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지도자들이 새롭게 선출될 때마다 그만그만한 수많은 공약이 지역마다 쏟아진다. 청년 일자리 확대, 기업 유치, 관광 개발, 출산 지원, 정주 인구 확대 등 그 내용도 대부분 비슷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많은 국민은 이러한 정책만으로 지방소멸을 막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의 지방 위기는 단순한 인구 감소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역할과 삶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 즉 미래에 대한 확신의 붕괴에서 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지방을 떠나는 이유는 지방에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살아도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도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정치 지도자들이 아무리 좋은 공약을 내세운다 해도 4년 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청년들은 이미 체감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오는 변화다. AI 기술은 인간이 하던 수많은 일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중국은 AI 요리사를 시작으로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대체할 모든 인공지능 로봇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앞으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플랫폼 기업 중심 경제와 자동화 시스템이 확대될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은 더욱 커진다. 단순 반복 업무는 물론 전문 영역까지 AI가 대신하면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존재 가치와 생존 가능성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지방은 이러한 변화에 더욱 취약하다. 과거에는 농사, 목공, 제조업, 수공업, 장사 등 몸으로 익히는 기술이 지역경제를 지탱했다. 사람들은 손기술과 경험을 통해 삶을 이어갔고, 지역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역마다 축적된 생활 기술과 직업적 경험은 공동체의 생존 기반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실제 생산과 생활 기술을 경험할 기회를 점점 상실하고 있다. 이른바 손의 기술로 먹고사는 기본적인 생존방식을 외면해 왔다. 이런 이유로 경험과 기술, 그리고 노동이 필요한 농업과 제조업, 생활 기술과 수공업은 세대 간 전승이 끊어져 가고 있으며 여기에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데다 유입 인구조차 턱없이 부족하니 지역공동체가 무너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 ‘제4의 언론’, 로컬 스토리텔러가 매개하는 시장경제 플랫폼
거두절미하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지역의 소통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100년 전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역 언론은 여전히 정치 기사와 행정 발표를 전달하고 광고에 의존하는 구조를 반복한다. 이 때문에 설령 지역 언론이 지역 주민의 삶과 생산 현장, 지역경제의 실제 움직임을 연결하는 기능을 어느 정도 유지해 가고 있다손 치더라도 이를 읽거나 보는 이가 매우 드물다.
실제로 지역 단체장 실에 들어오는 지역신문을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국회로 배달되는 전국의 지역신문 숫자는 셀 수조차 없이 많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지역 언론이 아무리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보도한다 해도 지역 주민의 관심을 끌기 어려워 여론화하기 쉽지 않고, 언론의 주장으로서만 끝나기 십상이다.
이것이 기존 신문과 방송사 개념이 아닌, 인공지능과 유튜브, 디지털 플랫폼, 지역 데이터, 시민 참여가 결합한 새로운 지역 소통 시스템으로서의 언론과 방송이 새로 등장해야 할 이유다. 필자는 이를 ‘제4의 언론’이라고 부르고 싶다. ‘제4의 언론’은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기능 외에 지역의 생산, 공급, 소비, 기술, 교육, 문화, 시장을 실시간으로 지역 주민과 1대1로 소통하는 시장경제 플랫폼이다.
무엇보다 ‘제4의 언론’은 행정부처 출입 위주로 된 기존의 기자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현장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가칭 ‘로컬 스토리텔러(local storyteller)’가 기자 역할을 대신한다.
지역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유무형 자산이 무수하게 존재한다. 묵묵히 농사를 짓는 농민, 오랜 기술을 가진 수공업자,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제조업자, 전통시장을 지키는 상인, 지역 식재료로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청년 창업가들. 숲과 나무 등등 지역경제의 모든 주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러한 경제 주체의 삶을 데이터 기반으로 하는 거대한 지역 운동장-플랫폼에 같이 모이게 해 지역민뿐 아니라 국내외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하도록 하는 것이 ‘제4의 언론’이다.
