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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日, 반도체 핵심 소재 對韓 수출규제] ‘트럼프식 무역분쟁’으로 판 뒤집기?

- ‘韓, 北에 HF 밀수출 의혹’ 제기하며 수출규제…韓 GDP 최대 8.6%↓
- ‘트럼프식 무역분쟁’으로 한일 관계 재정립 의도 …수출규제 이유로 ‘국가 안보’ 명시
- 이코노미스트 “日, 자해행위”, 뉴욕타임즈 “국제사회 물 제대로 흐려”
- 아베, 21일 참의원 선거서 과반 의석 확보…국면 장기화 가능성 커져

 

<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지난달 4일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 반도체 제조에 없어서는 안 될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 등 일본 의존도가 높은 핵심 소재 3개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우리나라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 판결에 ‘보복’하기 위해 우리나라 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반도체 산업을 ‘정조준’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일본은 전략물자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고 있는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는 추가 제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징용 피해자 배상문제를 다루기 위한 ‘제3국에 의한 중재위원회’ 구성에 응하라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역사 문제를 경제로 끌고 들어와 기술을 무기화해 글로벌 공급망을 단절시켰다는 비난이 일본을 향하고, 장기적으로 일본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출규제 외에도 일본이 한국경제를 어려움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수단은 많다는 점에서 사태는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내각은 지난달 21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곪을 대로 곪은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엉뚱하게 경제 쪽에서 터졌다. 지난해 10월30일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에 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8개월 만에 일본은 지난달 1일 플루오린 폴리이미드(PI),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HF), 포토레지스트(감광액, PR) 등 핵심 소재 3개의 한국 수출통제를 강화하는조치를 같은 달 4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6월28~29일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무차별적인 무역 원칙’을 주창한 지 불과 이틀 만의 일이다.

 

일본이 수출통제를 강화한 소재들은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것이다. 플루오린 PI는 불소 처리를 통해 열 안정성을 높인 필름으로, 반도체 패키징이나 스마트폰·TV 디스플레이(OLE

D)에 사용된다. HF는 반도체 기판 식각이나 세정에 사용되는 재료로, 나노 단위의 미세한 공정을 통해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만큼 미세한 이물질이나 파편 등을 씻어내는 세정 공정은 전체 반도체 공정의 1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특히, 반도체 제조사별로, 각 공정별로 혼합비 등이 다르기 때문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일본산 HF를 당장 대체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2~3개월 정도의 테스트를 거쳐 최적의 혼합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PR은 반도체 기판 포토마스크(Photomask) 제작에 필요한 감광액 재료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반도체 전문가 유노우에 타카시(湯之上隆) 미세가공연구소 소장은 <EETimes Japan>에 기고한 ‘전 세계 전자기기 메이커들 분노의 화살이 일본을 향한다’에서 “이번 수출규제가 적용된 PR은 첨단 반도체 제조 양산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극자외선(EUV, Extreme Ultraviolet)용 PR인 것으로 알려졌다. EUV용 PR은 신에츠 화학공업, JSR, 도쿄오우카 공업 등 일본기업 밖에 공급할 수 없다”며 “이 영향을 받는 것은 7나노미터 노드에서 제조되는 삼성전자의 최첨단 로직 반도체다. 더불어 개발이 가속돼 램프업(ramp-up, 본격 생산)을 개시한다고 하는 16나노 세대 D램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플루오린 PI와 PR은 전 세계 총생산량의 약 90%, HF는 약 70%를 일본이 점유하고 있어 해당 소재에 대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일본 의존도는 높다고 볼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당 품목의 수입액과 일본 점유율은 플루오린 PI 1,972만 달러(84.5%), PR 2억9,889만 달러(93.2%), HF 6,685만 달러(41.9%)다.

 

 

반면, 해당 품목은 일본 전체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20% 수준이다. 다른 나라로 수출선을 바꿀 수도 있다. 따라서 수출규제로 인한 일본의 경제 피해는 적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플루오린 PI 총 수출액 19억5,271만9,000달러 중 대(對)한 수출액은 4억487만1,000달러로 20.7%였으며, PR은 28억3,508만9,000달러 중 2억9,889만1,000달러(10.5%), HF는 7,535만 달러 중 6,729만7,000달러(89.3%)였다. HF 비중이 크긴 했으나 수출액 규모가 작아 영향도 적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HF를 제외하고는 미국, 대만, 중국 등의 나라 수출이 한국에 비해 더 많아 일본기업들의 피해가 적고,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큰 반도체 산업을 ‘정조준’한 것이다.

