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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일본제국 부활’ 꿈꾸는 아베…배후의 검은 그림자 ‘일본회의’

- 아베, ‘강한 일본’ 구호 아래 우경화 정책 박차…배후에 우익 정치집단 ‘일본회의’
- 우파 종교집단 중심, 과거사 부정하고 천황제 부활 등 전후 체제 노골적 부정
- 막강한 조직 동원력·자금력 바탕, 중앙 정계에 영향…아베, 창립회원·특별고문
- 아오키 오사무 “전후 일본 민주주의 체제 사멸의 길로 몰아넣을 악성 바이러스”

 

[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지난달 2일,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보복하기 위한 것인데, 과연 그것뿐일까.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집권 이후 꾸준하게 우경화의 길을 걸어온 일본 정부. ‘강한 일본’을 꿈꾸는 아베 총리를 필두로 한 일본의 극우파에게 한국은 상당히 거슬리는 존재다. 아베가 그리는 ‘강한 일본’, 그것은 제국주의·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이기 때문이다. 과거사 부정, 역사 왜곡, 헌법 개정 모두 그것을 향해 있다. 21세기에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지만, 아베는 집권 이후 꾸준하게 ‘강한 일본’ 만들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왔다. 그 배후에는 일본 내각의 80%, 일본 국회의원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우익 결사체 ‘일본회의’가 있다.

 

일본은 지난 7월1일 갑작스럽게 한국으로 수출되는 3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지난달 2일에는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제공하는 안보 우방국(화이트 국가) 목록,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에서의 한국 제외를 공식화했다. 지난해 10월30일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우리나라 대법원이 “피해자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데 대한 보복 차원이다.

 

과거사를 계속해서 부정해 온 일본이지만, 일본의 국제적 위상, 경제 규모 등을 생각해보면 단순히 ‘보복’을 위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했다고 하기에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지켜진 정경분리 원칙의 붕괴, 글로벌 분업체계 및 공급망 훼손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도 그렇지만, ‘가미카제식 경제보복’이라는 지적처럼 일본이 입는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한 일본. 무엇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베 정권은 전후 체제를 부정하고 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을 그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초 집권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사명이자 일본 사회의 최대 과제라며, 이를 위한 ‘헌법 개정’ 의지를 꾸준히 드러내 왔다. 헌법을 고쳐 ‘군대 보유를 정당화하고, 교전권을 회복해 전쟁할 수 있는 정상국가’를 만들겠다는 것. 현행 헌법은 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가 일본을 점령했을 때 만들어진, 즉 연합군에 의해 쓰인 것이기 때문에 무효고, 군대와 교전권이 없어 유사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 영토를 정부가 지키지 못한다’는 논리다. 소위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일본의 현행 헌법이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발발됐던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군에 패배한 이후 제정됐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현재 일본을 있게 한 전후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아베 총리의 행보를 봤을 때 그것은 ▲천황제의 부활 ▲제국주의·군국주의 국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2013년 군국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해 “그렇게 불러도 좋다”고 말했고, 자신의 외할아버지이자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를 “일본의 미래만을 생각하는 진정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차 집권 때 참배를 하지 않은 것이 통한의 극치”라며 A급 전범과 태평양 전쟁 전몰자 250만명의 위패가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2013년 총리로서 처음 참배한 이후 7년 연속 참배를 이어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행 헌법에 대해서는 “점령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라면서 “진정한 독립을 되찾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확실하게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베 정권의 큰 그림에 한국은 아주 커다란 방해 요소다. 한국이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과거사 문제와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급격히 조성된 한반도 평화 분위기는 아베가 그리는 큰 그림의 명분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한국이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것도 일본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침략의 역사’를 가진 일본이 다시 군대를 갖기 위해서는 천황 중심의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한 일들은 ‘좋은 것’, ‘정당한 것’이어야 하는데, 한국의 과거사 문제 제기 및 해결 촉구는 곧 ‘당시 일본이 전범국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과 같다. 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하고, ‘수정주의 역사관’이 담긴 교과서로 학생들을 교육하며,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는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침략전쟁이 아니라 서구 열강으로부터의 해방전쟁이었다’ 등의 주장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한반도 평화 분위기 역시 일본의 군대 보유 명분을 약하게 만든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지속돼야 그것을 빌미로 군대 보유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는데,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 북한에 의한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게 되면 그 명분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가 ‘새로운 국가(통일한국) 탄생’으로 이어지게 될 경우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상당히 약해질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직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남아있고, 경제적으로 앞서 있을 때 한국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판단 아래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를 공격하고 ‘화이트 리스트’ 제외를 단행한 것이다.

