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가뭄이 불러올 나비효과, 배춧 값에서 국가 전략까지

  • 등록 2025.09.05 09: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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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숙 칼럼

정부가 강릉 지역에 대해 자연재난 사태를 선포했다. 자연재난으로는 사상 첫 사례다. 이맘때라면 초록빛으로 속이 꽉 차야 할 ‘안반데기’의 배추가 가뭄에 속이 타들어 가 ‘꿀통 배추’로 변해버렸고, 출하를 포기한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옥수수·고추·깨를 비롯한 밭작물도 뿌리째 말라 죽어 농경지 전체가 황폐해졌다.

 

 

강릉 지역의 극심한 가뭄은 단순한 지역 재해가 아니다. 배추와 같은 기초 채소의 생육이 차질을 빚으면 곧바로 도매시장에서 가격이 치솟고, 이는 곧바로 전국 소매시장과 가정 밥상으로 파급된다. 김치·국·반찬 등 거의 모든 식단에 등장하는 배춧값이 폭등하면 저소득 가구의 생활비 부담이 늘고, 동네 식당과 소상공인의 매출원가가 상승해 민생경제 전반에 불안을 불러온다. 강릉 가뭄이 전국 물가 불안으로 이어지는 나비효과를 불러오는 이유다.

 


배추와 민생


 

배추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다. 매일, 거의 모든 밥상에 등장하는 재료다. 그래서 배추 가격은 곧 체감 물가를 자극하며 가계 살림과 민생경제의 온도계 역할을 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2023 김치산업 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국내 김치산업 규모는 약 181만 9,961톤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97.7%인 177만 8,682톤이 국내 시장에 공급되었고 나머지는 해외로 수출됐다.

 

국내 공급 분량을 세부적으로 보면, 가정 소비가 55%인 100만 1,421톤으로 가장 많았고, 외식업체 소비가 31.8%(57만 8,827톤), 급식소가 5.7%(10만 4,148톤)를 차지했다. 즉, 김치는 가정뿐 아니라 외식·급식을 통해 국민 식생활 전반을 지탱하는 필수 식품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소비재 가운데 특히 식품 가격 변화에 가계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2024 식품소비행태조사 기초분석보고서」(2024)에서도 확인된다. 가구의 식품 구입 빈도를 보면, 주 1회 구입이 41.3%로 가장 높았지만, 전년 대비 5.4%포인트 줄었다.

 

대신 주 2~3회(37.8%)나 2주일에 1회(13.9%) 같은 응답이 늘어나면서 구입 주기가 짧아진 가구와 길어진 가구로 양분되는 변화가 나타났다. 주 1회 중심의 안정적 패턴이 줄고 ‘짧게·자주’와 ‘길게·가끔’으로 양분화된 것은 고물가, 가구 구조 변화, 유통 채널 다변화의 복합적 결과이며, 식품 소비가 단일 패턴이 아니라 양극적·다층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구입 장소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대형 할인점 이용률이 감소한 반면, 동네 슈퍼마켓 이용률이 30.0%로, 대형 할인점을 앞질렀다. 이는 고물가 상황 속에서 근거리·소량 구매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치 조달 방식에서도 특징이 뚜렷하다. 가구의 41.6%는 가족·친지를 통해, 41.7%는 직접 담가서 김치를 마련한다.

 

이처럼 자급이나 가족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구조이기에 배춧값이 오르면 곧바로 가계 식비 부담이 커지고, 이는 민생 불안으로 직결된다. 결국 배추 가격은 가계 지출, 소비 패턴, 외식업 원가, 국가 물가지표까지 흔드는 민생경제의 척도가 된다.

 


높아진 엥겔지수


 

민생경제 지표를 살펴보면, 통계로도 확인되듯 식비 부담은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24년 가구당 월평균 식품 소비지출은 85만 9천 원으로,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이는 전체 소비지출 증가율(3.5%)을 웃도는 수치로, 가계에서 식비 비중이 더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4년 엥겔지수는 29.7%로, 2010년(26.9%) 이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30%에 근접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개인의 행태 변화 유도를 위한 현금지원정책의 효과와 시사점에 관한 연구」(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가구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소비 패턴을 보여주었다. 저소득 가구는 현금지원을 받으면 식비와 교육비와 같은 기본 생활비 지출을 우선 늘리는 경향이 강해 엥겔지수가 높아졌다.

 

반면, 중·고소득 가구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저축이나 생활 수준 향상에 자금을 활용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결국 저소득 가구의 경우 현금지원이 곧바로 식료품 소비 확대를 불러와 엥겔지수 상승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민생경제 전반이 먹거리 가격 안정 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생경제와 지방균형성장


 

폭염, 가뭄 등의 이상기후, 강원 고랭지 배추 재배면적 감소로 배추 한 포기 가격이 7천 원대까지 치솟고 있는 가운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여름배추 대체 산지 발굴을 위해 전라북도 남원의 시범재배지를 점검했다. 그동안 여름배추는 강원 고랭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왔으나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전북 산간 지역에서도 충분히 재배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 향후 남원과 같은 새로운 재배지가 정착된다면 배추 공급 불안 해소와 가격 안정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특정 지역 의존도를 줄이고 새로운 산지를 개척하는 시도는 단순한 농업 대안이 아니라, 민생경제와 지방균형성장을 동시에 고려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기후재난 시대에는 특정 지역에 의존하는 농업 구조가 민생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반대로 새로운 재배지 발굴과 신품종 보급을 통해 지역별 생산 거점을 분산시키면, 국민 밥상을 지키는 민생 안정과 지역경제를 살리는 균형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5극3특 균형성장 전략


