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충주에서 채소 재배를 하는 A씨는 “300포기를 목표로 배추 종자에 물을 자주 주고 스프링쿨러까지 동원해도 7월 이전에 심은 배추는 실패했어요, 이후에 동충하초와 다시마 비료를 써 가면서 겨우 살렸죠. 해가 갈수록 더워지고 가물다 보니 배추를 키우기가 힘들어요. 대량 재배하는 농가는 오죽 답답하겠어요.”
# 경남 창원에서 텃밭 농사를 하는 B씨는 “올해만 배추를 3번째 심고 있어요. 벌써 두 차례나 배추가 말라 비틀어졌어요. 배추가 너무 비싸서 직접 재배를 하고 있는데, 겨울에 김장을 담굴만큼 만이라도 속이 꽉 찬 배추가 자랐으면 좋겠어요.”
‘김치의 나라’ 한국이 배춧농사를 짓기 힘든 나라가 됐다. 배추 전문가인 재배농가도 텃밭에서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배추 키우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최근 한국의 전통 발효 음식인 김치가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지난 3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은 “기온 상승으로 인해 농부, 김치 제조업체들은 배추의 품질과 생산량에 있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고온 현상이 지속된다면,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배추를 더 이상 생산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배추는 섭씨 18~21도 사이의 온도에서 잘 자라며 여름에도 최고기온이 25도를 넘지 않는 강원도 고랭지 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그러나 이상 기후로 인해 여름철 기온이 이 범위를 넘어서면서 배추의 생장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은 20년 전(8796ha)에 비해 절반 수준인 3995ha로 줄었다. 농촌진흥청은 향후 25년 동안 배추 경작 면적이 급격히 줄어 44ha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2090년에는 고랭지 배추가 전혀 재배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산 배추 무더기 수입...귀해지는 국산 김치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에 의한 높은 기온, 예측하기 힘든 폭우, 여름철 해충 증가 등을 작물 감소의 원인으로 꼽았다. 문제는 이런 기후 변화가 한국의 식문화뿐만 아니라 김치 산업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산 김치를 계속 수입하겠지만 온실가스 배출이 심각한 중국에서도 재배면적이 줄어들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대비를 해야 한다.
정부는 이달 중순까지 중국산 배추 수입 확대 및 농가 출하 장려금을 지원하는 등 시장 공급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장 재료로 쓰이는 채소류 등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이달 말까지 수급 안정대책을 수립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15일 밝히기도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배추 상품의 평균 도매가는 한 포기에 8,920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128% 비싸며, 무는 1개에 2,391원으로 105% 높다. 한때 한 포기 2만원을 넘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형마트 기준 7,000원~1만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박순연 농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은 “이미 중국산 수입 배추 48t을 들여와 김치 가공업체와 식자재 마트에 판매를 완료했으며, 추가로 54t이 17일 평택항으로 들어온다”고 밝혔다. 앞서 관세청은 올해 7월 말까지의 김치 수입액은 전년 대비 6.9% 증가한 9850만 달러(약 13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중 대부분은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다.
한편, 17일 강원 평창군 배추농지를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농작물 수입쿼터(할당) 허가권을 국내 생산자조합에 주도록 관련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 대표는 "작물이 흉작하면 수입하고, 풍작하면 나몰라라하는데 법을 바꾸면 된다. 현행법으로 농가에 수입허가권을 줘야 한다"며 "수입허가권을 해당 작물의 생산자조합 이런 곳에 주면 수입도 마구 안 하게 되면서 자동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은 10년마다 약 0.3도씩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가 피해도 증가하는 추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장마, 태풍, 이상저온 등으로 재해를 입은 농작지 면적은 2016년 3만7,667헥타르(ha)에서 2020년 20만3,576ha로5배 이상 늘었다. 이는 전체 경지면적 158만1,000ha의 약 13%에 달한다.
결국 기상 재해로 인한 작황 부진은 서민들의 ‘밥상물가’를 불안하게 만든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신선식품지수가 전월대비 6.9%, 전년동월대비 13% 상승했다. 특히 신선채소는 전월대비 17.3% 뛰었다. 품목별로는 전년동월대비 상승률이 배추 72.7%, 상추 63.1%, 시금치 70.6%, 오이 73%, 파 48.5% 등으로 대부분 채소류 값이 훌쩍 올랐다.
자연재해는 농사의 수확이 줄면 그 빚은 농민 개개인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기후변화와 토지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통해 농가의 기후변화 적응과 위험 관리를 돕기 위한 방안으로 재해보험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하는 농작물재해보험은 태풍, 우박, 지진, 조수해(야생동물 피해) 등에 따른 농작물 피해를 보상해 주는 정책 보험으로 보험료의 50% 내외를 국비로 지원하며 지방자치단체가 30~50%를 지원한다.
●농작물 주산지 북쪽으로...국내 경지면적 ‘아열대 기후권’ 늘어나
이미 우리나라 주요 농작물의 주산지가 남부 지방에서 충북, 강원 지역 등으로 많이 북상했다. 인삼은 충남 금산에서 경기·강원 지역으로, 포도는 경북 김천에서 충북·강원 등으로 이동했다.
월평균 기온 10도 이상이 8개월 이상 지속되면 아열대 기후라고 하는데, 현재 국내 경지면적의 10.1%가 아열대 기후권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2080년이 되면 아열대 경지면적이 62.3%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계속 배출된다고 가정하는 ‘RCP(대표농도경로·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 8.5 시나리오’에 따르면 21세기 후반에는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의 지역이 아열대 기후로 변한다.
