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덕도신공항 참여 건설사 "공사비 현실화" 공동 탄원
- 석유화학 자재 가격 상승에 토목·정비사업 원가 부담 확대
- "객관적 공사비 산정 체계 마련 시급"
중동 지역의 무력 충돌은 잦아들었지만 국내 건설시장에는 공사비 인상 압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고유가로 인해 석유·화학 계열 건설 자재들의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시공사와 발주자 간 공사비 갈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에서는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를 원재료로 하는 석유화학 제품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건설 자재로는 플라스틱 파이프, 창호, 단열재, 방수재, 바닥재, 도료, 페인트, 도장용 시너, 욕실 천장재, 마루용 본드, 아크릴, 시트지 등으로 품목 수가 상당히 많다.
이처럼 이미 계약 체결 후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도중에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애초 책정했던 공사비보다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된다. 건설업체들 입장에서는 비용이 증가하는 만큼 원가율이 높아져 이익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건설사와 발주처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으로 적정 공사비를 산출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공사비 갈등은 주택 공급 차질과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 공사 공사비 문제 수면위로
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 공사 사업에 참여한 부산·경남 지역 건설사들이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해당 사업의 예정 공사비는 10조7000억원으로 중동 전쟁이 발발하기 전 결졍됐다.
시공사인 대우건설 컨소시엄에는 시공 주간사인 대우건설(지분율 55%)을 비롯해 HJ중공업과 중흥토건(각 9%), 동부건설과 BS한양(각 5%), 두산건설(4%) 등이 참여했다. 부산·경남 지역 건설사 13곳(13%)도 참여했다. 지분율은 해당 공사에서 시공을 맡은 공사량을 가리킨다. 예정된 공사비를 맡은 공사량만큼 가져가는 구조다.
부산·경남 지역 건설사 13곳은 각각 지분율 1%로 단순 계산하면 각 회사당 공사비 1070억원이 할당된 셈이다. 일반적으로 토목공사 원가율이 90~95%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이익은 54억원에 불과하다. 공사 기간이 106개월(8년 10개월)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예정 공사비가 10조7000억원을 넘는 가덕도신공항의 경우 총공사비의 1%만 증가해도 약 1000억원 규모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어 원자재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부산·경남 지역 건설사들은 공사비를 현실화해 주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고 만일의 경우 컨소시엄을 탈퇴할 수 있다며 공동명의 탄원서를 국토교통부 장관, 부산시장, 경남도지사,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에 보냈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중동 전쟁은 불가항력적 사정 변경"이라며 "기술형 입찰은 입찰공고일부터 실제 계약까지 장기간이 소요되지만, 그사이 발생한 급격한 물가 상승을 총사업비에 반영할 제도적 장치가 없어 사업 참여업체들이 모든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현행 총사업비 관리체계는 입찰공고 이후 계약 이전 단계에서 발생한 물가 상승을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가항력적 상황에 대해서는 총사업비를 현실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시공 주간사인 대우건설은 관계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자와 통화한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현행 제도에도 공사비 조정 조항(에스컬레이션)이 있고 과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불가항력’이 인정된 판례도 있어 공사비 인상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건설공사비지수 3·4·5월 연속 상승...5월 137.67
공사비 상승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인 건설공사비지수도 급등 추세에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지난 2월 133.52에서 5월 137.67(잠정)로 4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지난해 거의 내내 131대를 유지했으며 지난해 말 132대로 상승한 후 1월과 2월에는 133대를 유지했다. 중동 전쟁 발발 직후인 3월에는 134로 상승했고 지난 4월에는 137.12로 3포인트가량 상승했다. 지난해에는 변동이 거의 없었지만 올해 3월부터 공사비가 크게 상승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산·경남 지역 건설업체들은 작년 12월 해당 사업 입찰공고가 났던 당시보다 건설공사비지수가 4.3% 상승해 수천억원 규모의 추가 공사비 부담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토목건설 부문 지수 변동 추이를 보면 상승폭은 전체 평균보다 더 가파르다. 올해 2월 137.88이었던 지수는 5월 143.30으로 무려 6포인트 급등했다.
단순 건설공사비지수 상승이 절대적인 공사비 인상의 근거가 될 수는 없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이 지수 상승을 이끈 것으로 수치상 판단할 수 있다. 공사비를 올리는 문제는 원자재 가격 뿐만 아니라 물가, 인건비, 환율 등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해당 요구에 대해서 “국토교통부,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등과 소통하는 중으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 도시정비사업 공사비 갈등 가능성
아파트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도 공사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에 제기되고 있다. 공사비 인상 대상은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현장 중 자재 투입이 한창인 곳에서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은 지난 4월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사업에서 공사비 인상 인상을 요구했고 지난달 조합과 공사비 합의를 완료했다. 증액분은 103억원 수준으로 당초 요구액의 4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은 현재 송파구 마천4구역 재개발, 강서구 등촌1구역 재건축, 서대문구 홍제3구역 등과도 공사비 협의를 진행하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아직 남았다. 특히 마천4구역은 기존보다 2800억원 이상 증가를 요구하고 있다.
현대건설 이외에 전통적으로 도시정비사업 진행 사업장이 많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우건설, DL이앤씨, GS건설 등은 중동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인상 요청을 한 사례는 아직 없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로 원자재 가격이 많이 오른 만큼 물가, 환율, 인건비 등 여러 요건을 고려해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가파른 공사비 상승은 주택 공급 전반을 위협하는 악순환의 씨앗으로 본다. 원가 상승은 분양가 인상 압력을 높이고, 이는 다시 사업성 악화와 공급 지연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최종 단계에서는 집값 상승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만약 공사비 협상에 문제가 생기면 공사 중단이라는 최약의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공사비는 시공사와 발주처 간 입장 차이가 분명하기 때문에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공사비 산정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석유화학 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공사비를 바로 올릴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며 "공사비는 자재비뿐 아니라 공기 연장에 따른 금융비용과 간접비까지 함께 반영되는 만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동전쟁처럼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는 공사비 조정보다 공기 연장과 지체상금 면제 등 후속 조치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현재는 공사비 상승이 적정한지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부족하다"며 "실제 공사 데이터를 축적해 표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정 공사비를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