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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봉사하며 산다는 건 너무 행복한 삶이죠!

녹십초봉사단 나호준 단장

타인을 위해 ‘봉사(奉仕)’하는 이들은 “오히려 자신이 더 많은 위안을 받는다”고 말한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시간이 남아서도 아닌, 오직 타인을 배려하고 나누려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봉사활동은 무한한 감사와 함께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 회가 된다는 것이다. 2017년 새해 첫 일정을 캄보디아 해외봉사로 시작한 녹십초봉사단 나호준 단장은 “봉사하며 사는 삶이야 말로 너무나 행복한 삶”이라고 말했다. 그를 만나보자. 


정말로 순수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나호준 단장에게 캄 보디아는 그런 곳이었다. 비록 생활은 힘들어보였지만 천진난만한 표정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 나 단장은 올 가을 또 다시 그들을 찾아갈 거라며 환하게 웃었다.


나호준 단장이 봉사활동을 다녀온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 서남부 베트남, 라오스, 타이와 국경이 접해 있는 나라 로, 우리와는 1997년 재수교한 이래 단기간에 교역, 투자, 개 발협력, IT, 관광, 금융을 비롯한 제반 분야에서 괄목한 수준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연간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은 28만 명으로 캄보디아의 전체 관광객 중 2위를 차 지하고 있으며, 우리 교민의 수도 5,000여명이나 된다. 그가 다녀온 곳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북쪽으로 약 2시간 정도 의 거리에 위치한 깜뽕츠낭주 사마끼미 어쩌니군이라고 했다.


“정말로 오지 중의 오지였습니다. 두 시간 거리라고는 하지만 한 시간 남짓은 비포장도로다 보니 가는 데 애를 먹었죠. 중간중간에 움푹 페인 웅덩이 때문에 차바퀴가 몇 번이나 빠졌는데 그들을 만나는 순간 모든 걸 잊게 만들더라고요.” 그가 올해 첫 일정으로 캄보디아를 택한 건 지난해 베트남봉 사에서 알게 된 선교사의 안내 때문이었다고 했다.


“베트남봉사를 갔는데 순수한 우리의 마음과 달리 그분들 은 봉사를 받는 다는 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해가 안 됐어요. 의아해 하는 저를 보고 거기서 만난 한 분이 기왕 해외봉사를 하려고 맘먹었다면 캄보디아를 꼭 가보라 고 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된 캄보디아의 한 마을. 그곳의 아이들 열 명 중 다섯 명은 신발이 없어서 못 신을 정도로 가난한 곳이었 다고 한다. 캄보디아를 소개해준 분께서 거기 갈 때는 꼭 슬 리퍼를 사가라고 했었는데 그걸 깜빡 잊어버린 게 너무나 아 쉬웠다고 말한 그는 그들을 보고 나서 봉사의 의미를 새로이 새겼다고 말했다.


“막상 가서 보니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신발이더라고요. 우리 로 치면 면 소재지와 같은 곳에 교회가 하나 세워진 것인데, 지난해 한국에서 와서 지었다고 해요. 외형만 있을 뿐 내부 는 아직 마무리가 덜 된 상태였는데 현지인들에게는 많은 위 안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10명 이내의 소규모 봉사단 이다 보니 준비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가을에는 더 많은 구 호품을 가지고 가겠다고 그들과 약속하고 돌아왔습니다.”




Q. 현지인들의 생활은 어땠나요?

A. 한국의 70년대와 너무나 흡사했습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위생이었는데 아이들이 맨발로 돌아다니다 보니 상당히 안 좋았어요. 가장 필요한 것이 비누라든가 치약, 칫솔, 신 발과 같은 거였는데 칫솔을 나눠주고 이를 닦아야 한다고 말해도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하루에 3번, 식사 후 3분 안 에, 3분 동안 칫솔질을 해야 한다는 3.3.3운동을 알려줘도 약 80%정도는 이해를 못했죠. 신발이 없는 아이들 스무 명 정도를 수돗가로 데려가서 비누로 깨끗이 씻겨 줬는데 그중 열 다섯 명 정도는 피부에 곰팡이가 생겨 있는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미리 준비해간 소독약으로 소독도 해주고 자주 씻어야 한다고 말해줬지만 아직 위생에 대한 개념이 없다 보니까 이 조차도 이해를 못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영양제가 필요해보였는데 미리 이런 걸 알았더라면 준비를 많이 해갔 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참 많이 남았습니다. 현지인들이 사는 집도 몇 군데 가봤는데 파리가 너무 많아서 병균을 옮기 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고요. 그들은 지면에서 높게 기둥을 올려서 만든 전통가옥(2층)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홍수로 인해 집이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가지 않게 하고 야생동물이라든가 뱀 등이 집안으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해요. 쌀이 없어서 밥을 못 먹거 나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으니까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말한 아이도 있었고, 오토바이를 갖고 싶다거나 프롬펜 시내를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소박한 소망조차도 이루기 힘들어 보이는 환경이 가슴을 참 아팠습니다. 

