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다음 단계는 부동산 권력 내려놓기

  • 등록 2026.06.17 08: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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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한 유력 경제지는 최근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이념을 넘은 집념(집에 대한 집착?), 아파트, 정치를 삼키다"라는 제목을 뽑았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누가 봐도 이번 선거에서 부동산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집값이 오른 지역은 후보의 정치적 철학이나 지역 비전보다 ‘부동산이란 욕망을 통제하려는’ 여당에 대한 반발심이 표심으로 나타났다. 집값뿐 아니라, 재건축, 재개발, 교통망 확충, 신규 택지 조성 여부 등등 부동산은 유권자의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단순한 선거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형성해 온 부동산 중심 구조의 결과다.

 

필자는 우연히 국회도서관 1층 도서 진열대에서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원제는 The Land Trap』이라는 책을 보고 표제를 봤다.

 

이 책은 부동산이 권력이 된 현상을 "토지의 덫"이라고 설명했다. 토지와 주택 가격 상승이 경제 성장의 수단이 되고, 시민의 자산 증식 경로가 되며, 정치권의 지지 기반이 되는 순간 부동산은 시장을 넘어 권력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집값 하락을 두려워하고, 유권자는 자산 가치 방어를 우선시하며, 정부는 성장과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부동산 의존 구조를 반복하게 된다.

 

한국은 그 덫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환금성이 높은 자산이며, 계층 이동의 사다리이자 노후 대책, 그리고 자녀 교육을 위한 투자 수단이다. 따라서 선거에서도 시민들은 정책의 공공성보다 자신의 자산 가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선거에서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정치의 모든 판단 기준이 부동산으로 수렴될 때 발생한다. 집값 상승이 곧 지역 발전으로 간주 되고, 개발 사업이 곧 성장 정책으로 포장되며, 국가 경쟁력마저 부동산 가격과 혼동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생산성 향상, 기술 혁신, 교육 개혁, 지역 균형발전 같은 장기 과제는 뒤로 밀려난다. 토지 가격은 오르는데 경제의 체력은 강해지지 않는 역설이 나타난다.

 

선진국의 공통점은 국민이 집값 상승으로 부를 축적하는 나라가 아니라 생산과 혁신으로 부를 창출하는 나라라는 점이다. 독일, 북유럽 국가들, 일부 서유럽 국가들은 주택을 투기 자산보다 생활 인프라로 바라보는 제도를 오랜 기간 구축해 왔다.

 

집이 없어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고, 집을 소유했다고 해서 과도한 불로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그 결과 정치 역시 부동산보다 산업, 복지, 교육, 기술 경쟁력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부동산 정책은 집값을 올리는 정책도, 무조건 내리는 정책도 아니다.

 

첫째, 주택을 투자 상품이 아니라 주거 서비스로 인식하게 만드는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구축하고, 둘째, 공공임대와 장기 임대 시장을 확대하여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고, 셋째, 토지와 주택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적절히 환수하고, 그 재원을 청년 주거와 지역 균형발전에 재투자해야 하고, 넷째,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 특정 지역의 부동산이 국가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선진국의 부동산 정책은 집값 관리 정책이 아니라 사회 구조 개혁 정책이다. 국민의 노후가 집 한 채에 있지 않고, 청년의 미래가 부모의 부동산 자산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선거 때마다 집값이 최대 쟁점이 되지 않는 그런 나라가 선진국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부동산이 얼마나 강력한 정치적 힘인지를 다시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힘에 국가의 미래를 계속 맡길 것인가, 아니면 부동산을 삶의 기반으로 되돌리고 정치를 미래 경쟁력의 영역으로 옮길 것인가는 이제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문제다.

 

부동산이 권력이 되는 사회를 넘어, 부동산이 상식이 되는 사회로 나아갈 때 비로소 한국 정치도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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