 

아베의 정치적 고향 야마구치현…‘정한론’ 탄생지

 

아베가 ‘강한 일본’을 꿈꾸며 우경화 행보를 이어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베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현(옛 조슈번)은 ‘일본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일본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한론’이 탄생한 곳이다.

 

 

막부(幕府) 시절 무사이자 교육가, 정치사상가였던 ‘요시다 쇼인’이 주창한 이 사상은 제국주의 시절 일본 침략정책의 사상적 기반이 됐다. 그의 제자는 일본의 초대 총리이자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했던 미우라 고로 공사, 한일합병을 주도한 당시 총리 가츠라 타로, 청일 전쟁 하루 전 경복궁을 습격해 한반도를 전쟁 기지화했던 오시마 요시마사 일본군 여단장 등이다. 요시다 쇼인을 비롯해 모두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정한론’ 등장 배경에 대해 야하타 가즈오 일본 도쿠시마 문리대 정치학과 교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요시다 쇼인은) 아편전쟁 후 서구 열강의 위협 앞에서 중국처럼 지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이 스스로 단결해서 서구 열강에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고,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는 “요시다 쇼인은 ‘미국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이나 중국, 동남아를 일본의 것으로 만들어 덩어리를 키워야 한다, 일본이 아시아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이것은 이토 히로부미 등 제자들의 제국주의 완성의 동력, 사상적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일본이 ‘아시아 맹주로 자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그의 사상은 사라졌지만, 뿌리는 지금까지 이어져 일본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로 아베를 통해서다. 오시마 요시마사가 아베의 고조부였고, 아베의 외할아버지이자 A급 전범, 자민당을 만든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아베 신타로로 이어지는 아베 가문 역시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아베 가문 자체가 쇼인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아베는 과거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고, 2013년에는 정치인으로서는 최초로 쇼인의 묘지를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 요시다 쇼인이 강조했다는 ‘지성(至誠, 진심을 다한다)’은 아베가 ‘신념’으로 생각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강한 일본’=대일본제국의 부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발상지이기도 한 야마구치현에서는 일본의 마지막 막부인 에도 막부와 싸우는 과정에서 죽어간 병사들을 위해 ‘병사들의 생애는 모두 위대한 것이었다’고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곤 했다. ‘제2의 야스쿠니 신사’와도 같은 료젠고고쿠 신사에서는 지금도 막부의 대정봉환(大政奉還, 1867년 일본 에도 막부가 천황에게 국가 통치권을 돌려준 사건)이 이뤄진 10월14일 이들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매년 치러지는데, 야스쿠니 신사는 이를 모체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지 유신 직후인 1896년 막부와의 싸움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영혼을 ‘일본의 신’으로 기리기 위해 세워졌고, 지금은 2차 세계대전 전몰자들과 A급 전범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고, 천황이 여기에 참배함으로써 국민에게 천황숭배와 군국주의를 고무, 침투시키는 데 절대적인 구실을 했다. 야마구치현에서 나고 자라면서 ‘정한론’과 같은 침략 사상과 함께 했을 아베 입장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참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베가 ‘강한 일본’을 주창하면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아시아 패권국으로서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되찾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성민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원은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메이지 시대의 일본은 섬나라의 한계를 넘어 세계 8대 열강으로 인정받은 국가로, 일본의 국력이 가장 강성했던 시기”라며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바야시 세츠 게이오대 헌법학과 교수는 MBC 스페셜 <아베와 일본회의>에서 “자민당의 헌법 개정 초안을 보면 대일본제국 부활이다. 그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일본이란 대일본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고 말했다.

 

 