 

반도체 소재·부품 국산화, 왜 못 했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반도체 제조 강국’이라는 이름표가 얼마나 ‘속 빈 강정’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반도체 제조를 위한 재료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외국에서의 공급이 끊기게 되면 산업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8.2%, 소재 국산화율은 50.3%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에 필요한 소재와 장비는 국산화율이 90%에 이른다는 점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지금까지 국산화가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믿지 못하고 안 쓴다’는 볼멘소리도 있지만, 반도체 제조 공정이 점점 복잡해지고, 미세화해 기존에 사용하던 것을 바꾸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화학 소재들은 제조사별로, 같은 제조사라고 해도 공장별, 공정별로 필요한 혼합비 등이 다르고, 같은 소재라고 해도 그것을 생산해 내는 업체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다. 소재를 바꾸려면 자사 공정에 맞는지 테스트를 해야 하는데, 거기에만 몇 개월이 걸리고, 자칫 공정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국산 소재를 써야겠다며 나설 기업은 없다는 것이다.

 

품질과 기술력도 국산 소재 사용을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불화수소를 예로 들면, 반도체 기판 식각과 세정에 필요한 순도 99.999% 이상의 고순도 불화수소가 필요하지만, 이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국내 업체는 없다. 경제성이 부족한 점도 국산화를 어렵게 했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달 1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일본 경제 제재의 영향과 해법’ 세미나에서 “굉장히 많이 사용되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은 반도체 칩에한 번 도포할 때 몇 마이크로 정도밖에 도포되지 않는다. 필수 공정임에도 그것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화학업체 입장에서 보면 규모가 다른 품목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것”이라면서 “(소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업 전체 수익에 기여할 만큼의 양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인 개발을 하지 않았고, (미국이나 유럽의 화학업체들도) 그것을 제공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발달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산업 환경도 이유로 꼽힌다. 정인교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오늘날처럼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전 세계에서 제일 잘 만들어진 부품·소재만 갖다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 모든 것을 우리가 다 만들어서 쓴다면 스마트폰 하나 가격이 너무 고가라서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日 ‘화이트 국가 리스트 제외’ 으름장

 

일본이 플루오린 PI, HF, PR의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한국으로 수출하는 일본 기업은 계약 건별로 일본 정부에 수출심사를 통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 기업은 제품명, 판매처, 수량, 사용 목적, 방법을 적은 서류, 무기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각서 등을 경제산업성에 제출해야 하며, 신청에서부터 허가까지 약 90일이 소요된다. 수출을 완전히 막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수출 허가 심사에 들어갔을 때 소요되는 시간이 크게 늘어나게 됐고, 허가가 떨어지리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라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서는 어쨌든 생산에 대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일본 정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전략물자 수출에 있어 허가절차 간소화 혜택을 제공하는 안보상 우방국(화이트 국가) 목록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는 추가 제재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외국환 및 외국무역관리법(이하 외환법)’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 독일, 영국 등 27개국을 화이트 국가로 지정해 첨단장비 등 전략물자 수출 시 허가 심사를 면제해왔다.

 

일본의 수출통제제도는 ▲리스트 통제(List Control)과 ▲상황허가 통제(Catch-all Control)로 나뉜다. ‘리스트 통제’는 ‘수출무역관리령’상 통제목록에 올라 있는 물품을 수출할 때 경제산업성의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이다. ‘화이트 국가’는 ‘리스트 통제’만 적용받고, 한 번 허가를 받으면 3년간 유효하기 때문에 수출절차가 훨씬 간소화되고 소요되는 시간도 짧다. 7월4일 단행된 수출규제는 ‘수출무역관리령’ 일부를 개정해 한국에 대해서만 해당 품목의 수출규제를 강화한 것이지, 한국을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은 아니다.

