대한광업진흥공사와 북한 명지총회사는 2003년 황해남도 연안군 정촌 흑연광산 공동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현지에서 생산한 흑연 500톤이 2007년 인천항을 통해 국내에 처음 반입됐다. 정촌 광산은 남북이 공동 투자해 생산물까지 국내로 들여온 최초의 자원개발 협력사업이었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과 2010년 5·24 조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등으로 사업은 중단됐다. 과거 한국광물자원공사와 민간기업이 추진하거나 협의한 북한 광물자원 개발사업은 정촌 흑연광산을 포함해 10여 건에 달했지만 대부분 장기간 표류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자원개발 기업 관계자는 “과거 광업진흥공사가 주도해 북한과 흑연 사업 협력을 추진했지만, 민간기업이 흑연을 직접 수입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었다”며 “흑연과 같은 광물은 북한 당국의 허가 없이는 거래하기 어려운 전략상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순방에서 대통령은 남미 국가들에 우리 기업의 핵심광물 사업 지원을 당부했다. 이를 계기로 남미의 풍부한 자원과 한국의 기술력이 결합한 상생 협력의 시너지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