개헌과 함께 아베가 역점을 두는 것은 ‘역사 교육’이다. 아베는 국회의원이 되면서부터 과거사를 부정해왔는데, 총리가 된 이후에는 수정주의 역사관을 담은 교과서를 만들어 역사 교육에 사용해왔다. 특히, 2017년 터진 ‘사학 스캔들’에서는 아베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명예 교장으로 있던 극우성향의 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 소속의 츠카모토 유치원이 욱일기를 걸고 원생들에게 ‘교육칙어’을 암송하게 하고, ‘기미가요’를 부르게 한 사실이 들어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짐이 생각건대 우리의 황조황종이 나라를 창설한 것은 극히 광대하고 영원한 것이며, 덕을 세운 것은 지극히 깊고 원대한 것이었다’로 시작하는 ‘교육칙어’는 일본 제국 헌법이 공포된 이듬해인 1890년 메이지 일왕이 교육과 관련해 밝힌 의지를 문서화 한 것으로, 대일본제국의 동아시아 침략에 적극 활용됐다. 천황에 대한 충성·효도·복종이라는 유교적 가치관을 담고 있어 국가에 충성하고 천황을 신성하게 여기며, 유사시에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마칠 수 있는 ‘신민’이 돼야 함을 강조했다. ‘기미가요’는 일본의 국가로, 천황을 찬양하고, 천황의 시대가 영원하기를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종진 한일관계연구소 역사현안연구실장은 ‘근대 일본 교육칙어의 재생’에서 “교육칙어는 그 해석이 다수 존재하는데, ‘국가의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황운을 부익하기 위해 의용봉공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은 군국주의와 연계된다고 지적됐다. 패전 이후 GHQ의 점령하에서 교육칙어를 교육의 기본방침으로 간주하는 것을 금지하고, 학교 생사에서 봉독하는 것을 폐지했다”며 “1차 아베 정권하에서 1947년 제정된 교육기본법이 약 60년 만에 개정됐다. 개정 교육기본법 제2조에는 도덕심, 일본의 전통과 문화, 공공의 정신, 나라와 향토사랑 등의 덕목이 교육 목표로 제시돼 있는데, 이것은 과거 메이지 시대 교육칙어의 내용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7년 3월31일 아베 내각은 ‘칙어를 우리나라 교육의 유일한 근본으로 삼도록 지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도 헌법과 교육기본법 등을 위반하지 않는 형태의 교재로 사용하는 것은 부정하지 않다’는 각의 결정을 했다”면서 “교육칙어에서 제시하는 가치 외에 다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현행 헌법의 이념과도 배치되는 근대 제국주의 시대의 교육칙어를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정권 배후…우익 결사체 ‘일본회의’

 

아베 정권이 이같은 큰 그림을 그리고, 무모하기까지 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 최대의 우익 결사체이자 로비단체인 ‘일본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7년 5월30일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가 통합해 출범한 ‘일본회의’는 일본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47개 전체에 본부가 있고, 시정촌(기초지방자치단체) 241곳에 지부를 두고 있는 거대 조직으로, 회원이 3만8,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일본회의’의 창립 멤버로, 아소 다로 부총리와 함께 특별고문을 맡고 있으며, 아베 내각의 80%, 일본 국회의원의 40%가 이 단체의 회원이다. ‘일본회의’ 창설 전날에는 95% 이상이 자민당 의원들로 채워진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도 결성됐다. 사실상 ‘일본회의’가 일본 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아오키 오사무(저널리스트, 논픽션 작가)의 <일본회의의 정체>에 따르면 ‘일본회의’는 ▲국민통합의 중심인 황실을 존경하고, 동포애를 함양한다 ▲우리나라 본래 특색에 바탕을 둔 ‘신헌법’ 제정을 추진한다 ▲독립군의 주권과 명예를 지키고, 국민의 안녕을 도모하는 정치실현에 이바지한다 ▲교육에 일본의 전통적 감성을 되찾아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지닌 청소년을 육성한다 등을 기본운동방침으로 정하고, 간담회는 ‘일본회의’가 내세우는 이념과 정책에 공명하고 그에 호응해 ‘일본회의’의 이념과 정책을 현실정치에서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됐다. ‘일본회의’ 출범 목적이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국민회의’는 천황 재위 50년을 기념하는 1975년부터 시작된 원호법제화 운동(일본의 공식연호를 기록방법으로 법제화하려는 운동) 등을 추진한 우파 단체들이 발전된 것으로, 1979년 원호법 제정이 이뤄지자 그대로 해산하기 아깝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재계, 정계, 학계, 종교계 등의 우파 인사들이 모여 1981년 10월 만들어졌다. 이후 1986년 ‘국민회의’ 주도로 고등학교 일본사 교과서인 ‘신편 일본사’가 편찬됐는데, ‘일본의 전쟁은 자위전쟁이었다’, ‘도쿄 재판은 미국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난징대학살은 조작된 것이다’ 등 수정주의 역사관은 담고 있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아베는 ‘국민회의’의 사무국장이었다.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1974년에 우파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다. 이 단체는 임제종 승려인 아사히나 소겐을 중심으로 메이지 신궁의 다테 다쓰미 신관, 도미오카하치만 궁의 도미오카 모리히코 신관, ‘생장의 집’의 교조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여기에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참여했다는 것이 중요한데, 아오키 오사무는 <일본회의의 정체>에서 그에 대해 “1930년 우파 경향이 매우 강한 신흥종교인 ‘생장의 집’을 창설한 인물로, 전쟁 때 ‘일본 정신의 현현(顯現)’을 호소하며 군부의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협력, 전후에는 신자 수가 300만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교세를 자랑했고, 1964년에는 정치조직으로서 ‘생장의 집 정치연합(생정련)’을 조직해 정계 진출을 도모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도 종교의 중심적 존재라 할 수 있는 메이지 신궁. 전후 일본 우파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이끄는 거대 신흥종교 ‘생장의 집’. 양대 진영의 지도자들에게 우파계 종교인이 호소함으로써 두 진영의 두터운 지원을 받으며 발족한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면서 “‘일본회의’의 실무적·이론적인 핵심에는 전후 일본의 우파운동을 지지한 신흥종교인 생장의 집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으며, 지금도 그들은 꾸준한 활동 전개와 이론구축의 구동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들 혹은 그녀들은 현행 헌법과 그것이 상징하는 전후 체제를 노골적으로 혐오하며, 어떻게 해서든 무너뜨리고자 한다. 그리하여 종교적 차이에서 비롯된 작은 이견들을 버리고 하나로 대동단결해 일본회의라는 정치집단으로 결집했다”며 “일본회의는 표면적인 얼굴로 우파계의 유명한 문화인, 경제인, 학자를 내세우지만, 실제 모습은 ‘종교 우파단체’에 가까운 정치집단이라 할 것이다. 거기에 배경음악처럼 낄린 것이 바로 전쟁 전 체제, 즉 천황 중심 국가체제로의 회귀 욕구다”고 강조했다.

