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전 임관 50여일 만에 서해안 해안초소에서 숨진 채 발견돼 '자살'로 처리된 고(故) 윤병선 소위의 사망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권익위는 11일 윤 소위의 동생인 윤 모씨가 사망원인을 다시 조사해 명예를 회복해 달라며 제기한 고충민원에 대해 명확한 사망 원인이 규명될 수 있도록 국방부에 재수사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윤 소위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학군 19기로 1981년 6월 경기도 시흥 소재 군부대에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50여일이 지난 8월16일 새벽 오이도 부근 해안초소에서 순찰 근무 중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군부대는 "술에 취한 부하가 총으로 죽이겠다고 위협한 뒤 실제로 총알이 발사되는 하극상이 발생했는데, 중대장이 부하를 질책하지 않고 그냥 데리고 간 것에 불만을 품고 총기로 자살했다"고 밝혔다. 이후 유족들이 이의를 제기해 2001년에 재조사가 진행됐지만 사망 원인은 바뀌지 않았다.
유족들은 올해 3월 "군 복무를 마친 뒤 대기업에 입사가 예정되어 있었고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등 자살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누명을 벗겨주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당시 수사를 맡은 군 사법 경찰관 보고서를 보면 근무 중이던 부사관 2명이 술을 마시다 윤 소위에게 적발됐고, 근무지로 돌아가라는 윤 소위의 지시를 받은 A 부사관은 불만을 품고 M16 소총에 실탄을 장전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 과정에서 옆에 있던 B 부사관이 A 부사관의 소총을 빼앗는 순간 공포탄 한 발이 발사됐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윤 소위는 부하로부터 협박받은 자신에게 아무런 위로의 말도 없었고 두 부사관을 문책하지 않은 중대장에게 불만을 품고 고민하다 나무 중간 부분에 개머리판을 밀착시키고 총구를 자신의 명치에 밀착해 자살했다고 보고서는 적었다.
그러나 권익위는 당시 보고서와 사체검안서의 기록이 다르고, 참고인의 진술이 엇갈린 점을 문제로 보았다. 보고서와 사체검안서의 사입구(총알이 몸속으로 들어간 곳)와 사출구(총알이 몸을 뚫고 나온 곳)의 크기, 총알의 관통 경로가 달랐다. 또 보고서에는 '현장 즉사'로 기록돼 있었지만, 2001년 재조사 때 중대장과 전령의 진술조서에는 "소대장실에 왔을 때 사망", "소대장실에 왔을 때까지 숨을 허덕이고"라고 기록돼 있었다.
권익위는 이러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국방부가 2001년 재조사를 했지만, 유가족이 여전히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점 ▲당시 사고 현장에 윤 소위의 유서나 목격자가 없었던 점 ▲윤 소위에 대한 관계자들의 평판이 사고 당시와 재조사 때인 2001년이 상반되는 점 ▲2001년 재조사 때 평판을 보면 윤 소위가 하극상을 당했고 힐책하지 않는 중대장의 행위에 불만을 품고 자살했다는 결론이 납득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재수사를 통해 윤 소위의 사망사건을 다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