 

‘상황허가 통제’는 무기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 확실시되는 식량, 목재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전략물자를 그 대상으로 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시행령을 개정할 경우 우리나라는 ‘상황허가 통제’를 적용받아, 전자부품, 공작기계, 통신기기, 탄소섬유 등 850여개의 전략물자에 대해 건별로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출규제 대상 품목이 늘어나게 되는 만큼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산업에서 더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허가의 유효기간은 6개월로 줄어들게 된다. 일본은 이번 달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日 “韓의 불화수소 北 밀수출 의혹” 억지 주장까지

 

일본의 이같은 조치는 징용 피해자 배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국제법 위반 상태가 됐다며 한국 정부의 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또 한일청구권협정에 규정된 분쟁처리 절차인 ‘제3국에 의한 중재위원회’ 구성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해왔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 1대1 기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중재위 구성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달 1일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를 발표하면서 “수출통제 체제는 국제적 신뢰 관계에 근거한 것이나 관련 부처 검토 결과 일본과 한국 사이의 신뢰 관계가 심각하게 저해됐다. 한국과 이러한 관계하에서 수출통제에 관해 협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며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수출무역관리령’ 개정 취지를 고시하면서는 “한국이 연관돼있는 수출통제 건에서 ‘부적절한 사례’가 발생한 바 있으므로, 적절한 수출통제가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국제평화 및 안전 유지’ 등 ‘국가 안보’를 이유로 들었다. 이는 한국을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하지 않는다면 국가 안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면서 아베 총리 등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출한 불화수소를 북한으로 밀수출했을 수 있다” 식의 의혹을 제기했다.

 

일본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한 것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General Agreement on Traiff and Trade)’ 제21조(안보예외)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 부연구위원은 ‘일본의 對한국 수출규제 강화에 대한 국제통상법적 검토’에서 “해당 조항 (b)항의 ‘자신의 필수적인 안보이익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체약당사자가 간주하는’이라는 표현 때문에 미국은 제21조에 따른 안보이익 보호의 판단·결정 주체는 미국 자신이며, WTO 패널이나 상소기구는 이에 대해 판단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해왔다”며 “이번 사안에 대해 WTO 제소가 이뤄진다면 일본도 미국과 유사한 논리를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GATT 제21조 (b)항은 WTO 회원국이 자신의 필수적인 안보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하는 3가지 유형의 조치를 취하는 경우 GATT상의 의무위반이 정당화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3가지 유형은 ▲핵물질 관련 조치 ▲전쟁도구(무기, 탄약 등) 거래 및 군사시설 공급 관련 거래에 대한 조치 ▲전시 또는 국제관계에 있어 비상시의 조치다. 이 부연구위원은 “일본은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를 신뢰할 수 없으며, 한국으로 수출된 화학물자 등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에 유입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국가안보 예외를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관련해서 올해 4월26일 WTO는 GATT 제21조에 대한 실질적 해석이 담긴 ‘러시아 통과 운송에 대한 조치’ 사건 패널보고서를 채택했다.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출발해 자국을 거쳐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즈스탄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철도를 통한 운송을 금지 또는 제한시켰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2016년 9월14일 WTO에 제소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조치가 GATT 제5조 및 제10조 등을 위반한다고 주장했고, 러시아는 자국의 조치가 GATT 제21조에 의한 국가 안보 예외라고 주장했다. WTO 패널들은 러시아의 조치가 국제관계에 있어 ‘비상시에 취해진’ 조치이며, 제21조 두문에 규정된 요건들을 모두 충족시켰다고 판단, 러시아의 GATT 제21조 주장을 인용했다. 다만, 회원국의 재량의 범위를 조항에 따라 검토할 수 있다고 해석, 러시아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日, ‘트럼프식 무역분쟁’으로 韓과의 관계 판 바꾸려고 하나?

