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생성형 AI 확산 이후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국내 반도체 생산은 지난 10년간 3배 가까이 늘었다. 수출 시장 또한 중국 중심에서 대만 중심으로 일부 이동하는 등 공급망 전반이 재편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27일 발간한 ‘우리나라 주요 제조업 생산 및 공급망 지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생산액은 2014년 74조원에서 2024년 210조8000억원으로 약 2.8배 증가했다. 제조업 생산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5.0%에서 10.1%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부가가치 역시 44조3000억원에서 125조3000억원으로 늘어나 반도체가 명실상부한 국내 제조업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수출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1849억7000만 달러(한화 약 271조9243억9700만원)로 전체 제조업 수출의 26.1%를 차지했다. 제조업 수출 4달러 중 1달러 이상이 반도체에서 나온다는 해석이다. 국가별로 보면 중국은 여전히 최대 수출국이지만 비중은 2022년 53.1%에서 지난해 40.3%로 크게 낮아졌다. 반면 대만은 같은 기간 9.0%에서 19.9%로 두 배 이상 늘며 미국과 베트남을 제치고 두 번째 수출 시장으로 부상했다. 대만 수출액은 127억7800만 달러(한화 약 18조7670억4860만원)에서 367억6900만 달러(한화 약 54조26억3030만원)로 약 2.9배 증가했다.
이 같은 변화는 AI 반도체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된 데 따른 것이다. 기존 CPU·범용 D램 중심의 수요가 GPU와 HBM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엔비디아·TSMC·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글로벌 분업 구조가 더욱 공고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한 HBM이 대만으로 향하면, TSMC가 이를 기반으로 엔비디아의 AI 칩을 제조하고, 완성된 칩은 다시 대만과 미국의 서버 제조사로 넘어가 AI 데이터센터용 모듈로 조립되는 방식이다. 실제 메모리칩의 대만 수출 비중은 2022년 6.6%에서 지난해 28.6%로 급증했다.
생산 거점의 집중도도 높아졌다. 지난해 기준 국내 반도체 생산의 82.3%가 수도권에서 이뤄졌다. 삼성전자 화성·평택·기흥 공장과 SK하이닉스 이천 공장 등 대규모 시설이 몰려 있는 영향이다. 충청권은 14.7%였고, 나머지 지역은 3% 미만에 그쳤다. 반도체 장비·소재 공급망 역시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아지는 흐름이 이어졌다. 첨단 공정에 필수인 EUV 노광장비의 네덜란드 수입 비중은 2022년 22.8%에서 지난해 26.0%로 증가했고, 소재·부품은 중국·일본, 제조장비는 미국·일본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AI 확산이 반도체 공급망의 축을 바꾸는 동시에 생산 거점과 핵심 장비의 집중도 역시 더욱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AI 인프라 투자가 지속되는 한 메모리와 AI 반도체 수요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국내 반도체 공급망은 글로벌 AI 산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