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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회찬 옭아맨 정치자금법…14년 만에 개정되나

- 노회찬 의원 죽음 계기로 정치자금법 개정 목소리 커져
- 원외 정치인에게만 불리…불법 정치자금 유혹 쉽게 빠져
- ‘정치자금비리 → 정치혐오 → 정치자금 축소’ 악순환
- 국민 10명 중 6명, 정치자금법 개정 찬성

 

[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지난 7월23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 의원은 유서에 20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16년 3월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4,000만원을 받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노 의원은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지 않은 이 돈에 발목을 잡혔다. 노 의원의 죽음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그가 돈을 받은 행위를 탓하기보다는 가장 깨끗했던 진보 정치인마저 돈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한국 정치 현실의 민낯을 마주했다. 시민들은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추모의 행렬로 노 의원을 떠나보냈다. 이제 국회는 다시는 노 의원과 같은 안타까운 일이 없도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하지만 이 숙제를 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의 정치자금법을 만든 배경에는 시민들의 이른바 ‘정치 혐오’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 모금을 엄격히 제한하는 효과는 있지만 제2의 노회찬과 같은 정치인이 다시 등장하기 어려운 구조를 고착시켰다.

 

현역 국회의원에게만 유리한 정치자금법


노 의원이 경공모 회원이자 자신의 고등학교 동기였던 도모 변호사에게 4,000만원을 받은 시기는 2016년 3월이다. 당시 노 의원의 직업은 ‘무직’이었다. 정치인이라고 소개는 됐지만 정치는 할 수 없었던 ‘여의도 밖’ 시절이었다. 노 의원은 2013년 2월 대법원으로부터 이른바 삼성 떡값 검사 실명 폭로 사건의 유죄를 확정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2014년 서울 동작을 재선거에 나섰지만 당선에 실패했다. 노 의원은 눈앞의 4,000만원을 놓고 한 달 뒤에 있을 선거와 잇단 낙선의 기억,
선거비용 조달의 어려움 등을 생각했을 것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현역 국회의원을 제외하고는 후원회를 개설해 후원금을 모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외, 즉 현역 국회의원이 아닌 지역위원장들은 선거기간에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그때서야 후원회 개설이 가능하다. 선거가 없으면 말 그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밖에 없다.

 

현역 국회의원들과 원외 정치인이 모금할 수 있는 액수도 큰 차이가 있다. 현역 국회의원은 선거가 없는 해에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에 3억원을 모금할 수 있지만, 원외 정치인은 선거가 있는 그해에 한해 1억5,000만원이 한도다. 결국 돈 많은 사람만이 현역 정치인에게 ‘비벼볼 수 있는’ 불합리한 구조다. 가난한 원외 정치인과 정치 신인은 불법 정치자금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지난 2012년 발표한 ‘한국의 현행 정치자금법의 쟁점과 대안’ 논문에서 “실제 민주통합당 서울시 ◯◯구 당원협의회위원장에 따르면, 당원협의회 운영 경비가 월 600~700만원 선이 소요된다고 한다. 물론, 현역의원의 경우 정치후원금으로 비용을 충당하지만, 원외 당원협의회 위원장의 경우 법외 조직인 관계로 중당당의 공식적인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사비로 경비를 조달해야하는 폐단이 발생한다. 그리고 당원협의회는 임의기구이므로 활동 내역과 회계 내역이 선관위의 감독 대상이 아니기에 탈법 혹은 편법적인 정당 활동을 양산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원외 당원협의회가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 부문에서 지출되는 정치자금은 상당한 규모일 수밖에 없으며 감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꽃’은 선거라지만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그나마 노 의원처럼 이름값 있는 정치인은 후원금 모금이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그렇지 않은 정치 신인은 더 힘들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한 우인철 전 우리미래 후보의 경우를 보면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정치 신인의 어려움을 잘 알 수 있다. 30대 초반의 청년 정치인인 우 전 후보는 후원캠페인 등을 통해 십시일반으로 선거공탁금 5,000만원을 마련했다. 문제는 공보물이었다. 서울
유권자 460만 가구에 보낼 공보물을 보내는 데 보통 3억이 들어간다. A4용지 한 장을 10원으로만 잡아도 4억6,000만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이에 우 전 후보는 A4 용지 8분의 1크기의 공보물을 제작하기로 했다. 그나마 처음 인쇄소에서 실제 견적의 2분의 1로 잘못 내는 바람에 우 전 후보는 손바닥만한 공보물마저 만들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결국 해결책은 우 전 후보자와 선거사무소 사무장이 인쇄소에 달려가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이처럼 현 정치자금법은 원외 및 신인 정치인들의 돈줄을 막아 놓고 있다. 애초에 현역과 출발선을 다르게 설정해 놓은 불평등한 구조다.