 

이같은 점으로 미뤄볼 때 일본이 이번 수출규제 조치와 그 배경으로 한국의 북한에 대한 불화수소 밀수출 의혹을 제기한 데는 양국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와 대미무역수지 흑자 등을 이유로 중국과 무역분쟁을 일으키고, 이를 정치화해 무기로 삼았다. 2017년 4월, 미국 상무부는 이란과의 위법 거래를 이유로 중국 2위(세계 4위)인 ZTE(중흥통신)에 대해서는 이란과의 거래를 이유로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7년간 금지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미국 IT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러지가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푸젠진화’를 자사 기밀탈취 혐의로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제소하자, 상무부는 이를 ‘미국 국가 및 경제 안보의 위협’으로 간주해 2018년 10월29일 미국 기업의 푸젠진화에 대한 수출을 제한했다.

 

같은 해 11월22일에는 ‘5G 네트워크가 사이버 공격에 취약하다’는 이유를 들어 미국 기업과 군사동맹국에게 화웨이의 장비 거래 및 사용을 금지했다. 또한 중국 정부가 ‘중국제조2025’를 통해 집중 육성을 계획한 품목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제력을 키우며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들이다.

 

일본의 이번 수출규제 조치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을 읽을 수 있다. 역사·외교 등 정치영역의 문제를 경제로 끌고 들어와 이를 무기화했고, ‘한국이 유엔 대북 제재 결의를 어기고 북한에 핵무기 제조에 전용될 수 있는 불화수소를 밀수출했다’는 것을 수출규제 조치의 이유로 들었다. 결국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들어 경제적 손실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불리한 처지에 놓이도록 하려는 목적인 것이다.

 

또한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G3’로 평가될 정도로 영향력이 큰 나라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점, 일본 입장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일청구권협정·위안부 합의로 모든 것이 정리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한국에서 사과나 배·보상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이런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식의 생각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국제법 위반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일본을 바짝 추격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는 견해도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88년 일본 GDP는 3조720억 달러로, 한국 GDP 1,960억9,640만 달러와 15.6배 차이가 났지만, 지난해(각각 4조9,710억 달러, 1조6,190억 달러)에는 3.1배로 좁혀졌다.

 

정인교 교수는 “일본은 아마 한일 관계의 판을 바꾸려고 하는 구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일본은 ‘한국은 국제협정도 안 지키는 나라’, ‘신뢰할 수 없는 나라’, 더 나아가 ‘전략물자가 다른 데로 새는 것 같다’는 의혹까지 제기하면서 한국을 문제가 있는 나라로 판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며 “WTO 긴급의제로 이 건을 상정한 것은 잘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과 일본이 논쟁을 한다고 하면 우리 편이 될 만한 나라가 별로 없기 때문에 (한국은) 경제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제외교 무대에 있어서도 불리한 처지에 놓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련의 사태를 ‘새로운 생산 거점 재조정화 효과를 노리기 위한 무역분쟁’이라고 규정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무역분쟁은 교역 조건을 개선해서 이익을 보자는 ‘관세 전쟁’이 대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격이 올라도 물량만 확보할 수 있으면 원가 절감이나 기술 개발, 가격을 대내외 수요자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했기 때문에 피해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미중 무역분쟁에서 보듯이 어떤 규제를 통해서 화웨이의 공급체인 자체를 붕괴시키는, 화웨이의 공급체인이 붕괴되면 관련 기업들이 모두 시장에서 퇴출되고, 그 공백을 기술 수준이 높은 기업이 진입해서 이익을 보자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 이는 새로운 생산 거점 재조정화 효과를 노리기 위한 무역분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한일 간 무역분쟁을 어떤 공급체인을 붕괴시켜서 그 빈자리를 노리는, 그래서 이익을 보자는 것으로 규정하면 피해 규모는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韓 GDP, 최대 8.58%↓·日 GDP 0.04%↓…보복하면 1.2%p 추가 피해

 

