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어떤 대상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도 몇 마디 이야기만 듣고 쉽게 판단을 내린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은 홍길동에게 상처를 받은 기억 때문에 그를 “죽일 놈”이라고 말한다. 반면, B라는 사람은 홍길동에게 환대를 받은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멋진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그렇다면 두 사람 중 누가 진짜 홍길동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일까? 사실 홍길동은 좋은 일도 했고, 나쁜 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 속에서 기억을 선택적으로 붙잡는다. 결국 각자는 왜곡된 기억을 바탕으로 홍길동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 사이에는 “멋진 사람”이라고 믿는 무리와 “나쁜 사람”이라고 믿는 무리가 생겨난다.
미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미국을 자유와 기회의 나라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탐욕과 폭력의 역사로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을까? 혹시 일부 경험과 편견, 혹은 누군가의 정치적·감정적 해석만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역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미국의 선택만을 비난하거나 찬양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는 책의 첫 장만 읽고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최근 국제 정세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외교·군사 전략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그러나 한 국가의 결정은 단순한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와 경제, 종교와 안보, 이념과 현실이 중첩된 결과물이다.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던지는 평가는 대개 감정의 언어에 머물 뿐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서평에 미국 역사 칼럼리스트인 알렉시스 코(Alexos Coe)가 미국에 관해 쓴 책들을 소개하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미국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제국적 목표와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해 왔던 나라, 그의 글을 통해 미국 제국주의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고자 한다.
250년 전, 용감한 13개 식민지가 영국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우라고 고무했던 미국의 선조들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적 통치 체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새로운 연방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은 그들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1809년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국토가 두 배로 늘어난 후,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의 독립 프로젝트를 "자유를 위한 제국"이라고 명명했다.
◇ 멕시코 침공은 미국 제국주의의 시범 사업
이러한 태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들도 존재했다. 1840년대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노예제의 확산을 우려하며 미국의 멕시코 침공에 반대했다. 한 세기 뒤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식민지 민중 위에 폭력적으로 군림하려는” 제국주의 지배 방식을 비판하며 영국을 돕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루스벨트의 그 같은 발언이 나왔던 때는 미국이 제국적 패권을 잡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공고히 하게 될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이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미국이라는 서사 전체를 관통하는 반복적 주제다. 아래 책들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건국 당시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영향력 있는 미국인들은 타인에 대한 지배력과 자유라는 이념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단지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만으로도 주권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개시하는 명분이 될 수 있지만 2세기 전에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신이 미국인들에게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공화국을 건설하라는 사명을 부여했다는 이념-조차 이를 정당화하고 대중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폭력적 피해와 희생이 필요했다.
2012년 에이미 S. 그린버그(Amy S. Greenberg)의 통찰력 있는 저서 『A WICKED WAR: Polk, Clay, Lincoln, and the 1846 U.S. Invasion of Mexico ,Vintage, paperback, $20, 사악한 전쟁: 폴크, 클레이, 링컨, 그리고 1846년 미국의 멕시코 침공, 빈티지, 페이퍼백, 20달러』는 미국의 멕시코 침공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기계를 시험하는 시범 사업이었음을 보여준다.
1840년대, 제임스 K. 폴크 대통령은 누에세스 강과 리오그란데 강 사이의 분쟁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여 충돌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그 전투를 근거로 멕시코인들이 미국 영토를 "침략"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복은 멕시코를 침략하는 것뿐이었을까?
모두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일리노이주 출신의 초선 하원의원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인들이 피를 흘린 정확한 장소를 알고 싶어 했다. (그는 "얼룩투성이 링컨"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결국 폴크는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차지했고, 마침 새크라멘토 외곽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10만 명의 정착민들이 몰려들어 그의 정복을 완성했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1890년에 공식적으로 변경 지역이 "폐쇄"되었다고 선언했다. 다니엘 이머워(Daniel Immerwahr)는 2019년 그의 걸작, 『HOW TO HIDE AN EMPIRE: A History of the Greater United States (Picador, paperback, $23, 제국을 숨기는 법: 더 큰 미국의 역사, 피카도르, 페이퍼백, 23달러』에서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이 해외 영토 확장과 국가 건국의 이념을 조화시키려 노력했다고 설명한다. 제국주의를 옹호했던 미래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1890년대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으로 몰려든 다른 미국인들은 스페인 왕정을 전복시키는 "해방자"였다.
◇ 하와이에서 그린란드까지 전 세계로 미군기지가 퍼진 이유
그러자 민간인 사망과 잔혹 행위에 대한 보도가 신문에 쏟아졌다. 반제국주의 단체들이 생겨났고, 대통령 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식민지 강대국이 된다는 것은 "자유의 종소리를 억눌러야 한다" 거나 그렇지 않으면 "멀리 떨어진 신민들 사이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임을 경고했다.
