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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성폭력 피해자들 “그때는 말할 수 없었다”

가해자와의 관계, 권력구조상 종속적 위치…단독 대응 불가능
‘신상노출’, ‘협박’, ‘역고소’, ‘수사 과정’ 등에서 2차 피해
폭행·협박 동반된 강간·강제추행만 처벌하는 법적 한계 깨야
“성폭력은 반인륜 범죄…단호한 법 제정으로 뿌리 뽑아야”



[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1월29일 창원지청 통영지검에서 근무하는 서지현 검사가 2010년 10월 안태근 전 검찰국장(당시 법무부 정책기획 단장)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 이후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극단 여배우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가했다는 폭로가 이어지면서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투 운동’ 태풍은 그 힘을 잃지 않은 채 범위를 정치권과 교육계 등으로 넓히며 모든 세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이슈가 됐다. 두 달여간 ‘미투 운동’이 진행되면서 그동안 자신들의 피해를 숨기고 고통 속에 살아왔던 피해자들은 이를 세상에 드러내고, 일상을 누려왔던 가해자와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던 사회에 책임을 묻고 있다. 성폭력·성추행 등 성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이를 용인하는 나라는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말할 수 없었다.


서지현 통영지검 검사의 안태근 전 검찰국장에 의한 강제추행 폭로 이후 한국 사회에는 SNS를 중심으로 “나도 당했다”는 의미의 ‘미투(Me Too)’가 봇물 터지듯 터졌다.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터지는 ‘미투’에 일부 누리꾼들은 영화 ‘살인의 추억’ 속 송강호 씨의 대사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를 떠올리며 작은 권력이라도 손에 쥐어지면 그 권력 밑에 있는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하려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꼬집고 한탄했다.



상식적으로 성폭력, 성추행 등 성범죄를 용인하는 사회는 없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성범죄는 말 그대로 범죄고, 피해자들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큰 고통과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좌절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면 그 피해자들은 사회적인 보호 속에서 가해자를 고발할 수 있어야 하고, 가해자는 법적·사회적 책임을, 피해자는 피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피해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일상을 영위하면서 보통의 삶을 살고, 승승장구했던 이들은 오히려 가해자 쪽이었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김기덕 감독, 배우 조재현 씨, 정치권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대표적이다. 이윤택 전 감독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 전 감독은 1999년부터 2016년까지 극단 여배우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가했다. 그러나 연극계에서는 소위 ‘거장(巨匠)’으로 대우받으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김기덕 감독 역시 촬영장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 감독으로서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에 성폭력을 가했지만,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는 영화를 만들어내며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인정받는 영화계 ‘거장’이 됐다.


그의 ‘페르소나(Persona, 영화감독의 세계관을 대변할 수 있는 특정 배우)’로 불리는 조 씨 역시 여배우에 대한 성폭력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으나, 연기력으로 인정받으며 소위 ‘대배우’로 평가됐다. 안 전 지사는 ‘신사적이고 깨끗한 젊은 정치인’ 이미지로 지난 대선에서 2위를 기록하며 차기 대권주자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이처럼 가해자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숨기며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좌절을 혼자 견뎌야만 했다. 그들은 그동안 왜 말하지 않은 것일까? 피해자들은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다’고 눈물을흘렸다.



피해를 세상에 드러내다


이 전 감독은 2월14일 ‘이윤택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SNS를 통한 폭로 이후 같은 달 29일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기된 성폭력 가해 사실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이 전 감독은 “제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선배 단원들이 항의할 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매번 약속을 했는데, 번번이 제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큰 죄를 짓게 된 것 같다. 연극계 선·후배님들께도 사죄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어 “18년 가까이 진행된 생활에서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행태라고 생각한다”면서 “어떨 때는 이것이 나쁜 죄인지 모르고 저질렀을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죄의식을 가지면서도 제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서 생겼을 수도 있다”고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과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서 응당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받겠다. 회피하지 않는다. 더이상이 문제는 차라리 법적 절차에 따라서 그 진실이 밝혀지기 바란다”며 성폭력 가해에 대해서 전면 부인했다.



