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뭄·산업용수 수요 동시 압박 ...“신규 댐보다 기존 인프라 재운영·주민수용성 확보가 관건
기후변화로 홍수와 가뭄이 동시에 심화하고,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의 물 수요까지 급증하면서 치수·이수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다목적댐이 새로운 물관리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댐이 전력 생산이나 생활·공업용수 공급같은 개별 목적 중심으로 설계· 운영됐다면, 이제는 극한기후에 대응해 홍수 조절과 용수공급, 수질 관리까지 아우르는 통합형 수자원 인프라로 재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실제 최근 물관리 논의의 중심에는 ‘복합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집중호우와 도시홍수가 빈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장기 가뭄과 산업용수 부족 우려가 동시에 커 지는 구조다. 여기에 1960~90년대 집중 확충된 기존 물 인프라의 노후화까지 겹치면서, 단순히 물을 더 끌어다 쓰는 수준이 아니라 저장과 공급, 조절 능력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물관리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M이코노미뉴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이제 단순한 환경 이슈를 넘어 물관리 전반을 흔드는 직접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강수의 총량보다 변동성과 집중도가 커지면서 같은 유역에서도 극한 홍수와 극한 가뭄이 번갈아 나타나는 양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해당 자료는 이를 ‘극한홍수(Wet Extremes)’ 와 ‘극한가뭄(Dry Extremes)’의 동시 심화로 설명한다. 결국 비가 많이 오는 해에도 홍수 피해를 막지 못하고, 적게 오는 해에는 저장 능력 부족으로 물 부족이 심화하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자료는 한국이 과거 고도성장기에 대규모 공급 인프라를 바탕으로 산업 와 도시화를 떠받쳐 왔지만, 이제는 그 인프라가 노후화되고 첨단산업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존 체계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본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산업 거점 확대와 AI 기반 산업 성장으로 고품질 공업용수와 안정적 수량 확보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은 더 이상 환경 영역에만 속한 자원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산업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라는 인식이 배경에 깔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자료는 다목적댐의 필요성을 다시 부각시킨다. 다목적댐은 홍수 조절을 위한 치수 기능과 생활·공업·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이수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대표적 수자원 시설이다.
단순히 비상시 물을 저장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평상시에는 용수를 공급하고 홍수기에는 유입량을 조절해 하류 피해를 줄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필요에 따라 발전 기능까지 결합할 수 있어, 기후위기 시대 복합 기능을 수행하는 통합형 인프라로 평가된다.
반면 기존 팔당댐, 춘천댐, 의암댐 등 발전댐은 대체로 전력 생산 효율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이 때문에 홍수 조절이나 용수 공급 측면에서는 역할이 제한적이고, 수질 관리 책임도 상대적으로 분산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또한 1940~70년대 전 생산을 주목적으로 건설된 발전댐들이 현재의 물관리 수요, 즉 가뭄 대응·홍수조절·녹조 및 수질 관리 요구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제시됐다.
결국 기후 위기 시대에는 발전 중심 댐 운영을 다목적 활용 체계로 전환하거나, 신규 다목적댐 확충을 병행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강 유역 사례는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 대표적 근거로 제시된다. 예를 들면 충주댐은 건설 이후 계획홍수량을 초과한 유입이 1990년, 2002년, 2006년 등 세차례 발생했다. 1990년에는 최대 유입량이 초당 2만2164㎥에 달했고, 당시 서울 강동구 등 도심 침수 사례도 함께 언급된다.
최근에도 2020년 장마, 2022년 서울 도시홍수, 2023년 중부 지방 홍수 등 대형 물재해가 이어지면서 기존 홍수 조절 체계의 보강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가뭄 측면에서도 불안 요인은 적지 않다.
해당 자료는 2014~2015년 소양강댐·충주댐 유역 강수량이 평년 대비 60%대에 그쳤고, 2016년 가뭄 예·경보 도입 이후 여러 차례 가뭄 단계 진입이 반복됐다고 짚는다.
여기에 산업용수 수요 증가까지 겹치면서 기존 수계 운영 방식만으로는 안정적인 이수 기능 확보가 쉽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수도권 반도체 산업단지와 같은 대규모 첨단산업 기반이 확대될 경우, 물 확보 능력은 곧 입지 경쟁력과 직결 될 가능성이 크다. 수질 문제도 빠질 수 없다.
연구 자료에는 팔당댐과 관련해 수돗물 악취 민원, 녹조와 맛·냄새 물질 문제 등이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2024년과 2025년 사례까지 포함해 수도권 상수원에서 녹조와 수돗물에서 나는 흙냄새·곰팡이 냄새 유발 물질인 2-MIB 관련 민원이 발생한 사례가 언급된다.
이는 단순히 물의 양을 확보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저장과 공급, 수질 관리가 함께 이뤄지는 다목적 운영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후변화가 심해 질수록 고수온과 체류시간 증가, 오염원 유입 등으로 수질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물의 양과 질을 함께 다루는 체계가 중요해진다는 지적이다.
