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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빠는 기술자, 딸은 사업가, 가족이 함께 써내려가는 희망노트

장애인리프트 전문 업체 (주)세진에스템

새 정부 1등 과제는 취업이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일자리상황판을 만들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일자리 확충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꽁꽁 얼어붙은 기온만큼 올해도 취업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을 전망이다. 전다혜 씨도 몇 년 전 여러 곳의 취업문을 두드렸다. 그러다 취업대신 아빠의 사업을 직접 이끌어 가기로 결심했다. 가족들의 반대는 컸다. 설득을 통해 그녀는 이 길을 선택했고 가족들은 그녀의 당찬 도전 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이른 아침 작업복에 작업용 장갑을 챙겨 대형트 럭에 오르는 20대 젊은 여성 전다혜 씨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다혜 씨의 하루는 이른 새벽에 시작된다. 어둠이 깔린 새벽. 그녀가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건  한 초등학교 강당 무대의 장애인리프트를 설치해야 하는 아주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한 달 전 실측하러 갔다가 만난 한 장애학생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 밤잠도 설쳤다.


학교에 발표회가 있대요. 지난번 발표 때 너무 창피해서 다시는 안 하려고 했다고 해요. 학교 강단 무대에 계단형 리프트가 설치돼 있었는데 그걸 타고 무대에 오르는 걸 본 학생 들이 너 터미네이터잖아하면서 놀렸대요. 계단형 리프트는 평소에는 계단으로 돼 있다가 장애를 가진 사람이 타려면 접어서 내린 다음에 다시 올려야 하거든요오로지 시선이 집중되는 시간인데 어린 학생들이다 보니까 야 올라온다그러면서 신기한 듯 쳐다보고 터미네이터라고 놀렸다고 해요. 너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서 울었대요. 담임 선생님께서 그걸 아시고 학교에 건의해서 무대 옆 대기실에다 리프트를 설치하게 된 거에요.” 


다혜 씨는 장애인리프트 설치를 하는 전문 업체 ()세진에 스템 대표다. 이 사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볍게 봐왔던 것들이 이제는 그저 평범하지 않게 보인다. 강당 무대에 올라가는 3~4개의 계단도 마찬가지다일반인들에게는 가볍게 올라갈 수 있겠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철벽과도 같은 곳이더라고요. 리프트를 설치를 할 때 이런 점을 고려해서 설치하면 좋겠어요.” 


그녀는 각 강당 무대 옆에 있는 준비실 한쪽 공간에 리프트를 설치하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호명하면 문 열고 무대로 바로 갈 수 있는데 설계하는 분들이 비장애인들이다 보니 이런 부분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한 번은 설치를 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지나가면서 저거 다 예산낭비야 그러더라고요. 그 학생을 불러서 너도 어느 한 순간에 사용해야만 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어. 그런 불편 을 느꼈을 때 리프트가 설치돼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아 는 사람이 돼야 해. 그랬더니 죄송해요 그러더라고요. 어른들 이 장애를 가진 분들에 대해 배려가 부족하다 보니까 아이들도 마찬가진 것 같아 씁쓸했어요.”



아빠는 30년 경력의 손꼽히는 기술자


()세진에스템은 승강기 계통에서는 이름만 대면 다 알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업체다. 지난 2014년 설립해 2016년에야 비로소 제조업을 모두 갖췄지만 30년 전부터 한 분야에서 오직 승강기 연구와 기술개발을 해온 베테랑 다혜 씨의 아빠가 설계와 제작을 책임지고 있다


저희 아빠는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동양엘리베이터에서 A/S를 담당해 해오던 분이죠. 사업을 하면서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일을 해놓고 돈 달라는 말을 못해서 많이 떼였죠. 그걸 보고 아빠 대신 제가 사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다혜 씨의 당돌한 발상에 식당을 하던 엄마와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알게 된 이모도 합류했다. 그녀의 여동생은 대학을 졸업한 후 아예 이력서를 제출하며 함께 하겠다고 떼를 썼다. 자신도 언니의 사업을 돕겠다는 거였다. 한 명이라도 직장생 활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과 기왕 시작한 거 온가족 이 함께 해보자는 의견이 팽팽했지만 결국 함께 하기로 했다. 이렇게 세진에스템의 직원구성은 자연스럽게 가족으로 채워지게 됐다


아빠는 어떻게 하면 사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늘 고민하고 연구하며 장애인리프트를 설계를 하고 제작해 요. 엄마와 이모는 설치전문이죠. 저는 입찰관련 일을 챙기고 거래처들을 찾아다니며 설문조사도 하고 영업도 해요. 동생은 회계를 담당하고요. 설치할 때는 보조역할을 해야 하니까 우리 자매가 현장에 가서 엄마와 이모를 도와요. 시간이 나는 데로 공장에서 아빠께 설계하는 방법도 배우고 장애인리 프트에 대한 공부도 해요.”