Q. 교육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였나요?

A. 먹고 살기가 힘들다 보니 교육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부족해 보였습니다. 세 명 중 한 명은 학교대신 공장에 가서 돈을 벌겠다고 했어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니까 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못가는 아이들은 대부분 여자아이들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돈 벌면 되지 학교에는 뭐하러 가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오다가 보통 17세 정도가 되면 결혼한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봉사활동을 한 교회 인근에는 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약 400여 명의 다니는 학교라고 했습니다.

절반정도인 200여 명이 교회에 나온다고 했는데 아이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선교사의 차가 동네를 부지런히 오가면서 아이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거긴 유독 파란색 볼펜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니 캄보디아에서 검정색은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에 검정색 볼 펜은 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220만이 학살당한 킬링필드 의 폴포트 공산정권 당시 모든 사람들은 검정색 국민복에 단 발머리를 강요당했다고 해요. 그 뒤 검정색을 아주 싫어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파란색은 평화를 의미한다고 해요. 올 가을에 봉사활동을 갈 때는 파란색 볼펜과 슬리퍼를 많이 구입해서 가져가려고 합니다. 

Q.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땠나요?

A. 교회에서는 주말마다 달란트시장이 열린다고 했는데 저희가 간 날도 달란트 시장이 열린 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교외에 왔습니다. 선교사의 말을 빌리면 달란트시장을 열게 된 계기는 교회에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가령 교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나올 때마다 스티커를 한 장을 나눠 준 다음에 모아둔 스티커로 물건을 바꿔가는 이벤트 데이를 만든 것인데 우리가 포인트를 적립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벤트 데이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습니다. 행사가 열리던 날 한 아이가 옷이며 생활용품(샴푸, 치약, 칫솔, 비 누 등)을 자루에 듬뿍 담아서 가지고 가는 걸 보고 물어봤더니 그 아이는 아빠가 교회에 나가는 걸 아주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열심히 교회에 나오면서 스티커를 모았고 그것으로 생활용품이며 옷가지며 가져오는 걸 보고 지금은 아이의 가족들이 모두 신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에 대해 굉장히 배타적이었다고 했는데 그들과 꾸준히 소통을 하면서 마음을 열게 됐다고 했습 니다. 한 현지인은 가족 중 한 사람이 한국에 왔다가 나쁜일 을 당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안 좋았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선교사 또한 처음에는 이들과의 소통이 참 어려웠다고 했는데 6년 정도 소통을 하면서 가족이 됐다고 했습니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한국 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새삼 깨달은 계기가 됐 습니다.

Q. 언제부터 봉사하게 됐나요?

A. 아마도 30년쯤 된 것 같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내 삶 자체가 봉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고요. 보육원이라든가 복지시설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다 보면 일상에서의 스트레스가 사르르 사라집니다. 초등학 교 친구가 운영하는 그룹홈 아이들과도 주기적으로 만나고 일 년에 한두번은 친구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도시문화체험도 시키고 맛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철에는 김장담그기와 연탄배달도 하고요. 지난주에는 자장면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봉사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습니다. 봉사를 한다고 해도 돈이 들기 때문에 지인들의 도 움을 참 많이 받습니다. 

이번 캄보디아 봉사도 많은 관심과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부천사로 알려진 가수 현숙 씨 와 배일호 씨는 늘 부족한 나를 응원해준 고마운 분들입니 다. 또 고등학교 은사님이신 나승화, 최길례, 장세창, 정준량, 박상덕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녹십초 알로에 박형문 회장님께서는 저에게 늘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며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십니다. 저는 아홉 남매 중 다섯 번째입니다. 형제가 많은 집안에 태어나다 보니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배웠습니다. 올해 88세 되신 어머니께서도 이번 캄보디아 봉사활동에 간 아들을 위해 후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유머스피치교육 통해 봉사활동 의미 새겨

지난해 우연한 기회를 통해 유머스피치교육을 받았다는 나호준 단장은 그때 취득해 놓은 레크레이션 1급 자격증이 캄보디아에서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5주간의 교육이었는데 강의비가 너무 싸서 가게 됐습니다. 보통은 30만원에서 많게는 60만원 정도인데 여긴 몇 만원이 었어요. 유머스피치도 있고 마케팅교육이라든가 CS교육 등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죽음체험을 하는 시간이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 교육을 받은 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시 그 체험을 통해 유서를 쓰면서 후회스러운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해외봉사 한 번 못 해 본 게 가장 아쉬웠습니다. 만약에 내게 다시 삶이 주어진다면 해외봉사를 하겠다고 썼고 지금은 그걸 실천하는 중입니다.”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나호준 단장은 캄보디아에서 만난 아이들의 순박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한참이나 허공을 바라봤다. 그의 봉사하는 삶이 많은 이들에게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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