 

‘오세훈법’의 탄생…정치 돈줄 막아


이처럼 공고한 현역 프리미엄을 만든 정치자금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금의 족쇄가 채워진 건 14년 전인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치러진 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이화창 후보가 LG, 삼성, SK, 현대차, 롯데 등 대기업으로부터 823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한나라당이 현금을 트럭 통째로 받으면서 이 사건은 이른바 ‘차떼기’ 불법 정치자금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차떼기’는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 불을 지폈고, 2004년 국회는 정치자금을 강하게 묶어놓은 정치자금법을 개정한다. 이 법은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하면서 ‘오세훈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법안은 지구당 불법화와 정치활동 축소, 정치자금의 제한 등이 핵심이었다.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행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됐고, 중앙당 후원회도 폐지됐다.(이후 2017년 부활) 또 정치인 개인의 집회성 후원모금 행사도 금지됐다. 정치인들은 오직 후원회를 통해 개인에게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 그 한도도 개인당 2,000만원으로 축소됐다. 한 명의 국회의원에게는 개인당 500만원으로 기부금을 묶어버렸다. 지금의 국회의원 연간 후원금 액수도 이때 정해져 14년째 유지되고 있다.

 

오세훈법의 시행은 물론 긍정적인 변화도 가져왔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평균 정치자금의 수입은 1억3,100만원, 지출은 1억1,700만원으로 16대와 비교해 4분의 1정도가 감소했다. 또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국회의원의 수입 가운데 후원회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90% 안팎을 차지했다. 특히 연간 120만원까지 익명으로 기부할 수 있는 소액기부가 전체 후원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선을 웃돌았다. 반면 고액기부는 20% 후반 대였다. 선거를 포함한 국회의원의 정치 활동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소액기부를 토대로 이뤄졌음을 추론할 수 있다.

 

 

정치혐오로부터 시작된 ‘악순환의 고리’

 

그러나 앞서 밝힌 것처럼 개정 정치자금법은 원외 정치인과 정치 신인이 여의도로 넘어오는 길목에서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통한 정치자금 기부도 금지했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를 위한 유권자들의 모금 활동을 위축시켰다. 특히 이번 노 의원의 죽음으로 현 정치자금법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아울러 지금 정치자금법 태생적 배경에 ‘정치혐오’가 있다는 점 역시 법 개정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만든다.

 

2004년 차떼기로 대표되는 돈과 정치의 결탁은 국민들의 ‘정치혐오’를 가중시켰고, 정치는 멀리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해 신해철이 이끌던 밴드 ‘넥스트(N.EX.T)’가 발표한 앨범 ‘개한민국’에 ‘아들아 정치만은 하지마’라는 곡이 수록된 것도 이런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혐오가 만연하고 정치인들의 돈줄이 막혀버린 그해 노 의원은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것은 역설적이다. 하지만 정치를 계속 혐오할수록 노 의원과 같은 선의의 정치인들은 계속 불법 정치 자금의 유혹에 흔들리게 되고, 우인철 전 후보와 같은 청년 정치인은 강변북로 언저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정치자금비리 → 정치혐오 → 정치자금 축소 → 정치자금 비리 → 정치혐오’라는 악순환 구조를 끊을 필요가 있다.