다혜씨 아빠는 회사경영은 두 딸에게 맡기고 기술개발과 제 작에만 매진하고 있다. 엄마는 건설현장 안전 감독에 대한 교육을 이수했다. 5톤 트럭을 운전해 제품을 실어 나르는 일은 이모가 담당한다. “남자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어떻게 여자가 저렇게 큰 트럭을 몰고 왔냐고 해요. 여자 넷이서 일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가끔 건축업자들이 준공나면 돈을 준다고 해 놓고선 안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게 가장 애로사항이죠. 이런 부분은 앞으로 많아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국내 몇 안 되는 인증업체


세진에스템은 규모는 작지만 국내 몇 안 되는 직접생산업체 중 한 곳이다. 직접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는 곧 제작단가와 설치기간으로 이어진다. 타 업체에서 만들어 와서 설치만 한다면 단가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기술을 보유한 업체라는 점은 아주 중요하다


가장 큰 경쟁력은 단가차이와 납기기간이라고 봐야죠. 직접 생산을 하게 되면 시중보다 단가를 낮출 수 있고 다른 업체 는 설치하는데 2~3개월 정도 걸리는 기간도 급할 경우 20일 이내로 단축할 수 있어요. 가족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밤샘 작업을 해서라도 기간을 줄이는 거죠. 국내에는 리프트를 설계해서 제작하고 설치한 후 검사까지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업체가 몇 안 되는데 우리 회사가 그 중 한 곳이에요. 현재 설치돼 있는 장애인리프트 70~80%가 검사를 받지 않았다 고 해요. 워낙에 사고가 많이 나니까 국민안전처가 앞으로는 검사를 통과했는지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으니까 우리 같은 업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죠(웃음).”


다혜 씨는 그렇게만 된다면 기술력으로 입찰을 받는데 아주 유리해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지난번 한곳에서는 입찰을 진행하면서 이중 장치를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지 요구했는데 이미 연구해서 준비해 놓은 자료를 제출했더니 그거 괜찮다고 하면서 선택해 줘서 공사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비록 소규모 업체지만 동일한 조건에서 입찰에 참여할 수만 있다면 자신 있어요. 우리는 기술력이 되니까요.” 그녀는 기술도 없고 제작능력도 없는 업체들이 서류만으로 조건을 갖춘 다음에 조달청에서 입찰을 받아서 하청에 주고 수입만 챙기는 것을 볼 때면 가장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런 부분이 많이 개선됐으면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에 한 발 앞서 나가기 위해 정보를 찾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람들 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그녀는 최고의 기술자가 만들 어낸 리프트를 섬세함으로 똘똘 뭉친 여자 넷이서 설치한 후 안전검사까지 완벽하게 처리하는 꼼꼼함을 눈여겨 봐 달라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장애인들의 자존감 지켜줘야


사실 리프트는 장애인들에게 없어서는 알 될 아주 중요한 이동수단이다. 장애인리프트는 대개 경사형과 계단형, 수직형으로 나뉘는데 경사형은 과거 전철역에 설치돼 있던 리프트를 말한다. 하지만 사고가 잦으면서 내년부터는 아예 법적으로 경사형리프트 설치가 금지됐다. 또 계단 형은 강당과 같이 무대에 올라가려면 3~4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곳에 설치돼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세진에스템이 전문으로 설치하고 있는 수직형 리프트는 승강기와 같은 박스형을 말한다. 주로 학교, 강당, 교회, 복지관, 건물 주차장 등에 설치하는데 3~4개의 계단 높이까지 또는 최고 4m까지 설치장소가 제한된다


보통 건물에 승강기를 설치하려면 출발최하층 바닥을 기준으로 정격속도 45이하일 때 1.2피트깊이가 돼야 해요. 그러다 보니까 대형건물들은 바닥에서 3~4개의 계단을 만든 다음에 그 위에 승강기를 설치했죠. 물론 다리가 멀쩡한 분들에 겐 3~4개의 계단은 별 개 아니죠. 하지만 다리가 불편하거나 휠체어를 타야 하는 분들에겐 그야말로 장애물이더라고요.” 