이 전 감독의 기자회견 이후 지난달 5일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는 그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과 101명의 ‘이윤택 피해자 공동변호인단(이하 공동변호인단)’,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이하 전성협), 여성단체들로 구성된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공대위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이 전 감독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서로 연락을 주고 받기 시작했고,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상담 및 공동변호인단의 도움으로 2월28일 서울중앙지검에 이윤택 전 감독을 강간치상,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SNS를 통해 이 전 감독으로부터의 성폭력 피해를 처음으로 폭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서지현 검사의 폭로 기사를 접하고 극단(연희패거리단)을 나온 후 무던히도 잊으려 했던 이윤택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냥 묻히면 어쩌나’ 솔직히 불안하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면서도 “그만 아니었으면, 그가 아니라도, 그쯤은 가볍게 뛰어넘는 더 멋진 공연이, 더 훌륭한 연극쟁이가, 세계를 아울렀을 거장이 나왔을 텐데, 그의 잘못을 밝히고 죄값을 받게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폭로 배경을 밝혔다.


김 대표는 “아직도 망설이고만 있는 많은 피해자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괜찮다. 당신 잘못이 아니었다. 용기내달라. 잘못한 이는 벌을 받고 희망을 품은 이는 기회를 맞을 수 있게. 노력하고 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용기 내지 않아도 된다. 절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소중하며 나를 사랑해주는 지금 주변 사람들과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많이 응원해주고 끝까지 지켜봐주면 된다. 고통받는 많은 분과 함께 그분들을 대신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재령 음악극단 ‘콩나물’ 대표는 “‘미투 운동’으로 어렵게 말을 꺼낸 후 ‘그동안 왜 말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수없이 많이 받았다. 대답은 ‘그때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명이 고발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항상 아무 것도 변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캐스팅에서 제외되거나 정신이 이상하다는 공개적인 모욕을 듣고 더 힘든 스태프 일로 내쳐졌다”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체념하고 포기하고 또다시 고립됐다. 반항하거나 문제 제기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저의 무력함을 깨달았고, 혼자 고뇌하고 아파하며 괴로워했다”고 울부짖었다.


이 대표는 “이윤택은 본인의 죄가 드러날까 우리가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악질적인 헛소문을 퍼뜨려 우리를 이간질하고 고립시켰다. 이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됐다”면서 “지금 저희가 하는 일들이 상처 입은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혼자만의 아픔과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해줄 수 있고, 그로 인해 치유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선주 어린이극단 ‘끼리’ 대표는 “이윤택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어째서 이윤택은 거짓된 변명들로 가족 같이 지냈던 후배가 자신의 임신·낙태까지 폭로하게 했는지’ 너무 괴롭고 참담한 마음이 들어서 정말 어렵게 용기를 내게 됐다”며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 저희의 자식들은 앞으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 정말 엄중히 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피해자들은 왜 고립되는가? - ① 2차 피해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과 공대위 관계자들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주어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함과 동시에 철저한 수사와 사실 확인이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말은 곧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주어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수사와 사실 확인을 하지 못할뿐더러 그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2차 피해를 크게 우려했다. 피해자들을 고립시키고 위축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홍선주 대표는 “이 사건을 고백한 후 제 가족들과 극단 신상까지 노출되면서 너무나도 가슴 아픈 시간을 견뎌야 했다. 저를 비롯한 피해자들에게 더이상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도와달라. ‘왜 이제야 말하냐?’ 묻지 말고 ‘이제라도 말해줘서 다행이다’고 말해달라. ‘주목받고 싶었냐?’고 묻지 말아달라. 이런 일로 주목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며 2차 피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배복주 전성협 상임대표는 “성폭력 피해자의 대다수는 가해자와의 관계에서 권력구조 아래 종속적인 위치에 놓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자가 혼자 대응해 나갈 수 없다”며 “성폭력 피해자가 국가와 사회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자신의 제도와 법적 장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피해자 옹호와 조력 시스템이 견고하게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변호인단 이명숙 변호사(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변호사)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해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당했고, 공소시효가 어떻고, 친고죄가 어떻고 등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들이 가리키는 ‘달’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압적인 성폭력, 가해자들이 상당한 영향력이 있어 감히 하소연할 수 없는 상황, 짧게는 5년, 길게는 30년 이상이 지나야 힘들게 용기를 내 고소를 할 수 있고, 그렇게 용기를 내는 것도 극소수인 이 상황이 무엇인지, 무엇을 제거해야만 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피해 사실을 떳떳하게 밝히면서 ‘저사람 나쁜 사람이니 법이 처벌해달라, 책임을 물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이윤택 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는 단계에서 고소장을 접수하지 말라는 만류와 협박 때문에 한 명이 고소를 포기했다. 그래서 원래는 17명의 피해자가 고소장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16명이 됐다. 이 변호사는 “성폭력이라는 단어와 함께 빠지지 않고 동반되는 ‘가해자를 상대로 형사고소를 해본들 증거 부족, 공소시효, 친고죄 등의 이유로 처벌하기 어렵다’,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돈을 요구하는 꽃뱀으로 내몰린다’, ‘손해배상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등의 선입견이 많이 있다”며 “그러나 법적 지원을 해본 변호사들이라면 이런 선입견들이 모든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일부 언론 혹은 입을 통해 전해지는 과정에서 부풀려진 일부 실패한 사례들이 전부인 양 잘못 인식됨으로써 ‘미투 운동’에 동참한 피해자들과 아직도 두려움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드러내 말하거나 법적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미리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배복주 대표는 수사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배 대표는 “한국은 법적으로 피해자의 보호절차나 권리절차는 갖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절차를 수행하는 인력들의 감수성이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면서 “이를테면 조사 과정에서 ‘왜 이제 신고했나?’, ‘왜 저항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았나?’ 등의 이유를 자꾸 묻게 됨으로써 피해자들이 위축되는 부분이 있다. 마치 ‘내가 저항하지 않아서’, ‘거부하지 않아서’, ‘내 책임인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법적 절차를 수행하는 인력이 사건의 발생 원인이나 피해자의 심리적인 상황, 그렇게 신고할 수밖에 없는 맥락 등을 잘 살피면서 피해자의 입장에서 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왜 고립되는가? - ② 가해자의 역고소