 

‘지키기 어려운 정치자금법’ 개정해야

 

노 의원이 죽음과 함께 정치자금법 개정 목소리가 나왔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최병천 민주연구원 객원연구원은 “노회찬 의원의 죽음은 ‘지키기 어렵게 설계된’ 정치자금법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현행 정치자금법은 ‘돈 없는 사람, 인맥이 빵빵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를 못하도록 설계돼 있다. 혹은 ‘불법을 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돼 있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원은 또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정치자금의 유입(입구), 운영, 사용(출구) 3가지 모두를 동시에 규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한다”며 “미국 같은 경우 유입-사용에 대해서는 제한이 없고, ‘운영의 투명성’을 감시한다. 한국의 경우 유입에 대해서도 엄격하고, 사용에 대해서도 용도가 모두 특정돼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치자금법은 ‘지킬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고 했다.

 

이어 “아마도 한국 정도 되는 경제규모와 민주주의 수준을 가진 나라에서 OECD 국가를 통틀어 한국이 ‘국회의원 중에 감옥에 가는 비율’이 가장 많을 것”이라며 “그런데 그것은 한국 정치인들이 다른 나라보다 더 부정부패를 밥 먹듯이 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어렵게 설계된’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때문으로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최 연구원은 또 “유권자와 만나서 ‘공약’을 발표하는 것도 ‘선거운동 개시일’ 이전에 하면 전부 선거법 위반이다. 그리고 유권자와의 대면접촉을 가능케 하는 가가호호(家家戶戶) 방문도 한국의 경우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정치를 하려면, 일상적으로 ‘유권자’를 만나 자신의 정견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려면 밥값-차(茶)값-술값이 들어간다. 그리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돈이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를 하다보면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은 상수(常數)에 가까운데 그때 받는 돈은 죄다 불법에 가깝다. 친구들에게 받는 돈도, 선후배들에게 받는 돈도 불법에 가깝다”고 했다.


최 연구원은 “한국이었다면 절대로 오바마-샌더스같은 정치인이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오바마와 샌더스도 한국에서는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에 걸려 검찰의 ‘밥’이 돼 온갖 모욕을 당하다가 감옥에 갔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학교 선생님들이 이슬만 먹고 살지 않듯이, 정치인들도 이슬만 먹고 살지 않는다.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가난한 사람’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활비가 필요하고, 활동비가 필요하고, 상근자 급여와 사무실 유지비용이 필요하다. 월 단위로, 최소 500~3,000만원이 필요하다. 현역 정치인도, 떨어진 낙선한 정치인도, 혹은 청년-여성 예비 출마자들도 ‘정치자금’에 대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지킬 수 없도록 설계된’ 정치자금법이 한국 진보정치의 큰 별이자 ‘가장 깨끗한’ 정치인이었던 노회찬 의원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했다.


국회에서는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처음 공개적으로 정치자금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원내대표는 노 의원이 죽은 이틀 뒤인 7월25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금과 집행의 투명성 제고를 전제로 해서 정치자금의 현실화 및 정치신인들의 합법적 모금 등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자금법 개선방안을 바른미래당이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현행 우리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선거가 있는 해가 아니면, 정치신인은 정치자금
을 전혀 모을 수 없다. 정치 활동에도 돈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모금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원외 정치인들이 은밀한 자금 수수의 유혹에 노출돼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아울러 현역 의원들의 경우도 선거가 없는 해에는 1억5,000만원의 자금을 모을 수 있지만, 그 한도액이 2004년 이후 물가인상 또는 소득수준향상 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비용의 정치는 분명 지양돼야 한다.

 

그렇지만 현역의원이나 정치신인들이 불법 자금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입법자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 의원의 죽음으로부터 한 달이 좀 넘게 시간이 지났다. 김 원내대표가 말한 ‘입법자의 책무’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다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 10중 6명은 원외와 원내를 차별하고 있는 정치자금법을 개정에 동의했다(리얼미터 조사, 찬성 63.6%·반대 14.5%). 14년 전 극심했던 정치혐오가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자금법 개정이라는 숙제를 받은 국회는 노 의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MeCONOMY magazine Sept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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