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과 황금, 그리고 뒤틀린 신념의 낭떠러지

  • 등록 2026.06.07 12:02:48
크게보기


◇가려진 시야, 황금 우상의 출현

 

최근 얼굴 없는 작가 뱅크시는 공공 조각을 통한 국가주의 비판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4월 30일(현지 시각) 런던 세인트 제임스 워털루 장소에 신작 동상 ‘깃발에 눈이 먼 남자(A Man Blinded by His Flag)’를 기습 설치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거리에 세워진 이 동상은, 당당하게 걷는 양복 차림 남성의 얼굴이 자신이 든 깃발에 완전히 가려진 채 좌대 밖 낭떠러지로 발을 내딛는 파멸의 순간을 포착했다. 이는 우리가 속한 체제나 이념,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깃발로 눈을 가린 채 앞을 보지 못하는 현대 정치인과 대중을 향한 통렬한 은유다.

 

극단으로 치우친 믿음은 인간의 시야를 제한하고 낭떠러지로 몰아세운다. 특히 그 대상이 '국가'일 때 파멸의 영향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기묘하게도 이 동상이 세워진 같은 시간에, 미국 마이애미의 트럼프 소유 도랄 골프클럽에서는 가상자산업체 '패트리엇 토큰' 자본가들이 헌정한 4.5m 크기(약 7억 3천만 원)의 트럼프 황금 동상 ‘돈 콜로서스’가 우상처럼 공개되었다. 이는 구노(Charles Gounod, 1818~1893)의 오페라 <파우스트>에 나오는 베이스 아리아 '황금 송아지(Le Veau d’or)'라는 돈과 권력 앞에서 굴복하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온 인류가 돈 앞에서 이성을 잃고 우상에 복종한다고 조롱하며 부르는 노래처럼, 이 황금 동상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물질과 권력을 향한 인간의 맹목적인 탐욕을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메타포다. 대조적인 풍경을 통해 한쪽에서는 깃발(이념)에 눈이 멀고, 다른 한쪽에서는 황금(자본)에 눈이 먼 현대 사회의 비이성적인 단면이다.

 

황금 동상이 설치되던 날 존 마크 번즈 목사 등 기독교, 유대교 지도자들이 모여 미국의 부활, 애국심, 용기를 표방하는 그의 조각상을 축복했다고 전해진다. 올해 G20 정상회담이 열리는 도랄 골프클럽에 ‘도금시대의 왕’이라 불리는 동상이 정상을 맞이할 것이다. 이념에 눈이 멀어 상식의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이 잔혹한 은유는 결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국내의 한 유명 커피 브랜드가 감행한 ‘책상에 탁! 탱크데이’ 판촉 행사는 뱅크시가 경고한 '눈먼 자들의 오만함'이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참사다. 텀블러 하나를 더 팔겠다는 역사적 비극을 활용한 판촉 행사의 이면에는, 국가 폭력과 역사적 사건을 마케팅 도구로 전락시킨 천박한 속내가 커피 찌꺼기만큼이나 시커멓고 쿰쿰하게 고여 있다. 눈먼 자들의 마케팅과 차이가 없다.

 

우리는 1987년 1월 14일, 독재 정권의 혹독한 고문 끝에 숨진 박종철 열사를 기억한다. 당시 고문 경찰은 단순 쇼크사라며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터무니없는 은폐 시도로 국민을 기만했다. 이는 결국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진상 폭로를 거쳐 ‘6월 민주화운동’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을 마주해 본 방문자라면 당시 박종철과 민주화 정치운동가 김근태 등 국가 폭력이 가한 끔찍한 비극과 혹독한 고통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시민들이 온몸으로 맞서며 피로 일궈낸 민주화와 저항의 역사를, 기업이 여하를 막론하고 이토록 가볍고 극악무도하게 조롱해도 되는가.

 

강한 믿음은 합리적인 판단을 거부한다’라고 했다.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취합해 확증편향을 공고히 하는 자들은, 그 끝이 파멸일지라도 당당하게 받침대를 지나 발을 내디딘다. 수년 전부터 ‘멸콩 행보’, 세월호 방명록 조롱 등 몰상식적인 행보로 연기를 피우던 해당 기업 회장과 임원진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고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마케팅이란 생각이다.

 

이윤에 눈이 멀어도 최소한 작동해야 할 현실감각과 상식이라는 브레이크마저 마비된 것이다. 이것이 특권의식에서 나온 오만인지, 아니면 뒤틀린 정치적 이념에서 비롯된 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곡된 자의 법적 관용도 그렇고 진실을 왜곡하려는 집단의 선동도 이유를 불문하고 잠재워야 할 것이다.