농촌진흥청은 이런 국내 작물 생산지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신농업 기후변화 대응체계 구축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단 내부에 기후영향예측평가연구단, 기후적응기술연구단, 기상재해대응기술연구단, 저탄소농업기술연구단 등 4개 부서를 두고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15일에는 ‘민관협업전략팀’을 신설해 민간기업 등과 개방형 R&D 생태계 조성을 위한 융합형 농업기술개발 사업 기획‧관리하기로 했다. 민관협업전략팀은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국 소속 자율기구로, 총 7명의 전문 연구 및 기술 인력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기후변화 대응, 병해충 관리 등이 집중 관리 대상이다.
특히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여름배추 고온피해 경감 기술’을 연구해 적용 단계에 들어갔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는 검정색 멀칭을 통한 저온성 필름 개발, 미세 살수 기능을 장착한 다목적 스프링쿨러 적용 등이 있다.
‘저온성 필름’은 기존 PE필름(폴리에틸렌)을 개량하기 위해 복합소재(PE, 탄산칼슘, 이산화규소, UV제)로 제작한 투과성 광 반사 필름이다. 구체적으로 토양 온도를 떨어뜨려 생육 초기 뿌리내림을 원활하게 하고 결구기 고온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지하부 온도 하강을 통한 고온 스트레스 경감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투습도, 색, 반사율, 밀도조정 등 필름 경계층 복사열 경감되면서 기존(흑색필름) 대비 지온 4∼6℃ 강하, 식물체 온도 및 증발산량 감소 효과를 입증했다.
다목적 스프링클러 역할을 하는 신개념 ‘미세살수’ 기능은 기화열을 통한 기온하강과 관수·무인방제 활용이 가능하다. 이상고온 시 미세살수를 통해 기온을 3~4℃ 낮춰 고온피해 예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세살수 원리는 물 등 액체 증발시 주위로부터 열을 흡수하는 현상을 이용해 살포반경(4m)/살포물량(40리터/시간) 기준으로 연구결과를 산출했다.
농촌진흥청 문지혜 채소기초기반과장은 “우선 시급한 현 상황을 인지해 당장 내년부터 9월 출하를 기준 삼아 시범사업을 실시한다”며 “농수산식품부와 협의를 통해 재배 농가 대상으로 최첨단 기술 반영 시기와 구체적인 비용 지원 부분 등을 상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사하라 사막 물난리’ 기후 이변의 일상...한국은 기후재난 대처는?
건조한 사막 한가운데서 물난리가 날 정도로 전 세계 기후 변화가 심각하다.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이례적인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발생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인 이곳에서 홍수가 난 건 무려 50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각) 영국 일간 가디언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모로코 남동부 지역에 이틀간 연평균 강수량을 웃도는 비가 쏟아지면서 홍수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모로코 기상청에 따르면 수도 라바트에서 남쪽으로 약 450㎞ 떨어진 알제리 국경 인근의 타구나이트 마을에서는 24시간 동안 100㎜ 이상의 비가 내린 것으로 관측됐다.
세계기상기구(WMO)의 사무총장 셀레스트 사울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물순환 주기가 빨라져 더 불규칙해지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최근 기상 이변으로 인해 우리는 물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8월 헌법재판소의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면서 정부는 ‘2030년 이후 감축 목표를 법률로 정하고, 국회는 그에 앞서 대체할 법을 2026년 2월까지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시민기후소송의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중요한 것은 온실가스 수치만이 아니라, 기후헌법소원을 통해 지키고자 했던 기본권”이라며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폭넓은 국가의 책무가 뒤따라야 하고 헌법소원의 판결은 ‘최저선’일 뿐, 남은 일은 기후대응의 ‘최선’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기후 재난은 ‘발등에 불’이다. 눈앞에서 바로 일어나고 있지만 일상화되고, 무뎌지면서 관망하게 된다. 그 사이에 지구는 더욱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장기적 탄소중립 대안을 세우기보단 ‘원전 확대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정책 기조 전환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2년새 신재생에너지 등 탄소중립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이 420억원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중립 관련 R&D 사업 현황’을 보면 정부가 제출한 2025년도 해당 분야 예산은 901억원으로 2023년 예산(1322억원) 대비 32%(421억원)나 적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분야 R&D 예산이 대폭 삭감됐고, 기후변화대응기술개발 사업 예산은 사업 종료로 전액 삭감됐다. 수소기술개발 관련 예산도 37.7%(26억원) 줄었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탄소중립 지원을 강화하는 전세계 흐름에 역행한다. 최근 미국은 태양광 사업에 338억5000만달러와 풍력 사업에 105억8000만달러가 투자했고, 유럽연합(EU)은 탄소중립산업법에 따라 2030년까지 연간 탄소중립기술 수요의 40%를 역내에서 충당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후 위기 극복의 중심에는 재생에너지 실증 사업을 하는 기업들과 재배 작물의 지열 1도라도 낮추는 데 매진하는 농촌진흥청 연구원들, 그리고 기후 환경단체 등이 있다. 그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또한 작금의 기후 재난의 현실을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이 작게는 탄소중립 실천부터 넓게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까지 적극적인 행동이 뒷받침돼야 ‘금배추’와 ‘금토마토’라는 신조어가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다.