관련해서 조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보복 여부에 따라 시나리오를 구성해 분석했다. 그 결과 일본의 수출규제가 현재 상황(플루오린 PI, HF, PR)에서 유지될 경우 한국의 GDP는 최대 8.5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일련의 사태가 과거의 무역분쟁 양상으로 전개됐을 경우 우리나라의 GDP는 0.15~0.22% 감소했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만든 반도체가 전 세계의 70%를 점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 대체성이 낮다는 점을 반영하면 GDP 감소 수준은 0.09%까지 떨어진다. 사실상 거의 피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는 반도체 핵심 소재의 수출통제를 강화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그것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반도체 소재 부족분이 15%일 경우 한국의 GDP 손실은 0.12% 정도였지만, 부족분이 증가할수록 GDP 감소폭이 증가해 부족분이 80%에 달하면 GDP가 8.58% 감소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수출규제 대상 품목이 일본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한국 이외의 수입처가 다수 존재하고 있어, 수출규제로 인한 일본의 GDP 손실은 평균 0.04% 내외로 미미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며 “정교하게 계획된 무역분쟁”이라고 말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일본에 보복하면 일본도 GDP가 1.2% 감소됐지만, 우리나라도 1.2%p의 추가 피해가 발생했다. 수출규제로 일본 경제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만한 품목이 없기 때문이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우리가 보복을 해서 일본에 30% 정도의 생산 차질을 발생시킬 수 있다면 일본 GDP는 1.75% 정도 감소하는 등 평균 1.21% 정도의 GDP 감소가 관찰됐다”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복을 강화할수록 GDP 손실이 적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인데, 이는 일본이 내수기업으로 우리 수출기업을 대체하는 효과가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일본에 피해를 주려고 보복 조치를 해봐야 우리만 더 크게 다친다는 말이다.

 

한편, 이번 사태로 전기·전자산업에서 시장 지배력을 넓히며 이익을 보게 되는 나라는 중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GDP 증가 0.03%로 미미한 수준이지만, 중국의 GDP는 0.5~0.75%까지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났는데, 특히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던 전기·전자산업의 경우 한국과 일본의 생산이 각각 20.6%, 15.5% 감소하는 반면, 중국의 생산은 2.1%증가하면서 해당 산업의 독점적 지위가 중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4차 산업을 일본과 함께 협력과 건전한 경쟁을 통해 4차 산업에서 주도적인 여건을 마련하는 데 있어 이런 한일 분쟁은 결코 우리한테 도움이 안 된다”면서 “미중 무역분쟁이 ‘체제 전쟁’으로까지 확대 해석되고, 실질적으로 그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 블록화와 국가 자본주의체제의 세 대결에 있어 대부분 자유시장경제 블록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분쟁은 자유시장경제 블록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안 되는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 “日 수출규제, 자해행위”

 

