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함안→2024년 김해→2025년 고령...3년 연속 집중호우 피해
-국가유산 재난피해 80% 이상이 풍수해...극한기후에 문화유산도 위협
-가야고분군 첫 세계유산축전 앞두고 보존·방재 대책도 주목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속에서 일상이 변화하는 것은 물론 수백·수천 년을 이어온 고대 유적지도 보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25년 7월 ‘기후변화가 고고학 유적에 미치는 영향(The impact of climate change on archaeological sites)’을 통해 스코틀랜드의 베일 시어 선사시대 유적지, 그리스 올림피아 유적지, 스웨덴 아게뢰드 석기시대 유적지 등 세계 곳곳의 고대 유적지가 동토층 해빙과 해안 침식, 가뭄에 따른 산불 위험 증가 등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유적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온과 강수량 변화뿐 아니라 홍수와 가뭄, 산불, 해수면 상승 등이 유적의 위치와 재질, 주변 지형에 따라 서로 다른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고고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영향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예측하고 어떤 유적에 우선적으로 보존 역량을 투입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고 있음에도 고고학 유산이 세계 기후정책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있다며 문화유산의 가치와 기후변화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가야고분군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알리는 ‘2026 가야고분군 세계유산축전’이 오는 28일부터 9월 10일까지 14일간 열린다. 가야고분군을 주제로 열리는 첫 세계유산축전으로 전북 남원시와 경북 고령군, 경남 김해시·함안군·고성군·합천군·창녕군 등 영호남 7개 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대상 유산은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다.
가야고분군은 지난 2023년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기원후 1~6세기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의 정치·사회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가야고분군이 주변의 중앙집권적 국가들과 공존하면서도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정치체계를 유지했던 가야 문명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며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인정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 당시 7개 고분군 전체를 대상으로 한 통합 모니터링 체계 구축 등도 권고했다.
◇ 1500년 버틴 가야고분...3년 연속 여름철 폭우 피해
그러나 15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가야고분군도 최근 반복되는 집중호우를 피하지 못했다. 2023년 7월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 5호분 봉분 일부가 집중호우로 유실됐다.
이듬해에는 김해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2024년 9월 김해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대성동고분군 서편 중앙부 경사면의 토사가 무너져 내렸다. 피해 면적만 약 96㎡에 달했다. 김해시는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피해 지역을 천막으로 덮고 출입을 통제했다.
지난해 7월에는 고령 지산동고분군에서도 집중호우로 세계유산 지정구역 내 약 80m 구간의 토사가 유실됐다. 이에 따라 2023년 함안, 2024년 김해, 2025년 고령으로 이어지며 가야고분군에서 3년 연속 여름철 호우 피해가 발생했다.
가야고분군에서 호우 피해가 반복되는 것은 고분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상당수 고분은 구릉과 능선을 따라 조성돼 있으며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든 구조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질 경우 지표를 따라 흐르는 빗물이 토사를 깎아내리거나 경사면의 안정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 국가유산 재난피해 80% 이상 ‘풍수해’...정부도 기후위기 대응 나서
이는 가야고분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지난해 11월 ‘기후위기와 문화유산’ 국제 심포지엄 개최를 앞두고 밝힌 바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5년 9월까지 국내 국가유산에서 발생한 재난피해 가운데 집중호우와 태풍, 폭설 등에 따른 풍수해가 80% 이상을 차지했다.
정부도 국가유산을 기후위기 관점에서 관리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2024년 11월 ‘기후위기 중점관리 국가유산 선정·관리 기준마련 연구’ 최종보고서를 내놨다. 기후변화에 노출된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위험지도를 구축하고 맞춤형 리스크를 평가해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할 국가유산을 선정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다.
연구에서는 기후요소와 극한기후지수를 토대로 미래 기후변화 영향을 전망하고, 문화유산의 위해성과 노출성, 취약성 등을 종합해 위험도를 평가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이를 토대로 주요 위험요소별 문화유산 관리계획과 기후변화 대응 관리체계 개선방안 등이 제시됐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국가유산청과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이코모스(ICOMOS) 한국위원회가 대전에서 ‘기후위기와 문화유산’ 국제 심포지엄을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기후변화 영향과 대응부터 산불 위험, 해외 문화유산의 기후위험 평가 및 적응계획, 위험지도에 기반한 국가유산 중점관리 방안 등이 논의됐다.
올해부터 중앙정부와 지역 문화유산 연구기관 간 협력도 강화하는 추세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 4월 광역자치단체 문화유산 연구기관들과 국가유산의 기후위기 및 재난 대응을 위한 공동 연구와 정책·제도 개선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연구원은 집중호우와 산불, 해수면 상승 등 이상기후가 국가유산 보존의 위협으로 떠오르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공동체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는 28일 시작되는 첫 가야고분군 세계유산축전은 1500년 전 가야 문명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자리다. 동시에 최근 3년간 서로 다른 가야고분군에서 잇따라 호우 피해가 발생한 만큼 이들 유산을 변화하는 기후환경에서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도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수천 년을 버텨온 문화유산도 기후위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의 국가유산 정책 역시 훼손된 뒤 복구하는 사후 대응을 넘어 기후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피해를 예방하는 ‘적응형 보존’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