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 물 끌어쓰던 반도체 용수...하수처리수로 ‘초순수’ 만든다

  • 등록 2026.08.13 09: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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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서 국내 첫 하수재이용수 기반 초순수 실증...수자원공사, 지앤지인텍 공동 연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하루 107만톤 필요...기후위기 속 산업용수 확보 대안 주목
-청주선 이미 하수재이용수 SK하이닉스 공급...아산은 ‘웨이퍼 세정수’까지 도전


 

정부가 인공지능(AI) 산업 육성과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건설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는 가운데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막대한 용수를 하수처리수 재이용으로 활용하려는 물자원 선순환 사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반도체 산업은 팔당댐과 충주댐을 비롯한 한강수계 등에 상당 부분 의존해 공업용수를 확보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 반도체 생산시설과 AI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물 소비시설이 잇따라 들어서면 기존 댐·하천에서 신규 취수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가 이번에는 단순히 하수처리수를 공업용수로 재사용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를 반도체 웨이퍼 세정에 사용하는 ‘초순수’의 원수로 활용하는 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반도체 산업의 물 공급체계가 달라질지도 주목된다.

 

◇하루 24톤 규모 플랜트 구축... 아산신도시물환경센터서 실증 시험 개시 

 

지난 10일 충남 아산시는 아산신도시물환경센터가 정부의 차세대 초순수 연구개발(R&D) 사업 국산화 실증 테스트베드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한국수자원공사와 지앤지인텍 등이 공동 연구를 수행하며, 아산시는 실증 부지를 제공하고 물환경센터는 하수처리수와 전력을 공급한다. 연구진은 하루 24톤 규모의 파일럿 플랜트를 설치해 하수처리수를 원수로 사용한 초순수 생산기술을 시험할 예정이다. 아산시는 이를 국내 최초의 하수재이용수 기반 초순수 생산 실증사업으로 설명하고 있다.

 

초순수(Ultrapure Water·UPW)는 물속 이온과 유기물, 미세입자, 미생물 등 각종 불순물을 극한 수준까지 제거한 고순도 물이다.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는 웨이퍼 표면에 남은 화학물질과 미세 오염물질을 씻어내는 데 사용된다.

 

초미세 회로를 만드는 첨단 반도체에서는 극미량의 불순물도 제품 수율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생산 과정에 고난도 수처리 기술이 요구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초순수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생산의 핵심 기반시설로 보고 있다.

 

정부도 지난 5월 시작한 ‘차세대 초순수 생산·공급 및 자립형 생산공정 기술개발사업 2단계’의 핵심 과제로 하수재이용수 활용을 제시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하수재이용수를 초순수 원수로 사용하기 위해 극미량 오염물질 제거기술을 개발하고, 2030년까지 초순수 공급 전 과정의 핵심 기자재와 소재 국산화율을 90% 이상으로 높인다는 목표다.

 

이같은 기술 개발이 필요한 배경에는 급증하는 반도체 산업의 물 수요가 있다.

 

정부가 지난해 5월 본격화한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산업단지 통합용수공급 사업’은 2034년까지 약 2조2000억원을 투입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생산시설이 들어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하루 107만2000톤 규모의 용수를 공급하는 사업이다.

 

1단계에서는 팔당댐에서 용인까지 46.9㎞에 이르는 전용 관로를 구축해 2031년부터 하루 31만톤을 우선 공급한다. 이후 2단계 사업을 통해 하루 76만2000톤을 추가 공급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하루 107만2000톤은 단일 산업단지의 물 수요로서는 막대한 규모다. 여기에 반도체 생산시설 증설과 AI 데이터센터, 첨단산업단지가 전국에서 동시에 확대되면 산업용수 확보를 둘러싼 지역 간 경쟁도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장기간 가뭄과 강수량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산업용수 확보를 기존 댐과 하천의 신규 취수에만 의존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가 물 재이용을 확대하는 배경 중 하나다. 기후부도 초순수 2단계 사업에서 하수재이용수 활용을 산업용수 공급 불안정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로 명시했다.

 

 

◇ 하수 재이용은 이미 시작...아산은 ‘웨이퍼 세정용 초순수’까지 확대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하수처리수를 공업용수로 활용하는 것 자체가 처음은 아니다.

 

충북 청주에서는 2024년 9월부터 청주공공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한 방류수를 다시 정화해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 등에 공급하고 있다. 하루 5만톤가량의 하수처리수를 받아 재이용시설에서 하루 3만5000톤의 공업용수를 생산하며, 이 가운데 하루 2만9400톤이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으로 공급된다. 나머지 약 5000톤은 반도체 관련 기업 심텍이 사용한다. 청주시는 이를 위해 총 622억원을 들여 재이용시설과 8.3㎞ 공급관로를 구축했다.

 

다만 청주 사례와 이번 아산 실증사업에는 차이가 있다. 청주는 하수처리수를 다시 정화해 반도체 사업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업용수 수준으로 공급하는 사업이다.

 

반면 아산은 하수재이용수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극미량 오염물질까지 추가 제거해 반도체 웨이퍼 세정에 사용하는 초순수 생산까지 확대할 수 있는지를 직접 검증하는 R&D 사업이다.

 

삼성전자도 대규모 하수재이용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2년 환경부와 경기 수원·용인·화성·오산시 등과 협약을 체결하고 각 지자체 공공하수처리장의 방류수를 반도체 공업용수 수준으로 다시 처리해 기흥·화성·평택사업장에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공급 가능한 재이용수는 하루 47만4000톤, 연간 약 1억7300만톤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공급받은 재이용수를 사업장에서 추가 처리해 초순수로 만든 뒤 반도체 생산공정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해외 의존하던 초순수 기술도 국산화...‘물 공급망’ 자립으로 확대

 

정부가 하수재이용수 기반 초순수 기술 개발에 나선 또 다른 이유는 반도체 산업의 물 공급망 자립이다.

 

초순수는 고난도 수처리 공정이 요구되는 분야로, 그동안 상당 부분을 일본과 미국, 유럽 등 해외 기술에 의존해왔다. 아산 실증사업이 성공하면 이 같은 초순수 국산화 정책의 범위는 한 단계 더 넓어진다.

 

지금까지 초순수 국산화가 ‘어떤 기술과 장비로 물을 정화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어디에서 물을 가져올 것이냐’까지 국내 물순환 체계 안에서 해결하는 구조​로 확장되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더 이상 반도체 생산설비와 전력 확보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얘기다. 수십만톤의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수자원 인프라 역시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기반시설로 떠오르고 있다.

 

댐과 하천에서 새로운 물을 계속 끌어오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미 사용하고 버린 물을 다시 반도체 산업의 ‘생명수’로 되돌리는 물순환 기술이 향후 국가 첨단산업의 또 다른 경쟁력이 될지 주목된다.

 

조승범 기자 jsb21@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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