일본의 수출규제에 일본 내부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일본의 조치를 비난했다. 뉴욕타임즈는 7월15일 ‘자유무역 탄압에 국가안보 내건 일본, 익숙하게 들리지 않나?(Japan Cites ‘National Security’ in Free Trade Crackdown. Sound Familiar?)’에서 아베 총리가 G20 정상회의 이틀 뒤 수출규제가 이뤄진 점을 언급하며 “‘국가안보’라는 막연하고 불특정적인 이유로 전자산업에 필수적인 일본의 화학물질에 대한 한국의 접근을 제한했다”며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자유무역에 타격을 준 지도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기사에서 브라이언 머큐리오 홍콩 중국대학교 국제통상법 교수는 “만약 이런 수법이 자주 쓰인다면 국제무역시스템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며 “한두 국가가 아닌 10~15개 국가가 잘못 규정된 국가안보적 예외를 근거로 이런 조치를 취한다면 국제무역의 규칙이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 박 로욜라 메이마운트대학교 국제정책학 교수는 “진짜 문제는 일본의 이번 조치가 다른 나라를 위협하기 위해 무역이나 경제적 조치를 무기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니엘 슈나이터 스탠포드대학교 교수는 “일본이 마치 수출규제를 국가 안보적 조치인 것처럼 규정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물을 제대로 흐리고 있다”면서 “한국이 물러서지 않으면 어쩔 건가?”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7월18일 ‘한일 사이의 무역분쟁에서 울리는 트럼프의 메아리(A trade dispute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 has Trumpian echoes)’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 기업들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계를 지배하는 회사들이다. 만약 일본이 수출을 중단하면 그 고통은 전 세계 기술 공급망으로 퍼질 것이다. 일본 자신이 수출통제라는 화살의 과녁임을 알아야 한다”며 일본의 수출규제를 ‘자해(Japan’s selfharm)’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가 생산하는 반도체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72.6%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1분기 D램 매출액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42.7%로 1위, SK하이닉스가 29.9%로 2위다. 따라서 일본의 수출규제로 두 반도체 제조사의 재료 재고가 소진돼 반도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스마트폰에서부터 PC, TV, 저장장치, 서버 등 전 세계 IT 관련 산업과 기업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유노우에 소장은 “EUV PR의 재고가 1달치 밖에 없는 상태에서 최첨단 AP의 제조가 2개월 정도 밀리면 1,000만대 단위의 스마트폰 생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만약 EUV가 첨단 D램 제조에 이미 적용되고 있다면 EUV PR의 재고가 끊어져서 첨단 D램 제조가 정지할 경우 2018년에 약 14억대 출하된 스마트폰, 약 3억대의 PC, 약 1억5,000만대의 태블릿, 약 1,175만대의 서버 생산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 애플, HP, 델 등의 분노의 화살이 D램 제조업체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아닌 대(對)한 수출규제를 실시한 일본 정부로 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삼성은 PC용뿐만 아니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클라우드 업체의 데이터 센터에 사용되는 서버용으로 대량의 SSD를 공급한다. 최근 클라우드 메이커들이 데이터 센터의 설비투자를 재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만약 삼성으로부터의 SSD 공급이 멈춘다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클라우드 업체들은 그 원흉이 된 일본 정부를 격렬하게 비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1~2년이면 일본제 불화수소가 없더라도 중국산이나 대만제 불화수소에서 각종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 정부는 7월3일 반도체 재료나 장치의 국산화 지원에 매년 1조원의 예산을 충당할 구상을 발표했다. 가급적 신속하게 일본산을 배제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일본의 재료 메이커나 장치 메이커는 삼성, SK하이닉스, LG전자와 전개해왔던 큰 비즈니스를 잃게 된다. 재료나 장치 메이커는 업계 선두 주자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경쟁력을 높여 비즈니스를 확대해 온 것인데, 그 귀중한 기회가 일거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면서 “한번 망가진 신뢰 관계는 두 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무덤을 판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업, 대체재 확보 분주…소비자, 불매운동 확산

 

우리 기업들은 일본산 소재의 안정적 확보가 사실상 어렵게 되자 대체 공급처를 찾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7월7일 일본으로 떠나 12일까지 머물며 현지 업계 관계자들과 접촉해 해당 소재의 우회 확보 방안과 협조를 요청, 긴급 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도 22일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같은 달 17일에는 산둥성에 소재한 화학기업 ‘빈화그룹’이 한국의 일부 반도체 회사로부터 전자제품 제조급 HF 주문을 받았다고 중국 상하이증권보(인터넷판)가 보도하기도 했다. 에칭가스는 상대적으로 일본 의존도가 낮은 소재로, ‘빈화그룹’은 여러 차례 샘플 테스트와 실험을 거친 후 한국 기업과 정식 협력관계를 맺게 됐다.

 

 

국민은 자발적인 일본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일본에 대응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이틀 만에 ‘보이콧 재팬’ 이미지가 등장했고, ‘노노재팬’같은 사이트가 만들어져 불매운동 리스트를 제공하는 등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됐던 과거의 불매운동과 달리 이번에는 체계적이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확산되는 추세다. 리얼미터의 지난달 18일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6%가 “현재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답했다.  주 만에 6.6%p 증가한 것이다.

 

7월21일 이마트에 따르면 7월(1~18일) 일본 맥주 판매량은 전월대비 30.1% 감소했다. 7월 첫째 주 –4.2%, 둘째 주 –3.7%, 셋째 주 –6% 등 불매운동이 확산되는 만큼 시간이 갈수록 판매량 감소율은 더 커졌다. 일본산 라면은 31.4%, 소스류·조미료는 29.7% 감소했다. 같은 기간 편의점 CU에서는 일본 맥주가 전월대비 40.1%나 줄었고, 국산 맥주는 2.8% 늘었다.