피해자들이 고립되는 또 다른 이유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피해자를 상대로 한 ‘역고소’다. 이것은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하면 가해자는 피해자를 ‘무고(誣告, 허위사실을 신고함)죄’로 고소하는 것이다. 이들은 성폭력 가해 여부와 관계없이 그런 사실을 알렸다는 것만으로 피해자를 명예훼손(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피해자를 협박해 위축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이같은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 중에서도 가해 사실을 부정하며 피해자를 고소하겠다는 입장인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역고소와 같은 행위는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실이 밝혀진 다음에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부설연구소 ‘울림’과 한국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사람들은 성폭력 범죄에 대해 ▲정신이상자이거나 저소득층인 낯선 이로부터 무차별적인 폭력과 함께 야심한 시간에 갑작스럽게 당하는 것이라는 성폭력 이미지의 전형성 ▲적극적으로 저항한다면 피해를 모면할 수 있음은 물론 ▲사건 발생 후 경찰에 즉시 신고하고 ▲일생일대의 사건이기에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오류 없이 진술할 것이라는 피해자 이미지의 전형성 등의 통념을 갖고 있는데, 이는 여기에서 벗어나는 사건을 성폭력 범죄에서 제외시키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수사기관에 신고했다가 수사과정에서 ‘무고의 피의자’로 인지되거나 성폭력 가해자로부터 무고로 피해되는 피해자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진행된 후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제경찰장협회(IACP,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Chief Police)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 기소 여건은 ▲경찰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하고도 완벽한 수사 완료 ▲수사 결과 성폭력이 애초부터 발생하지 않았고 시도 조차 되지 않았다는 물리적 증가 제시 ▲피해자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행동, 반응에 의존해 무고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893년 설립된 IACP는 경찰 대상 교육훈련 자료와 범죄수사 및 조사를 할 때 반드시 수행해야 할 가이드라인 등을 개발, 보급해온 기관으로, 우리나라도 회원이다. IACP는 특히, 성범죄 사건에 있어 수사 및 피해자 조사에 관한 지침을 마련하는데 있어 상당한 수준의 성인지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피해자들은 왜 고립되는가? - ③ 폭행·협박 입증돼야 성폭력 성립


관련해서 배 대표는 성폭력 성립에 대한 법적인 한계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형법(제297조, 298조)은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강간’,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성폭력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상대방이 동의가 없었어도 성폭력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폭행과 협박이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으면 성폭력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배 대표는 “상대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강간이나 성폭력이 폭행이나 협박을 동반한 행위만 처벌의 대상이 되는 법적인 한계가 한국에 있다”며 “UN에서도 권고했지만, 강간과 성폭력이라고 하는 정의 자체가 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강압성 중심, 가해자의 강압적인 행위가 있을 때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좁은 해석도 피해자를 당당하지 못하게 하고, 무력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적극적 합의’, ‘적극적 동의’ 등이 법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나온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의 ‘일반권고 35호’에는 “가입국은 강간을 포함한 모든 성범죄를 개인의 안전과 신체적, 성적 및 정신적 완전성에 대한 위반으로 규정해야 한다. 성범죄는 자율적인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우리나라 형법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CEDAW는 이 때문에 피해자가 미리 겁을 먹고 경찰에 신고를 하지 못하거나 신고를 해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국제적인 기준을 보면 남성에 비해 종속적인 여성의 위치를 포함해 성폭력을 신변안전 및 육체적·성적·정신적 온전성(Integrity)의 권리에 반하는 범죄로 특정 짓고, 성범죄의 정의를 ‘자유로운 동의의 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우리나라 형법에서는 아직도 현저히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로 인정하고 있어 2차 피해의 위험이 크다”고 비판했다.