 

‘생장의 집’…일본회의의 큰 뿌리

 

아오키 오사무는 <일본회의의 정체>에서 “‘생장의 집’은 전후 일본의 우파운동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고, 일본회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본회의 내부와 주변에는 실제로 ‘생장의 집’ 출신자가 많다”며 “이들의 뿌리에는 ‘종교심’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으로 현재 일본회의 사무총장인 가바시마 유조는 학생 때부터 우파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대학시절 ‘생장의 집’ 계열 서클인 ‘정신과학연구회’의 일원이었고, 나가시키 대학 우파 학생모임인 ‘유지회’를 주도해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신좌익계 학생 운동이 한창이던 1966년 전국에서 유일하게 교양학부 자치회 선거에서 이겼다. 이후 ‘유지회’는 나가사키 대학 학생협의회, 규슈 학생자치체연락협의회(규슈 학협), 우파학생의 전국조직인 전국학생자치체연락협의회(전국학협)의 결성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배후에서 지지해온 것이 ‘생장의 집’과 그 학생조직인 ‘생장의 집 학생회전국총연합(생학련)’이었다. 그의 부모 역시 생장의 집 신자로,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생장의 집’ 교소 다니구치 마사하루의 사상을 접하고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전통을 지닌 국가이며, 국민주권이나 정교분리 등과 같은 시상은 일본 특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해 왔다. 자민당 참의원이자 아베의 보좌관인 에토 세이치, 일본정책연구센터 소장인 이토 데쓰오 등도 대표적인 ‘생장의 집’ 출신이다.

 

<일본회의의 정체>에 따르면 ‘생장의 집’은 전쟁 이전부터 전후까지 군부의 전쟁 수행을 전면적으로 찬양하고 협력했는데, 다니구치는 오모토교 신자 시절에 쓴 ‘황도령학강화(1920년)’에서 “전 세계 인류가 행복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려면 날 때부터 신이 지도자로 정한 일본 황실이 세계를 통일해야 한다. 이는 일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인류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서 “시작부터 일본은 세계의 지도국이며, 일본인은 세계의 지배자로서 신에게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이다”라고 주장했다.

 

미일전쟁이 임박했던 1940년에는 기관지 ‘생장의 집 9월호’에서 “천황으로 향하는 길이야말로 충(忠)이라. 충은 천황에게서 흘러나와 천황으로 돌아간다. 천황을 우러르고, 천황에게 귀일해 나를 버리는 것이 충”이라고 했고, 전쟁 후에는 “대일본제국은 신국이며, 대일본 천황은 절대적인 신, 대일본민족은 그 적자”라며 “비정상적 점령기 상황에서 강요된 현행 헌법은 무효고, 이를 파기해 메이지 헌법을 복원한 후 개정해야 한다”고 수시로 주장했다.

