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은 자기 삶에 대한 책임
최근(7월 20일) 코리아 중앙 데일리에서 「Lee Byung-chull’s final gamble at 73, 73세에 던진 이병철의 마지막 승부수(도박)」라는 칼럼의 제목을 보았다. 칼럼 발췌문은 ‘이 회장은 눈을 감을 때 자신의 도박이 새로운 미래를 열 것으로 확신한 것처럼 보인다’라고 했다.
내용이 어찌 되었든 그 제목은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기업인의 경영 판단을 도박이라고 부를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일흔셋의 나이에 마지막 승부를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내 마음을 흔든 거였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조언이 넘쳐난다. 이제는 충분히 일했으니 욕심 내려놓으라, 하던 일을 정리하라, 남은 시간은 여행도 하고 취미도 즐기며 여유롭게 살라고 한다. 길어진 인생을 사는 기술로서 이러한 충고는 분명 일리가 있다. 쉼을 모르고 달려온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처방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말이 너무 쉽게 하나의 정답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연구실에서 새로운 질문을 붙드는 학자들이 있다. 평생 쌓은 기술을 놓지 않고 현장에서 공사를 지휘하는 사장도 있다. 작은 가게를 지키며 단골손님을 맞는 노인도 있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인도 있다.
그들은 돈이 부족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일이 곧 자신의 존재 이유이고 삶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고령에 이르러 영예를 안는다. 이는 오랜 연구와 업적이 인정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73살에 마지막 승부를 건 기업인의 이야기는 성공 신화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사람의 도전을 자동으로 끝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동시에 그 도전은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이어야 한다는 점도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쉬기 위해' 사는 존재라기보다 '의미를 위해' 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의미가 사라진 여유는 자칫 무료함이 되고, 목적 없는 휴식은 오히려 삶의 활력을 앗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은퇴 이후 우울감이나 상실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리라.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마지막까지 승부를 걸며 살아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이병철 회장 같은 기업인의 선택은 그 사람만의 시대와 책임, 성격이 만들어 낸 결과일 것이다. 누구나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또 다른 강요일 수 있다.
◇일을 내려놓는가? 아닌가? 보다, 더 중요한 것
문제는 어느 쪽이 정답이냐가 아니다. 일을 계속하는 것이 좋은가, 내려놓는 것이 좋은가를 흑백으로 나눌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일이다. 일을 멈추면 더 충만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을 계속해야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나는 요즘 그 갈림길 앞에서 자주 망설인다. 한편으로는 책을 더 많이 쓰고 싶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이 있고, 글로 남겨야 할 경험도 적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써야 할 주제는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집중력도 오래가지 않고 체력도 쉽게 떨어진다. 예전처럼 무리해서 몰아붙이는 방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은 여유롭게 살라는 권유도 이해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천천히 산책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계절을 느끼며 사는 삶도 분명 아름답다. 하지만 그런 생활만으로 남은 세월을 채운다면 내게는 왠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느낌이 들 것 같다. 편안할 수는 있어도 충만하지는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오늘 점심을 함께한 방송사 선배는 나보다 세 살 위다. 선배는 1년에 한 번, 미국에 사는 딸 집에서 석 달 정도 지낸다. 귀국 후에는 변호사 사위 사무실의 고문으로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고, 꾸준히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건강을 관리한다.
그 선배는 웃으며 "일흔을 넘긴 남자에게 가장 큰 자존심은 자기 몸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그건 아내 앞에서조차 세월이 남긴 흔적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는 근육이 조금씩 붙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운동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몸을 가꾸는 일은 단순한 건강관리를 넘어, 자신에 대한 마지막 예의이자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는 영어와 독일어 회화도 학원에 다니며 외국어를 다시 익힌다. 미국에서 드라이브 스루에서 막힘없이 영어로 주문하는 작은 목표로 세웠고, 언젠가는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유럽 여행을 꿈꾸고 있다. 그런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 적잖이 부러웠다. 나이를 핑계 삼지 않고 건강을 가꾸고, 평생 익혀도 잘 들리지 않았던 외국어를 정복하고, 더 나은 여행의 꿈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으니까.
그래서 오늘 점심 이후 내 마음에도 작은 부러움이 하나 붙었다. 선배처럼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배우고, 몸을 가꾸고, 새로운 꿈을 향해 걸어가 보고 싶다는 욕심 말이다. 그러나 그런 욕심을 부리다 보면 내가 쓰고자 하는 책과는 작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에 대한 그 질문은 점심 이후 몇 번씩 머릿속을 맴돌며 떠나지 않고 나를 깊은 고민 속으로 이끌었다.
◇얼마나 많이 이루었는가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을 남길 것인가?
젊은 시절에는 성취가 목표였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전에서는 방향이 조금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많이 이루었는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속도보다 밀도이고, 양보다 깊이다.
어쩌면 진짜 은퇴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포기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대로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여전히 현역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계속 일할 것인가, 즐기며 살 것인가'라는 질문 대신 다른 질문을 해 보려고 한다. 남은 시간 동안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휴식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집중이 필요한가? 하고 말이다.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여행에서 찾을 것이고, 어떤 이는 봉사에서 찾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끝내 놓지 못한 연구에서, 그림에서, 농사에서, 혹은 한 권의 책에서 찾을 것이다.
나 역시 아마 책을 쓰는 일을 쉽게 내려놓지는 못할 것 같다. 다만 예전처럼 무리하게 많이 쓰려하지 않고, 정말 오래 남을 한 권을 위해 힘을 아끼며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생이 길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일을 줄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길어진 인생을 위해 일하는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결국 나는 마음이 잠시 흔들렸을 뿐 책을 쓰겠다는 원래의 계획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저술가 슈페판 볼만은 『길어진 인생을 사는 기술/웅진지식하우스』 이란 저서 서문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제 우리의 인생이 길어졌다는 의식이다.
긴 인생은 200년 전 대다수가 살았던 인생과는 다른 법칙을 따르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긴 인생이 좋은 인생이 되기 위해 우리는 긴 인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견디기만 할 것이 아니라, 긴 인생을 적극적으로 경영하며 나가야 한다”라고 했다. 이제 나이 듦에도 다채롭고 우아한 삶의 철학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 후반전의 지혜는 일을 하나둘 내려놓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해야 할 일만 남기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요즘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깨닫는 것은 하나다. 하루하루가 할 일 없어 지루한 삶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노년이라는 사실이다. 몸을 움직이고, 배우고, 꿈꾸고, 몰두할 일이 남아 있는 한 삶은 아직 진행형이다.
어쩌면 내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남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