배 대표는 “현재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각 사유를 적용하는 것과 ‘비동의간음죄’를 신설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특히, ‘비동의간음죄’는 한국의 형법에 강간과 강제추행죄의 해석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법무부가 의지를 갖고 개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왜 고립되는가? - ④ 충분한 수사 인력·전문성 부재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검찰의 절대적인 인력이 부족한 것과 그들의 전문성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명숙 변호사는 “작년에 성폭력 관련해서 기소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대질조차 이뤄지지 않고 사건이 끝나버렸다. 인력이 없고, 시간이 없어서 조사가 안 되는 것”이라면서 “경찰의 여성청소년과(성폭력전담수사)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1,800여명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보고가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수박 겉핥기식 조사가 될 수밖에 없고, 깊이 있는 조사가 될 수 없다. 검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십수년 전 캐나다와 미국을 갔을 때 성폭력 피해자의 비디오 녹화 일만 10~30년 했던 경찰을 만났던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그런 전문가가 있나? 없다”며 “전문적으로 조사를 할 수 있는 인력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고소해본들 성폭력 근절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없다”고 일갈했다.


성폭력 관련 법 발의 139건…11개 상임위 계류 중


이 변호사는 정부와 국회에 제대로 된 대책 마련과 법 제·개정을 요구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급하게 재발장치대책을 내놓고 중구남방으로 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비판한다. 그는“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굉장히 많은 대책과 법 개정안이 쏟아져 나오지만, 학교폭력, 아동학대, 가정폭력, 성폭력 등이 문제가 됐을 때 나왔던 대책과 법들이 지금 얼마나 시행되고 있고, 얼마나 실효성 있게 운영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국회 들어서 수많은 성폭력 처벌과 피해 지원과 관련된 법안이 발의됐지만, 대부분 상임위 단계에서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3월15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가 개원한 2016년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안은 총 139건이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명확히 해 여성폭력방지정책의 체계적인 구축과 일관된 통계조사를 하도록 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안’을 발의했고, 같은 당 남인순 의원과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 처벌을 강화는 내용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홍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의 ‘형법 개정안’은 사실적시에 관한 명예훼손죄 처벌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안은 대부분 상임위 단계에서 계류 중이었다. 11개 관련 상임위의 법안 계류 상황을 보면 법제사법위원회가 75건으로 가장 많았고, 여성가족위원회 18건, 환경노동위원회 17건 등 순이었다. ‘미투 운동’ 이후 국회의원들이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가해자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해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내놨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지금 이들의 관심은 온통 지방선거와 개헌에 쏠려있다.


“성폭력은 반인륜 범죄…‘단호한’ 법 만들어 성폭력 근절시켜야”


공대위는 피해자들이 또다시 피해자로 남지 않고 이들을 보호하면서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 성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해서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모든 당이 특별위원회를 만들던지 해서 성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종합적인 대책을 담은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어 주실 것을 국회에 부탁드린다”며 “특히, 공소시효 폐지와 소급효까지 포함하는 법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저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80년대 초중반부터 2017년 1월까지 피해 사실이 있었다. 다 처벌할 수 없는 죄인지, 상습성을 인정할 여지는 없는지 등 많은 변수가 있다”라면서도 “법이라는 것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의 하나된 의견이다. ‘성폭력을 용서하지 않겠다’, ‘엄단하겠다’고 한다면 ‘상습적이다’, ‘여러 명의 피해자가 있다’, ‘사회적 파급력이 크다’ 등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를 거쳐서 일정한 제한 하에서 소급해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헌법재판소도 입법만되면 소급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제강점기하에서 강제동원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전쟁 상황도 아닌 평시에 오랜 기간 수십, 수백명의 피해자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강압적으로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공소시효다’, ‘친고죄다’ 이런 논란을 빚는다면 어찌 일본에 대해서 책임지라는 말을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성폭력은 반인륜 범죄다. 공소시효 없는 나라 많다. 이런 범죄가 우리나라에 발붙이지 못하게 ‘반민족행위특별법(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처럼 소급입법까지 할 수 없는지, 2차 피해를 하는 사람을 엄하게 처벌하는 법, 폭행과 협박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등과 관련된 법률상의 문제점들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며 “결국은 국민의 의지고 입법자의 의지다. 성폭력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어져도 마땅하고, 소급효도 마땅하다. 제대로 된 ‘단호한’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소시효와 관련해 공동변호인단 안서현 변호사는 “이 사건은 장기간에 걸쳐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적으로 이뤄져 왔고, 상습섯이 있는 범죄의 경우에는 종료되는 시점이 최근”이라면서 “저희들의 법리적 검토 결과를 말할 수는 없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동변호인단에 참여한 장철우 변호사는 “우리가 바라봐야 할 시각은 ‘이것이 용납될 수 있는 일이었느냐?’, ‘지금도 용납할 것이냐?’,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부분에서 피해 사례를 봐야 한다”면서 “설사 처벌하지 못한다고 해도 국민이 가해자나 가해가 가능했던 환경, 문화를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미투’를 외치고 용납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다면 성폭력이 근절되고, 남녀차별이 없고 권력에 의해 성이 재물로 사용되거나 여성의 신분·직업, 앞으로의 생계가 성폭력의 수단이나 협박의 재료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소시효 폐지 및 위헌소송 진행할 것