“자유를 지키는 싸움”이 단순히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든 벌어질 수 있는 “끝없는 안보 경쟁”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40년대에는 하와이에서 그린란드에 이르기까지 수천 개의 미군 기지가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고, 이곳들은 군함이 들를 수 있는 항구이자 폭격기가 출격하는 거점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군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소련은 단순한 경쟁국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지는 위협(바이러스 같은 존재)”으로 규정되었다. 동시에 그 위협을 막는 방법은 이미 미국이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함께 퍼지게 되었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 1946년 마침내 필리핀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을 때, 그는 "우리의 이익과 세계 평화를 보호하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필리핀 군도의 미군 기지들을 99년 동안 임대할 것을 요구했다. 이머바르는 이러한 기지들을 통틀어 "점묘법 제국"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군사 시설은 20세기 미국 권력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가장 눈에 띄는 표현일 뿐이었다. 2023년, 피루제 카샤니-사벳(Firoozeh Kashani-Sabet)의 통찰력 있는 저서 『HEROES TO HOSTAGES: America and Iran, 1800-1988, Cambridge University Press, paperback, $37, 영웅에서 인질로: 미국과 이란, 1800-1988,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페이퍼백, 37달러』은 1830년대 우르미아와 타브리즈로 몰려든 기독교 선교사들의 물결부터 1979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에 이르기까지, 이란에서 또 다른 형태의 은밀한 미 제국주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기록하고 있다.
이란의 독립 투쟁가들은 때때로 미국에서 영감을 얻으려 했다. 1905년, 인기 신문에 연재된 조지 워싱턴의 전기와 그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입헌 혁명을 촉구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가 되었다. 그리고 당시 이란에 있던 미국인들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었다. 영국이 샤(the Shah) 에게 석유 채굴권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하워드 바스커빌과 같은 미국의 선교사들은 복음 전파를 포기하고 이란의 신생 의회 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했고, 결국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어설픈 국제정치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으려면
당시 미국 지도자들은 자유보다 공산주의를 더 우려하고 있었다. 1953년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손자 커밋 루스벨트가 CIA의 지원을 받아 당시 이란 총리 모사데그를 축출하는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미국은 처음부터 지지해 왔던 민주화 운동을 사실상 진압했다.
이후 20년 동안 이란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샤(the Shah)를 통해 행사되었는데, 그는 사회적 자유를 장려했지만,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하고 국가 자원을 낭비했다. 미국은 "샤의 표면적인 세속 개혁에 대한 믿음에 사로잡혀" 1979년 이란 전역에서 폭발한 반제국주의적 분노를 억제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린란드는 소련의 붕괴로 투쟁이 끝나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멈춘 듯 계속되고 있다. 케네스 R. 로젠(Kenneth R. Rosen)이 올해 초 그의 저널리즘적 저서, 『POLAR WAR: Submarines, Spies, and the Struggle for Power in a Melting Arctic, Simon & Schuster,$29, 극지 전쟁: 녹아내리는 북극에서의 잠수함, 스파이, 그리고 권력 투쟁, 사이먼 앤 슈스터, 29달러』에서 분명히 밝혔듯이, 현 행정부가 이 거대한 북극 섬을 매입하려는 움직임은 겉보기와 달리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미국은 1867년부터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매입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린란드와 21세기 북극의 다른 육지들은 여러 세력의 추격을 받고 있다. 로젠의 "극지 전쟁"은 러시아가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중국이 "설룡" 쇄빙선을 북극 항로에 투입하여 "극지 실크로드"를 구축하려는 시도 속에서 이 지역에 퍼져나간 잠수함, 감청 기지, 시설들을 추적한다.
이러한 활동의 상당 부분은 냉전 시대의 재현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완전히 점령하겠다고 위협하고 간청하는 행위는 갈등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 정복이라 여기는 자기실현적 예언일 뿐이다. 동맹국과 적국 모두와의 평화적 협력 시도를 억압하고, 북극과 전 세계의 자유를 위협한다.
결국 이 글을 쓴 알렉시스 코가 보기에 미국 제국주의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기반으로 세계 질서에 영향력을 확대해 온 역사적 과정인 동시에 자유,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보편적 이상을 자국 외교의 정당성으로 내세워 균형을 잡으려 했다.
다만 이러한 미국 제국주의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間隙)으로 인해 미국 외교 정책에서 구조적 긴장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정치적 감정적 꼭두각시가 되지 않으려면 미국 제국주의를 하나의 가치로 단순화하지 말고 그 모순과 균형의 흔적을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