비장애인들의 의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는 그녀는 학교 강당이라든가 공공기관 등에 장애인리프트를 설치할 때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헤아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설치하는 이유와 목적을 충분히 인지하고 사용자의 마음을 살펴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따끔한 충고다.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


타 업체에서 설치해 놓은 곳 현장답사를 갔는데 버튼을 눌렀더니 그 안에 휠체어 탄분이 한분 계시더라고요. 승강기처럼 타고 버튼을 누르면 되는 줄 알았다고 해요. 인터폰을 눌렀는데도 아무런 답변이 없어서 사람이 탈 때까지 10분 째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더라고요. 안내문을 봐야 하는데 손잡이 아래에 설치돼 있다 보니까 가려져서 안 보였던 거예요. 그걸 보고 우리 회사는 안내문 을 조금 더 위에다 부착하도록 만들었어요. 위치만 바꾸면 될 것 같지만 자칫 잘못하면 쏠림현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 에 아주 정교하게 제작을 해야 해요. 사소해보이지만 사용하는 분들에게는 정말로 필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았죠.” 


이후 그녀에겐 특별한 습관이 생겼다. 장애인리프트가 설치 돼 있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사용해 보니까 불편한 점은 없는지”, “개선해야 될 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등 설문지를 만들어 장애인들의 의견을 듣는다. 설문내용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전 직원(가족)의 의견을 모으고 참고해야 할 내용에 대해서는 새로 제작하는 제품에 반영한다. 다혜 씨는 이런 점이 가족경영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어엿한 사장님


공사현장에서 가장 불편은 것은 화장실이다. 인부들이 대부분 남자들이다 보니 여자화장실 자체가 없다. 그러다 보니 건 설현장에 설치하러 가는 날에는 새벽부터 신경이 쓰여서 물도 못 마신다


심지어 하루 종일 밥을 굶어야 할 때도 있어요. 다 참아도 못 참는 건 대놓고 무시하는 아저씨들이에요. 리프트를 설치하러 가면 여자들이라고 무시부터 해요. 엄마는 현장감독관 자격도 있고 늘 교육도 받거든요. 이모는 설치기술자이고요. 저도 아직은 부족하지만 사업가이면서 설치보조역을 하는 어엿한 일꾼이에요. 그런데도 무조건 잡부취급을 해요. 한번은 너무 기분이 나빠서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고 한 후 모두 돌 아와 버렸어요.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겠다고 화를 냈죠. 당신들이 설치하고 안전검사를 받아보라고 했어요. 나중에 전화해서 미안하다며 빨리 설치를 해달라는 거예요. 리프트 설치를 해야 안전허가를 받을 수 있고 그런 다 음에야 준공허가가 떨어지거든요.”


힘들지만 보람도


공사현장을 한두 군데를 정해두고 가는 게 아니라 많은 곳을 다니다 보면 많은 일들을 겪게 되지만 지방에 가서 온 가족이 찜질방에 가서 웃기도 하고 부둥켜안고 잠도 자고 그러다 보면 힘든 것도 잊어버리게 돼요. 설치해 드렸던 교회 할머니들께서 전화도 주시고 고맙다고 밥도 사주시고 너무 좋아 하시니까 보람도 많이 느끼죠.” 


점점 마음의 여유도 생겨서 이제는 여행하는 사람들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일한다는 그녀는 지방에서 3~4, 길게는 일주일 정도 있다 보면 인근에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해서 가보게 된다고 말했다. 제주도부터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어디든 가다 보니 전국의 맛 집은 거의 가 봤다는 그녀 는 20대답게 근처 유명한 곳을 갔을 때는 빠지지 않고 인증샷도 남긴다고 말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던 영국의 철학자이면서 행정가 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은 자연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지배)하려는 사람은 먼저 자연에 복종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을 먼저 알고 그 속에 들어가 남들보다 먼저 개선점을 찾으려는 자세는 아주 중요해 보인다. 30년 기술력과 여성의 세심함이 더해진 ()세진에스템 전다혜 대표의 20대 당찬 도전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MeCONOMY magazine Januar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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