 

◇ 통한 창조, 뱅크시 미술 시장을 조롱하다

 

2018년 10월 5일, 영국 런던 소더비 현대 미술 야간 경매장. 경매사 올리버 바커가 뱅크시 대표작 '풍선을 든 소녀'의 최종 낙찰가로 140만 달러를 발표하는 순간, 전 세계 미술계를 발칵 뒤집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액자 내부에 숨겨져 있던 분쇄기가 경고음을 울리며 자동으로 작동해 그림을 잘라내기 시작한 것이다. 뱅크시가 리허설 때와 달리 기계 오작동으로 그림을 절반만 잘라낸 채 멈췄지만, 이 해프닝은 순간 전 세계로 대서특필되었다. 이는 단순한 파괴 행위가 아니었다. 미술 시장의 극단적인 상업성을 정면으로 조롱하는 동시에, 작품을 완전히 새로운 예술로 탈바꿈시킨 ‘창조의 순간’이었다.

 

낙찰자는 반쯤 잘려 나간 상태의 그림을 그대로 구매하며 ‘오히려 미술사에 남을 일’이라며 기뻐했다. 이후 해당 그림은 인증 기관을 통해 <사랑은 쓰레기통에 있다>라는 새 이름으로 뱅크시의 정식 작품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미술 시장을 비판하려던 이 도발적인 퍼포먼스는, 2021년 다시 경매에 나와 아이러니하게도 18배 폭등한 1870만 파운드에 낙찰되는 거대한 자본주의적 역설을 낳았다.

 


 

익명성'은 뱅크시 작업의 핵심 요소이자 권력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는 자본주의와 반자본주의 모두에 대한 뒤틀린 비판을 수행하며, 예술이 권력층의 전유물이 되는 것을 거부해 온 영국의 '얼굴 없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다.

 

1990년대부터 정체불명으로 활동해 온 그는 독창적인 스텐실 기법을 확립하며 전 세계 도시의 거리, 벽, 다리 위에 정치적 메시지와 반전,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재치 있게 풍자해 왔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의 분리 장벽에 그려진 '분노, 꽃을 던지는 남자(Rage, the Flower Thrower)'와 브라이턴에 등장한 '키스하는 경찰'은 그의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초기 대표작이다.

 

그의 대담한 저항은 거리를 넘어 제도권 미술관의 권위를 전복하는 게릴라 예술로 확장되었다. 2003년 그는 런던 테이트 모던, 대영박물관(전시 공간에 쇼핑카드가 그려진 원시벽화 무단 설치), 루브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몰래 잠입해 자신의 작품을 무단으로 설치 전시하는 게릴라식 행동을 감행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몰래 걸어 둔 <미사일 딱정벌레>는 무려 23일 동안이나 발각되지 않고 전시장에 걸려 있기도 했다.

 

이러한 실천적 행보는 시대적 비극의 현장으로도 이어져, 2022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잠입해 남긴 7개의 벽화는 향후 최초의 현대 미술 광장 조성 계획으로 이어졌다. 이어 2025년 9월에는 런던 왕립 법원 외벽에 '법봉으로 때리는 판사'를 그려 넣으며 사법 권력의 위선을 날카롭게 고발했다.

 

뱅크사는 2006년 첫 갤러리 전시를 기점으로 과거의 순수했던 익명성에서 벗어나, 역설적이지만 막강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작가가 되었다. 그의 저항과 비판마저 거대한 상업적 가치로 환원되는 모순 속에 서 있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의 무게만큼은 절대 가볍지 않다. 이념이라는 깃발로 제 눈을 가린 채 오만한 기세로 전진하는 자들, 그리고 황금이라는 우상과 최소한의 이윤 앞에 무력하게 굴복하는 집단적 도그마는 결국 파멸의 함정으로 추락할 뿐이다.

 

자본의 탐욕과 정치적 과대망상이 결탁했을 때 역사의 비극이 어떻게 모욕당하는지, 우리는 눈앞의 서글픈 마케팅 참사와 전 세계의 거리 벽면을 통해 맹목적 신념을 동시에 목격하고 있다.

 

이처럼 이념이 상식을 집어삼키는 풍경은 최근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감사의 정원'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군사적 상징물 ‘받들어 총’ 조형물은 깊은 의문을 남긴다.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진정으로 기리는 길이었다면,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외쳐온 열린 공간의 정체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이토록 시대착오적인 조형물을 강행해야 했을까? 뱅크시가 꼬집은 ‘눈먼 깃발’의 도그마가 오늘날 우리의 광장 위에도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Copyright @2012 M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회사명 (주)방송문화미디어텍|사업자등록번호 107-87-61615 | 등록번호 서울 아02902 | 등록/발행일 2012.06.20 발행인/편집인 : 조재성 |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2길 4. 5층 | 전화 02-6672-0310 | 팩스 02-6499-0311 M이코노미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