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메타'에 잠식된 K-플랫폼, 족쇄 풀어야 '디지털 주권' 찾는다

  • 등록 2025.05.22 17: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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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 금융·물류·에너지까지 확장
국내기업 규제에 카카오·네이버·쿠팡 이용자 비중 10% 못넘어
전문가 "역차별 해소, R&D·세제혜택, 플랫폼 특별법 제정해야"

 

 

단일 플랫폼 기업의 가치가 한 국가의 GDP를 넘어서며, 전통적인 주권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구글, 아마존, 메타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클라우드, 해저 케이블, 위성 인터넷 등 독자적 인프라를 구축하며 초국적 ‘디지털 제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중국, EU는 이를 국가 전략으로 삼아 자국 플랫폼을 보호하고 디지털 주권을 강화하는 반면, 한국은 글로벌 플랫폼에 데이터와 시장을 내주면서도 국내 기업엔 과도한 규제를 적용해 역차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가 한국 플랫폼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韓 GDP 능가한 '플랫폼 빅테크' 가치…국경 없는 ‘디지털 제국’ 탄생

 

2023년, 미국의 대표 기술 기업 구글(모회사 알파벳)의 연간 매출은 약 3,240억달러(한화 약 450조원)를 기록했고, 시가총액은 2조달러를 돌파하며 한국의 GDP 규모와 맞먹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글로벌 경제 질서에서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플랫폼 산업은 이제 단순한 IT 서비스의 범주를 넘어, 인프라·금융·물류·에너지까지 연결된 초국적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이들은 자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해저 케이블 구축과 위성 인터넷 사업 등 글로벌 통신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며, 디지털 영토를 직접 넓혀가고 있다.

 

실제로 구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저 광케이블과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기업으로 꼽힌다. 메타(Meta) 역시 메타버스 구축을 위해 글로벌 서버망과 인공지능 슈퍼컴퓨터에 수십조 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위성 기반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Starlink)’를 통해 아프리카, 중남미, 우크라이나 등 오지까지 디지털 커버리지를 확장하고 있다.

 

아마존의 AWS(클라우드), 애플의 앱스토어, 틱톡의 AI 추천 시스템, 알리바바의 스마트 물류 시스템은 모두 단일 플랫폼 안에서 데이터 수집-분석-활용이 순환되도록 설계돼 있다. 그 결과 플랫폼은 단순한 유통 채널을 넘어 AI 기술 진화의 주체이자 국가 주권과 충돌하는 거대 권력으로 부상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글로벌 상위 10개 플랫폼 기업의 총 시가총액은 약 11조달러(약 1경5,000조원)에 달해, 유럽연합(EU)의 전체 GDP를 웃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은 ‘데이터 종속국’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구글과 애플 등 외국계 플랫폼은 한국 내 매출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며, 유튜브·인스타그램·구글맵 등 핵심 서비스들은 국내 광고·소비·이동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은 법적 망 이용료 분쟁이나 개인정보보호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황이다.

 

문제는 한국형 플랫폼 기업의 글로벌 확장 역량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카카오, 네이버, 쿠팡 등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들의 2023년 연 매출은 각각 8~10조원 수준에 불과하며, 글로벌 이용자 비중은 10%를 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플랫폼 산업이 ‘내수 프레임’에 갇힌 사이, 글로벌 플랫폼은 ‘인프라 제국’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 美·中·EU, 플랫폼을 ‘국가전략’으로…'디지털 주권' 강화 움직임

 

유럽연합(EU)은 수년 전 플랫폼 산업에 대한 정책 연구를 위해 영국 킹스칼리지 교수진에게 용역을 맡겼고, 이를 토대로 디지털 규제 방향을 설정했다. 유럽은 대부분의 플랫폼이 미국 기업임에 주목하며 이를 디지털 주권 침해로 인식하고, 강도 높은 플랫폼 규제를 추진했다.