◇14개 기후 대응댐 재검토... “주민수용성 전제한 신중 검토”
다만 다목적댐 확대 논의는 정책 필요성만으로 밀어붙이기 어려운 영역이다. 신규댐 건설은 지역 수용성, 환경 훼손, 재원 조달, 수몰 문제 등 복합적인 사회적 갈등을 동반 할 수밖에 없다. 기존 발전댐을 다목적으로 전환하는 경우에도 전력 생산 효율과 용수·치수 기능 간 조정이 필요하고, 부처 간 권한 재편 문제도 따라붙는다.
실제 물관리 일원화와 발전댐 다목적화 논의가 환경부, 산업통상부, 한국 수자원공사, 한국수력원자력 간 기능 조정 문제로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도 이점을 의식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발표됐던 14개 기후대응댐 후보지를 재검토한 뒤 일부 사업은 중단하고, 나머지 사업은 대안 검토와 공론화 절차를 거치는 방향으로 정리했다. 특히 강원 양구 수입천댐은 지역 반대가 컸던 대표 사례로, 재검토 과정에서 추진 중단 대상으로 분류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물관리정책실의 한 관계자는 M이코노미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정부에서 14개 기후대응댐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후 재검토를 거쳐 7개 댐은 중단하고 나머지 7개 댐은 대안 검토나 공론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수입천댐은 지역 반대가 워낙 컸고, 과거 장기댐 계획에 필요성이 담겼던 사업이지만, 실제 추진은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수입천댐 중단 이유와 관련해 “댐의 수익성 부족해서 중단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본 적으로 댐 사업은 지자체와 주민의 동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반대가 있는 댐은 중단하거나, 공론화위원회 등을 통해 지역 의견을 더 청취하고 필요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정부는 ‘추진’보다 ‘신중 검토’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필요한 댐이라면 기술적·전문적 검토를 통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추진해야 한다”며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정부가 단편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어렵다”고 했다.
또 “현재는 대안 검토와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저장 인프라 확충 필요성은 인정하되, 신규댐 건설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결국 정부의 물관리 정책은 ‘댐을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단순한 선택지를 넘어, 지역 수용성을 확보하면서 기존댐 재운영, 대체 수자원, 유역 단위 조절, 수질 관리까지 결합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사례 ...‘신규 건설’보다 기존 저장 인프라 재운영에 무게
해외 사례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기후변화로 물 순환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각국은 댐과 저수지를 단순한 용수 공급 시설이 아니라 홍수·가뭄·전력·환경을 함께 조정하는 다목적 인프라로 재해석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2023년 물 저장 관련 보고서인 ‘What the Future Has in Store: A New Paradigm for Water Storage, 2023년’에서 “담수 저장은 기후변화 적응의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물을 저장하는 기능은 가뭄 때 쓸 물을 확보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홍수 피해를 줄이는 기능도 수행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특히 기후변화로 물 관련 재난이 늘고 물 서비스의 안정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저장 인프라를 새롭게 설계·운영·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제 논의의 초점은 무조건 새 댐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세계은행은 보고서에서 기존 댐을 홍수 조절 목적으로 활용할 경우, 기후변화 시나리오 아래에서도 홍수 피해 인구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신규 건설만이 아니라 기존 저장시설의 운영 목적과 방식 자체를 재편하는 것이 기후적응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17년 보고서 ‘Managing Multi-purpose Water Infrastructure’에서 다목적 물 인프라를 댐, 제방, 저수지, 관개수로, 상수도 네트워크 등 여러 목적에 쓰일 수 있는 인공 물관리 체계로 폭넓게 정의한다.
OECD는 이런 인프라가 경제·사회·환경 목적을 동시에 수행하는 만큼, 단일 부처나 단일 목적 중심의 운영에서 벗어나 이해관계 조정과 비용 분담, 운영 책임을 명확히 하는 거버넌스가 중요하다고 본다. 미국 서부의 사례는 다목적댐 운영의 어려움도 보여준다.
미국 내무부 산하 개척국 연구개발부가 2014년 내놓은 “Investigation of Climate Change Impact on Reservoir Capacity and Water Supply Reliability”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와 저수지 퇴사가 함께 진행될 경우 저수지의 물 공급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강수 변동성이 커지면 장기 평균 유입량이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도 홍수와 가뭄의 강도는 커질 수 있고, 홍수 때 유입되는 토사가 저수 용량을 줄여 결국 가뭄 대응능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콜로라도강 유역은 이런 딜레마가 집약된 곳이다.
후버댐과 글랜캐니언댐 등 대형 댐은 오랫동안 용수 공급과 수력 발전, 홍수 조절 기능을 동시에 맡아 왔다. 하지만 장기가 뭄과 기후변화로 저수량이 줄면서 이제는 전력 생산, 농업 용수, 도시용수, 생태계 보전 사이의 우선순위를 두고 조정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이는 다목적댐이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물 배분과 운영 원칙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 없이는 갈등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해외 사례의 시사점은 분명하다. 기후위기 시대의 물관리 핵심은 단순한 토목 인프라 확장이 아니라 ‘저장능력의 재해석’이다. 물을 어디에 얼마나 저장할 것인지, 홍수기와 갈수기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발전·용수·수질·생태 기능 사이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