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방 규제 완화 논쟁 확산…시장 확대 기대
- 삼성·LG, 중국과 달리 시스템공조 집중 공략
유럽을 덮친 기록적인 폭염이 '에어컨 금기'까지 흔들고 있다. 환경 보호를 이유로 냉방기기 설치를 제한했던 유럽에서 규제 완화 논쟁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냉난방 기업들도 시장 확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전통적 건물 유지를 우선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규제가 강력한 유럽지역은 에어컨 설치 규정이 까다롭다. 대표적인 지역으로는 프랑스 파리가 꼽힌다. 최
근 40도가 넘는 날이 늘어나면서 프랑스의 한 대형마트에서 냉방기기를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소식에 구매자들이 대거 몰리며 재난 상황에서나 벌어질법한 약탈 현장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SNS를 타고 퍼지면서 화제가 됐다.
냉방기기를 판매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도 관심 모아졌다. 하지만 직접적인 특수는 중국 기업이 받는 실정이다. 저렴한 가격에 실외기 설치가 필요 없는 중국산 이동식 냉방기기에 밀리면서다. 한 중국 관영매체는 프랑스 내 에어컨 매출이 전년보다 4배 이상 급증했고 스페인도 약 2배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한편에서는 폭염으로 사망자가 크게 늘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유럽 정치권에서는 사람의 목숨보다 환경 보호가 더 중요한가라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에어컨 설치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투자해야 할 곳은 기계식 개별 냉방보다는 그늘막, 단열재, 냉방시설 등 장기적인 해결책에 집중해야 하고 동시에 고위험군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냉방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폭염으로 몸살 앓는 유럽...벨기에, 40도 육박하는 날 8일간 이어져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가 점점 더 폭염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유럽은 현재 이런 위기의 한 가운데 놓여있다. 서유럽 최북단에 위치한 벨기에는 지난 5월 말부터 때이른 40도 이상의 폭염을 겪었다. 지난달 하순에는 약 8일가량 40도에 육박하는 기온이 지속하는 ‘살인 더위’에 시달렸다.
벨기에 기상 당국은 북아프리카에서 유입된 뜨거운 공기와 대서양 상공에 형성된 열돔(기호 오메가 모양을 닮았다 해서 '오메가 돔'이라고도 불림)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프랑스 남부 등은 이미 며칠 전부터 기온이 30도 후반까지 치솟고 산불이 번지는 등 폭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뜨거워진 공기가 북상하면서 영국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서유럽의 기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이후 유럽 전역에서 고온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가 1300명을 넘어섰다. 초과사망은 전염병 유행, 자연재해, 폭염·한파 같은 환경 요인 등으로 사망이 일시적으로 증가해 ‘평소 수준’을 넘어선 상태를 말한다.
유럽 지역에서 최근 가장 피해를 입은 국가로 프랑스가 꼽힌다. AFP, 르몽드 등 주요 외신들은 프랑스 공중보건청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달 23일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한 후 사망자가 급증했다. 사흘 동안 평년보다 약 1000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사망자 증가는 파리를 포함한 수도권과 북서부 노르망디, 브르타뉴, 중서부 루아르, 보르도를 비롯한 남서부 지역 등 폭염 적색경보가 발령된 지역에서 확인됐다.
◇ '환경이냐 생명이냐'…유럽 폭염이 바꾸는 냉방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에서는 에어컨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럽의 평균 에어컨 보급률은 20%에 불과하다. 미국이 90%, 일본 91%, 한국 98% 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이유는 전통적인 건물 보호를 위한 정책 때문에 벽을 타공하고 실외기도 설치해야 하는 에어컨에 대한 설치 규제가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강력하게 적용되는 환경 보호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일각에서는 조금만 더위를 참으면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유럽인들의 인식도 한몫 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보도에서 “병원, 요양원, 학교, 대중교통 등 사람들이 에어컨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설치하라는 전문가 조언은 정치권 전반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류 정당들이 환경 보호를 명목으로 에어컨 설치를 막으면서 논쟁이 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전문가들은 냉방 시설을 갖춘 주택과 그렇지 못한 주택 간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이유로 공공 주택에 에어컨 설치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도 했다.
