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에선 구글, 애플, MS, 메트, X 등 미국 빅테 크 앱과 제품들을 압도적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에 점령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토종 애플리케이션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놀랍다.
그러나 트럼프 제2기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노골적인 압력과 야욕에 여론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그간 순순히 받아들였던 미국 인터넷 테크 의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난 3월 유고브(YouGov) 리서치가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등 5개국 시민, 각 1000명씩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분의 2가 미국 테크 서비스를 유럽 토종 서비스로 교체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유럽 시민들이 교체되기를 바라는 미국 테크기업 의 인터넷 서비스는 서버와 스토리지, 줌과 같은 컨퍼런스앱, 이메일, 심지어 은행 결제 시스템도 포함돼 있었다. 한 달 앞서 스위스의 인터넷 프라이버시 단체인 프로톤 (Proton)이 영국과 독일, 프랑스 국민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조사 대상 10명 중 8명 이상이 미국 테크기업들에 대한 의존성을 지 적했다.
유럽인들은 그들의 개인정보가 유럽 법에 의해 보호받기를 원하며, 미국 테크기업 서비스를 유럽 것으로 전환할 수 있기로 바라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이 증가한 탓으로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다음으로는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꼽았다. 국내에서도 쿠팡의 정보 유출 사고로 큰 물의를 빚은 바 있는데, 유럽에서 도 정보 유출 사례가 잇따랐다.
유럽과 미국 간에는 정보 유출과 관련된 법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도 양측의 갈등 요인이 되고 있고 이것이 유럽 여론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클라우드 법은 미국 앱과 서비스를 사용해 저장된 유럽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을 미국 당국에게 허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결정적으로 유럽의 반발을 사고 있다.
유럽은 개인정보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규정을 갖고 있으며 위반할 시 벌금 제재를 받는다. 미국과의 갈등이 높아지고 유럽과의 법 인식과 체계도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최근 들어 유럽 각국은 미 당국이 미국 테크기업들의 서버와 스토리지에 대한 접근을 차단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말하자면 유럽 시민과 기업, 기관들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미국 테크기업들이 갑자기 데이터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만큼 미국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는 얘기인데, 데이터의 국가 주권 의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테크 주권 강화 앞장 서
프랑스 정부는 최근 정부 기관에서 사용되는 일부 컴퓨터에서 MS 윈도 대신에 오픈 소스 프로그램인 리눅스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비드 아미엘 장관은 디지털 데이 터와 인프라를 프랑스 정부가 콘트롤 할 수 없는 현실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으며, 프랑스의 디지털 미래를 우리 손으로 되찾아 와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다소 비장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발언이다.
이에 앞서 프랑스 정부는 영상 콘퍼런스 앱인 MS의 팀즈 (Teams) 사용을 중지하고 프랑스 토종 앱인 비지오(Visio) 를 사용하기로 했다. 비지오는 오픈 소스와 암호화된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는 건강 정보 플랫폼도 토종으로 올해 말까지 대체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월 유럽 의회는 미국 테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우려하면서 회원국들이 외국 테크 기술 의존을 줄일 수 있는 분야를 확인하고 보고할 것을 투표를 통해 채택했다. 유럽의 기술 주권 움직임은 일시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 중에도 유럽의 비협조를 이유로 유럽 안보를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어 미국 테크 이탈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 유럽의 기술 주권, 미국급 기술력으로 응용 산업 도약의 계기 될 수도
유럽 대학과 연구소의 기술 수준은 미국에 버금가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연구 환경의 안정성과 기초 연구 면에서는 유럽이 강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미국 빅테크 기업 과 같은 상업적 응용 연구 분야에서는 미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이런 분위기도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에 취임하고 나서 대학들과 갈등을 빚고 연구비 삭감을 실시하면서 미국의 연구자들이 유럽으로 자리를 옮기는 분위기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테크 기술자들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오히려 많이 이동하고 있고, 유럽 벤처 투자가 지난 10년간 4배 증가해 중국을 추월했다는 이코노미스트 보도도 있다.