기존 언론이나 플랫폼도 나름대로 역할을 해 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 그렇지만 ‘제4의 언론’이 필요한 것은 아직은 우리들이 우리의 미래를 신뢰와 정확성, 공정성을 의심받는 기존 언론에 담보할 수 없다. 그래서 ‘제4의 언론’은 신뢰, 정확, 공정의 가치를 바탕으로 지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리고 AI 기술을 활용하면 누구나 로컬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제4의 언론’은 그들이 생산한 콘텐츠를 검증하고 마을 단위의 작은 이야기들을 거대한 소통의 운동장에 소개함으로써 지역을 세계 경제의 중요한 지점으로써 스프트라이트를 받게 하려는 것이다.
◇인재 유치 경쟁의 시대, 지역 위상을 세우는 국제 경험도 중요
그에 따른 부수 효과도 크다. 이를테면, 지역 농산물 생산 과정과 기술을 영상으로 기록하여 제품에 대한 신뢰의 근거로 제공하고, 해당 지역의 일과 기술을 익히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해당 지역을 방문하게 만든다.
또한, 사라져가는 생활 기술을 디지털 아카이브로 남기고, AI 번역을 통해 세계와 연결한다. 지역의 작은 가게와 공방, 전통시장과 기술자들이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경제 생태계를 형성함으로써 지역의 작은 성공 사례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청년 창업 과정을 기록하며, 지역 대학과 기업, 생산 현장을 연결하고, 생활 기술 교육 콘텐츠를 확산시킨다.
‘제4의 언론’은 단순한 미디어 산업이 아니라. 지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혁신하는 촉매 기관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시장경제 역시 대기업과 중앙 플랫폼만으로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다.
지역 주민들이 서로 연결되고 정보를 공유하며 생산과 소비가 순환할 때-한 마디로 지역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지방은 회복 불가능하게 되니 선거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바로 그것이다.
‘제4의 언론’은 단절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호에서도 말했듯이 이제는 지방 예산 유치 경쟁이 아니라 인재 유치 경쟁, 즉 도시의 유능한 프로페셔널을 해당 지역으로 얼마나 많은 이를 유치하는가에 따른 능력을 지역지도자의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역의 미래가 보인다면 누가 머물기를 마다하겠는가? 골드러시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고 도시 청년들은 반드시 유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한반도 안에 머무르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나치게 국내 정치와 남북을 중심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는 국가의 경쟁력도 결국 얼마나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가에 의해 달렸다.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과 어떻게 협력하고 조정하며 세계질서 유지에 이바지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책임을 질 것인지 결정하고 경험할 줄도 알아야 한다. 동시에 유럽, 중동, 아프리카, 남미와도 경제·기술·문화 협력을 확대하며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이 모두가 생각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국제화가 중앙 정치만의 영역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나라 지자체들은 세계 곳곳의 지방정부와 서로 자매 관계를 맺고 경제와 문화, 기술 협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것이 이름뿐이거나 단순한 친선 교류에 그치면 되겠는가? 그 수준을 넘어 지역과 지역이 세계 속에 작은 폭풍을 일으켜야 한다. 이 또한 ‘제4의 언론’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AI 자동 번역과 디지털 플랫폼 기술은 이미 언어와 거리의 장벽을 빠르게 허물고 있다.
지역 주민들도 세계 문제를 이해하고, 지역 생산물을 세계 시장과 연결하며, 지역 청년들이 국제 프로젝트에 참여할 능력을 키우고 경험을 쌓도록 민간 차원에서 적극 독려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인간의 삶과 경험, 지역의 기술과 공동체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개발 공약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흙과 물, 그리고 자연의 생태 회복과 미래의 상상이 즐거운 지역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소통 혁명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제4의 언론’이어야 하며, 보여주기식이 아닌 장기적 과제로 단절 없이 추진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