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의 정석

  • 등록 2025.01.17 13:44:18
크게보기

 

지난 15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체포되는 굴욕을 당한 윤석열 대통령이 며칠 전에 작성했다는 장문의 손편지를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내용을 보면 12월 3일 위헌적, 불법적 계엄 선포 이후 몇 차례 접한 담화문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이번에는 같은 맥락을 길게 설명했고, 감정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면서 그의 세계관이나 인간 역사에 대한 이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소통, 윤리 의식,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와 오해 등이 더욱 크게 부각됐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궤변이라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주장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지적해서 나중에라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겠다. 그는 탄핵소추가 되고 보니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일만 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답게 권위도 갖고 휴식도 취하고 하라고 조언하는 분도 많이 계셨는데 못했다고 주장했다. 황당한 말이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 이후 권위주의적 언행이 가장 심했던 대통령이었다. 휴식도 많이 취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지난해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일정 가운데 하나인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는데, 이틀 전에는 태릉에서 골프를 쳤다. 자신의 부인 문제로 사과 담화를 발표했는데, 이틀 뒤에 다시 골프장을 찾았다.

 

대통령실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따라 골프 외교에 대비해서 8년 만에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거짓말이었다. 8월부터 골프를 쳤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고 말했다. 철면피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는 12월 3일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위헌, 불법 계엄을 선포하는 등 내란을 저지른 내란 우두머리다. 아마도 그에게 있어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개념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해 신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모욕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는 또 법치는 공정한 사법관에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판사가 발부한 체포영장을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영장 집행을 거부한 사람이다. 그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경호처 요원들은 순식간에 인생이 거덜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압박감으로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는 또 회색지대 전술이나 하이브리드 전술을 언급하면서 반국가 세력을 강조했다. 전체주의 독재 국가가 다른 나라 주권을 침탈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전술을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정치 세력 가운데 반국가 세력이 외부 주권 침탈 세력과 손을 잡고 협력하면 정치 권력을 쉽게 획득한다는 시나리오를 언급했다.

 

이들이 거대 야당으로 존재하면서 국회 독재로 여당의 국정 운영을 틀어막고 국정 마비, 헌정질서 붕괴를 밀어붙인다고 주장했다. 희한한 논리 비약이다. 하이브리드 전술하고 한국 야당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국회 독재를 한다는 의혹을 받는 거대 야당이 뭐하러 반국가 세력이 된다는 말인가?

 

정당의 국회 의석수는 국민이 정하는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우리 국민은 민주당을 압도적인 다수당으로 선택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강력한 불만을 표명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야당과 협의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전혀 없었다.

 

그는 거대 야당, 즉 민주당이 외부 주권침탈세력과 손을 잡고 권력 획득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했다고 했는데, 이런 말을 하려면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외부 세력이 누구인지, 손을 어떻게 잡았는지,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지 설명해야 한다. 민주당이 거대 야당이 된 것은 국민의 결정이다. 근거도 없이 민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비난하면 심각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는 계엄이라는 말이 상황의 엄중함을 알리고 경계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완전히 틀린 주장이다. 계엄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첫째, 일정한 곳을 병력으로 경계함, 둘째, 군사적 필요나 사회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하여 일정한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군이 맡아 다스리는 일을 말한다. 요체는 군대가 행정을 책임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특정 단어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자유지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약하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사회적 동의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 그래서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를 거쳐야 하고, 국회에 통보해야 하고, 국회가 요구하면 즉시 해제해야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부정선거 증거가 너무도 많다고 주장했다. 황당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미 여러차례 해명한 바 있다. 정부 당국에서 관련 의혹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지만, 부정선거 증거를 제시한 적이 없다. 특히 자신이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다. 자신이 당선된 대통령 선거는 그냥 넘어가고, 야당이 압승을 거둔 총선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한다면 누가 합리적이라고 여길 것인가? 아마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일부 극우 유튜버 주장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관리하는 수사 당국이 2년 반 동안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면, 부정선거가 문제가 아니다. 어떤 시나리오든 그의 무능이 문제인 것이다.

 

그는 국민에게 엄중한 상황을 알리고 경계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고, 그러기 때문에 최소한의 병력 투입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동원된 병력과 경력은 특수전 부대원을 포함해 약 5천 명이고, 총탄은 5만 발 이상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도 소규모 미니 병력이라고 우기는 것은 듣는 사람을 뇌가 없는 허수아비로 보는 것이고, 상대방을 능멸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치밀하고 집요하게 내란을 준비하고 시도했다가 실패가 확인되니까 내란 의도가 없었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는 몰염치에 개탄할 뿐이다.

 

최근 야당이 헌재판소 탄핵소추 사유 가운데 내란죄를 철회했다면서 사기 탄핵이라고 주장했다. 헌재 탄핵 절차는 위헌 여부를 가리는 절차라는 점을 고려해서 심사 대상을 조정한 것이고, 적법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는 것으로 이미 논란이 종료된 사안이다. 그런데도 마치 법적으로 논란이 가능한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연민의 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공수처에 수사권이 없고, 체포와 수색영장 발부가 불법이고, 영장 집행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제기한 문제들은 대통령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판사가 결정하는 것이다. 입법부는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법을 집행하고, 사법부는 위법 여부를 판단한다. 이것이 삼권분립이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요체다. 불만이 있으면 항의하는 절차를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판사가 발부한 영장은 그 자체로 엄중한 국가 결정이어서 영장 집행을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와 법치주의 파괴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검찰총장 시절 민주당 정권의 무법적 패악을 겪었다면서 법률가, 법조인은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권에서 적폐청산의 돌격대장으로 활약하고 출세를 거듭하면서 대통령 자리까지 이른 사람이 누구였던가? 법조인으로 정치권력의 하수인이 돼서 국민적 공분을 유발한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윤석열 자신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그는 국민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위헌적, 불법적 계엄을 일으켜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하려다가 실패했던 윤석열 대통령만큼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상상을 뛰어넘는 황당한 거짓말로 국민과 세상을 우롱하고 후안무치와 철면피를 현실로 시전하면서 한계도 없는 희한한 논리적 비약을 구사하면서 궤변의 정석을 보여줬다는 평가 외에 다른 표현을 찾기가 어렵다.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Copyright @2012 M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회사명 (주)방송문화미디어텍|사업자등록번호 107-87-61615 | 등록번호 서울 아02902 | 등록/발행일 2012.06.20 발행인/편집인 : 조재성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방로69길 23 한국금융IT빌딩 5층 | 전화 02-6672-0310 | 팩스 02-6499-0311 M이코노미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