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이른바 'AI 속도조절론'이 부각되면서 뉴욕증시에서 AI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매도세가 확산했다. 국제유가 상승과 미국 국채금리 급등까지 겹치면서 뉴욕증시 3대 지수도 일제히 하락했다.
14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52.09포인트(0.29%) 하락한 5만2421.20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37.00포인트(0.48%) 떨어진 7619.98을 기록했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도 146.62포인트(0.56%) 내린 2만6186.41에 마감했다.
특히 AI 반도체 관련 종목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미국 주요 반도체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전장보다 692.72포인트(5.86%) 급락한 1만1131.28로 장을 마쳤다.
AI 반도체 대표주인 엔비디아가 3.36% 하락한 것을 비롯해 브로드컴(-4.77%), 인텔(-5.59%), AMD(-4.40%), 마이크론(-5.25%), SK하이닉스 ADR(-7.60%) 등이 일제히 큰 폭으로 떨어졌다.
반도체 설계업체 마벨테크놀로지는 7.32% 하락했고 반도체 장비업체 램리서치와 ASML도 각각 8.29%, 7.25% 떨어졌다.
반도체주에 매도세가 집중된 배경에는 AI 업계에서 확산하고 있는 '속도조절론'이 자리 잡았다. 최첨단 AI 시스템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안전장치를 먼저 마련하고 모델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AI 산업의 성장 속도와 투자 회수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AI 기업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는 12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AI 기술의 오용 가능성을 경고하며 충분한 안전장치를 구축하기 위해 최첨단 모델의 개발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도 아모데이 CEO의 주장에 대해 "그의 말이 맞는다"고 호응하면서 AI 개발 속도 조절론에 힘을 보탰다.
마이크로소프트(MS) AI 연구진도 이날 '사람이 AI보다 더 중요하다'는 원칙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AI 개발 지침을 공개했다. AI 성능 경쟁에만 집중하기보다 인간의 역할과 안전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취지다.
시장은 AI 개발 속도가 둔화할 경우 AI 관련 투자 확대와 수익 창출 시점도 늦춰질 가능성에 주목했다.
미 금융회사 밀러타박의 매트 말리는 "최근의 움직임으로 AI 투자수익 실현 시점이 늦춰진다면 투자자들의 열기가 식는 것은 당연하다"고 평가했다.
AI 산업을 둘러싼 막대한 자본지출의 최대 수혜주로 꼽혀온 반도체 기업에는 특히 부담으로 작용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AI 모델에 대한 투자 속도를 조절할 경우 AI 가속기와 메모리, 반도체 장비 등에 대한 수요 증가세도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AI 투자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에 일부 대형 기술주는 오히려 강세를 나타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2.71% 상승했고 구글 모회사 알파벳도 3.22% 올랐다.
메타와 알파벳 등 빅테크 기업은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데이터센터와 AI 반도체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자본지출 증가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받아왔다.
AI 개발 경쟁이 다소 완화될 경우 이들 기업의 투자 부담과 현금흐름 압박이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가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AI 산업 내 기업별 주가 흐름을 차별화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AI 개발 속도가 둔화하면 AI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빅테크에는 비용 부담을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이들 기업에 AI 반도체와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에는 수요 둔화 우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와 미국 국채금리가 동반 상승한 점도 증시 전반에 부담을 줬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전장보다 1.02% 오른 배럴당 105.6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1.34% 상승한 배럴당 101.39달러로 마감했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다시 높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장중 연 5%를 돌파하며 2023년 10월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후 상승 폭을 일부 반납해 장 후반에는 전 거래일보다 0.01%포인트가량 오른 연 4.987% 수준을 나타냈다.
국채금리 상승은 미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할인율을 높이는 만큼 성장주와 기술주에 상대적으로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이날 뉴욕증시는 AI 개발 속도 조절을 둘러싼 논쟁과 반도체 수요 둔화 우려, 국제유가 및 국채금리 상승이 한꺼번에 겹치며 약세를 나타냈다. 특히 AI 투자 확대 기대를 바탕으로 강세를 이어온 반도체주에 차익실현과 매도 물량이 집중되면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6% 가까이 급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