그간 유럽에서 미국과 같은 거대 테크 기업들이 탄생하지 못한 것은 미국에 비해 정부의 지원도 약했고 실리콘밸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풍부한 벤처 자금이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요인이 컸다. 이제 미국 테크 의존을 줄이려는 공감대가 유럽 각국과 EU 의회에서 강력하게 형성되고 각국 여론의 열망도 뜨거워지고 있는 같아, 유럽 토종 테크 기업의 육성과 성장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 정부와 산업계를 분발시키는 요인은 트럼프 대통령 뿐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이전부터 중국의 기술 발전에 큰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3월 중국은 제15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발표했다. 핵심은 이전 5개년 계획에 뒤이어 첨단기술과 제조경쟁력 향상을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것이다.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모든 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이미 앞질렀고 AI 분야도 미국을 거세게 추격한다는 상황에서 나온 5개년 계획의 야심한 청사진이다. 중국의 태양광에 놀라고 전기차와 로봇에 공포를 느낀 유럽은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파기 위협으로 사활의 변곡점에 서 있다. 중국의 기술 굴기와 가성비 좋은 제품의 무더기 수출 공세, 희귀광물 수출통제에 대한 미국과 유럽과의 공조도 이제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나토 위협 발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쌓아온 미국의 글로벌 신뢰 자산을 너무 많이 무너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 전쟁으로 인해 석유와 가스 소비국인 유럽과 아시아는 에너지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미국은 계속 동맹 탓만 하고 있다. 적어도 트럼프 재임 기간에는 자원 문제를 비롯해 어떤 국제적 이슈에 대해 자유 진영의 공동 대처보다 오히려 분열 양상이 보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일본도 디지털 주권성 강화 나서
일본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도입이 늦었다. 일본은 1980~90년대 플라자합의로 인한 엔화 절상과 부동산 붕괴로 잃어버린 30년의 긴 동면에 빠져 있었다. 그 바람에 제조업 경쟁력은 유지했으나 디지털 부문의 발전이 지체 돼 미국 테크 기업들에 대한 의존이 심화돼 왔다.
디지털 도입에 이은 AI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트럼프 2기 정부의 압박은 일본 정부와 재계로 하여금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일본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하게 될 클라우 드 사업에 미국계 4사 외에 자국 기업도 참여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일본의 디지털 적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주로 미국제를 사용하고 있는 데에 원인이 있다.
일본도 자국의 중요한 국가 데이터를 미국계 클라우드에 저장했다가 갑작스럽게 어떤 사정으로 끊겨 버리거나 강제 차단될 경우 엄청난 낭패를 당할지 걱정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 다. 클라우드 인프라가 데이터 소유국에 있다고 해도 미국계 클라우드사가 암호키를 갖고 있고 관리 기술도 독점하고 있는 이상 안심할 수는 없다.
데이터에 대한 인식과 정책도 각 나라마다 다른 것이 당 연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기업의 자유를 존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유럽이나 아시아는 데이터의 윤리성, 공공적 가치에 더 무게를 두는 경향이다. 디지털 데이터를 자국 기업이 저장하고 사용한다면 문제가 덜 복잡하지만, 데이터를 외국계 기업이 저장할 경우 복잡한 문제로 번지고 자칫 충돌을 빚을 수 있다. 이미 데이터에 대한 인식과 문화적 차이로 유럽과 미국 간에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기술 주권은 어디에
한국의 기술 주권 상황은 유럽과 일본에 비해 다소 양호한 편이지만 결코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유럽연합은 인구 4억5000만명을 포용하고 있는 거대 시장으로 발전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유럽은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압박, 중국의 부상으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브렉시트로 떠났던 영국은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유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는 모습이다. 유럽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가치를 공유하고 한국은 일본과 함께 유럽과의 협력을 우선으로 강화해야 한다. 미국 시장만 바라본다는 것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글로 벌 사우스와의 적극 외교를 펼치고 있는 이재명 정부는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말을 따르지 않은 동맹들, 새 국제질서 만든다?
이번 이란 전쟁에서 미 동맹들은 트럼프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 원인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협상 도중에 선제공격을 한 점, 작년 취임 이후 계속된 일괄 관세 부과 정책, 그린란드 야욕 노골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번 이란 전쟁은 시작보다는 전쟁을 끝내고 세계 석유와 가스가 드나드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보장하는 문제가 미국의 입장에서 훨씬 다루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란과 휴전을 하고,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운항을 영국과 프랑스 등 40여 개국이 참여하는 다국적군에게 맡기고 빠질 것인지 불투명하다. 만약 다국적군에 미군이 포함될 경우, 이란이 반발하고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을 극도로 불신하고 있는 이란이 미군이 참여한 다국적군이 호르무즈 해상에 남아 있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 같다. 전쟁 당사국인 이스라엘이 다국적군에 참여하기 어려운 만큼 미국의 참여 명분이 약해 보인다. 전비를 막대하게 썼고 중동 석유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한 대목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미국이 호르무즈 다국적군에서 빠지거나 설사 들어간다고 해도 호르무즈 다국적군의 주도권은 프랑스와 영국이 쥐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무슨 형태가 됐던 간에 이번 이란 전쟁으로 유럽의 위상이 점차 달라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패권에서 1인자는 있지만, 2인자는 없다. 그간 자유 진영은 미국이 1인자였고, 유럽과 아시아 동맹들이 ‘군말 없이’ 따라가는 구조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동맹 후려치기의 후과는 이란 전쟁을 계기로 새로운 국제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