 

불매운동의 주요 타깃 중 하나인 ‘유니클로’ 매출은 30%가량 감소했다. 유니클로의 한국 매출 규모는 일본과 중국에 이어 3번째로 많다. 특히, 일본 본사 임원의 한국 불매운동에 대한 폄하 발언은 불매운동뿐만 아니라 유니클로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매출 급감에 놀란 유니클로는 “부족한 표현으로 불쾌하게 해 죄송하다”며 두 번이나 사과를 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싸늘하다. 이밖에 데상트, ABC마트 등 일본 브랜드의 매출도 전년대비 10% 이상씩 하락했다.

 

 

여행업계에서는 일본에 대한 신규 예약 감소와 기존 예약 취소 등이 크게 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 여행 신규 예약자 수는 평년에 비해 70% 이상 줄었고, 여행 예약 취소율은 50%를 넘는다. 일본 정부 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은 753만9,000명(24.1%)으로, 중국인(838만명, 26.8%)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또한 이들이 일본에서 약 54억 달러(약 6조3,552억원)를 썼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이 쓴 415억 달러(약 48조8,455억원) 중 중국 140억 달러(약 16조4,780억원, 34%)에 이어 두 번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민의 일본 여행 거부는 일본 지역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우리 국민은 도쿄 등 도시를 찾기보다는 오사카, 후쿠오카, 훗카이도 등 지방 중소도시를 더 많이 찾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일본의 외국인 관광객 46.2%가 도쿄를 찾은 것과 달리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오사카(33.8%)와 후쿠오카(23.5%)를 가장 많이 방문했다. 도쿄는 21.4%로 3위에 그쳤다.

 

이번 불매운동이 과거와 다른 또 하나는 물건을 파는 쪽에서도 참여를 했다는 점이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담배·맥주·과자 등 100여개 품목의 일본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전국마트협회 회원사 3,000여 곳과 슈퍼마켓 2만여 곳도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불매운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에서 한국산 불매운동으로 결국 롯데마트가 철수했다. 그 때문에 중국에는 2만6,500명이 실직하게 됐다. 롯데마트는 연 3조원의 매출을 중국에서 올렸는데, 그 매출의 90%, 2조7,000억원은 중국산 제품 판매로 나온 것이다. 많은 중국산 제품이 롯데라는 아주 좋은 판매처를 잃은 것”이라면서 “일본산 최종 소비재를 뜯어보면 일본산이 아니다. 한국산을 뜯어보면 한국산이 아니다. 글로벌 생산이 가치사슬을 통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경제보복, 장기화 되나?

 

이번 사태는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WTO 제소 방침을 밝혔는데, 제소를 한다고 해도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 WTO 상소기구에는 총 7명의 위원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3명뿐이고, 올해 연말이 지나면 2명의 임기가 끝나 1명만 남게 된다. 사실상 기능이 정지되는 것이다. 기능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해도 최종판결까지 2~3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의미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난달 21일 일본에서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개헌 발의 의석수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과반 의석 확보에는 성공하며 현 정국을 계속 이끌어갈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한 추가 보복 단행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일본은 7월24일까지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에 대한 업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개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밖에 일본이 우리 경제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금융, 투자자본 등 다양하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미쓰비시파이낸셜그룹,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야마구찌 등 일본계 은행의 국내 총여신은 18조2,995억2,900만원. 지난해 3월 19조7,221억9,700만원에서 6월 21조2,600억6,700만원으로 늘었다가 9월 21조817억2,900만원, 12월 19조5,196억4,800만원으로 차츰 줄여왔다. 향후 신규 대출을 줄이거나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우리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의 올해 1분기 해외직접투자는 지난해보다 167.9% 증가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오히려 6.6% 감소했다. 금융시장에서도 일본의 직접투자금은 줄어 전년동기대비 6.6%, 전분기대비 33% 감소한 6억3,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사태가 장기화하면 더 큰 제재가 이뤄질 수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 정치·외교적인 해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허윤 교수는 “미국에 이 문제의 중재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분쟁을 벌이면서 보호주의 양자 협상에 앞장서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줄이고, 일본과 외교적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단기와 중장기 대책들을 분리해서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본 입장에서는 잽을 날렸다고 본다. 우리가 좀 더 정치적, 외교적으로 풀지 않으면 더 강한 핵 펀치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정부가 좀 더 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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