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 서유럽 폭염에 초과 사망 1만명...독일은 올해 온열 사망 9800명 추산
-미국·중국 전력수요 사상 최고치...일본은 일주일 새 1만8500여명 응급 이송
-냉방 수요에 AI 데이터센터까지 가세...폭염 견디는 전력망이 산업 경쟁력 좌우
전 세계가 기록적인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한 주 동안 평년보다 1만명 이상 많은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고, 미국과 중국에서는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망 운영 부담이 최고조에 달했다.
일본에서는 일주일 만에 1만8000명이 넘는 시민이 열사병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산불과 가뭄, 농작물 피해까지 잇따르면서 기후변화가 초래한 폭염이 단순한 계절적 현상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위협하는 복합재난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서유럽 폭염에 초과 사망 1만명...산불로 수십만명 대피
가장 심각한 인명 피해가 확인된 곳은 유럽이다. 지난 6월 말 스페인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 서유럽을 덮친 폭염으로 일부 지역 기온은 40도를 넘어섰다. 학교가 문을 닫고 철도 운행이 차질을 빚는 등 사회기반시설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의 초과 사망 감시체계인 유로모모(EuroMOMO)에 따르면 지난달 22일부터 28일까지 유럽의 초과 사망자는 1만650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초과 사망은 일정 기간 실제 사망자가 과거 통계 등을 토대로 산출한 예상 사망자보다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사망자 가운데 9000명 이상은 65세 이상 고령층으로 파악됐다.
독일의 피해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독일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는 이달 19일까지 올해 독일의 폭염 관련 사망자를 약 9800명으로 추산했다. 이는 6월 말 유럽 전체 초과 사망 통계와 집계 기간과 산출 방식이 다른 별도 수치다. 독일에서는 특히 75세 이상 고령층의 피해가 두드러졌으며, 주간 평균기온이 20도를 넘는 시기에 사망률이 뚜렷하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과학자들은 이번 폭염의 강도와 빈도가 인간 활동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분석한다. 유럽은 세계에서 기온 상승 속도가 가장 빠른 대륙으로 꼽히며, 고령 인구 비중이 높은 데다 냉방시설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폭염은 대형 산불로 이어졌다. 프랑스 남서부 지롱드주와 랑드주에서는 보르도 인근과 캅페레 반도 일대까지 불길이 번지면서 한때 약 22만4000명이 대피했다. 화재 피해 면적은 4만2000㏊에 달했다.
스페인에서도 마드리드 인근 시에라오에스테와 아빌라주, 카스테욘주 등에서 산불이 이어졌으며,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대피한 주민은 모두 30만명을 넘어섰다. 그리스 크레타섬에서도 강풍을 타고 산불이 확산하면서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고, 진화 작업도 장기화됐다.
북미 상황도 다르지 않다. 미국 전역을 덮친 폭염으로 냉방용 전력 소비가 급증하면서 이달 4일까지 일주일간 미국의 전력 생산량은 사상 처음으로 10만GWh를 넘어섰다. 에디슨전기협회에 따르면 해당 기간 전력 생산량은 10만996GWh를 기록하며 종전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 에너지부(DOE)는 6월 말 미국 최대 전력망인 PJM 인터커넥션 관할 지역에 비상명령을 내린 데 이어 7월 말에는 중부와 남서부 17개 주에 전력을 공급하는 사우스웨스트파워풀(SPP)에 예비 발전설비까지 가동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폭염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와 발전설비 고장, 풍력발전 출력 감소 등이 겹치면서 전력망 안정성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 중국 전력수요 15억㎾ 돌파...일본은 일주일 새 1만8591명 이송
중국에서도 폭염과 산업 활동 증가가 겹치며 전력 수요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7월10일 최대 전력부하는 15억1800만㎾까지 치솟아 종전 최고 기록을 1000만㎾ 이상 넘어섰다.
베이징과 허난성, 산둥성, 쓰촨성 등 주요 산업지역에서는 고온 현상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력당국은 석탄화력과 수력, 원전 등 발전설비 가동률을 높이는 동시에 산업체를 대상으로 피크 시간대 전력 사용 조정을 유도하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반도체,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국의 전력망 부담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뭄으로 수력 발전량이 감소하는 지역에서는 폭염이 심해질수록 발전 여력은 줄고 전력 수요는 늘어나는 이중 부담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서도 폭염은 공중보건 위기로 번지고 있다. 일본 총무성 소방청에 따르면 7월20일부터 26일까지 일주일 동안 전국에서 열사병으로 응급 이송된 환자는 1만8591명에 달했다. 직전 주에도 1만857명이 이송돼 불과 2주 만에 2만9000명 이상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도쿄와 오사카 등 주요 도시에서는 35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고령층을 중심으로 냉방기 사용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공공시설을 '쿨링 셸터'로 개방하는 등 폭염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 한국도 온열질환 추정 사망 12명...AI 시대 전력망 구축 ‘발등의 불’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는 공식 온열질환 감시가 시작된 첫날부터 사망자가 발생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5월15일 서울에서 80대 남성이 온열질환으로 숨졌으며, 이날 서울의 최고기온은 31.3도를 기록했다.
이후 장기간 이어진 폭염으로 인명 피해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5월15일부터 7월29일까지 전국 누적 온열질환자는 1638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추정 사망자는 12명이다. 해당 통계는 전국 응급실 참여 의료기관이 신고한 잠정 집계로 향후 변동될 수 있다.
국내 온열질환자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23년 2818명, 2024년 3704명, 지난해 4460명으로 꾸준히 늘었으며 지난해 추정 사망자는 29명이었다.
폭염은 보건 문제를 넘어 전력 시스템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이어질 경우 냉방기 사용이 집중되는 오후 시간대 최대전력이 급증하고, 발전설비 고장이나 재생에너지 출력 변동, 송전망 제약까지 겹치면 전력예비력이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
여기에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전력 수요는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산업 확산으로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잇따르고 있으며, 데이터센터는 고성능 GPU와 냉각설비를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특히 정부가 호남권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피지컬 AI 등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일반 제조업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 만큼 폭염이 장기화될수록 전력망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 폭염은 기후와 보건의 문제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AI 시대를 맞은 우리나라 역시 극한의 더위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국가 전력시스템을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가 미래 산업 경쟁력을 결정할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