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세제, 시장 안정 아닌 재정 중심으로 개편해야
- "다주택자 일률적 중과 벗어나야"…예측 가능한 조세체계 제안
부동산 세제 정책이 정권과 시장 상황에 따라 지나치게 자주 바뀌면서 중장기적으로 예측 가능한 조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부동산 세제를 시장 안정 수단으로 활용하기보다 안정적인 재정 확보라는 본래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주택 수 중심의 과세 체계를 주택 가액과 거주 여부 등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8차 주거공익법제포럼 '부동산 세제 개혁의 방향과 과제: 조세정의·형평성·지속가능한 주거를 위하여' 토론회에서는 부동산 세제의 문제점과 개편 방향을 놓고 전문가들의 논의가 이어졌다.
◇ 반복되는 부동산 세제 개편…"정책 일관성 부족“
이동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시장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시장인 만큼 정책을 다룰 때 조심스럽고 민감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1968년 부동산투기억제 정책과 1973년 재산세 중과세 등을 언급하며 시장 실패에 대한 정부 대응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만 정책 실패가 더해지면서 상황을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10년 이상 지속되지 않는 정책의 일관성 결여와 법 개정의 졸속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법 개정이 급박하게 이뤄지면서 미숙한 형태가 됐고 다주택자와 투기세력을 겨냥한 정책이 오히려 서민에게 피해를 주는 현상도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보유세를 비롯한 하나의 세제를 설계할 때 조세 형평과 자산 불평등, 지방재정 확보, 시장 안정 등 다양한 가치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각각 지방세와 국세로 나뉜 현행 체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종부세 산출 과정에서 재산세 상당액을 공제하는 것은 이미 부과된 세액에 대한 사후적 조정에 불과하고 과세표준과 세율 체계가 달라 납세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이중과세로 인식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공시가격 중심 과세의 한계도 지적하며 재산세 체계 안에서 보유 유형별로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 양도세도 주택 수 대신 '가액·거주' 중심 개편 제안
이중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도소득세의 정책 기능을 시장 안정이나 시장 진작에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제도가 1세대 1주택 비과세와 1세대 다주택 중과세라는 양극단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1세대 1주택 비과세의 보유·거주 요건과 다주택자 중과 제도가 강화와 완화를 반복해왔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1세대 1주택 비과세를 유지하면서 거주 중심의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는 주택 수가 아닌 가액을 기준으로 세 부담을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수평적·수직적 공평성을 확보하고 중과세율을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과 언론의 프레임이 정책 수용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2018년 대비 2020년 '영끌', '패닉바잉' 등의 언급량이 크게 늘었고 '벼락거지'와 같은 표현이 무주택자에게 열패감을 주고 주택 구매를 재촉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또 '세금폭탄', '징벌적 과세', '조세 저항', '풍선효과', '매물 잠김' 등의 표현이 자극적인 프레임으로 활용되면서 정책이 자주 바뀌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중장기 주택공급·세제 로드맵을 수립하고 일관되게 추진하는 한편, 정책의 목적과 과정, 기대효과를 단순명료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세금만으로 시장 안정 한계…거래세 낮추고 보유세 높여야“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세제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세제의 법적 정합성과 시장 안정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취득세와 보유세, 양도소득세 등 세율 변화에 따라 시장이 달라질 수 있으며 세율을 높이는 제도가 오히려 가격 상승의 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박 연구위원은 취득·보유·양도 단계에서 세금이 높은 수준으로 적용될 경우 거래량을 줄이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정책 시행에 앞서 시장에 미칠 영향을 시뮬레이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정권에 따라 부동산 정책이 지나치게 자주 바뀌면서 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의 자의적 변동과 장기보유특별공제에 대한 시장의 불만 등을 언급하며 매물 잠김 현상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송 대표는 단순히 세금만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시장에서는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높이는 방향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전문위원은 유동성이 심각한 상황에서 시장 안정이 쉽지 않다며 시장이 지속적으로 공급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공급이 어렵다면 정책적 시그널이라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매물 흐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책에 따라 매물 출회가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다주택자를 일률적으로 투기 수요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실제 보유한 부동산의 가액과 보유 형태를 기준으로 과세해야 한다며 고가 자산 중심의 합리적인 과세 체계를 제안했다. 실수요자의 갈아타기 등 주거 이동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부동산 세제를 재정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해야 하며 정책 기능을 담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비과세와 중과세 중심의 현재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이고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부동산 세제 시스템을 마련해 정책 신뢰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부동산 세제만으로 시장을 안정시키기보다 금융·공급 정책과의 조합을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날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엄태영 의원은 인사말에서 "부동산 관련 조세 정책이 너무 조변석개하듯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부든 너무 조급하게 조세제도를 개편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에 대해 부작용도 크고 국민적인 불신을 낳은 데도 제법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토론회가 부동산 정책이 얼마만큼 진행됐는지, 그 한계는 무엇인지 짚어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정교한 법체계를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규근 의원은 "지선 이후 6번째 부동산 관련 토론회"라며 "부동산 전월세 시장과 세제 개편을 지금 시점에서 놓치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교하게 정비된 조세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 의원은 "부동산 세제는 수십 년간 주택 가격이 오르면 세금이 증가하고 침체기에는 세금을 감면하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국민 신뢰를 잃었다"며 "세정은 시장을 안정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정권마다 꺼내드는 응급 처방으로 소비됐고 그 피해는 투기와 거리가 먼 납세자들에게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세제가 단기 정책 수단이 아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제도로 자리 잡으려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초당적 합의와 납세자가 이해할 수 있는 일관된 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 주거공익법제포럼, 재단법인 동천, 재단법인 한마음이 공동 주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