◇ 유럽 시스템 에어컨 및 냉난방 공조 시장에 초점 맞추는 삼성·LG
국내 관련 기업들은 생명 존중과 환경을 동시에 잡는 전략으로 유럽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럽은 가정용뿐 아니라 상업용 시설에서도 에어컨이 필수 설비로 자리잡고 있으며 에어컨 설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동식 냉방기기, 실외기 없는 에어컨 등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릴 것으로 판단하고 대신 공동주택이나 상업시설에 맞는 시스템 에어컨과 냉난방 공조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삼성전자는 유럽에서 프리미엄 호텔을 중심으로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4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Trieste)에 위치한 ‘호텔 메리어트 트리에스테(Hotel Marriott Trieste)’에 고효율 냉난방 솔루션을 공급했다.
이 호텔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역사적인 건축물 ‘팔라초 풀레(Palazzo Fulle)’를 리모델링한 건물로, 제품 설치 시 건물 내 문화재 요소 보존해야하는 조건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건물 내부에 대표 상업용 공조 솔루션인 ‘무풍 4Way 천장형 카세트’를 적용했다. 이 제품은 높이 204mm의 콤팩트한 디자인으로 설치가 용이하고 공간 효율성이 높아 까다로운 설치 환경에도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 함께 공급된 대형 시스템에어컨 실외기 ‘DVM S2+(R32)’는 1대로 최대 64대의 실내기를 연결할 수 있어 제품 설치 면적을 최소화하고 건축물 외관 훼손을 방지한다. 이 제품은 가연성이 낮은 ‘R32 냉매’가 적용됐고 냉매 누설 감지 센서와 누설 차단 장치가 도입돼 안전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스페인의 칼페(Calpe)에 위치한 ‘호텔 에스메랄다(Hotel Esmeralda)’에도 올해 1월 대형 시스템에어컨 실외기 ‘DVM S2(R410A)’와 상업용 시스템에어컨 ‘무풍 1Way 천장형 카세트’를 공급했다.
업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유럽 시장에서 올해 상반기 기준 에어컨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자릿수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LG전자는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 깔레 푸에르자스 아르마다스(Calle Fuerzas Armadas) 지역의 1000여 세대 규모 주거단지의 냉난방 솔루션을 수주해 고효율 대용량 히트펌프(Air to Air Heat Pump)인 ‘LG 멀티브이 아이(Multi V i)’ 설치를 진행 중이다.
LG 멀티브이 아이는 고효율 인버터 컴프레서와 AI 기반 스마트 제어 시스템으로 에너지를 절감하며, 기존 R410A 냉매보다 지구온난화지수(GWP)가 약 30% 수준인 R32 냉매를 사용해 까다로운 유럽의 환경 기준에도 부합한다.
또한 LG전자는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주거용 레지던스인 ‘킹스 서클(King’s Circle)’과 ‘더 원(The One)’에도 멀티브이 아이와 멀티브이 에스(Multi V s)를 중심으로 500여 세대에 맞춤형 히트펌프 솔루션을 공급 중이다.
LG전자도 남유럽에서 가정용 에어컨 매출이 약 20%, 독일·프랑스 등 서유럽에서는 약 10% 증가했다. 특히 6월 들어 가정용 에어컨 판매는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성 LG전자 ES사업본부장은 “유럽의 주거용 히트펌프 고객들은 제품의 효율성은 물론 친환경성과 설치 편의성까지 고려한다”며 “다양한 냉난방 솔루션 포트폴리오와 엔지니어링 역량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기후변화로 유럽의 폭염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일상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냉방 수요도 구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동식 냉방기기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시스템에어컨과 대형 냉난방 공조(HVAC) 시장에서는 고효율·친환경 기술력을 앞세운 국내 기업들의 입지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