 

따라서 앞으로의 균형성장 전략은 산업 성장뿐만 아니라, 민생경제의 기반인 먹거리 안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는 단지 농업 정책 차원의 일이 아니다. 국가 균형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요소로 바라봐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5극3특 균형성장 전략 역시 마찬가지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벗어나 5대 초광역권과 3대 특별자치도를 성장 거점으로 삼겠다는 5극3특 전략은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이다.

 

동남권은 자동차·조선·우주항공을, 서남권은 AI·농생명·식품을, 대경권은 이차전지와 바이오를, 중부권은 반도체·디스플레이를, 강원·제주권은 관광·에너지·바이오를 집중 육성한다. 지역성장투자협약 체결, 지방투자 촉진, 공공기관 이전, 세제혜택·보조금 지원까지 다양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산업과 관광을 중심으로 성장 엔진을 심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5극3특 수급벨트 전략


 

그러나 균형성장은 산업 거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민생경제와 먹거리 체계가 함께 받쳐줘야 한다. 여기서 5극3특 공영도매시장 수급벨트가 필요하다. 수급벨트란 지역생산–지역소비가 이뤄지도록 지방도매시장을 중심으로 수요예측(디지털)–생산지(계약재배)–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물류를 권역별로 묶어 농산물 수급과 가격을 안정화하는 생활 인프라를 뜻한다.

 

정부의 5극3특이 미래산업 중심의 성장 거점을 구축하는 전략이라면, 수급벨트는 농산물 유통과 가격 안정을 책임지는 생활 거점 확보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이는 권역별 산업과 먹거리를 연계할 수 있다. 동남권은 자동차·조선 산업 클러스터와 부산·대구 공영도매시장을 연결해 식품·물류 혁신 허브를 구축한다. 산업 단지와 식자재 수급이 맞물리면 기업 경쟁력과 생활 인프라가 동시에 강화된다. 서남권은 AI·농생명·식품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지역이다. 광주·전주 공영도매시장에서 AI 기반 가격예측 시스템과 유통 혁신을 시범적으로 추진하면, 첨단산업과 농산물 유통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새로운 모델이 만들어진다.

 

이차전지·바이오 산업의 중심지가 될 대경권에는 의성·안동 같은 양념채소 주산지가 있다. 여기서는 산지와 도매시장을 잇는 양념채소 벨트를 구축하고 동시에 유통 혁신 허브로 성장시킬 수 있다. 중부권은 반도체와 기초 R&D의 심장부다. 대전·청주 도매시장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반 정가·수의 거래 실제 사업을 추진해, 농산물 유통과 첨단 연구개발이 결합하는 사례를 만들 수 있다.

 

강원·제주권은 관광·에너지·바이오가 주력이다. 강릉 공영도매시장에서 관광산업과 지역먹거리 연계 모델을 도입하면, 관광객에게는 체험과 신뢰를, 지역민에게는 안정적 소비처를 제공할 수 있다.

 

관광 정책과의 연계도 중요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K-지역관광 종합 패키지는 교통·숙박·체험을 아우른다. 여기에 지역먹거리 체험·로컬푸드 플랫폼을 결합하면, 관광은 곧 지역 농산물 소비 확대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제주권은 관광과 동시에 제주산 채소 직거래를 경험하도록 하고, 서남권은 AI 관광과 농생명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는 방식이다.

 

또한 지역 소득기반 확충 측면에서도 시너지가 크다. 정부가 제시한 햇빛·바람연금 같은 주민참여형 소득 모델에 농산물 가격안정 시스템을 더하면, 지역민 소득 안정, 농민 생산물 가격 안정, 소비자 생활 안정이라는 삼중 효과를 낼 수 있다.

 

지방투자·기업유치 정책과도 연결된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 공영도매시장 기반 B2B 식자재 직공급 체계를 제공하면 기업의 생활 인프라 불안을 덜 수 있다. 동시에 농식품 물류·APC 투자를 지방투자촉진보조금 대상에 포함시켜 지역 내 유통 인프라를 강화하면, 기업·농민·소비자가 함께 이익을 얻는다.

 

다시 요약 정리하자면, 정부의 5극3특 균형성장이 산업·관광 중심의 성장 거점을 마련하는 전략이라면, 5극3특 공영도매시장 수급벨트는 민생경제와 먹거리 체계를 안정시키는 전략이다. 두 전략 축을 나란히 추진할 때 비로소 한국의 균형성장 전략은 미래 성장과 생활 안정을 동시에 품는 진정한 국가전략이 될 수 있다.

 

강릉의 가뭄이 배추 한 포기의 가격을 흔들고, 그 가격이 민생경제와 국가전략을 뒤흔든다. 성장의 엔진과 밥상의 안정을 함께 세울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균형성장은 현실이 된다.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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