 

이처럼 플랫폼은 단순한 IT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 주권과 직결되는 전략 자산이자, 지정학적 무기가 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를 ‘국가 플랫폼 자본주의(State Platform Capitalism, SPC)’라 부르며, 플랫폼이 단순히 기업 활동을 넘어서 국가 권력의 연장선이 된다고 분석했다.

 

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콘텐츠 플랫폼 국가경제의 새로운 엔진’ 세미나에 참석한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SPC의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플랫폼 모델이라고 짚었다. 전 교수는 “중국은 처음부터 국가 주도형 플랫폼 모델을 운영해왔다”며 “모든 플랫폼의 서버를 자국 내에 두게 하고, 데이터를 직접 통제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이에 따라 구글이나 메타 같은 미국계 기업이 진입할 수 없는 생태계가 구축됐다. 더불어 외부 플랫폼은 견제하면서 동시에 국유펀드와 벤처투자, 정부 보조금을 결합해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국가 기반의 디지털 생태계를 육성했다.

 

전 교수는 중국 SPC의 세 가지 축에 대해 ▲정보 통제(방화벽, 보안 기술), ▲금융 지원(국가 펀드 및 기술투자), ▲산업정책 연계(군민 융합, 보조금 기반 확장) 등을 꼽았다. 중국은 2015년 이후 군과 민간의 융합정책(MCF)을 통해 플랫폼 기업이 국방 영역에 깊숙이 진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을 통해 동아시아와 동남아를 넘어 플랫폼 기반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SPC를 입법과 기술 주도의 형태로 발전시켰다. CIA, 국방부 등과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수억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및 인공지능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미국 SPC의 핵심은 'R&D와 법 제도'라고 전 교수는 분석했다. “CHIPS 법안, 미국 혁신법, 프론티어법은 모두 국방기술과 민간 플랫폼 기술을 통합하기 위한 국가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한 전 교수는 “플랫폼 기업은 방산업체보다 11배 이상 많은 R&D 예산을 투입하며, 기술혁신의 중심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통제와 육성을 기반으로 SPC를 전개하고 있다면, 미국은 법 제도와 R&D, 국방 계약을 통해 플랫폼을 제도화하고 있다. 양국 모두 플랫폼을 단순한 경제 주체가 아닌 국가 권력의 확장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 “한국 플랫폼만 족쇄?”… 역차별 부르는 ‘플랫폼 경쟁촉진법’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플랫폼 산업에 대한 전략적 접근과 정책 혁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세계가 SPC 시대로 진입한 만큼, 콘텐츠 플랫폼을 단순한 문화 유통채널이 아닌 디지털 산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미나 토론자로 나선 한국웹툰산업협회 서범강 회장은 K-웹툰 플랫폼이 글로벌 디지털 문화 수출의 첨병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네이버웹툰과 카카오 픽코마는 일본과 미국 시장에서 현지 창작자와의 협업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며 구조적 플랫폼 모델로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추진 중인 ‘문화산업 공정유통법’에 대해 “각 콘텐츠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적 틀에 가두려는 규제는 오히려 산업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며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에 대응하려면 법 제정보다 먼저 창작자, 플랫폼 사업자, 전문가 간 충분한 협의와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성민 교수는 “EU는 자국 플랫폼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해외 빅테크만 규제하고, 미국은 아예 자국 플랫폼 규제를 폐기하거나 보류하고 있다”며 “반면 한국은 자국 플랫폼과 해외 플랫폼 모두를 동시에 규제하려 하면서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내에서 추진 중인 ‘플랫폼 경쟁촉진법’이 유럽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벤치마킹했으나, 해외 플랫폼의 매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국내 기업만 규제 대상이 되는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콘텐츠 플랫폼을 국가 디지털 주권과 산업 전략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역차별 해소 ▲플랫폼 기술의 전략산업 인정(AI 추천, 번역, 자동 정산 등) ▲R&D 및 세제 혜택 ▲플랫폼 특화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콘텐츠 플랫폼 산업이 창작자 권익 보호와 함께 글로벌 진출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전방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 플랫폼이 단순 수출이 아닌 디지털 주권과 문화 경쟁력의 중심축으로 하루빨리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권은주 기자 kwon@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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