 

다만, ‘생장의 집’은 1983년 정치와의 모든 관계를 끊는다고 선언했다. 2016년 6월9일 ‘생장의 집’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당 교단에서는 전 ‘생장의 집’ 신자들이 냉전이 끝난 오늘날에도 냉전 시대의 창시자가 설파한, 이미 역사적 역할이 끝난 주장을 고집하며 활동하는 점이 진심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일본회의가 주장하는 정치 노선은 ‘생장의 집’의 현재 신념이나 방법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으로, 분명히 말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신도 종교집단 주축인 ‘일본회의’

 

일본회의의 뿌리가 생장의 집 출신 우파 정치인들이었다면 현재 일본회의를 지탱하는 주축은 이세 신궁을 본종으로 신사본청을 정점에 둔 신도 종교집단이다. ‘신도’란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로, 일본의 ‘신’ 관념에 입각, 일본인들 사이에 전개된 전통적인 종교적 실천과 그 배경을 이루는 생활 태도 및 이념 등의 총체를 말한다. 신도의 주 건물을 ‘신사’라 하고 천황과 관계된 신을 모시는 신사는 신궁이라 부른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천황 중심의 교단을 확립한 국가신도가 등장해 국가의 비호 아래 ‘천황 중심주의’와 군주체제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며 사람들을 무모한 전쟁으로 내몰았다.

 

전쟁 패배 이후 1946년 1월1일 천황이 “천황은 살아있는 신이고, 일본 국민은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민족이며, 따라서 세계를 지배해야 할 운명을 지녔다고 한 것은 가공적인 관념”이라고 한 ‘인간 선언’을 한 이후 신앙의 자유 및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국가신도는 해체됐지만, 신사본청을 통해 국가신도 상당 부분이 계승됐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전후 체제에 대한 울분과 전쟁 전 체제를 향한 동경, 회귀 욕구가 계속 꿈틀거렸고, 급기야 신도정치연맹(이하 신정련) 결성을 통해 일본회의와 보수 정계를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미국이 만든 헌법으로 상징되는 전후체제를 거부하면서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황실과 일본의 문화전통을 소중히 하는 사회건설 지향 ▲일본의 역사와 특성을 고려한 자랑스러운 신헌법의 제정 지향 ▲일본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야스쿠니의 영령에 대한 국가의례 확립 지향 ▲일본의 미래에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을 키우는 교육 실현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도의 국가,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국가 확립을 정책목표로 한다.

 

책에 소개된 저자와 모로오카쿠마노 신사의 신관 이시카와 마사토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신사본청은 어떤 집회에 마음을 먹고 사람들을 동원할 경우 1만명에서 2만명 정도는 쉽게 동원할 수 있는 동원력을 가졌고, 메이지 기념관 그룹 자회사의 연매출은 약 110억엔(1,100억원)에 이르는 등 신사계에서 도 눈에 띄는 자금력을 자랑한다. 이들은 일본회의 산하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모임’이 주도하는 헌법 개정을 위한 1,000만명 서명운동을 신사 경내에서 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기관지 ‘신사신보’를 통해 “만약 신관이 신사를 지키는 데에만 힘쓰고 나라의 근본을 바로 잡는 활동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대체 어떻게 되겠는가?”라면서 “우리 자신의 열의와 활동 노력으로 헌법 개정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로부터 풀뿌리 정치운동·위로부터 정치력

 

이처럼 ‘일본회의’는 생장의 집 출신 우파 정치인들이 만든 이론과 신사본청의 막강한 동원력·자금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일본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국민운동을 20년 이상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야스쿠니 신사 20만 참배’, ‘헌법 개정을 위한 1,000만명 서명운동’ 등이 그것이다.

 

일본회의는 특히 지방조직을 탄탄하게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1960년대부터 1970년 초반 학생 사회운동의 주류를 이뤘던 신좌익계에 대응하고자 결성된 우파 학생운동 출신들은 좌파운동의 수법을 흉내 내고 배워 우파운동에 적용해왔다. 이들의 운동방식은 1979년 ‘원호법제화 성공’이라는 성과를 거두면서 ‘국민회의’를 탄생시켰고, 이미 조직돼 있던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합쳐져 ‘일본회의’로 완성된다. 자금력과 조직 동원 면에서는 신사본청이나 신사계, 신흥종교계 등의 강력한 후원을 받으며 ‘국민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인 조직 구축과 서명운동 등 ‘풀뿌리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동시에 중앙에서는 ‘국민회의’ 같은 조직을 세워 대규모 집회를 여는 한편, 이에 호응하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조직을 결성, 그들을 통해 정부와 국회에 압력을 행사한다.