공동변호인단은 앞으로 이윤택 전 감독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지원에 집중하는 한편, 성폭력 피해자들의 보호를 위한 공소시효 폐지 논의, 이를 위한 위헌소송 등 다각적 노력을 계획 중이다. 이 변호사는 “장기간에 걸쳐서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상습적 성폭행을 가한 이 사건의 경우에 강한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있는 법 제정이나 공소시효 폐지 등을 위한 위헌소송 등 다각적 노력을 검토 중”이라면서 “‘미투 운동’의 다른 피해자들이 법적 도움을요청하면 101명의 변호인단 소속 변호사들을 통해서 추가적인 법적 지원을 하고, 그 외 피해자들의 보호를 위해 다양한 법 제도 개선과 사회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형 성폭력 형량 최대 10년,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각


한편, 지난달 8일 12개 관계부처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 협의회’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정형을 최대 10년으로 상향하고, 공소시효 연장, 피해자의 진술을 어렵게 할 수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무고죄를 이용한 가해자의 협박 등으로부터 피해자·신고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직장 및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 따르면 업무상 위계·위력 간음죄의 법정형을 징역 10년 이하나 벌금 5,000만원 이하로, 추행죄의 법정형을 징역 5년 이하나 벌금 3,000만원 이하로 각각 상향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현재는 업무상 위력에 인한 간음의 경우 징역 5년 이하나 벌금 1,500만원 이하, 추행은 징역 2년 이하나 벌금 500만원 이하다. 여성가족부는 해당 범죄의 법정형이 상향 조정되면 공소시효도 각각 7년에서 10년(간음죄), 5년에서 7년(추행죄)로 연장된다고 밝혔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수사과정 전반의 피해자 접촉은 여성경찰관이 전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히고, 피해자 신분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가명조서’를 활용하기로 했다. 현재 전국 64개 경찰관서 291개 여성청소년 수사팀에는 여성경찰관이 전무한 상황이다. 특히, 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팀장, 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장 등 915명을 미투 피해자 보호관으로 지정·운영해 수사가 끝날 때까지 책임지고 피해자 사후지원(상담, 의료, 심리치료, 법률지원 등)을 하도록 했다.


또한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소송 등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피해 사실을 공개할 수 있도록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위법성 조각 사유(형법 제310조, 명예훼손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를 적극 적용하기로 했다. 문화예술분야 성희롱·성폭력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민간 전문가 등 10명 내외로 구성된 ‘특별조사단’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 신고·상담센터’가 100일간 운영된다. 문화예술계 특수성을 고려해 문화예술계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해 ‘해바라기 센터’에 배치하는 등 이 분야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한층 강화된다.


이밖에 직장에서의 신고·감독 및 권리구제 강화를 위해 익명신고시스템을 운영하고, 남녀고용평등 업무 전담 근로감독관을 배치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집중 감독하는 동시에 외국인 고용사업장 대상 외국인 여성노동자의 성희롱 사건도 집중 점검한다. 의료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간호협회 인권센터와 의사협회 신고센터를 통한 신고접수를 활성화하고, 올해 안에 전공의법(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을 개정해 수련병원 전공의 성폭력 예방 및 대응 의무규정을 마련할 방침이다.


MeCONOMY magazine April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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