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 길은 대한민국의 세계적 콘텐츠

  • 등록 2026.06.09 15: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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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기도 연천과 파주의 경계 지역을 지나는 평화누리길을 걷다가 개성으로 향하는 송전탑을 바라 보았다. 지금은 전기가 끊어져 북녘을 향해 길게 이어지는 철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바로 K-팝과 K-드라마, K-푸드 못지않은 대한민국의 엄청난 콘텐츠가 DMZ 평화의 길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DMZ와 경계를 이루는 민간인통제선 안팎으로 이어지는 약 510km(경기도 191km 평화누리길 포함)인 DMZ 평화의 길은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잘 보존된 자연생태계를 간직한, 한마디로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길이다.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한국에서 왔을 때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 물으면 의외로 많은 사람이 DMZ를 꼽는다.

 

외국인들 눈에는-특히 6.25 참전 국가의 국민에게-DMZ는 단순한 군사적 경계가 아니다. 냉전의 마지막 현장이자 분단의 상징이며 동시에 평화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아마 전 세계인이 대한민국을 떠올릴 때 가장 궁금해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가 DMZ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일본의 구마노 고도(熊野 古道)를 찾는 사람들은 단지 걷기 위해 그곳을 방문하지 않는다. 길에 담긴 이야기와 문화, 그리고 편리하게 구축된 순례 인프라를 경험하기 위해 찾아간다. 숙소와 식당, 안내센터, 교통체계, 정보 제공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외국 여행자들이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다.

 

반면 DMZ 평화의 길은, 특히 평화누리 길은 아직도 "길만 있는 길"에 머물러 있다. 실제로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식사를 해결할 장소를 찾기 어려운 구간이 적지 않다. 걷다가 잠시 쉬어갈 카페나 휴식 공간도 부족하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은 언감생심이다보니 외국인 도보 여행자에겐 도전할 수 없는 코스일 수밖에 없다.

 

접근성 문제는 더 심각하다. 코스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전철과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배차 간격이 길고 코스의 도착 지점에서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부르거나 웁 소재지까지 7~8km를 걸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통합적인 관리 체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간별 관리 주체가 다르고 안내 체계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어떤 코스는 잘 정비되어 있지만 어떤 코스는 방향 표시조차 부족하다. 전반적으로 길의 브랜드와 정체성이 일관되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런 건 DMZ 평화의 길이 가진 잠재력에 비하면 너무 아쉬운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한다. 길은 이미 있고 세계인의 관심을 끌 만한 역사도 있다. 전쟁의 상처와 평화의 희망이라는 강력한 서사도 존재한다. 단지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 그래서 코스마다 존재하는 세계 각국의 전적비와 참전비에 담긴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연결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이 길은 살아날 수 있다.

 

길마다 역사 해설 프로그램을 만들고, 국제 청년 평화캠프와 걷기 축제를 운영할 수도 있다. 전쟁을 기억하고 평화를 배우는 세계적 교육 프로그램도 가능하다.

 

물론 지금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는 사람들끼리의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길을 걷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 편안하게 쉬고, 먹고, 머물고, 이동할 수 있는 코스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식당들이 길과 연결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DMZ 평화의 길은 분단을 고착하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분단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키우는 공간이다. 세계인이 이 길을 걸으며 한반도의 현실을 이해하고 평화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통일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다. K-팝이 음악으로 세계인을 연결했고, K-드라마가 이야기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DMZ 평화의 길은 평화라는 가치로 세계인을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세계에 제안하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이며, 평화를 수출하는 국가 브랜드 전략이지 않을까 싶다.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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