 

저자는 “일본회의의 수많은 프런트 단체가 광범위한 ‘풀뿌리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다양한 복고정책에 대한 지지 확대를 호소하고 있으며, 때때로 그것이 아베 정권을 자극하거나 아베 정권의 정치 목표를 지지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고 설명했다.

 

<일본회의의 정체>에 따르면 ‘국회의원 간담회’에 참여하는 국회의원 수는 2007년 9월 기준 중의원 174명, 참의원 51명 등 총 225명에서 2008년 10월에는 250명, 2015년 9월15일 기준 281명으로 늘었다. 이중 자민당 중의원이 185명, 참의원 61명 등 전체의 90% 이상이 자민당 소속이었다. 또한 2014년 제2차 아베 개조 내각에서 각료 19명 중 일본회의 소속 의원은 15명. 내각의 약 8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또한 신정련과 뜻을 같이 하는 ‘국회의원 간담회’ 가입의원 수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가입의원 수를 웃도는 중의원 223명, 참의원 81명 등 총 304명이다. 두 간담회 회원은 상당 부분 겹치는데, 제3차 아베 내각의 각료 20명 중 17명이 신정련 국회의원 간담회 회원이다. 정권 자체가 신정련과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와 별도로 ‘일본회의 지방의회연맹’에는 지방의원 1,700여명이 가입돼 있다. 전국적으로 의원 2,000여명이 일본회의의 회원인 것이다. 여기에 일본회의 회원 3만8,000명를 더하면 무려 4만명. 회원 수만 봐도 일본회의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닌 정치집단인지 알 수 있다.

 

우파 종교집단의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 동원력, 과거 우파학생운동 출신들의 이론·조직화 능력에 종교적 신념 내지는 신앙심을 가진 회원들을 바탕으로 전후 체제를 부정하고 ‘전쟁 패배 이전의 절대 천황 중심의 나라’, 즉 ‘자랑스러웠던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거대 정치집단. 그것이 ‘일본회의’의 정체다.

 

저자는 “(일본회의는) 전후 일본 민주주의 체제를 사멸의 길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악성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일본 사회 전체에 아종(亞種) 바이러스와 유사 바이러스 혹은 저질 바이러스가 확산·만연해 마침내 뇌골수, 즉 정권에까지 악성 바이러스가 파고들었다”며 “이대로 간다면 근대 민주주의 원칙조차 무너질 수 있다. 경고의 종을 울려야 마땅한 언론마저 심각할 정도로 둔감하다”고 우려했다.

 

 

아베, 日에 ‘침략 역사 반복’ 굴레 씌울 생각인가

 

‘일본은 신의 나라고, 천황은 신의 대리인, 일본인은 천황의 백성이다. 신은 완벽한 절대자로 잘못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천황도 잘못이 없다. 따라서 과거 천황의 뜻으로 행해진 일본인들의 행위, 일본의 역사는 자랑스러운 것이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일본 극우의 머릿 속에 박혀 있는 신념과도 같은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마치 종교와도 같은 것이어서 절대 흔들리지 않고, 심지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한다. 그것이 현재 일본 극우파들이고, ‘일본회의’의 일이다.

 

강상중 도쿄대학교 명예교수는 지난달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년 특별강연’에서 “아베 정권과 일본을 ‘강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과장된 사고방식이다. 2001년 한일 경제 규모 차이는 8대1이었는데, 지금은 3대1이고, ‘아베노믹스’는 좀처럼 잘 되고 있지 않다”면서 “현재 일본 정치는 사실 매우 쇠약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본에 있어서 한국과의 대결이라는 것은 ‘강한 일본’을 연기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카드”라고 지적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고, 철학자 조지 산타나는 “역사를 배우지 않은 사람은 그 역사를 반복할 운명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아베를 필두로 한 일본 극우들은 자신들의 원래 역사를 버리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바꾼 역사를 후세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스스로 역사를 잃고, 배우지 않으려는 격이다.

 

그들이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하는 대일본제국 당시 일본은 침략전쟁을 통해 아시아 패권국이 됐었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과신해 일으킨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고,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 모두를 버려야 했다. 그 아픔과 고통을 후세에 물려줄 셈인가? 아베는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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